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125)
126화 야수문 (2)
사두마차가 개조되었다.
큰 변화는 아니고, 그저 말들을 수호 길드로 보내버리고 마차 지붕에 긴 통나무를 달았을 뿐이다.
후우우우, 후우우웅!
비룡의 발톱이 그 사두마차 지붕의 손잡이를 쥐고 날아올랐다.
“와아…….”
이미 한번 경험한 적이 있는 장순필과 건우는 조금 덜했지만, 하늘을 날아 보는 게 처음인 왕일은 심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과연 산신님이다.’
어디 있던 산신령일까?
이렇게 큰 비룡을 길들여 다니는 산신령이 있다는 소리는 전설로도 들어본 적이 없다.
왕일은 창 너머로 고개를 내밀고 빠르게 지나가는 지면을 홀린 듯 구경했다.
몇 개의 마을을 지나친 비행마차는 곧 푸른 숲의 바다 위를 지났다.
슈슈슈슉!
그때 나무 틈에서 돌멩이들이 수십 다발 날아와 마차를 두들겼다.
타탕, 탕!
그 힘이 꽤 강해 나무가 움푹 파일 정도라, 비룡은 급히 고도를 올렸다.
“여기야?”
수호가 아래에 빼곡한 숲을 가리키자 당진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소. 여기가 후왕의 영역이오.”
“원숭이 왕이라…….”
수호는 저 아래 나무가지를 오가며 열매나 돌멩이를 주워 던지는 원숭이 떼를 보며 씩 웃었다.
“부하로 삼기 딱 좋은 녀석이군.”
놈들의 거처는 외성벽 위로 하면 딱일 듯싶었다.
성벽이 그 자체로 나무숲이니 보금자리가 되어주면서도, 외성벽으로 접근하는 몬스터들을 경계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돌팔매질이 수준급이니 대공 방어도 꽤 쓸모 있어 보이고, 해자 너머로 접근하는 몬스터 무리를 타격하기도 용이해 보인다.
“어디, 우두머리를 잡으러 가 볼까?”
“후왕의 거처가 저깁니다.”
끝없이 펼쳐진 푸른 숲 중앙에 우뚝솟은 바위산을 보며 수호가 눈을 빛냈다.
비룡이 천천히 하강해 바위산에 닿았다.
*후왕은 날 때부터 덩치가 남달랐다.
어린 시절 바위산을 뛰놀기 좋아하던 후왕은 바위틈 사이로 굴러 떨어져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갇힌 적이 있었다.
입구가 막혀 다시 갈 수가 없어 하는 수 없이 동굴 안으로 들어갔는데, 굽이굽이 험한 동굴을 기어가니 동굴 안에 커다란 별세상이 위치해 있었다.
온 천지 바위마다 붙은 야광주가 빛을 밝혀 낮보다 더 밝은 그 세상은, 온갖 기화요초가 피어 있고 달콤한 버섯들이 천지에 널려 있었다.
후왕은 이름 모를 풀과 버섯, 이끼를 먹고, 샘에 고인 물을 먹으며 살았다.
그러자 원래 좋던 몸은 더 좋아지고, 머리마저 깨치게 되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단순히 원숭이라 불릴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동굴을 탈출한 후왕을 대적할 원숭이 무리는 없었고, 곧 그가 숲의 모든 원숭이들의 왕이 되었다.
그의 휘하에 모인 원숭이가 물경 1만을 넘어가고, 그의 지휘아래 일사불란하게 군대와 같은 위용을 갖추니, 숲엔 원숭이 외에 더 이상 어떤 포식자도 존재하지 않았다.
모조리 사냥당하거나 쫓겨나 숲은 원숭이들 천국이 되었다.
후왕이 두목이 된 지 300년.
원숭이 숲은 8만 마리 이상의 원숭이들이 터전을 잡아, 강호인들도 발길을 끊은 험지가 되어 있었다.
후왕은 동굴이 있는 바위산을 자신의 거처로 정하고 어떤 수하 원숭이도 근처에 얼씬하지 못하게 했다.
혹여 누가 동굴에 몰래 들어가 자신의 먹이와 샘물을 탐낼까 걱정되어서다.
불로장생을 꿈꾸는 늙은 원숭이 왕은 오늘도 동굴에 틀어박혀 머리가 맑아지는 샘물을 먹고 있었다.
저벅, 저벅.
누군가 동굴을 들어서는 소리에 후왕은 인상을 찌푸렸다.
어떤 정신 나간 부하놈이 여기 발을 들인단 말인가?
아끼던 부하 하나가 여기 들어왔다가 반죽음 상태로 나무에 매달린 게 50년 전인데, 슬슬 참교육을 잊은 녀석들이 나오는 모양.
“쿠오오오오!”
동굴을 쩌렁쩌렁 울리는 후왕의 포효에도 발걸음 소리는 줄지 않았다.
그리고 나오는 것은 원숭이가 아니었다.
“이야, 이거 원숭이가 아니고 고릴라네.”
“……?”
인간이 왜 여기 있을까?
