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126)
127화 야수문 (3)
인면지주는 특이한 영물이다.
거미와 흡사한 생김새를 가졌으나 덩치가 황소만큼이나 컸다.
그런 주제에 얼굴은 사람하고 흡사했다.
“저거 진짜 얼굴이야?”
“가짜요.”
“와, 진짜 사람하고 똑같네.”
인면어처럼 사람과 조금 비슷한 정도가 아니다.
진짜 사람의 머리를 거미 머리 대신 얹어 놓은 듯 똑같았다.
“머리도 풍성하네.”
검은 머리칼과 동그랗게 뜬 눈도 사람처럼 빛나고 있었다.
“진짜 입은 턱 밑에 있소. 저놈은 배가 아니라 입으로 거미줄을 뽑으니 조심하시오.”
“알았어. 여기 있어 봐.”
수호가 동굴 안으로 더 들어가자 인면지주가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리며 안쪽으로 물러났다.
“야야, 이리 와 봐. 안 때려.”
“쉬쉭.”
여전히 믿지 못하며 뒤로 물러나는 녀석을 보며 수호가 인상을 썼다.
“자꾸 도망가면 때릴 수도 있어.”
인면지주의 얼굴이 시무룩해져 멈추는 걸 보고 수호가 웃었다.
“이야, 이 행성 애들은 다들 머리 좋네.”
수호는 인면지주를 대충 제압한 후 길들이기 스킬을 써 보았다.
풀만 먹고 사는 녀석이 아니니 야수로 쳐줄지도 몰랐다. 육식하는 토끼도 길들인 전적이 있으니까.
“오!”
녀석의 거미줄이라면 성벽으로 접근하는 녀석들을 걸러내는 데 한몫하리라.
수호는 인면지주를 야수 쉼터로 보내며, 혹시 놀랄 사람들을 걱정해 편지를 써 백구에게 전해줬다.
“얘는 북쪽 수문장 시키면 되겠다.”
레벨도 후왕보단 낮지만 그래도 78. 지구로 가면 당장 SS등급의 각성자다.
요즘 북쪽 평야와 강원도 쪽 던전은 아예 공략 생각도 못한다고 하니, 꾸준히 몬스터들이 필드로 나오고 있는 상황.
지금이야 몇몇 무리가 출몰하는 수준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대규모 공성전을 걸어오는 무리가 나타날지도 모른다.
인면지주 정도 전력이면 돌아갈 때까지 수문장으로 두기에 딱이란 생각이 들었다.
동굴을 나온 수호는 마차에 올라타며 물었다.
“이렇게 뜨문뜨문 말고 어디 좀 많이 몰려 있는 데 없어?”
“그야 한 군데 있긴 하지만…….”
수호는 뜸을 들이는 당진철을 재촉했다.
“어딘데?”
“남만 최요지에 있는 야수문이오.”
“야수문?”
“짐승들을 길들여 그들의 종으로 부리는 집단이오.”
“오.”
수호는 호기심이 동했다.
길들이기 스킬과 비슷한 무공이 있다는 말 아니겠나?
“그리로 가보자.”
특이하게 생긴 짐승들을 모집하는 것도 꽤 재밌는 일이지만, 언제까지 야수수집에 시간을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도 야수문의 위치는 풍문으로만 들었으니 정확히는 모르오.”
“일단 가 보자. 찾는 건 내가 할 테니까.”
“알겠소.”
수호가 신호하자 비룡이 힘찬 날갯짓으로 마차를 띄웠다.
*무림맹 본부.
격전지의 중심에 있는 이곳의 맹주전 회의실에 맹의 회원들이 모여들었다.
무림맹 자체가 수직적인 조직구조라기보다는 맹의 이름으로 모인 여러 가문들의 집합체.
맹주의 권한이 크긴 하지만 그도 독선적으로 모든 일을 결정할 수는 없다.
이 맹회의야말로 구천 행성 중원인들의 절대 정치 기구 중 하나.
중년 거지는 서슴없이 맹주를 공격했다.
“내 들어온 무영단의 명성이 거짓이었나 봅니다.”
무림맹 정보집단으로 활동하고 있는 무영단은 무림맹주 남궁장천 가문의 사조직을 그대로 옮겨온 집단.
무영단을 욕보임으로써 맹주의 체면을 깎는 말에, 소란스럽던 좌중에 잠깐의 침묵이 감돌았다.
남궁장천은 그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나직이 말했다.
“확실히 실수가 있었소.”
“허, 이걸 어찌 실수란 말로 넘어가려 하신단 말이오? 대놓고 눈앞에서 놓쳤는데.”
“…….”
남궁장천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 반응이 기꺼웠는지, 개방 방장 중언개는 몰아치는 건 이쯤에서 관뒀다.
“놈의 추적은 이제부터 개방에서 맡겠소. 이의 있으시오?”
“그렇게 하시오.”
무림맹주 남궁장천은 순순히 승낙했다.
