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105)
106화 무림출사 (1)
건우는 미소지었다.
‘이게 단전…….’
몇 번의 운기조식으로 선명히 느껴지는, 기해혈에 뭉친 따뜻한 느낌이 좋았다.
이런 게 흔하게 말하는 포근한 어머니의 손길 같은 느낌일까?
상상만 해왔지 느껴본 적이 없기에 알 수는 없다.
“저 가고 싶어요.”
무공이 발원한 차원.
그곳에 가 배우고 싶다.
아버지는 걱정하셨다.
아버지는 참 마음 착한 사람이다.
언제나 울면서 언제나 일을 나가신다.
아버지가 마음 편하게 의젓해져야지.
어른답게 굴어야 아버지가 마음 편히 일을 나가실 수 있지.
언제나 상대 먼저 생각하던 건우가 처음으로 드러낸 욕심에, 그것도 배움의 갈망에 아버지는 울면서 허락하셨다.
어머니의 사랑은 몰라도, 아버지의 사랑은 언제나 충분히 느껴졌다.
“몸조심해야 한다.”
아버지의 허락의 이유엔 삼촌의 역할이 컸을 거다.
지구에서 가장 강한 사나이.
인류 최강의 남자.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삼촌은 아빠보다 어려 보이지만 누구보다 센 사람이다. 동물들도 많이 길러, 친구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좋다.
아, 친구들은 모두 빡빡이다.
아무튼 건우는 삼촌과 새로 길드에 들어온 장순필이란 아저씨와 함께 구천 행성으로 향했다.
언제나 집과 근방 놀이터가 생활반경 전부였던 건우에게 언젠가부터 들판이, 숲이 놀이터가 되어왔다.
어른들의 걱정에 좁은 세상 스스로 갇혔던 소년은 삼촌을 따라다니며 자연을 마주했다. 들과 숲은 더 이상 위험지대가 아니다.
자연과 어울려 뛰놀던 소년의 가슴에 꿈이 자랐고, 마침내 구천 행성에까지 와 버렸다.
“사, 삼촌?”
그런데 포탈을 통과하자마자 삼촌이 쓰러졌다.
언제나 슈퍼맨이던 삼촌의 기절은 큰 충격이었다.
“도련님, 어서!”
장순필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건우를 안아들고, 소환된 비룡의 등에 올라탔다.
“쿠오!”
일곰이 비룡의 발에 매달리자 힘차게 날아오른 와이번은, 어느새 나타난 날개 달린 마몬비족을 뿌리치고 도망쳤다.
“쿠어어.”
“쿠오, 쿠오.”
비룡과 일곰은 저들끼리 대화하며 계속해서 하늘을 날았다. 몇몇 마을 위를 날았고, 둘은 끊임없이 대화를 주고받았다.
“쿠오, 쿠오.”
[맛있는 냄새다. 저길 쓸어버리고 차지하자.]“쿠르르르.”
[곰대가리 생각이 있냐, 없냐. 은신처는 은밀해야 한다.]“쿠오, 쿠오.”
[저기가 적당하다. 저 마을을 뺏자.]“쿠르르르.”
“쿠오, 쿠오.”
[여기 지구 아니다. 사람 아니다.]“쿠르르르”
[비슷하게 생겼다. 일단 조심한다.]“쿠오, 쿠오.”
[배고프다고!]“쿠르르.”
[밥 먹고 걸어오든가.]한참 동안 의견 합치를 못낸 야수들은 끝없이 날았고 더 이상 마몬족 마을도, 중원인 마을도 보이지 않는 설산 지대에 들어섰다.
“쿠오!”
[적당하다!]“쿠루!”
[좋다. 은신처로 적당하다.]바위에 난 구멍으로 쏙 들어간 와이번이 착지했고, 일곰이 동굴 초입을 수색했다.
“쿠오, 쿠오.”
“도련님, 이 손을 잡으시지요.”
장순필이 건우를 내려주고는 주변을 둘러봤다.
“아저씨. 삼촌 괜찮은 걸까요?”
“무사하십니다.”