“우우우우, 우우!”
뭔가 우물거리며 소리치는 후왕을 보며 수호가 히죽 웃었다.
“너 말할 줄 몰라?”
이무기보다는 못한 모양이다.
뭐, 지능은 높다 했으니 가르치면 할 수도.
“근데 뭘 먹었길래 때깔이 그리 좋냐?”
“우오오오!”
건방진 인간.
말은 못 알아듣지만 분명 시비 거는 게 분명한 인간을 향해 돌진했다.
“쿠오오!”
바위도 깨부수는 거대한 주먹이 인간의 머리통을 깨리라.
콰직!
“힘 좋네.”
힘도 좋고 주먹도 크다.
손가락 하나하나가 자신의 팔뚝만 하다.
덩치도 얼마나 큰지, 키가 3미터는 되어 보인다.
“말은 안 통해도 매는 통하지.”
콰앙!
수호가 원숭이 왕을 참교육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각성자 관리국.
국장은 자리에 올려진 보고서를 집어들었다.
“수정된 협상안인가?”
지금 가장 시급한 과제라면 대한민국 7성 던전에 대한 방비.
도시 규모로 쪼그라든 인류생활권으로 인해, 도시의 방어는 국방부의 힘만으로 충분히 가능하다.
간혹 있을 에스퍼 계열의 몬스터들에 대한 방비도 어느 정도 되어 있는 상황.
문제는 시티 내부에 생겨날 7성 던전에 대한 대비책이다.
그에 대해 모든 국민들이, 정부가 한사람을 떠올렸다.
“응? 바뀐 게 없는데?”
“네, 저쪽에서 협상을 보류하잡니다.”
“허, 이 급한 때에 보류라.”
국장은 씩 웃었다.
누구보다 김미소를 잘 아는 국장이다.
그녀가 이렇게 발을 뺄 때는 보다 큰걸 원할 때다.
아무래도 치열한 협상이 될 것 같은 조짐이다.
“이거 뭘 원하는지 벌써부터 두렵네.”
지금 수호 길드는 얕은 용병 뎁스로 곤란을 겪고 있다. 길드 규모는 거의 시티급인데 소속용병들이 적어도 너무 적었다.
거기에 국방부의 방위도 받지 못하는 필드에 세워진 소도시.
내부에 5성 던전 하나 생긴 것만으로도 길드 용병들이 총력으로 달려들어야 하는 길드다.
군대의 주둔을 협상무기로 박수호의 서울시티 7레벨 방위조약을 이끌어내기 딱 좋은 타이밍이다.
뚜루루루루.
국장은 신호음이 길어질수록 미소가 짙어졌다.
그녀가 흔히 쓰는 수법이다.
“이거 알 만한 사람들끼리 너무하시네.”
하지만 그녀의 상사로 오래 근무한 관리국장에게는 너무 눈에 빤히 보이는 얕은 수법.
– 여보세요?
“어, 오랜만이야.”
– 엇그제도 통화하셨잖아요.
“아 그랬나? 하하, 워낙 바빠야지.”
– 용건이 뭐예요?
“아니, 왜 이리 급해?”
– 지금 너무 바빠서 그래요. 급한 일 아니면 다음에 통화하시죠.
국장은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아, 상대의 협상카드가 그리 중요치 않다는 뉘앙스의 저급한 수법이라니.
“우리 복잡하게 가지 말자. 원하는 걸 말해 봐. 거의 다 들어줄 용의가 있어. 윗분들이야 손해 보고 싶어 하지 않지만, 난 아냐. 내줄 수 있는 모든 걸 내줄 테니 빨리 마무리 짓자.”
– 하아.
김미소의 한숨이 수화기를 타고 흘러들어왔다.
– 저도 그러고 싶죠. 헌데 사장님이 싫대요.
“허, 그 큰 땅을 차지하고 어쩔려고 그래? 나야 우호적이지만 윗분들 생각은 또 달라.”
관리국장은 이쯤에서 슬쩍 압박을 가했다.
“지금 위에서 내려오는 소리가 있는데, 3군단 주둔지를 뒤로 더 물릴 수도 있어.”
서울과 수호 길드 사이에 3군단의 임시주둔지가 마련되어 있었다.
협상 여부에 따라서 위로 올라갈수도, 아니면 뒤로 뺄 수도 있다는 협박.
-그러세요.
“응?”
-국장님 생각해서 하는 소린데, 괜히 협상카드 만지지 마세요. 저희 사장님 안 한다면 안 해요. 이건 픽스니까 괜히 찔러보지 마세요.
“김 부사장.”
– 그럼 정말 바빠서 끊어요.
“어? 김 부사장. 김미소, 미소야!”
뚜우, 뚜우.
“허, 참.”
관리국장이 대기중인 직원을 봤다.
“이거 뭐하는 시츄에이션일까?”
“그, 몸값을 올리려는 수법 아니겠습니까?”
수호 길드는 힘이 있지만 체력이 없다.
