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145)
146화 템빨
방성민은 7년 전 구천 행성에 소환되었다가 2년을 머무르고 돌아온 귀환자다.
행성 귀환자지만 좌표인간으로 작동하지는 않아서, 게이트 생성은 되지 않았다.
100일간의 관찰 기간을 지나 자유의 몸이 된 그가 처음 한 일은 용병이다.
3년이나 몸담았지만 적성에 맞지 않았다.
안전한 사냥터만 찾다 보니 각성 등급도 C급에서 더 이상 오르지 않았으며, 몸도 마음도 지쳐 관뒀다.
C등급의 구천 행성 출신 용병이 취업 자리를 알아보기엔 나쁘지 않은 스펙이지만 사업을 준비했다.
때마침 장순필이라는 귀환자로 인해 익산에 구천 행성으로 통하는 게이트가 생겨났다.
‘성민여행사’.
사업은 대박이 났다.
구천 행성을 관광하기 위한 여행객들도 있었고, 각성 등급의 정체를 무공 습득으로 돌파하려는 유학생들도 있었다.
익산 게이트가 비교적 안전한 구천 행성의 남궁세거지 인근이라 가능한 여행 사업이었다.
여행사와 병행한 중원어 어학원도 대박이 났고, 가이드 직원도 여럿 둔 사업체의 사장님이 되었다.
최근 웃을 날만 있었던 방성민의 얼굴에 그늘이 진 건 불과 며칠 전부터다.
2년이나 여행사를 운영하며 남궁세거지에 소식통이 많았다.
가장 거래가 많은 장흥서점 주인도 그랬고, 오상객잔 주인하고도 친했다.
최근 그들을 통해 무림 정세를 들은 방성민은 날카로운 사업 감각을 발휘, 여행사 고객 모집을 중단했다.
‘무림 정세가 심상찮다.’
방성민의 예측대로 무림은 파국으로 치달았고, 저번주에 방문했을 땐 남궁세가가 폭상 망해 있었다.
남궁세가 주변에 형성된 남궁세거지 마을에 사는 양민들도 몇몇 그 피해를 봐 분위기가 흉흉하기 이를 데 없었다.
‘혈마가 나타났다.’
‘무림맹 고수 수백이 죽었다.’
‘모용세가가 무너졌다.’
게이트를 오가며 들을 때마다 흉흉해지는 소식에 방성민은 직감했다.
‘이제 여행은 글렀다.’
무림 사정이 저런데 여행 고객을 받는 건 자살행 열차에 태워 보내는 거다.
“어학원에 집중해야 하나?”
구천 행성 자체가 갈 이유가 사라졌는데, 어학원이라고 장사가 잘 될까?
한창 새로운 사업 구상에 몰두하는 그때 익산군수가 찾아왔다.
“방성민 씨. 얼른 나오십시오.”
여행사 특성상 포탈에 아주 가까운 곳에 사무실이 마련되어 있기 마련.
“아이쿠, 군수님이 무슨 일로…….”
익산에서 사업하다 보니 공무원들하고도 꽤 친해진 상태였는데, 군수는 몇 번 말 섞어 본 게 전부였다.
“성민 씨가 중원어 실력이 제일이지 않습니까? 통역 좀 부탁드립니다. 보수는 섭섭잖게 지급해 드리겠습니다.”
다급해 보이는 군수의 얼굴을 보며 방성민은 기회를 포착했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이번 일을 잘 해내면 이것은 분명 기회가 되리라.
“보수가 문젭니까? 나라에서 부르는데 당연히 가야지요. 갑시다.”
“어이쿠, 방 사장님 같으신 분들이 있어 나라 미래가 아직 밝습니다.”
군수와 함께 간 포탈 앞 상황은 그의 생각보다 조금 심각했다.
‘100명이 넘어 보이는데?’
그가 알기로 이 포탈이 생긴 이래 중원인들이 이만큼이나 건너온 전례가 없다.
‘이거 뭔가.’
누군가 그랬던가?
위기는 기회와 함께 온다고.
‘시벌.’
방성민에게 기회가 위기를 달고 왔다.
그것도 아주 큰 위기.
무림인들이 얼마나 괴팍하고 성정이 더러운지 누구보다 잘 아는 그다.
말 한마디 잘못했다고, 눈빛 하나 마음에 안 든다고 사람을 쉬이 죽이는 게 그들이다.
백여 명 정도 모인 그들은 한눈에 보기에도 고수들의 풍모가 드러났다. 그런 그들을 향해, 포탈 주변에 상시로 대기하고 있는 군인들이 총부리를 겨누고 있었다.
“머, 멈추시오!”
방성민이 대경실색하며 나서서 군인들을 뒤로 물렸다.
“총알로 막을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물러서시오.”
방성민의 말에도 꿈적 않던 군인들이, 같이 온 군수가 나서자 뒤로 물러났다.
“후우, 다행입니다.”
“방 사장. 얼른 통역해 보시오.”
