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200)
200화 천뇌 (2)
독단(毒丹)이다.
자색의 아주 예쁜.
만족스럽기 그지없다.
세가의 모든 역량을 집중한 결과물.
“여봐라.”
뾰족한 음성의 여인이 소리치자 곧 대기 중이던 호위무사가 들어왔다.
“예이.”
“이걸 거지에게 전해주어라.”
독단을 잘 갈무리한 함을 건넸다.
“맹주에게 말입니까?”
맹주를 거지라고 부를 수 있는 여인.
겉모습은 20대의 청초한 얼굴이지만 속은 200년 묵은 노괴.
하오문주 금오.
“예. 뭐라 전합니까?”
“혈마를 잡을 비약이라 전해라.”
“넵.”
호위무사가 나가자 금오는 웃었다.
저것이면 아무리 놈이 신선이라 해도 죽는다.
“후후후.”
전전대 무림맹주가 ‘독’을 다루는 모든 제조법과 무공, 심지어 가문까지도 말살한 덕에 자료를 찾기 어려웠다.
하지만 정보 수집과 분석이라면 개방보다 더 우위에 있다는 하오문.
개방이 양지에 나가 결국 임시무림맹주까지 차지했지만, 하오문은 더 음지로 음지로 숨어들었다.
무림의 대소사에 전혀 관여하지 않지만 누구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이 하오문.
그들은 멸문한 무림세가의 실전되었다고 알려진 독환 제조법을 마침내 찾아낼 수 있었다.
‘이것은 사천당가 독약의 집대성이다.’
의술과 독공 암기술을 떠올리면 언제나 한 손에 꼽히는 가문이다.
전전대 무림맹주의 탄압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하오문은 결국 찾아냈다.
‘이것은 기회다.’
이제 음지에서 힘을 키운 하오문이 양지로 나갈 발판이 되리라.
*
슈아아아아.
비룡이 엄청난 속도로 날았으나, 절정고수들에게는 이 정도 풍압은 견딜 만한 수준이었다.
곧 있을 마몬족과의 투쟁을 위해 내력을 아낀 열 개가 주위를 살폈다.
“저기요!”
가장 가까운 대족장 우로스의 부족이 있는 곳이다.
후우우웅.
비룡이 날개를 크게 접으며 선회해 내려갔다.
“크아!”
땅에서 뭔가 훌쩍 뛰어올라 덤벼드는데 자세히 보니 날개 달린 마몬비족이다.
“내로남불.”
“촤앗!”
수호의 부름에 당진철이 비도를 날렸다.
천검야장 장순필이 만들어준 것이 아니라 1회용으로 쓸 비도를 한 무더기 담아온 그다.
‘아공간 주머니라도 있으면 요긴할 터인데.’
아루카 행성에서 만들어진 그 요긴한 아이템은 구천 행성에서 작동하지 않았다.
아루카, 구천, 지구 셋의 행성 중에 모든 것을 수용하는 곳은 지구가 유일했다.
구천과 아루카는 서로의 행성 규칙을 침해하지 않았다.
오직 수호의 인벤토리만이 그 규칙에서 자유롭다.
당진철은 주머니 한가득 챙겨온 비도를 다 던지고 나서 손을 내밀었다.
“형님!”
“옛다.”
수호가 인벤토리에서 혁대를 꺼내 주었다.
가죽 벨트에는 일회용 비도가 빼곡히 꽂혀 있었는데, 못해도 50자루는 되는 것 같았다.
철컥.
빈 혁대를 버리고 새로운 혁대를 허리에 둘렀다.
걷기도 힘들어 보이는 모양새지만 상관없다.
안 걸으니까.
쐐애애액.
당진철이 정신없이 던지는 비도에 마몬비족들이 치명상을 입고 떨어져내렸다.
하지만 그 수가 너무 많았다.
“헉, 시발. 왜 이렇게 많소?”
보통의 마몬족 마을은 이렇게 많지 않다.
열개가 쉽게 해답을 내어주었다.
“당 대협께서는 견문이 넓어 아시는 줄 알았습니다. 우로스 부족을 모르십니까?”
“시발, 여기가 우로스 영역이었다니.”
알다마다.
강호가 좁다 하고 돌아다닌 당진철이 마몬족 네임드를 모를 리가 없다.
보통의 마몬족보다 전투력이 떨어진다고 알려진 마몬비족 중에서 유일하게 대족장까지 오른 인물.
당연하게도 그의 부족엔 마몬비족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것도 전투력이 뛰어난 놈들로.
“형니임!”
50개의 비도가 금방 동났다.
수호가 새로운 혁대를 주며 물었다.
“내로남불 선생, 후달려?”
“안 되겠습니다.”
“경험치 아깝겠네.”
“이번 마을만 형님이 정리해 주십시오.”
수호가 당진철에게 맡긴 건 별다른 의도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저 그의 투쟁을 도와줄 뿐이다.
“그럼…… 이봐, 거지.”
