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163)
164화 전후처리
던전출입관리실.
던전 옆에 필수적으로 설치되는 컨테이너 박스는 던전을 이용하는 용병들의 출입기록을 위한 공무원이 상주하는 사무실이다.
던전 관리국의 포탈관리과 산하 수백 수천 개의 던전출입관리실 중의 하나인 이곳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 경직된 분위기가 가득했다.
‘시발.’
포탈 관리과 9급 공무원 김명구는 순번에 따라 이 던전 포탈에 배치되었을 뿐이다.
운 없게도 던전 측정 결과 7성으로 판정되었으며, 대한민국 시티 안에 생긴 최초의 포탈, 전 세계 던전에너지 기록 갱신 등의 타이틀로 인해 사람들의 관심이 모아졌다.
당연하게도 지금 사무실엔 각성자관리국 최고 수장인 국장이 행차했다. 거기까지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이 좁은 컨테이너 사무실에 대통령까지 행차했다.
“지금 현재 선발대 투입 중입니다.”
“박수호 씨와 함께 간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대통령의 우려를 충분히 이해한다.
공식 측정된 그들의 등급이 모두 형편없으니까.
아니, 애초에 용병 등록도 되지 않은 이들이 대다수.
“각성 등급은 그 사람의 전력을 평가하는 한 부분일 뿐입니다. 이들은 수호 길드에서 감추고 있던 최고의 정예요원들입니다.”
“비밀병기였단 말입니까?”
“맞습니다. 던전 공략에 있어 박수호 사장을 보조해 주는 최고의 스페셜 요원들입니다.”
“최고의 팀이 최악의 던전을 맞이해 분투하고 있군요.”
관리국장은 뭔가 열성적으로 브리핑하고 있었고, 대통령은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었다.
9급 공무원 김명구는 하는 일 없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는 척 심각한 얼굴로 키보드를 두드렸고, 기자들은 열심히 셔터를 눌러 댔다.
찰칵, 찰칵!
‘가라 좀.’
기자들은 또 얼마나 왔는지 쓸데없는 것까지 다 찍어 대고 있다. 벌써 두 시간째 휴대폰도 꺼내지 못하고 집중해서 일하는 척하느라 죽을 맛이다.
솔직히 싸움이야 던전 안에서 하는데, 던전 밖에서 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그냥 짐만 잘 지키고 있으면 되지.’
출입 내역 기록하고, 포탈 통과 안 되는 짐 같은 거 맡아주고 하는 게 전부다. 그마저도 이 던전의 권리 행사는 수호 길드에게 있기 때문에 공무원인 그가 할 일은 매우 적다.
그냥 휴대폰 게임 좀 하다가 던전 이용하는 용병들 명단 작성하고, 게임 좀 하다가 교대하고 퇴근하면 된다.
던전 경비야 군인들이나 던전을 점유한 사설 길드에서 할 테고, 진짜 일은 던전 안에서 이뤄지니까.
밖에선 그저 응원하는 게 전부다.
“민관 모든 힘을 모아 던전 소멸에 만전을 기하기 바랍니다.”
찰칵, 찰칵.
지극히 당연한 대통령 말씀에 기자들의 셔터가 바쁘게 올라가고, 미리 준비된 원고가 빠르게 업로드 될 거다.
어차피 저 한마디 하고 사진 찍으러 온 걸 테니 말이다.
일하고 있는 공무원들이 쭉 악수했고, 말단 공무원 김명구도 악수했다.
“영광입니다.”
“수고해 주게.”
김명구는 악수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가라 좀.’
그의 염원 때문은 아니겠으나 대통령은 떠났고, 기자들이 우르르 따라 나가자 국장은 신경질 난 얼굴로 명령했다.
“문 닫아.”
“넵.”
철컥.
문을 걸어 잠그자 국장은 목을 조르고 있던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어헤치며, 한쪽에 가만히 앉아 있는 김미소를 보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부하 직원이었지만 지금은 자신도 대하기 어려운 존재가 되어버린 사람.
“수호 길드 부사장님.”
“에이, 국장님. 말 편하게 하세요.”
“후, 이거 진짜 애들 장난 아니다.”
국장의 표정은 심각했다.
초창기 수호 클랜 때부터 김미소에게 보고받아 온 그다. 수호 길드 주요 인물들이야 이미 꿰고 있다.
“누가 장난하나요?”
“이게 장난이 아니면 뭐냐?”
이번 참여 명단을 보여주었다.
무려 7성 던전.
용병은 셋.
박수호 A등급.
서민수 A등급.
장순필 D등급.
나머지는 죄다 용병 등록도 하지 않은 짐꾼이다.
당진철 SS등급.
