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202)
202화 날 좀 봐줘
게르마스의 덩치는 무려 4미터가 넘었다.
보통 인간의 두 배가 넘는 크기에 덩치마저 남다르니, 거대한 오우거가 서 있는 모양새였다.
“인간. 너는 그놈과 같은 행성 놈이구나.”
“누구?”
“리.”
“아, 이성우?”
“역시.”
게르마스는 오히려 차분해졌다.
아니, 보이는 것만 그럴 뿐 더욱 분노했다.
지구 출신 놈들은 하나같이 뒤통수를 치려고만 하지.
“괜히 자존심 상하네.”
어디 비교할 데가 없어서 그런 놈과 비교를 하지?
“그놈이 너랑 닮았던데.”
마몬족의 모습으로 변신한 이성우다.
정확히는 마몬비족의 모습이지만, 알 게 뭔가.
“흥! 내 창이 네놈을 꿰어낼 것이다. 작은 인간.”
“작은 게 꼭 나……. 어휴, 됐다.”
수호는 괜히 변명 같아 말을 관뒀다.
대신 보여주었다.
“나와.”
휘리리릭.
회색 연기가 뭉쳐 거대한 코끼리가 가옥 지붕에 올라섰다.
“뿌우우우!”
쿠르르, 콰직!
소환되기 무섭게 거대한 덩치로 인해 지붕을 뚫고 떨어져내리는 녀석을 불러들였다.
휘리리릭.
회색 연기로 화한 놈의 실체가 수호를 휘감았다.
연기의 갑옷을 입듯 변신한 수호의 몸은 회색 근육이 자라고 자라 덩치를 키웠다.
귀는 커졌고, 팔랑거렸다.
코는 길어졌고, 그 새로운 감각에 수호의 눈이 반짝였다.
‘이건 마치.’
꼬리가 생겼을 때 처음 느꼈던 감정과 비슷하다.
이런 신체기관이라니.
이건 신세계다.
“뿌우우우.”
웨어엘리펀트.
코끼리 인간이 포효했다.
그의 코엔 제왕검이 달려 있었다.
우락부락한 근육이 붙은 팔다리와 다르게 유연한 코는 마치 채찍처럼 검을 쉭쉭 휘둘러 댔다.
“흉측한 놈이군.”
게르마스의 혹평에 수호가 콧웃음쳤다.
“멋을 모르는군.”
이 얼마나 멋진 코란 말인가.
쿵, 쿠웅, 쿵!
코끼리 인간이 뛰었다.
이제는 덩치가 역전되어 마몬족의 왕 게르마스가 어린아이처럼 보일 지경.
그의 발걸음마다 가옥이 무너져 내렸다.
“뿌우!”
슈슉!
이게 바로 코검술!
카강, 캉!
게르마스의 창과 제왕검이 부딪히며 연신 쇳소리를 냈다. 코가 길고 유연하니 긴 창의 이점을 상쇄하고도 남았다.
휘리릭, 꽈드득.
외려 제왕검을 막으려 쳐내는 창을 뱀처럼 휘어들어간 코가 휘감으며 꽉 쥐어버렸다.
“놓아라!”
“이거 좋아 보인다.”
제왕검이 누구의 것이었나.
무림인 지존을 꺾고 뺏은 검이다.
그 반대 세력의 마몬족 왕도 좋아 보이는 창을 쓰고 있다.
전리품으로 삼기 딱 좋은 창.
“흉측한 괴물놈이!”
자신의 소중한 창을 탐내자 분기탱천한 게르마스가 발길질을 해왔으나, 이쪽은 양손과 발이 모두 자유롭다.
팡, 파팡!
창과 검이 모두 수호의 코에 잡혀 있다.
그 와중에 서로 박투를 주고 받으니, 절대자들의 싸움이라고 하기에는 영 볼품이 없었다.
퍽, 퍼억!
서로 오가는 권장 속에서 결국 게르마스가 창을 놓아버리고 멀찍이 물러났다.
창을 쥔 상태에서 우악스런 코끼리 펀치를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이노오옴!”
저런 흉측한 괴물놈에게 당하면 역사에 비웃음거리로 남으리라.
“뿌, 뿌우!”
요란한 포효와 함께 큰 귀가 꿈틀거린다.
그것이 묘하게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놈이다.
“놈!”
게르마스를 허리춤의 도끼를 뽑아 던졌다.