장순필은 희망 대신 확신을 담아 말했다.
그 굳건한 믿음이 전해졌는지, 건우는 조금 불안해하면서도 삼촌을 믿었다.
“그동안 도련님은 제가 지켜드릴 테니 걱정 마십시오.”
“쿠오, 쿠오!”
설산이라 찬 바람이 끊임없이 불어 왔기에, 일행은 동굴 안으로 조금 더 들어가 바위 틈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 앞을 일곰이 문이라도 되는 듯 막고 서자, 곧 체온으로 따뜻한 훈기가 돌았다.
“이걸로 요기하십시오.”
“네, 아저씨도 드세요.”
건네받은 육포의 반을 찢어 다시 내밀어 주는 건우를 보며 장순필은 흐뭇하게 웃었다.
어찌 이리 예의 바르고 기특할꼬.
취아가 살아있었다면 딱 요만한 나이가 되었을 터인데…….
육포를 사이좋게 먹은 둘은 곧장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이제 막 배우기 시작해 재미를 붙인 건우는 물론이고, 가르치는 장순필도 재미가 있었다.
‘물먹는 스펀지가 따로 없구나.’
하루가 아니, 시간마다 다르게 성장하는 건우의 잠재력이 놀랍기만 하다.
“후우.”
아이답지 않은 놀라운 집중력.
이 아이는 홀로 독학해도 대성했을 인재다.
하지만 집중력이나 노력 같은 것들과는 별개로 기해혈에 자리 잡은 단전이 자라는 데는 그 성장시간이 필요했고, 아직 입문단계인 건우의 운기조식 시간은 짧았다.
“후우, 삼촌은 언제 돌아오실까요?”
“곧 오실 겁니다.”
의젓해 보이려고, 태연해 보이려고 노력하지만 속에 담긴 불안감이 보인다. 아니, 느껴진다.
장순필은 화제를 돌렸다.
“전에 배웠던 중원어는 기억하십니까?”
“네.”
“안녕하세요. 박건우입니다.”
“훌륭합니다!”
“식사하셨습니까? 저는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럴수가! 그건 어찌 아셨습니까?”
“아저씨가 저번에 한번 말씀해 주셨잖아요.”
“허허허허.”
인재로구나, 인재야.
한 번 들은 말을 잊지 않고 기억하다니.
학생이 이토록 영특한데, 가르치는 입장에서 어찌 신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무인들은 하나같이 괴벽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말을 배우는 김에 그들에게 실수하지 않는 법도 가르쳐 드리지요.”
“네, 아저씨.”
무공만 배우면 지구로 돌아갈 처지이지만, 뭔들 배움이 나쁘랴. 수호의 안전을 모르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무엇이든 잠깐 현실을 외면할 소재가 필요했다.
사흘이 지났고, 장순필이 구비한 비상식량이 모두 떨어졌을 때 동굴 안에서 희미한 괴성이 바람결에 실려 왔다.
키에에.
“무슨 소리가?”
“쿠오!”
은신처가 안전하지 못하다.
일곰과 비룡이 움직였고, 장순필과 건우는 현재 가장 안전한 곳인 그들의 곁을 따라나섰다.
*삼촌은 멀쩡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네 무공 선생이다.”
“예?”
“S등급 용병 수준이야. 밥 먹기 전에 인사나 해둬.”
“네, 삼촌.”
삼촌이 허공에서 땔감과 신선한 고기 등을 꺼낼 때, 건우는 새로 합류한 무림인에게 다가갔다.
‘무림인들은 괴벽이 많다고 했어.’
확실히 장순필 아저씨의 말이 맞았다.
거적때기나 다름없는 팬티에 아대와 각대만 찼다. 맨발은 부르트고 발톱이 빠진 발가락도 있어 당장 치료가 필요해 보였다.
무엇보다 굵은 허리띠와 양쪽 어깨에 사선으로 이어진 멜빵 비슷한 가죽끈이 이상하게 보였다.
비쩍 마른 몸은 선명한 근육으로 갈라져 있었는데, 그렇지 않아도 이상한 모습이 이 때문에 더욱 이상해 보였다.