자체 인구도 별 볼 일 없고, 길드 자체 인력도 얼마 되지 않는데 가진 땅만 넓다.
절대 서울권역을 벗어나 자립할 수 없는 소도시가 보이는 자세라고 하기엔 너무 고압적이다.
“당장 수호 길드 파 봐.”
“네, 국장님.”
*김미소는 갑작스럽게 소란스러워진 광장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
“저게 대체…….”
“킹콩 아닐까요?”
오우거 덩치만 한 거대 고릴라가 광장에 나타나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주변 있던 야수들이 공격하지 않는 것을 보면, 침입자가 아니라 수호가 보낸 야수.
“내려가 보자.”
“네, 부사장님.”
김미소가 광장에 내려와 보니, 멀리서 볼 때보다 고릴라의 위용이 더욱 굉장했다.
키는 오우거만 하고 떡 벌어진 어깨와 꽉찬 근육으로 탄탄한 육체.
“우우우.”
고릴라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위협적인 소리를 냈다. 막상 광장까진 내려왔지만 처음 보는 압도적 포스의 야수 등장에 다가가지 못하는데, 그때 백구가 나타났다.
“왈!”
“어우, 놀래라. 백구야, 엄청 반갑다야.”
미소가 백구의 죽통을 열어보니 종이가 한 장 들어 있었다.
“이 실장.”
“네, 부사장님.”
“측정기 가져와요.”
“넵.”
잠시 후 차원에너지 측정기를 덩치 큰 고릴라에게 가져다 대 본 김미소는 깜짝 놀랐다.
86레벨.
아직까지 지구의 각성자들이 도달하지 못한 수치다. 그야말로 몬스터 급.
“우우우.”
“이리로 오실래요?”
김미소가 후왕을 외성벽으로 이끌었다.
이후로도 광장엔 후왕보다는 덩치가 작지만 그래도 지구의 원숭이와는 비교되지 않는 우람한 원숭이들이 속속 등장했다.
’S급 원숭이들이라니.’
소환되는 원숭이 수가 400마리를 넘어서자, 김미소는 수호 길드 방어에 대한 걱정을 접었다.
세계 어느 길드가 있어 S급 전력을 이만큼 보유할 수 있을까?
*여기저기 부어오른 후왕이 고개를 숙였다.
“우우우우.”
“거 고집 세네.”
이무기 백사는 상황판단이라도 빨랐는데, 후왕은 꽤 끈질기게 버틴 뒤에야 길들이기에 성공했다.
“다 보낼 순 없고, 부하 중에 센 놈들 순서대로 모아 놔.”
“우우오!”
후왕이 동굴을 나섰고, 수호는 주변을 둘러보며 피식 웃었다.
“좋은 건 다 쟁여두고 먹고 있었네.”
내력이 2 증가합니다.
지력이 1 증가합니다.
…….
버섯부터 이름모를 풀까지, 버프가 없는 게 없다. 수호는 싹 채취해 먹어보았으나, 같은 종류를 연달아 먹는 건 의미가 없었다.
엄청난 수치의 상승은 없지만, 아무런 수련도 하지 않고, 결투로 자신을 증명하거나 역사의 증명으로부터 보상받지 않아도 내력을 늘릴 수단으론 좋았다.
느린 성장이지만 이것 또한 쌓이면 크다.
수호는 영약들을 싹 채취하고 바위마다 붙은 야명주도 몇 개 캐내 인벤토리에 넣었다.
채집을 거의 마치고 동굴 밖으로 나와 보니, 바위산 아래에 원숭이들이 구름같이 모여 있었다.
그 압도적 숫자에 마차에서 내린 일행들이 바짝 긴장한 채 수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뭘 그리 쫄아 있냐?”
“저들 하나하나가 결코 만만히 볼 놈들이 아니오.”
“이제 내 부하의 부하들이다.”
모여든 수만 마리 원숭이들을 모조리 보낼 수는 없었기에, 수호는 레벨 60이 넘는 녀석들만 길들여 야수사육장으로 보내기 시작했다.
“후512, 후513, 후514…….”
대충 지은 이름이 600을 넘어가자 더이상 레벨 60 이상의 원숭이가 남아 있질 않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당진철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지구가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내 꼭 한번 가 봐야겠소.”
지구의 각성자들은 전부 저리 무지막지한지 한번 구경이라도 해 봐야 할 성싶었다.
“다 끝났네. 다음 목표로 가자.”
남만은 넓었고 야수는 많았다.
“가장 가까운 데가 어디였지?”
“인면지주의 동굴이오.”
“걔도 야수로 쳐주려나?”
길들이기에 성공해야만 차원을 넘어 야수 사육장이 있는 길드로 바로 보낼 수가 있었다.
수호가 비룡을 소환해 다시 마차를 비행시키는 그때, 무림맹은 심각한 회의가 한창이었다.
대놓고 행적을 다 노출하며 무림맹으로 진격해 오던 혈마가 증발하듯 사라져버렸다.
공교롭게도 시기를 같이해 남만 야수문이 거대한 무리를 이끌고 무림맹을 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