박건우 E등급.
장취아 C등급.
이숙자 F등급.
“이게 장난이 아니면 뭐지?”
“아까 말씀 잘하시더만.”
김미소는 살풋 미소지었다.
“던전 공략의 스페셜리스트잖아요.”
“…….”
그거야 둘러대려고 한 말이고.
관리국장이나 되어서 대통령 면전에 사실대로 이 사람은 밥하는 할머니이고 얘들 둘은 꼬마입니다 하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야, 미소야.”
“선 넘지 마요.”
김미소는 리스트의 가장 상단의 박수호 이름을 동그라미쳤다.
“뭐가 문제예요? 불안해서 그래요?”
“…….”
박수호가 들어갔는데 불안할 리가.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 같아서 그래요? 성의를 바라는 거예요?”
“…….”
서울시민뿐만이 아니다.
세상의 주목을 받고 있다.
고작 20 수치가 모자라 7성 판정받은 던전.
대격변 이후 가장 큰 규모의 던전이다.
세계적 규모로 현재까지 생성된 7성 던전이 72곳.
그중 공략이 완료된 것은 고작 4곳.
나머지는 브레이크가 일어났거나, 브레이크 대기 중이다.
아직 인류는 7성 던전을 정복했다고 말할 수 없으며, 전 세계 수백 수천의 도시들이 7성 던전의 재앙을 두려워하고 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
안정적으로 7성 던전을 탐사, 공략하고 정보를 제공해 줄 수 있는 강력한 선발대의 존재를.
“저희 사장님이 더 검증이 필요하신 분인 줄은 몰랐네요.”
김미소의 미소가 더 짙어졌다.
지난번 손진우를 비롯한 각 길드의 정예들이 모인 의정부 선발대를 구출한 때에 이미 검증된 것이나 다름없다.
그랬으니 정부에서 그토록 애타게 매달려 온갖 선물과 같은 혜택들을 수호시에 주고 서울의 안전을 도모했지 않은가.
“수호 길드는 서울시 7레벨 방위조약을 맺은 것으로 이미 성의는 다했습니다. 남의 집 식구 단속까지 하려고 하시는 건 분명 선 넘으셨어요.”
수호 길드에서 알아서 한다.
건드리지 마라.
김미소가 보내는 메시지는 명확했다.
“땀 뻘뻘 흘리면서 하든, 하하호호 하든 수호 길드가 알아서 합니다.”
딱 선을 긋는 김미소의 반응에, 국장은 그녀가 더 이상 부하직원이 아님을 상기했다.
“부사장님께 사과합니다.”
관리국장은 빠르게 수긍했다.
대통령 앞에서 진땀을 빼다 보니 흥분했다.
확실히 선을 넘었다.
“에이 뭘요. 우리 사이에.”
“…….”
나쁜 년.
이제 자신까지 쥐락펴락하려고 한다.
“저 나가도 되죠?”
“귀중한 시간 내주어 감사드립니다.”
구색이라도 맞추기 위해 대통령과의 자리에 동석을 부탁했다.
명목상 서울시 레벨 7 방위길드인데 관련자가 하나도 없는 것도 이상하니까.
“에이, 좀 놀렸다고 딱딱하시게.”
“후, 아주 노친네 갖고 놀아라.”
“후후, 다음에 뵈어요.”
사무실을 나온 김미소에게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던전입니다. 공략 전 기자회견을 생략한 이유가 있습니까?”
“공격대 정원을 채우지 않은 것으로 압니다. 너무 큰 자신감에 위기를 자초한 게 아닌가요?”
“용병 셋에 나머지는 짐꾼으로 알고 있습니다. 던전 탐사 정보 획득과 공략 정보 획득에 문제가 없겠습니까?”
“영상기억 각성자가 한 명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국제 권고 기준으로 2인 이상의 공략 수집을 권장하는데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짐꾼 중에 구천 행성 출신의 SS급 무인이 있다는 게 사실입니까? 왜 용병 등록을 마치지 않았습니까?”
“일본에서 수호 길드를 적으로 규정하고 전쟁 준비에 돌입했습니다. 대비책이 있습니까?”
김미소는 미소 지을 뿐 어떤 대답도 내놓지 않았다.
“비키세요.”
“비켜 서세요.”
그때 기자들을 해치고 다가온 익숙한 얼굴들이 있었다.
수호 길드의 지원부 소속 직원들과 비서실장 이소진이었다.
“사람들은?”
“데려다주고 오는 길이에요.”
“고생했네.”
이소진과 김미소가 작게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덩치 큰 지원부 사람들이 인의 장벽을 만들었다.
용병을 따라다니며 수발 드는 지원부 사람들이 하는 일이 무엇이겠는가?