“나는 @!#!@…….”
“박건우예요.”
“좋다. 나는 @@!은인 약속 !@#!@네게 무공 !@!@#.”
말을 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대강의 사정은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사람이 삼촌에게 무언가 은혜를 입었구나.
“네가 배울 무공 비뢰간지.”
“비뢰간지.”
조용히 되뇌어 봤다.
이따 장순필 아저씨가 일어나면 한국어로 무슨 뜻인지 물어봐야지. 지금은 그저 소리만 기억했다.
사내가 불쑥 내미는 손에 건우가 악수를 받아주려 했다.
슈슉.
기민하게 움직인 그 손이 악수 대신 손목을 낚아챘다.
“음?”
변태같이 보이는 아저씨에게 손목이 낚아채여서 그런가? 속이 간질간질한 것이 이상했다.
“느낌이 이상해요.”
“!@#!@#!@”
아저씨는 화난 듯한 음성을 내뱉은 뒤, 이어 털썩 주저앉더니 바닥을 가리켰다. 앉으라는 거구나.
“너는 아들. 당건우.”
“예?”
이 아저씨 내 이름을 잘못 알았구나.
그때 삼촌이 다가와 변태처럼 보이는 아저씨를 후려쳤다.
*치지지직.
돌판 삼겹살이 살인적인 소리를 내며 익었다.
장순필과 수호가 쉴 새 없이 젓가락을 놀리는 와중에, 건우는 한쪽 구석에 등 돌리고 있는 등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조카가 신경 쓰자 수호도 괜히 그쪽을 보곤 물었다.
“야, 삐쳤냐?”
“일 없소.”
바로 대답하는 거 보소.
배 많이 고팠나 보네.
“야, 그러지 말고 와서 좀 먹어.”
“…….”
싫다는 소리도 안 하네.
“야야, 내가 미안하다. 사과할게.”
“크음.”
당진철이 슬쩍 몸을 틀어 이쪽을 보았다.
퍼렇게 멍든 눈보다 입가에 묻은 침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수호보다 더 먼저 잡혀 있던 몸.
“안 먹으면 치운다?”
“큼, 사내대장부가 어찌 옹졸하게 굴 수 있겠소. 내 대협의 사과를 너그러이 받아들이겠소.”
당진철은 냉큼 오더니 걸신들린 사람처럼 고기를 집어 먹었다.
“아뜨뜨.”
“젓가락 써. 젓가락.”
“큼, 유식자도 배고픔엔 까막눈 된다 했소. 내 대협이 잡혀오기 한 달 전에 잡혀와, 그간 먹은 거라곤 보리 한 주먹도 되지 않소.”
“난 며칠 있었는데?”
“사흘을 기절해 있었소.”
수호는 그동안 건우를 잘 지켜준 장순필을 흐뭇한 눈으로 보았다. 장인을 주웠더니 더없이 믿음직한 부하가 되었다.
그의 원한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갚아준다.
“보아하니 대협과 아이는 지구에서 온 듯한데, 이쪽은 존성대명이 어찌 되시오?”
당진철은 쉴 새 없이 손을 놀리면서도 천연덕스럽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저는 무인이 아닙니다. 쇠쟁이일 뿐이지요.”
“대장일을 하고 계시오?”
“손에 놓은 진 꽤 됐으나 이제 다시 잡아야지요. 지금은 그저 길안내하는 종입니다.”
스스로를 종으로 낮추는 장순필이었으나 수호는 말을 바꿨다.
“우리 집안에서 머리 쓰고 연구하는 사람이야.”
“허, 밀양박씨세가의 모사께서 어찌 스스로를 종으로 낮추시오.”
엄연히 가솔과 종은 다르건만 개중에 꼭 짓궂게 저리 말하는 자들이 있다.
유력한 가문의 총관, 모사 등은 더없이 귀한 대접을 받는 식객이자 가솔이건만, 종놈이라 낮추다니.
짓궂기는.
“나는 진천이라 하오. 대협께 은혜를 입어 여기 아이의 무공 선생을 맡기로 하였소. 당분간 동행할 듯하니 잘 부탁드리외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요.”