비영은 은신술로 절정을 이룬 고수다.
가문에서도 가장 아끼고 믿는 수하 중에 하나.
그런 그의 은신술이 간파당했다 하였다.
더욱이 추적술에도 일가견이 있는 그가 종적을 놓쳤는데, 개방 따위가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지금 이 치욕과 망신은 훗날 개방 방주의 것이 되리라.
회의실 상석 중 하나를 차지하고 있던 모용가 가주 모용수한이 손을 들고 말했다.
“방장께서는 너무 그리 열내지 마시지요.”
“우리 방의 후개께서 그리 가셨는데 어찌 내가 열내지 않을 수 있겠소?”
“강호동도를 잃은 것이 어디 방장뿐이겠습니까? 그들의 최종 목적이 무림맹주의 암살이라고 하니, 사실 가장 마음 쓰이는 게 누구겠습니까?”
“크흠.”
방장 중언개가 헛기침을 했다.
그가 노발대발하지 않아도 어차피 놈들은 무림맹주를 노리고 이곳으로 오고 있다.
“사실 놈의 자취를 쫓는 것보다 기습에 대한 대비를 하는 것이 더욱 급한 일이라 할 수 있소.”
“천하 영웅들이 모두 맹에 모였는데 더 무슨 대비를 한단 말이오?”
사실 무림맹엔 각지에서 몰려든 고수들이 가득했다. 구천 행성 중원인 진영의 전력 절반이 무림맹에 모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정도.
“고수들의 싸움에 숫자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내 가문에 일러 아버님을 초청하는 서신을 보냈으니, 다른 가문들도 조금씩 힘써 주시지요.”
남궁수한의 아버지라면 은퇴한 전대 고수가 아닌가.
“크흠, 망둥이 하나 잡는데 도제 선배까지 모실 필요가…….”
도제 남궁적산.
전대 무림맹주인 그는 당시 열세이던 무림맹을 이끌고 수백의 마몬족 마을을 멸하고, 증명의 비석을 되찾은 영웅.
죽립을 눌러 쓴 중 하나가 합장하며 말했다.
“더 이상 그를 경시해서는 아니 될 말이오.”
“맞소이다. 놈은 혈마라 칭하는 게 과하지 않은 고수요.”
아직 믿기지 않지만 놈의 한 수에 고수 500명이 죽었다.
각 가문에서 은거한 선배고수들을 초빙해 무림맹의 전력을 강화하는 것으로 대강의 안건이 마무리되었다.
“다음은 야수문의 준동에 대한 건이오.”
“남문에 박혀 있던 지렁이 놈들이 다시 밟히고 싶어 나온 게지.”
세외세력들은 모두 안전지역인 후방에 있어, 중원으로 나온다 해도 중원인 마을밖에 없어 충돌이 잦았다.
“놈들을 막아야 할 후방의 가문들이 지금 전력 공백상태나 다름없으니…….”
후방 가문의 고수들이 모두 박수호에게 당했다.
자칫 잘못하다가 야수문에 마을 몇을 넘길지도 모르는 상황.
“이이제이의 수법으로 놈들로 하여금 혈마와 충돌케 하는 건 어떻소?”
“어허, 아니 될 말이오.”
개방 방장 중언개가 정색하고 나섰다.
“쯧쯧, 이렇게 정보에 어두워서야.”
“방장께서는 뭔가 아는 거라도 있소이까?”
“혈마가 나타난 때를 같이해 야수문이 기다렸다는 듯이 중원 침범을 하고 있소. 다들 뭔가 짚이는 게 없으시오?”
“한패란 말이오?”
“우리 개방에서는 거의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소. 한패임은 물론, 혈마가 야수문에서 특별한 대법으로 키운 마인이 아닌가 의심하고 조사하는 단계요.”
“어허, 놈은 지구인이라 들었소만.”
“어디 출신이 중요하오? 지구인을 잡아 가두고 이것저것 실험한 가문이 어디 한둘이오?”
방장 중언개가 슬쩍 남궁장천을 보았다.
그도 지구인 출신 장인을 지지고 볶아 천검야장으로 만들어내지 않았나?
그가 만든 보검이 남궁가의 무사들을 더욱 빛나게 해 주었던 것은 명백한 사실.
불과 2년 사이 엄청나게 확장한 남궁세가도 사실 지구인을 쥐어짠 덕이라 해도 무방했다.
남궁장천이 불편한 심기를 감추며 그저 무표정히 있었다.
방장 중언개는 그가 속으로 얼마나 이를 갈지 알기에 속으로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야수문이 준동한 이후 혈마가 자취를 감춘 것도 필시 둘이 합류했기 때문이라 보오.”
“역시 개방의 정보력은 중원 제일이오.”
누군가의 추켜세움에 방장 중언개가 당연하다는 듯이 자신감을 보였다.
“조금만 기다려 보시오. 놈이 날개라도 달리지 않은 이상, 곧 개방의 정보망에 걸려들 것이오.”