휴식 때 이것저것 편의를 봐주고, 평소에 경호도 서고 하는 게 일이다.
기자들 상대가 주 업무이기도 하다.
“어허, 물러서세요.”
“질문 안 받습니다. 취재 허락 안 합니다.”
“어허, 신발 밟지 마세요. 어제 산 겁니다.”
“따로 기자회견 마련하겠습니다.”
지원부 스텝들이 기자들을 물리려고 애썼으나, 한번 먹이를 물었다가 놓친 기자들은 쉽게 떠나질 못했다.
김미소는 해산할 방법으로 손가락 둘을 들었다.
“보시다시피 던전 생성 초창기라 할 일이 많습니다. 질문 두 가지만 받습니다. 의논해서 신중히 이야기하세요.”
김미소의 말에 기자들이 잠깐 머리를 맞대고 수군덕거리더니 대표로 나선 기자가 물었다.
“일본의 분위기가 심상찮습니다. 정말 전쟁이 일어날까 시민들이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대비책이 있습니까?”
“거기 카메라, 방송국인가요?”
“네, 맞습니다.”
김미소가 커다란 카메라를 보며 미소 지으며 말했다.
“전쟁 준비에 박차를 가하며 선전포고 전이라지요?”
“네, 맞습니다. 핵무기 사용까지 언급 중인 것으로 압니다.”
“핵이요?”
김미소가 비웃었다.
“분명히 말합니다. 이건 선전포고가 아닌 경고입니다.”
김미소의 얼굴에서 미소가 지워졌다.
“핵 날아오기 전에 저희 사장님이 먼저 갈 겁니다. 군수공장과 자위대 주둔지를 비롯한 모든 군사시설에 신화급에 준하는 야수들을 풀 겁니다. 그와 동시에 사장님은 일본 총리를 시작으로 모든 명령권을 가진 정부 인사들을 암살하겠습니다.”
김미소의 진지한 말에 베테랑 기자 중 하나가 피식 웃었다.
기사거리는 되긴 하겠지만, 너무 허풍이 심한 것 아닌가?
“거기 왜 웃죠?”
“아, 죄송합니다. 너무 허무맹랑해서.”
“허무맹랑이요?”
김미소가 다시 미소지었다.
“구천 행성 무림맹이 어떤 타격을 입었는지 조사해 보시고 웃으세요.”
김미소가 언제 방영될지는 모르지만 카메라를 보고 분명히 말했다.
“24시간 이내 이번 일에 대한 전후처리 협상 자리가 마련되지 않으면, 수호시에서 먼저 선전포고합니다.”
“…….”
14개의 대도시와 29개의 소도시를 거느린 일본이다.
인구 500명도 되지 않는 소도시가 국가를 상대로 선전포고에 준하는 경고를 날렸다.
“다음 질문?”
“…….”
머리가 굳어 조금 전에 협의한 질문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의 대답이다.
이게 무슨 미친 소리지?
“그럼 없는 것으로 알고 마치죠.”
김미소가 발걸음을 옮겼고, 이소진이 걱정스레 물었다.
“부사장님. 너무 세게 지른 거 아닙니까?”
“왜요? 걱정돼요?”
“그게 아니라 24시간 안에 사장님 안 나오실 수도 있잖아요.”
김미소가 미소지었다.
“그사이 일본이 공격해 올까 봐?”
“아뇨, 그거야 애들이 막겠죠.”
이소진도 야수 전력을 알고 있다.
S급은 흔해져버렸고, SS급, SSS급 야수들이 포진한 수호시티다.
거기에 이무기는 명명법이 없어 아직 정의하기 그렇지만 SSSS급이 아닌가.
비서실장이 걱정하는 건 협상 테이블에서의 사장님의 부재였다.
김미소가 피식 미소 지었다.
“이미 이기고 온 상대와 협상하는데 사장님까지 필요해?”
김미소는 단언했다.
이미 이긴 싸움이다.
해군기지가 초토화되고, 해군대장의 죽음으로 이미 전투는 끝이다. 전후처리만 남았을 뿐.
언론에서 저리 떠드는 건 개가 짖는 수준밖에 안된다.
진짜 전쟁을 시작할 생각이었다면 일단 미사일부터 쏴댔을 것이다.
그전에 감옥선을 그리 쉽게 놓아 주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미 기가 꺾여버린 일본이 먼저 시작하는 전쟁은 없다.
그 역으로 수호시의 선전포고가 두렵기에 곧 협상 제의가 들어올 것이다.
“일본 정도는 내 선에서 가능하지 않아?”
이소진이 미소를 따라 웃었다.
“그렇겠네요.”
이건 수긍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