“네, 대인.”
“그 우로스 집이 저기 맞아?”
권력자들의 생각이 다 거기서 거긴지, 항상 크고 우람하거나, 화려하거나, 높은 건 죄다 최고 권력자들의 거처다.
“네, 맞습니다.”
“좋아. 저기가 맛집이군.”
대족장의 창고라면 보물 덩어리지.
나머지들은 뒤적거릴 필요도 없다.
“비룡.”
후우웅. 후우우웅!
비룡이 하강하다가 다시 날갯짓하며 고도를 높였다.
“크아!”
마몬비족들이 새까맣게 날아오는 게 보인다.
그 소란에 집에서 쉬고 있는 놈들까지 죄다 날아와 공격하려 한다.
성질 급한 몇 놈은 손에 쥔 창을 던지기까지 했다.
“뭐, 별수 없지.”
굳이 살생할 필요는 없지만, 굳이 죽이지 않을 필요도 없다.
위이이이잉.
수호의 조화력에 반응한 주변의 숲에서 나무정령들이 날아들었다.
놈들은 곧 희게 변하더니, 또 투명해져 바람이 되었다.
휘리리리릭.
곳곳에서 생겨난 돌개바람이 바닥을 쓸었다.
돌개바람이 주변에 바람과 합쳐져 회오리가 되었고, 곧 토네이도가 되어 하늘 높이 치솟아 구름까지 빨아들였다.
휘이이이이!
세찬 바람이 춤추듯 휘어지며 우로스의 대규모 마을을 부숴버렸다.
지붕이 날고, 담벼락이 날고, 그들이 키우던 가축도 날고, 마몬비족도 뒤섞여 날았다.
쿵, 쿵!
저들끼리 부딪히며 깨지고 그렇게 죽어갔다.
후아아아앙!
토네이도는 천천히 휘돌며 우로스의 집을 제외하고 모조리 초토화시켜 버렸다.
“이, 이게 무슨!”
열개는 너무 놀라 몸이 굳었다.
굳은 턱은 제 의지를 벗어나 덜덜 떨리고 있었다.
‘인간이 아니다.’
이미 신선 같은 그이지만, 이건 상식을 벗어나지 않은가?
‘풍백의 화신인가?’
혈마의 정체가 더욱 궁금하다.
아니, 궁금해해도 되는 것일까.
두려움, 경외.
열개가 느끼는 감정은 딱 그것이었다.
휘이이이.
언제 미친 회오리바람이 휩쓸었냐는 듯이 잠잠해진 하늘과, 초토화된 땅.
비룡이 고도를 낮추었다.
“크르르.”
아직 살아남은 마몬비족들이 도처에 깔려있다.
“애들 딸래? 대가리 칠래?”
“기회를 주신다면 당연히 머리를 노립죠.”
“우리 내로남불 참 쉽게 가.”
“다 형님의 덕이오.”
수호의 놀림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투쟁이 무엇인가?
나보다 약한 적을 상대할 때와 나보다 강한 상대를 꺾을 때, 어느 때 더 많은 공적을 인정해 줄까?
이건 생각해 볼 가치도 없는 기회다.
‘차려 주신다는데야.’
이건 철판을 깔고 체면을 깎아먹어도 될 정도의 큰 기회다.
대족장이면 적어도 화경의 고수니까.
오직 행성에서 한 명만이 주어지는 절대자의 경지.
현경을 제외하면, 가장 좋은 투쟁 상대는 화경의 고수다.
“좋아.”
수호는 멀쩡한 성.
마몬비족 대족장 우로스의 가옥을 향해 걸었다.
그 뒤를 기대에 찬 당진철이 따랐고, 얼빠진 얼굴의 열개가 조심히 따라 걸었다.
수호가 인벤토리에서 검 하나를 꺼냈다.
‘제왕검.’
열개의 시선이 그 검에 머물렀다.
전대 무림맹주 남궁장천의 검.
당대 현경의 경지에 올라, 심검지경을 이룬 절대자의 보검.
이제는 혈마…….
아니, 어디서 온 누구신지 모를 절대자의 것.
스릉.
“다 죽는데 안 나온다 이거지.”
제왕검이 공간을 베었다.
쿠쿵!
성이 갈라지며 무너져 내린다.
쿠쿠쿵.
“…….”
말도 안 되는 무위에 몸이 덜덜 떨려온다.
그런 열개의 어깨를 툭 치는 존재가 있었다.
“다, 당 대협.”
당진철은 열개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황당하지 않소? 저게 무슨 초식인지 알겠소?”
“모, 모르겠소.”
어떤 절대검법인지 감도 안 잡힌다.
“직도황룡이오.”
“마, 말도 안 되오!”
저게 어디 저잣거리에 나도는 삼류 검법이란 말인가?
“맞아. 이건 직도황룡이 아냐.”
수호는 내려치기 검법 직도황룡의 오의를 깨쳤다.
