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139)
140화 단절 (1)
“알았어, 존. 그만 끊자고.”
전화를 끊은 하워드는 허공에 대고 어퍼컷을 네 번 연달아 쳤다.
“크크큭, 멍청한 동부 놈들.”
똑똑.
노크와 함께 들어온 비서가 하워드의 얼굴에 걸린 함박웃음을 보곤 물었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으신가 보죠? 시장님.”
“아, 있지. 콧대 높은 동부 놈들이 징징거리는 게 재밌군.”
“동부는 피해가 컸나 보죠?”
“크다마다. 크큭.”
항공모함 하나가 거의 반파 상태까지 갔다.
정상적 국가 상황이었으면 퇴역을 고민해 봤을 상태지만, 지금은 어떻게든 고쳐 쓸 정도는 될 것이다.
문제는 물자의 조달도 그리 원활하지 않아 고치는 데도 한세월일 것이다.
항공모함의 파손도 문제이지만, 호위함들이 대거 침몰한 것도 문제.
겨우 해상괴수 둘을 잡는데 그만한 전력손실을 입었다.
“어유, 동부 놈들 정보채널 오픈하라고 얼마나 성화인지…….”
“대가로 아주 큰 보물을 받으면 되겠군요.”
서부 대도시 LA의 시장 하워드의 얼굴에 웃음이 사라졌다.
“워어, 제니퍼. 동부 놈들 스파이라도 되나?”
“무, 무슨 말씀이신지.”
“병신이 아니면 오픈할 리가 없잖아? 그냥 정보만 팔아도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텐데 말이야.”
“그, 그렇지요.”
“그만 나가봐.”
“네.”
“잠깐.”
하워드의 제지에 제니퍼 비서가 움찔 멈췄다.
주지사와의 경쟁에서 이긴 시장은 지금 LA의 통수권자나 다름없는 지위.
미국이 주별로 독자 생존체제를 구축하고, 이후 멸망한 도시와 그 인구를 흡수해 새롭게 대도시로 커진 것들이 수십.
지금 미국은 217개 대도시를 가진 5개 연합으로 뭉쳐졌다.
지역에 따라 서부, 동부 중부, 남부, 중남부 등으로 부르기도 했고, 거점 지역이 되는 도시나 주 이름으로 부르기도 했다.
캘리포니아 연합이라고도 부르는 서부연합 중심도시 중 하나인 LA의 시장은 무소불위의 권력자.
지금은 그의 말 한마디면 없는 죄도 뒤집어쓰고 애먼 일도 당할 수 있는 시대다.
“용건은 전하고 가야지.”
제니퍼의 긴장된 몸이 누그러졌다.
“오늘 저녁 만찬의 초대 리스트가 나왔습니다. 확인해 보시고 원치 않는 인물은 없는지 체크해주시면 됩니다.”
“두고 가.”
보고서를 두고 나가는 제니퍼를 힐끗 확인까지 하고는 하워드는 종이를 넘겨 원하는 이름을 찾았다.
“맥, 줄리야, 조드……. 여기 있군. 크큭, 나의 보물도 오는군.”
동양에서 온 이 신비의 남자가 자신을 서부 아메리카의 대통령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일단 위성부터 받아내고.’
동부 놈들이 꽉 쥔 군사 위성부터 하나 더 받아내고 시작하리라.
*파티장에 온 이성우는 심드렁한 얼굴로 주변을 훑었다.
‘병신들.’
파티장에 모인 이들은 전부 캘리포니아 연합에서 한가락 하는 인물들. 누구도 처음 보는 동양인에게 주목하지 않았다.
사각.
서버들이 들고 다니던 사과조각 하나를 베어 물었다.
세상이 망하니 마니 하는데도 음식들은 여전히 맛있었고, 파티장은 지나치게 화려했다.
이 짓도 앞으로 5년도 못갈 거다.
3끼 배부를 수 있다는 게 호사가 되고, 죽지 않음에 감사하는 시절이 곧 올 테니까.
웅성웅성.
조용조용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의 소음은 배경음악을 연주하는 악단의 소리를 넘지 않았다.
어느 순간 소란스러워져 그쪽을 보니 파티 주최자인 LA시장이 입구로 들어서고 있었다.
오늘 이 자리의 주인공.
그가 파티장 한쪽에 강단처럼 마련된 무대로 향하며 이성우를 보고 찡긋 윙크했다.
“어머, 날 보셨어.”
이성우의 옆에 있던 금발 미녀가 김칫국을 한 사발 드링킹 한 것 같았으나, 굳이 저 남자의 윙크가 자신을 향한 것이라 정정해주진 않았다.
‘꼭두각시가 신이 났군.’
이성우는 망명 신청을 가짜 신분으로 했다.
부산 출신의 이우성. 각성등급 D.
본래 한 달이 넘게 걸릴 망명 승인은 시장의 침실에서 결정되었다.