[저는 통역입니다. 이분은 이곳의 책임자인 익산군수님입니다.] [중원어를 하는 자가 있군.]무리의 선두에 있던 꾀죄죄한 몰골의 사내가 나섰다. 얼마나 안 씻었는지 역한 냄새까지 풍기는 누더기 같은 옷에, 척 보기에도 거지꼴의 남자를 보며 군수가 인상을 찌푸렸다.
방성민이 깜짝 놀라 옆구리를 치며 조용히 말했다.
“꼴이 저래도 필시 개방의 고수일 겁니다. 인상 펴시지요.”
“그게 뭐요?”
방성민은 여전히 인상을 찌푸린 군수를 보며, 이 꼰대 덕에 자신의 제삿날이 앞당겨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군수가 무엇인가?] [이 근방의 가주 정도 됩니다요. 무림으로 치면 익산을 다스리는 가주지요. 요즘 갱년기가 들어 표정이 좋지 못하니 이해하시지요.]사신단의 책임을 맡은 개방방주의 대제자 열개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개방 방주의 대제자 열개다.] [헙, 귀인을 뵙습니다.]저들끼리 중원어를 주고받다가 방성민이 넙죽 허리를 숙이자 군수가 물었다.
“뭐라는 게요?”
방성민은 군수가 더 실수하기 전에 얼른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했다.
“저기 미국 부통령쯤 되는 사람이니 말조심하시지요.”
“아! 만나서 반갑습니다.”
익산 군수는 대번에 표정이 환해지며 손을 내밀었다.
거지 차림이 대수인가?
“악수는 저들 인사법이 아닙니다.”
“아, 하하. 이것 참. 근데 왜 왔답니까?”
[방문 목적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밀양박씨세가를 방문하기 위해 왔다.]“……?”
방성민은 자신이 들은 게 맞나 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밀양에 가신다고요?] [맞다. 밀양에 가는 것이 목적이다.]“밀양에 간답니다.”
“응? 거긴 필드인데 굳이 왜?”
방성민이 다시 통역했다.
[거긴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입니다.]열개는 잠깐 당황하더니 뒤에 있는 하오문 고수 양춘에게 전음했다.
한쪽에 있던 계를 찍은 승려를 한번 본 열개가 고개를 끄덕였다.
밀양에만 가면 일단 어디에 숨어 있든 마교 총 본산을 찾을 자신이 있었다.
어차피 전쟁이 아닌 선물과 부탁을 하러 가는 길.
열개가 방성민을 보며 말했다.
[우리는 싸우러 온 것이 아니니 적대할 필요가 없다. 그저 밀양에 방문하여 한 가지 부탁을 하려는 것뿐이다.]“그냥 밀양에 가서 부탁 하나만 한답니다.”
군수가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 부탁하면 되지, 왜 밀양 가서 한답니까?”
“저도 모르죠.”
“밀양에 무슨 관광을 간다고…….”
필드 어디를 가도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관광지 역할은 기대하기 어렵다.
산 많고 계곡이 깊을수록 외려 몬스터들이 더 많다.
“이방인 출입 절차대로 하세요.”
“예.”
방성민이 긴장하며 할 말을 생각했다.
다행히 지금은 저들이 협조적이지만, 언제 또 돌변할지 모르는 무림인 아닌가?
[군수님께서 우리나라의 방문을 환영한답니다.] [나 또한 그렇소.] [출입 절차에 따라 우선 여러분들의 방문록을 적은 뒤에 밀양으로 이동하실 수 있습니다. 협조해 주시겠습니까?] [우린 전쟁을 위해 온 것이 아니니 당연히 협조하겠소.]방성민이 안도의 한숨을 쉬며 출입 절차를 도왔다.
상태이상 감지능력을 가진 관리국 소속 각성자가 그들을 일일이 검사했고, 차원에너지 측정기를 든 공무원이 그들 하나하나의 등급을 측정하고, 사진을 찍고, 이름을 적었다.
“응?”
측정 장치가 고장났나 싶어 다시 재 봐도 같다.
6천대는 S급이고, 7천대면 SS급이다.
거기에 계를 찍은 비구니 하나는 무려 8천대의 에너지가 찍혔다.
“8천대라니…….”
지구에는 존재하지도 않는 등급이다.
그래서 명명법도 없다.
공무원은 임시로 SSS급이라 적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 하나하나 방명록이 채워질 때마다 방성민의 얼굴은 푸르죽죽해졌다.
“구, 군수님. 이거 알려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응? 왜요?”
군수가 뭐가 문제냐는 듯이 보았다.
아니, 시발 어떤 미친놈이 이런 놈을 군수로 앉혀 놨지?
“후, 저들이 마음 바뀌는 순간 도시 하나 아작 납니다. 그 정도 전력이에요.”
“괜찮아요. 감시 역으로 중대 하나 붙이면 되는 거 아닙니까?”
“아니, 총알 따위가……. 그냥 일단 연락하세요.”
“허, 참. 관광객 몇 왔다고 괜히 일 크게…….”
