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165)
166화 소떼 (2)
[탕약을 달일 줄 아시오?]말을 뱉어 놓은 뒤에야 상대가 무림인이 아님을 깨닫고 아차 싶었다.
“어, 냄새 구리구리 향긋 음, 할매 냄새.”
“뭐시여?”
당진철은 이숙자가 대뜸 화를 내자 의견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음에 통탄했다.
“한쿡말 어려워여. 나 속상해요.”
다행스러운 것은 제자가 중원어 습득이 빨라 간단한 의사소통은 다 된다는 것이고, 더 다행인 것은 취아가 간단한 한국말은 다 알아 역시 의사소통이 다 된다는 것이다.
어린아이 둘이 말을 보태니 의사소통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
“할머니가 만든 거냐고 물어요.”
“아따, 멀쩡한 양반이 눈깔 뜨고도 모르냐고 혀라.”
건우가 말을 전했다.
[보는 그대로예요.] [여기 약재는 간단한 마비독을 만드는 재료들인데, 알고 있냐고 물어보거라.]“이거 마비독 재료래요. 아시냐고 묻는데요?”
취아가 당진철의 말을 전했다.
“잉? 내가 어찌 알것냐? 그냥 픽 던져 주고 맹글어라 하니까 맹그는 거지.”
[잘 모르지만 다룰 줄은 안답니다.] [오! 조상님이 보살폈구나. 내 대에 당가의 맥이 다시 이어지겠구나!]당진철은 무릎꿇고 하늘을 보며 절했다.
그 요량을 보며 이숙자가 혀를 찼다.
“쯧쯧, 건우야 삼촌한테 말해서 선생 바까 달라혀라. 저 양반 영 이상한께.”
“할머니 아니에요. 당 숙부가 갑자기 부모님 생각이 났나 봐요.”
“허이구.”
이숙자는 금새 얼굴이 풀어졌다.
생각해 보면 고향 행성 떠나 타지에 왔는데, 얼마나 외롭겠는가.
“부모님은 고향에 잘 계시더냐?”
[부모님 안부를 묻습니다.]건우가 말을 전했고.
[덕분에 편히 잠드셨소이다.]“잘 주무시고 계세요.”
취아가 말을 전했다.
이숙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당진철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잉, 그려. 내가 그쪽이 못마땅혀서 그런 게 아니고, 다 우리 건우 해 될까 봐 그런 거시여. 내 나중에 맛난 거 해 줄 텡께 들고 부모님 찾아뵙고 그려.”
[어, 당 숙부 맛있는 거 만들어 준대요.]당진철은 이숙자를 향해 포권하며 한국말을 더듬더듬 뱉었다.
“캄사합니다.”
“잉, 그려.”
늑대들이 소떼를 모조리 정리했고, 수호는 소 한 마리를 잡아와 내밀었다.
“이거 먹을 수 있겠지?”
“설마 독이야 있겠소. 내가 도축하리다.”
당진철이 자신 있게 나섰다.
순식간에 가죽을 벗기고 먹을 만한 고기 덩이를 건져오니 수호가 의외의 눈으로 당진철을 보았다.
“오, 우리 당 아우의 재능을 이제 알아봤어.”
“이 정도는 무인에게 일도 아니오.”
야숙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무림인에게 야생동물 도축 따위는 일 축에도 못낀다.
다행이랄까, 헤집어진 소 시체를 두고 구역질하는 이는 적어도 여기 없었다.
건우도 취아도 아무렇지 않은데 오히려 서민수가 슬쩍 시선을 피할 뿐이다.
“저, 구워먹을 생각이시면 자리라도 옮기는 게 낫지 않을까요?”
서민수가 주변을 둘러봤다.
정면엔 높은 흙벽이 세워졌고, 양쪽으론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만들어져 버렸다.
뒤로 이어진 절벽 위의 길이 초원으로 이어진 유일한 통로다.
“여기보다 좋은 데가 있어?”
“어, 으음. 아닙니다.”
서민수가 머쓱하게 뒤통수를 긁었다.
그도 한때 베테랑 군인이자 각성자였다. 시체가 즐비한 던전에서 밥 먹는 게 일상이던 생활이 있었다.
생각해 보면 지금 떠오르는 감상 따위는 느끼지도 못할 만큼 여유 없고 치열한 시절이었다.
수호에 의해 강제로 던전에 들어오며, 다시 사냥에 복귀하고 은퇴를 번복한 지금, 날카롭고 무던하던 그때의 감정을 되새길 필요가 있었다.
‘사장님하고 던전에 오면 너무 편해서 탈이군.’
그 편함이 안전불감증으로 이어지면 남은 건 방심과 죽음뿐이다.