“어떻게 들어왔지?”
“내 얼굴은 알겠지?”
“챔피언?”
잠적한 SFC 챔피언이 뜬금없이 자신의 침실에 나타나 당황했으나, 하워드는 이를 얼굴에 드러내지 않고 침착한 표정을 지었다.
암살을 원했다면 어차피 살 수 없는 일이고, 이렇게 대화를 하고 있다는 것은 잠적한 챔피언이 무언가 원하고 있다는 것이니까.
“무슨 용건이지?”
“서부를 먹게 해주지.”
흠칫 놀란 하워드가 물었다.
“원하는 게 무엇이오?”
“그냥 조용히 지낼 거야. 날 건드리지도 찾지도 마. 이따금씩 찾아와 아주 달콤한 정보를 주지.”
“좋소.”
보안이 철저한 자신의 침실에 태연히 나타난 자다.
거부는 죽음임을 모를 정도로 하워드가 눈치 없지는 않았다.
그때의 딜 이후 부산에서 망명한 이우성으로 살며 LA에서 지냈다.
미래에 일어날 몇 가지 정보를 제공해주었고, 본래 미래에서도 서부 대통령에 올랐을 하워드는 이성우가 제공해준 고급 정보를 정치적 수단으로 삼았다.
서부 소속의 모든 해상전력을 조기에 회항시켜 캘리포니아 연합은 온전히 전력을 보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어제 준 정보를 동부에 팔아먹고 군사 위성 하나의 통제권을 얻어 자축하는 파티 자리다.
“드디어 해냈습니다! LA는 더 안전해졌으며, 이는 캘리포니아 연합 전체의 방위력 상승을 의미합니다.”
신나서 떠드는 모습이 우습다.
어차피 서부 대통령이 될 인물인데, 정작 본인은 모두 자신의 공으로 오해해 주겠지.
‘오늘 용건은 이게 아니지.’
이성우가 괜히 역겨운 상류층 파티에 참가한 것은 만나고자 하는 사람이 있어서다.
그가 향한 곳은 셋이서 얼굴을 마주한 채 와인을 홀짝이며 헛소리를 주고받는 자리였다.
“인류는 심각한 위기상황이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구원받았습니다.”
“그렇지요. 몬스터가 세계 3차대전을 대신 터트려주는 바람에 인구 증가 문제도 해결하고 평화를 찾았지요.”
“혈석은 어떻습니까? 이 차세대 에너지야말로 인류에게 가져다준 신의 선물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여기 계신 리처드 박사께서 고안해내신 혈석 발전기가 원자력의 종말을 고했다지요?”
“허허허.”
거창한 흰소리의 담소를 더 듣기 힘들어 이성우는 목표 인물을 불렀다.
“닥터 리처드?”
중앙 고속도로와 양 두 마리를 품고 있는 머리의 소유자.
리처드 박사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뒤돌아봤다가 인상을 찌푸렸다.
“음.”
굳이 말을 하지 않았지만, 표정에서부터 느껴지는 불쾌함에 이성우는 속으로 고소를 머금었다.
‘지독한 백인우월주의자.’
인종차별이 특히나 심한 사람이지만, 능력과 인성은 반비례라도 하는지 그의 실력은 진짜였다.
“냄새 나는 원숭이는 꺼지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이걸 보면 더 이상 원숭이는 보이지 않을 거요.”
“이성우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꺼낸 아티팩트를 건네주었다.
“그게 뭔가?”
“당신을 일인자로 만들어줄 연구 주제요.”
“……!”
언제나 롤랑의 토들러 박사에게 뒤처져 만년 2인자라는 별명이 붙은 과학자의 역린을 건드렸다.
그에 빈정 상한 리처드 박사가 코웃음 쳤다.
“흥! 지난 5년간 내게 네놈 같은 사기꾼이 100명은 더 다녀갔다.”
등을 돌리려는 그에게 아이템을 건네주었다.
“연구부터 해보시오. 당신에게 손해는 없으니.”
이성우는 어떤 요구조건도 밝히지 않고 물러났다.
“구미가 당기면 연락하시오.”
말과는 달리 자신의 정체를 하나도 밝히지 않고 떠나버렸다.
차원산업 시대.
차원과학을 이끌어가는 거장 중 하나인 리처드 박사는 손에 쥔 정체불명의 아티팩트를 보며 깊은 의문을 느꼈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건가? 시한폭탄? 뭐지? 마력은 느껴지는데…….’
끊임없이 이어지는 사고에 피식 웃었다.
저 빌어먹을 녀석이 자신을 잘 알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호기심이야말로 그를 여기까지 끌어올린 원동력.
아티팩트를 자신의 아공간에 집어넣은 리처드 박사는 파티장을 빠져나와 연구실로 향했다.
*수호가 돌아온 지 이틀이 지났다.