저 긴 코로 휘두르는 검술은, 볼품은 없어 보이지만 상당히 위협적이다.
긴 리치로 인해 거리 잡기도 힘들고,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모양은 채찍보다 더 자유롭다.
슈아아아악!
도끼 던지기는 자신있다.
놈의 머리통을 노리고 날아간 도끼가 위협적인 소리를 내며 나아갔다.
“읏차!”
놈은 림보하듯 허리를 뒤로 젖혀 피해냈다.
거대한 입 천장이 보일 정도로 허리를 젖힌 놈이 다시 허리를 굽히며 고개를 앞으로 숙였다.
그에 딸려온 머리, 코, 그리고 코가 쥐고 있는 도끼.
‘음?’
놈이 쥐고 있던 검도, 창도 어디 갔는지 사라졌다.
잡혀 있는 건 방금 자신이 던진 도끼.
피한 게 아니고 놈은 그걸 잡아버렸다.
그리고.
쒹!
너무 빨라 피하고 자시고 할 시간도 없었다.
눈 사이로 보이는 도끼자루를 보고서야 도끼날이 자신의 이마에 꽂혔다는 것이 인식되었다.
인식의 시간은 짧았고, 암전이 찾아들었다.
“후후후.”
수호는 인벤토리에 넣어두었던 창을 다시 꺼내보곤 만족의 웃음을 지었다.
먼 고대의 신이 사용했다는 창을 본떠 만들었다.
‘묘하게 익숙한데.’
투박하게 생긴 창의 재질이 뭔진 모르겠지만, 쇠보다 가볍고 휘어짐이 좋다. 튼튼하기까지 하니 이만한 창이 또 어딨을까.
수호가 인벤토리에 넣고 기쁨의 포효를 내질렀다.
“뿌, 뿌, 뿌우!”
비룡이 선회하며 내려서니 당진철과 열개가 뛰어내렸다.
“아니, 형님. 하고많은 야수들 중에 왜 코끼리요.”
“얘랑 소만 레벨이 낮아.”
지금 수호의 각성등급은 S.
60레벨대다.
다른 야수들은 죄다 SS등급이 넘어가니, 자아 주도권을 뺏길까 변신이 부담스럽다.
그나마 레벨이 낮은 60렙 야수는 길들인 지 얼마 안 되는 뿔 세 개의 무소들과 코끼리들뿐이다.
휘리리릭.
웨어엘리펀트의 몸에서 회색 아지랑이 같은 연기들이 증발하듯이 사라지고, 수호가 본래의 사람 모습으로 돌아왔다.
“크아아!”
“룰투다시바투아!”
어느새 모여든 마몬족 전사들로 포위되자, 수호는 고개를 절레 저었다.
“이거 살생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네.”
“이대로 도망치면 되지 않습니까?”
조심스러운 열개의 의견에 수호는 고개를 저었다.
“젊은 거지.”
“네.”
“아직 창고도 안 털었어.”
“…….”
“그리고 역사의 눈도 봐야지.”
“……!”
그건 좀 혹한다.
이곳은 무림맹 지부와 정반대 진영.
무림인들 중에 마몬족의 역사의 눈을 본 자가 있을까?
어쩌면 그것을 본 것만으로도 엄청난 공적치가 인정될지도 모른다.
이 땅에 이 발을 딛고 선 자체가 공적.
“내로남불. 밥값 좀 해.”
“흠, 알겠소.”
이미 화경의 경지에 올랐다 하여 무의 공부가 끝인가? 당진철이 고개를 끄덕이며 앞서 나갔다.
이제 그의 손엔 열두 자루 비도뿐이다.
다른 어떠한 무기도 필요치 않다.
“촤아!”
쇄애애애액!
비뢰간지.
열두 개의 비도가 날아다니며 춤을 춘다.
“크아아.”
수호는 당진철이 터준 길을 따라 걸었다.
“젊은 거지, 화경 안 찍었지?”
“……그렇습니다.”
“한몫 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열개도 초절정 무인이다.
화경의 깨달음이 곧 잡힐 듯 말 듯한 경지.
하지만 굳이 단련이 아니라 투쟁으로 찍어도 상관없으리라.
열개의 손에 들린 흑단목 몽둥이가 마몬족들의 뚝배기를 깨기 시작했다.
“안에 있나?”
게르마스의 거대한 성체.
그 안에서 기운이 느껴진다.
아주 강대하고 기분 나쁜 시선이.