수호는 피식 웃으며 업적상점에서 고기와 빵을 더 꺼냈다.
“허, 이 빵은 어찌 이리 부드럽소?”
참 게걸스럽게도 먹는 것이, 딱 한 달은 굶은 사람처럼 보였다.
“배고픈 게 가장 서럽지.”
누구보다 배고픔의 고통을 잘 안다.
수호는 지난날이 생각나, 그가 배를 두드릴 때까지 업적포인트를 소모해 음식을 꺼내 주었다.
맥주까지 꺼내 한 잔씩 돌리자 그가 만족한 듯 음식 먹는 속도가 느려졌다.
“하아, 요술 주머니가 따로 없소. 이 세상에선 귀 큰 놈들 물건은 죄다 말썽인데, 그건 어찌 작동하오?”
인벤토리에서 꺼낸 것을 아공간 주머니로 오해하는 모양이다. 아니, 이건 인벤토리도 아니고 그냥 상점에서 산 건가.
“알 것 없어.”
“신비로운 일이오.”
당진철은 감탄할 뿐 더 캐묻지 않았다.
행색이 괴상해 그렇지, 강호 예의에 밝은 사람이다.
‘좋은 무공 선생을 구했구나.’
장순필이 흐뭇하게 웃자, 영문도 모르면서 당진철이 마주 웃어줬다.
“그럼 대협께서는 앞으로 이 설산에 머물 것이오?”
“아니.”
구천 행성에 온 목적은 하나가 아니다.
“세 가지 목적으로 왔지.”
장순필이 얼굴이 무거워졌다.
“하나는 관광.”
“허, 거 참 멋진 이유요.”
강호 유람만큼 멋진 출사표가 어딨단 말인가.
“두 번째는 내 조카의 무공비급.”
“엄청난 재능을 지녔소. 보다 정확한 진맥을 해봐야 알겠지만, 5년 내 이류 수준은 될 것이오.”
수호가 씩 웃었다.
이류고수 수준이면 지구에서는 A등급이다.
어린아이에게 몬스터 사냥을 강제할 게 아니라면 나쁘지 않은 성과다. 실전 한 번 없이 A급 각성자가 될 수 있단 소리가 아닌가.
그때면 17살이다.
“세 번째는…….”
“대장.”
장순필이 급히 만류했고, 수호가 의아한 듯 보았다.
“왜?”
“여기 소협을 못 믿는 건 아니나, 말은 뱉으면 주워담을 수 없으니 아끼는 게 좋을 듯싶습니다.”
말하지 말란 말이다.
수호는 여전히 의아한 얼굴이었고, 그보다 당진철이 더 이해한다는 듯 말을 돌렸다. 강호 예의에 밝은 이다.
“허허, 달이 참 밝구려.”
“갑자기 무슨 달타령이냐. 아무튼 내 부하의 복수를 위해서 왔지.”
복수란 말에 당진철의 눈빛이 반짝였다.
장순필이 포기한 듯 입을 열었다.
“남궁세가주.”
“음? 남궁장천?”
당진철의 얼굴은 어이없는 얼굴이 되었다.
“확실히 말을 조심히 했어야 했소.”
당진철의 눈빛이 일행을 살폈다.
“내가 여전히 무림맹 소속이었다면 당신들을 베었을 것이오.”
지금은 아니라는 이야기.
“무림맹주, 그는 나의 원수이기도 하오.”
“……지금 무림맹주라 하였소?”
“맞소. 1년 전 그가 27대 무림맹주가 되었소.”
“…….”
“장형은 무슨 연유로 그와 은원이 얽혔소?”
“내 옛 주인이오.”
“…….”
종이라는 말이 빈말이 아닌 모양이었다.
곰곰이 기억을 되짚던 당진철이 깜짝 놀라 장순필을 보았다. 남궁가의 뛰어난 검장이 사실 지구인 출신이라는 소문이 있었는데…….
“장형이 혹시!”
기억 속에서 가물거리던 그의 별호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