“당장 하세요!”
군수도 속으로는 찝찝한 마음이 있었기에 전화를 걸어 군청 공무원에게 보고를 지시했다.
그리고 잠시 후 걸려온 전화에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왜요? 뭐랍니까?”
“구, 국빈급으로 대우하랍니다.”
“그럴 줄 알았습니다.”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방성민을 보며 군수가 말을 이었다.
“대통령님께서 직접 내려오신답니다.”
방성민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군수는 멍청해도 아직 이 나라 지도부는 개념이란 게 있구나.
이들 전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있으니 조심해서 다룰 것이다.
익산 게이트 주변은 때 아닌 대통령 맞이와 구천 행성에서 온 사신단을 위한 국빈 환영 행사가 준비되기 시작했다.
머리를 예쁘게 깍은 7살 어린 비구니는 사숙의 손을 꼭 잡고 주변을 신기한 듯 두리번거렸다.
“설레느냐?”
“설렐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아비를 만나러 가는 길이 아니냐?”
“소녀, 이미 출가한 몸이온데 속세의 연에 무슨 미련이 있겠습니까?”
“후후, 그러느냐?”
대답과 달리 잔뜩 상기되어 있는 사질의 얼굴을 보며 웃었다.
“자, 내 손을 잡거라.”
“매번 감사합니다.”
“세상 인연이 이어진 것인데 매번 감사할 것이 무엇이냐?”
“하오나, 사숙이 아니면 저는 진즉…….”
“되었다. 감사도 과하면 되레 마음을 불편하게 할 뿐이니라.”
“명심하겠사옵니다.”
두 비구니의 손을 타고 흐른 진기가 소녀를 어루만지며 그녀의 생명을 조금 더 연장시켰다.
*수호 길드 연구실.
최신 연구 설비들이 가득 찬 연구실 한쪽은 밀링기계부터 각종 가공기계들로 연구소라기보다는 정밀기계 가공 공장처럼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아직도 빈 공간이 많은 한쪽에 용광로와 모루가 자리잡은 대장간이 꾸려져 있었다.
연구소장이 대장장이 출신이라 당연하게 추가된 공간이다.
필요하면 망치를 잡는 장순필이지만 요즘은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하는 시간이 더 많았다.
“확실히 사장님 같은 케이스는 없는데…….”
연구소에 내려진 제1의 연구과제가 바로 박수호 그 자체.
“모든 각성자들은 레벨업을 하는데 사장님만 그것을 직관적으로 볼 수 있군.”
장순필은 생각을 거듭했다.
왜 그럴까?
마치 게임 속 아바타처럼…….
“그럼 사장님 빼곤 전부 NPC라는 건가?”
어쩌면 그게 맞을지도 몰랐다.
2차원 세상에 존재하는 3차원 존재처럼.
이 3차원 세상에 홀로 4차원을 보는 게 사장님일 수도.
“어우, 머리나 좀 식혀야지.”
장순필은 지끈해진 머리를 식히기 위해 무언가를 만드는 작업 책상으로 향했다.
쇠를 두드리는 것도 좋지만, 무언가를 새로이 만드는 것은 언제나 신나는 일이다.
한참을 집중하던 그가 총처럼 잡힌 프로토타입의 제품을 들고 환히 웃었다.
“다 됐다.”
“소장님, 그건 뭐예요?”
연구소 소속의 연구원들이 넷 있었는데, 장순필을 제외하곤 전부 연구기계 엔지니어들이었다.
그들 모두 엘리트 출신의 연구자들.
“아, 이거. 별건 아니고 차원 에너지 측정 장치일세.”
“아, 그래요?”
롤랑 사에서 개발하고 보급된 장치.
저것으로 인해 각성자들의 등급이 나뉘어졌다.
“근데 왜 그렇게 크게 만드셨어요?”
“프로토타입이라 그렇네. 차츰 줄여 가야지.”
“……?”
단말기 수준으로 작고 간편한 측정기를 이미 살 수 있는데, 굳이 왜 저런 걸 만들었지?
연구원의 의문은 장순필의 다음 행동에 경악으로 바뀌었다.
“어디 보자.”
장순필이 총처럼 생긴 그것의 방아쇠를 당기자 포인트가 되어줄 레이저가 쭉 쏘아졌다.
그 포인트를 연구원에게 맞추자.
삐빅.
“응? 자네 조금만 더 사냥하면 F등급 되겠구만.”
“헉, 그거 설마 원거리 측정기입니까?”
“맞네.”
“거, 거리가 얼마나 됩니까?”
“이제 실험해 봐야지.”
“…….”
미쳤다.
측정 거리가 멀면 좋겠지만, 그리 멀지 않아도 가치가 있다.
비접촉 차원등급 측정 장치라니.
이건 분명 시장성이 있다.
내심 귀환자 출신에 별 볼 일 없는 학력의 연구소장이 못마땅했던 연구원들이, 장순필을 선망의 눈으로 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