절벽아래 나뒹구는 시체들이 비위 상한다고 더 좋은 은신처를 찾는 호사는, 적어도 던전 안에서는 사치다.
화르륵.
순식간에 모닥불이 피워지고 커다란 철판이 놓이자 야영장 분위기가 났다.
달궈진 철판에 큼직하게 썬 고기를 올렸다.
치지지지직.
고기 굽는 소리와 냄새가 절로 군침 돋게 했다.
“삼촌, 이거 먹어도 되는 거예요?”
몇몇 몬스터들은 근육 자체에 독성을 가진 녀석들도 있었다. 생김새가 소 같다고 하여 소고기 취급하면 곤란한 일이다.
“어, 문제없어.”
수호는 이미 관찰, 조사, 분석 등 다방면의 스킬을 통해 식용으로 문제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대충 익은 소고기를 집어 씹은 수호는 감탄을 뱉었다.
“오!”
“그렇게 맛있어요?”
“아니, 질겨.”
그나마 그 망할 문어보다는 덜해 씹을 만했다.
서민수가 따라서 한 입 집어 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먹을 만한 수준이지요.”
어느 부위인지 모르겠지만 보다 더 육질이 좋은 부위도 있을 것이다. 일단 먹을 수 있다는 그 자체가 중요한 포인트.
‘이거 좀 잡아가도 되겠는데.’
포탈은 지구의 물건을 통과시킬 수 없다.
그렇다면 용병들이 던전에 입장할 때 가지고 가는 보존식량은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
전량 아루카 행성에서 가져온 식재료를 가공해 만든 전투식량들이다.
“몇 마리 잡아가서 사육하면 어떨까요?”
“사육할 거면 그냥 소를 키우지, 굳이 얘를 왜 키우냐.”
“그건 그렇죠.”
사육에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 없이 다 자란 소를 얻을 수 있다.
아직 탐사 초기라 이 던전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없지만, 등장 몬스터 중 하나인 이 들소들 자체가 던전의 수익과 크게 연결될 거란 느낌이 들었다.
“좀 야들한 것 잘라 와 봐.”
“알겠소.”
당진철이 숙련된 정형사처럼 소고기를 해체해 왔고, 그사이 늑대들은 절벽 아래에서 포식하고 있었다.
“이 썩을 놈들이, 늙었다고 고기 한 점 안 주는 겨?”
“할매 틀니잖아?”
“망할 놈아, 내 이가 여섯 개나 있어.”
“그러네. 이리 와요.”
수호는 그나마 가장 덜 질긴 부위를 접시에 담아 주었다.
“이모, 여기 나가면 틀니부터 맞춰야겠네.”
“각성인가 뭐시기 하면 이는 안 나는감?”
“음, 이미 빠진 건데 나나.”
“방법 이씁니다.”
“잉?”
당진철이 서툰 한국말로 표현하려다, 완벽한 통역사 박수호가 있기에 편하게 무림의 말을 뱉었다.
[구천 행성으로 넘어가 공적을 쌓고 역사의 축복을 받으면 되오.]“오, 그런 방법이 있네.”
하지만 수호는 역사의 축복만이 해결해 줄 수 있다는 구음절맥도 치료한 적이 있던지라, 가만히 초원의 생명의 에너지를 느껴보았다.
‘될까?’
식물의 성장, 발화, 대지의 움직임, 바람의 회전, 물의 소용돌이…….
전부 없는 것을 만드는 게 아니다.
창조가 아닌 조화력을 바탕으로 한 자연 정령을 움직이는 힘.
생명의 기운으로 상태이상을 치료했던 것을 생각하면, 창조 또한 잘하면…….
파파파팟.
모여든 기운이 모조리 이숙자에게 흡수되었으나 이가 자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거의 바닥까지 조화력을 써 봤으나 소용없는 짓이 되고 말았다.
“아따, 사우나 갔다 온 것맹크로 시원허구만.”
“허, 안 되네.”
수호는 조화력이 바닥을 치며 몰려든 탈력감에 잠깐 나른함을 즐기다 업적상점을 뒤져 보았다.
“이걸 파네?”
구음절맥도 낫게 한다는 엘릭서다. 소모품 항목에 떡하니 자리잡은 아이템.
– 10000p
만병통치, 불로장생을 꿈꾸는 약.
신체를 가장 건강한 상태로 되돌린다.
“비싸네.”
1만 포인트다.
스킬 하나 사는데 2만 포인트가 넘어버린 지금 상태에서 굳이 사지 못할 금액은 아니지만, 이숙자의 이빨을 위해 이것을 구입해야 하는지는 잠깐 망설였다.
정말 잠깐이다.
파팟.
수호는 손안에 쥔 스크롤을 건네주었다.