팔방풍우에 이어 하나 더 봉인 해제된 스킬, 태산압정.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른다. 그저 새로 생겨서 써봤을 뿐.
“태산압정 해석 뭐냐?”
수호가 물었다.
이런 건 당진철이 잘 안다.
“으음, 큰 산을 내리누른다는 뜻이오.”
“오, 역시 내로남불 선생, 삼류검법에 정통해.”
“…….”
삼류검법이 왜 삼류검법인가.
이름만 거창하지 실상 태산압정도 내려치기의 기본적인 초식이나 다름없다.
초식명은 은유이자 비유다.
그걸 정말 실행해버리는 수호가 이상한…….
“나오네.”
“크아아아!”
역시 대장이라 그런지 목청 하나는 크다.
마몬비족의 수장 우로스가 분기탱천해 날아온다.
우람한 덩치, 거대한 날개.
그리고 긴 창.
[네놈을 절대 용서 못한다!]수호는 마몬족의 언어의 약도 먹었기에 그의 포효 속에 섞인 말을 알아들었다.
수호가 피식 웃으며 당진철을 보았다.
“처리해.”
“아니, 지금 붙으면 내가 필패요.”
“역시 내로남불. 붙어보지도 않고 어떻게 아냐?”
“우형께서는 아우 놀리지 말고 얼른 어떻게 좀 해주시오.”
수호는 피식 웃으며 손을 뻗었다.
위위이이이이이.
토네이도의 영향으로 빨려들어 몰려든 구름의 색이 금세 시커메졌다.
[이노오옴! 일족의 원수!]“쿠어어어!”
대노해 달려드는 그를 보니, 이번 역사의 증명에서는 꽤 많은 마몬족의 미움을 살 칭호를 받을 모양이다.
군중의 말이 모이면 그게 칭호가 되니까.
“번개나 맞아라.”
수호의 60레벨 해금 스킬 낙뢰.
7성 던전 보스도 딸피로 살아남은 스킬이니까, 화경의 고수는 그럭저럭 타격만 주고 괜찮지 않을까?
꾸르릉! 퍼억!
낙뢰에 직격당한 우로스가 바닥을 굴렀다.
시커멓게 타고 그을려버린 그의 날개는 본연의 기능을 발휘하지 못할 만큼 망가졌다.
그 한 방의 참교육에 우로스가 땅을 딛고 우뚝 섰다.
수호를 노려보는 그의 얼굴은 화상으로 일그러졌으나, 조금의 고통도 느끼지 않는 건지 굳건하기만 했다.
[네놈은 무슨 원수를 졌기에 이러하느냐!] [원수?]수호의 되물음에 우로스는 꽤 놀란 얼굴이 되었다.
마몬족 언어를 할 줄은 몰랐겠지.
[그렇다! 네놈이 무림인이 아님을 알고 있다.] [그래서?] […….]남의 집 싸움에 끼지 말라는 건가?
[그런 걸 요구할 수 있는 건 힘이 비등할 때뿐이다.]맹수들이 각자의 영역을 지키는 것은 그 힘이 비등하거나, 먹이가 달라서다.
압도적으로 이긴다는 보장이 없다면 싸우지 않는다. 부상은 곧 다른 포식자의 먹이가 될 뿐이니까.
역시 화경의 고수라 그런가, 번개 한 방으로는 끄덕도 없군.
조화력을 끌어올려 더 출력을 올려서.
[번개나 하나 더 맞아라.] [……!]꾸르릉!
날개가 없어도 마몬비족 특유의 민첩성이 있어서 그런가?
콰콰쾅!
떨어지는 번개를 용케도 피해 굴렀다.
아슬아슬한 차이로 피한 그 위로 다시 낙뢰가 쳤다.
꽈과광!
“어쭈?”
화경의 고수쯤 되면 이 정도 공격은 어렵지 않은 건가?
“이것도 피해봐.”
수호는 조화력의 한계를 거뒀다.
쿠르르릉!
수호의 감정을 대변하기로 하듯 성난 구름이 거친 음을 토해내며 낙뢰를 치기 시작했다.
꾸르르릉, 쾅, 쾅!
수십 다발 내리꽂히는 낙뢰로 인해 순간 눈앞에 해가 뜬 것은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로 밝아졌다.
콰쾅! 퍼억!
결국 낙뢰 하나를 맞고 바닥을 뒹군 우로스의 위로 성난 번개 다발이 수십 차례 내리꽂혔다.
쿠르르.
검은 구름이 거둬지면 해가 비친 우로스의 마을은 폐허 그 자체.
“혀, 형님. 제건…….”
당진철이 허망하게 바라보고 있자 수호가 겸연쩍게 웃었다.
“어, 다음에 줄게.”
힘을 과하게 썼군.
근데 쟤는 왜 저렇게 떨지?
수호는 경련이라도 일어난 듯 몸을 떠는 열개를 보고 한마디 해주었다.
“어이, 젊은 거지.”
“헙, 넵.”
아니다.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다 아는 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