세상천지 어디에나 있는 게 거지다.
그들끼리 연결된 촘촘한 연결망에 곧 걸려들리라.
*후우웅, 후우웅.
비룡이 정글 위를 날고 있었다.
밑으로 보이는 건 전부 무성한 나무들뿐이지만 수호는 정확히 한곳을 짚어 이야기했다.
“저기네.”
“별다른 게 없어 보이오만.”
“어유, 딱 봐봐. 사람 보이잖아?”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천천히 고도를 낮추는 비룡을 향해 창이 날아왔다.
쐐애애액! 팡!
수호가 공기를 베어 투창을 막자 당진철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검기상인의 경지가 예사롭지 않소.”
“검기 쏜 거 아냐.”
정확히 말하면 바람의 정령과 몸 안의 내력을 합쳐봤다.
“이거 생각보다 좋네.”
구천 행성으로 와서 조금의 업적 포인트도 얻지 못했고, 레벨도 그대로였다.
하지만 내력을 얻음으로써 전보다 배는 강해진 느낌.
특히 4대 정령을 내력으로 강화하는 수법과 내력을 실체화된 기운으로 만들어 적을 타격하는 수법은, 이제 손발을 움직이는 것만큼 자연스러워졌다.
쐐애애액, 퍼, 펑!
연달아 쏘아진 창이 허공을 격해 날아오다가 속절없이 부서져 힘을 잃고 떨어졌다.
“다들 꽉 잡아.”
수호는 마차를 그냥 나무꼭대기 위에 내리도록 했다.
훅 고도를 낮춘 비룡이 마차를 놓자, 나뭇가지를 부러트리며 어중간한 위치에 마차가 걸렸다.
콰드득!
흔들리던 나뭇가지가 고정될 때쯤 수호가 바닥에 내려섰다.
“웃차.”
“꼼짝 마라!”
사방을 포위한 인물들은 8명.
S급 일류고수 둘과 나머지는 A급의 이류였다.
“늬들 야수문이야?”
수호의 물음에 상대가 흠칫 놀랐다.
“웬 놈들이냐!”
“으르르, 컹! 컹!”
여기저기 사냥한 짐승의 가죽을 둘러입은 것도 그렇고, 목줄이 걸린 늑대 네 마리도 그렇고 굳이 묻지 않아도 알 듯했다.
“웬 놈이냐고 묻지 않느냐?”
“나 수호.”
“흥, 답하기 싫다면 죽음뿐이다.”
들으나마나 다짜고짜 공격해 들어오는 녀석의 창을 쥐어 그대로 뒷목을 내리쳤다.
한수에 동료가 제압당하자 야수문 문도들이 깜짝 놀랐다.
“공격해라!”
“컹, 커엉!”
사납게 뛰어간 늑대들이 수호가 손바닥을 펼치자 멈춰 섰다.
“그만.”
“끼잉, 낑.”
“옳지. 새 집에 가 있어.”
레벨도 별로 높지 않은 늑대들은 눈빛 한 번에 제압되어 길들여졌다.
파파팟!
네 마리 늑대가 증발하듯 사라져 버리자 야수문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사, 사술이다!”
“사술?”
자신의 상대가 아니라고 여겼는지 재빨리 도망치려던 일곱 명의 사내가 그대로 굳었다.
촤르르륵.
여기저기서 길게 자란 풀과 나무넝쿨들이 그들의 몸을 포박했다.
“야수문 어딨어?”
“마, 말해 줄 수 없다.”
지금 야수문은 전력의 7할이 빠져나간 상황.
절대 알려 줄 수 없다.
“싫으면 말고.”
수호는 아까 길들인 늑대 네 마리를 다시 소환했다.
전투력 783
정글에서 자란 늑대.
덩치가 작지만 날렵하다.
새끼늑대인 줄 알았더니 애초에 작은 종인 모양이다.
“집으로 가 보자.”
“컹, 컹!”
늑대들이 길안내를 위해 맴돌자 수호가 나무 위에 소리쳤다.
“안 내려오고 뭐하냐?”
당진철이 건우를 안고 뛰어내렸고, 장순필이 왕일을 업고 내려왔다.
식물들에 둘둘 말려 있는 야수문 무사들을 보며 당진철이 단검을 빼들었다.
“왜? 또 죽이게?”
“대협께서 살인멸구를 꺼리시니, 내가 나서는 수밖에 없지 않소?”
수호는 어깨를 으쓱했다.
“뭐 감출 게 있어야 죽이지.”
야수들을 뺏으러 왔다.
몰래 뺏든, 대놓고 뺏든 별 차이가 없다.
“하긴.”
당진철이 단검을 다시 갈무리했다.
언제든 날개 달린 비룡을 소환해 부리는 절대고수가 옆에 있으니, 추격을 염려할 일도 행적이 노출되는 걱정도 부질없으리라.
“이제 가자.”
야수 해방꾼이 야수문 본거지로 향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