“못 먹는 건 아주 슬픈 일이지.”
“이게 뭐시여?”
“젊음의 묘약.”
어쩌면 불로불사가 되어버린 자신의 신체의 비밀도 이 엘릭서를 연구해 보면 나오지 않을까?
이숙자의 모습이 어찌 변하게 될지도 기대되었다.
“찢어.”
“잉?”
이숙자는 엘릭서를 찢었고, 아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맑고 청량한 기운이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으어어.”
이숙자가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소리 질렀다.
불가마황토찜질방에서 허리를 지질 때도 느껴보지 못한 강렬함.
흰머리가 뽑히고, 다시 흰머리가 자랐다.
누렇게 색이 바래버린 이가 빠지고 다시 누런 이가 자랐다.
검버섯 핀 주름진 피부가 뱀 허물처럼 찢어지더니 곱게 주름진 피부가 나왔다.
수호는 그 변화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할매는 할매군.”
하지만 당진철의 경악은 좀 달랐다.
“이것은 환골탈태!”
엄청난 공적을 쌓고 역사의 축복을 받아야만 이뤄질 축복이 눈앞에서 일어났다.
고작 종이 하나 찢는 것으로 말이다.
“혀, 형님. 그, 그거 나도 하나 주시오.”
“안 돼, 비싸.”
“아니, 할매는 주면서 나는 왜 안 주시오.”
“밥값을 해야지. 이모는 밥값 하잖아.”
이숙자는 변화된 몸에 절로 신음했다.
“아아.”
남사스러움에 급히 입을 다무는데 느낌이 이상하다. 입안을 가득 채우는…….
“이, 이가 났당게.”
틀니를 꽉 문 듯, 자신의 치아가 가지런히 나 있었다. 허리도 이제 정말 더 이상 아프지 않고, 마음만은 정말 20대 청춘이 된 것 같다.
외형은 여전히 할매지만.
흰머리도 어찌 전보다 더 윤기 있어 진 것 같기도 하고.
“하하하하!”
이숙자는 신묘한 변화에 절로 웃었다.
“이모, 고기 먹어 고기.”
“오야! 니 참말로 용하데이.”
질겅, 질겅.
질긴 고기도 참 만나기만 했다.
행복한 표정의 이숙자는 전보다 더 공들여 약을 달였고, 제법 그럴듯한 탕약을 만들어냈다.
정성이 들어가 효과가 조금 증가했다.
이걸 레시피 없이 만들었다고 좋아해야 할지, 미미한 효과 때문에 실망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잔뜩 기대한 이숙자의 얼굴을 보면.
“잘했어요. 역시 이모.”
“허허, 흰말은 내가 봐도 숭 맹탕이구만. 이거나 보드라고.”
이숙자는 자신 있는 얼굴로 사발을 내밀었다.
사발엔 찐득한 검은 액체가 담겨 있었다.
“손으로 만지지 말고.”
그녀의 경고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위험한 것임은 알 것 같았다.
마비독 성분을 개량하여 포유류, 특히 소에게 치명적인 독. 먹이는 것으로 마비 효과가 있으며, 상처를 내 투약하면 즉시 절명시킬 수 있다.
“오! 극독이네.”
정말 만들어냈다.
벌레 퇴치제처럼 여기저기 흩뿌려놔 먹이는 걸로는 마비 효과밖에 못 얻지만, 무기에 발라서 사용시 충분히 치명적으로 작용할 독이다.
“잠깐!”
당진철은 사발을 귀중한 보물이라도 되듯이 들고는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자신의 소중한 은침까지 꺼내 찔러보고는 눈빛이 흔들렸다.
“할매!”
짧은 한국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숙자의 두 손을 맞잡았다.
“와, 와 이라노.”
“큭! 할매 젊으면, 크윽, 아쉽다.”
“야가 와 이라노.”
이숙자의 우려와 달리 당진철은 진심으로 아쉬워하고 있었다.
왜 이런 재능이 이런 할머니에게 왔는가. 차마 청혼을 할 수도 없고…….
당가의 재건이 이 쭈글쭈글한 손에 달렸다.
“내 자식이 돼……. 아니다. 내 어머니가 돼라.”
“……비싼 소고기 묵고 처돌아삣나?”
할머니를 입양할 수는 없으니 별다른 방법이 없다.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
아버지의 4번째 첩으로 모셔 주지.
“나의 아버지의 첩이 되어, 나의 어머니가 돼라.”
짧은 한국어로 모든 뜻을 전했고, 불따귀가 날아들었다.
“이기, 처돌았나. 니 독 뭇나?”
이숙자의 우려와 달리 당진철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진지하게 말했다.
“어무이. 날 받아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