연일 방송에서 격한 말을 쏟아내는 일본이나 한국 정부의 외교적 분쟁의 직접적 원인 제공 대상자가 수장으로 있는 수호 길드다.
동아시아 폭풍의 핵이랄 수 있는 수호시티는 의외로 한적함과 한가로움 그 자체.
외교라인을 맡고 있는 김미소와 비서실만 바쁘고, 수호가 돌아옴과 동시에 외부인의 출입이 막혀버린 내성 안은 조용하기만 했다.
지금도 외성엔 포탈을 이용하려는 외부 용병들과 그들의 지원 인력, 그리고 취재를 위한 기자들이 가득하지만, 어쨌든 그들은 내성 안으로 들어올 수가 없었다.
한동안 외부손님으로 가득 찼던 식당가는 직원들만 이용하게 되어 다시 한적함을 찾은 모습.
“건우야, 많이 먹어.”
“네, 아빠.”
잠깐의 이별이 부자지간의 정을 더 깊이 있게 했는지, 이틀 동안 붙어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는데도 아직 듣지 못한 이야기가 한가득하다.
“후, 그래서 사부님을 만나고 난 뒤로 어떻게 되었니?”
“그땐 정말 웃겼어요. 사부님도 탈출하신 지 얼마 되지 않아 거의 헐벗고 계셔서 변태인 줄 알았어요.”
“뭐? 하하.”
건우에게 무공을 가르치며 역으로 말을 배우기 위해 주변에 항상 같이 다니는 당진철은 겨우 귀에 들리는 몇 단어에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내 이야기 중이냐?] [네, 사부님. 사부를 처음 만났던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무슨 이야기 하니?”
“아, 사부님이 대화가 궁금해하셔서요.”
“그렇구나. 어서 말이 통하면 나랑도 대화를 나눌 텐데, 아쉽구나.”
오손도손 대화를 주고받는 부자지간을 보며 당진철은 짠하게 보았다.
‘부럽구나. 부러워.’
저 자리가 내 자리여야 했는데.
저 아이가 내 아이여야 했는데.
세 사람의 식사시간으로 허락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수호 환영식을 기념한 휴가는 하루가 끝이고, 오늘부터 다시 각자 업무에 들어가야 하는 일.
수호 길드 소속 용병이자 부사장인 준호는 용병들을 이끌고 지금 외성에 생성 중인 포탈을 공략해야 한다.
“아쉽구나, 아쉬워. 아빠 들어가면 내일모레는 되어야 나오는데.”
“에이, 괜찮아요. 저도 다 컸어요.”
박준호와 용병들 여럿이 A등급이라지만 5성 던전이다.
여태 공략 기록은 평균이 22시간.
꼬박 하루는 지나야 나올 테니, 그동안 아들을 못 보는 상심이 크다.
“아니면 저도 따라갈까요?”
“응? 안 돼. 거기가 얼마나 위험한데.”
“괜찮아요. 저 백사도 있고, 사부님도 엄청 강하세요.”
슬쩍 당진철을 바라보는 준호의 시선에 부러움이 가득했다.
‘SS급이라니. 부럽구나.’
‘건우 아비라니, 부럽구나.’
부러움의 시선이 서로 뒤얽힌 가운데 건우가 또렷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그냥 구경만 할게요. 사부님이 보는 것도 수련이라 하셨어요.”
“하지만…….”
준호는 애써 고개를 저었다.
위험하기도 위험하지만, 안전이 보장된다 하더라도 결코 아이에게 보여줄 만한 곳이 못 된다.
“네가 봐서 좋을 게 없어. 피도 막 튀고, 사람은 아니지만 몬스터들이 죽는 걸 보기엔 아직 넌 너무 어리단다.”
부드럽게 아들을 타일렀으나 뒤이어진 말에 준호는 말문이 막힐 수밖에 없었다.
“괜찮아요. 사람들 죽는 것도 이미 많이 봤어요.”
“응? 뭘 봐?”
“사람들 죽는 거요.”
영화도 시청 연령이란 게 있는데, 형님은 대체 조카를 데려가서 뭘 보여준 거지.
“삼촌이 얼마나 멋있게 죽이는데요. 칼 휘두르면 사람들 목이 막 날아다니고.”
“…….”
시발, 형.
애를 도대체 어떻게 키우려고.
이 순한 아이를 도대체 뭘로 키우려고.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야!”
“네, 아빠.”
쉽게 수긍하는 건우를 꼭 안았다.
“그런 건 악당들이나 하는 짓이야. 멋있는 게 아니야. 끔찍한 거지.”
“네, 알겠어요.”
효자는 쉽게 수긍했고, 아비는 안심했다.
“바르게 커야 해. 아무리 능력이 좋아도 인성이 나쁘면 결국 악명만 얻는단다.”
우리 착한 아들.
바르게 커야 한다. 바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