수호가 성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타이베이 외곽지.
두두두두.
대규모 몬스터 무리가 무너진 도시로 접근하고 있었다.
인간들 입장에서야 다 무너졌지만, 몬스터들 입장에서야 이만한 은신처도 없다.
벽도 있고, 심지어 지붕도 남은 건물들이 다수다. 동굴보다 백 배는 나은 그 거주지가 엄청난 면적을 자랑하며 남아 있다.
거기에 먹이도 풍부하다.
도시에 터를 잡지 않을 이유가 없다.
“크롸아. 크롸!”
어림잡아 오백여 마리.
대규모 오크 부대가 도로를 따라 진입해 오고 있었다.
“크롸!”
주변을 경계하며 보행하는 놈들이지만 숨은 기척을 찾아내진 못했다.
“…….”
오크 무리가 지나길 기다리는 존재들.
‘더, 조금 더.’
오크 무리를 지켜보는 눈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크롸?”
전방에서 무리를 이끌던 오크 전사가 이상함을 느끼고 행렬을 멈췄을 때는 이미 늦은 후였다.
화르르륵.
후방에서 몸통만 한 불덩이가 날아왔다.
건물 사이 은신해 있던 마법 각성자들이 날린 마법.
“쏴!”
픽, 피육, 픽.
석궁을 당기고 대기 중이던 석궁수들이 일제히 화살을 날렸다.
“크롸!”
여기저기 사방에서 공격이 날아오자, 오크 전사는 후방을 치는 대신 비어 있는 전방으로 도망가는 쪽을 선택했다.
“됐다!”
후방에서 무리를 이끌던 여자가 환호했다.
사실 숨어 있던 인원은 고작 20명.
이들은 몰이꾼이다.
진짜는 오히려 놈들이 활로라고 생각하고 도망가는 길목에 매복해 있다.
“추엥, 수고했어. 우리도 어서 뒤따르자.”
“응.”
각성자들이 얼른 오크 무리를 뒤따르니, 그곳엔 갑옷 입은 근접 전투 계열의 동료들이 이미 오크들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자세히 보면 그들이 입은 갑옷도 몬스터의 것을 탈취해 대충 맞춰 입은 것들.
“차앗!”
검을 빼들고 달려들어 전장에 합류하고 나니 금방 정리가 되었다.
“으으, 내 팔!”
“다리, 내 다리! 크으.”
“어서 이쪽으로 와!”
구천 행성이었다면 전투가 끝나고 역사의 증명을 행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지구엔 역사의 비석이 없고, 사지가 떨어진 환자가 기대할 곳은 병원뿐이다.
정부마저 무너진 타이베이에 병원은 사라졌지만 의사는 존재한다.
“어서 끌고 와. 다리 찾아와.”
잘린 다리를 붙여 얼른 맞추더니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위이이이이.
하얀 빛이 모여들더니 금세 다리 조직들이 연결되었다.
“일단 됐어. 좀 아플 거야.”
의사가 얼른 실로 다시 붙은 그의 다리를 꿰매기 시작했다.
“으으, 으읍.”
바오는 외과 전문의다.
타이베이 자립 기구에 속하고 나선, 의무적으로 전투병으로 참가해 각성까지 했다.
평생을 의사로 살아온 그의 인생이 영향을 미쳤는지 치료 스킬을 얻었다.
아직은 스킬의 힘이 약해 미약한 치유력과 재생력을 부여하지만, 외과수술의로서의 그의 의술과 병행되자 꽤 효과를 봤다.
이제 자치기구에서 누가 다치면 가장 먼저 바오를 떠올릴 정도.
바오는 언제나 가장 부상자가 많은 전투조에 따라나서며 군의를 자처하고 있었다.
“후, 조금만 참아. 자네도 얼른 다음엔 각성해.”
“네, 아흑.”
방금 붙은 팔을 만져 보는 젊은 남자의 얼굴은 얼이 빠져 있었다.
이번이 첫 전투.
난놈들이야 첫 전투에서 각성하기도 하지만, 일반인이 어디 쉬운 일인가.
대부분은 몇 번 적응을 하고 난 뒤에, 대여섯의 전투에 참여한 뒤에야 각성에 충분한 차원에너지를 얻는다.
이 젊은이도 적응까지 꽤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언제나 수고가 많으십니다.”
바오는 문득 들려오는 청명한 소리에 뒤돌아보곤 고개를 숙였다.
“명진 스님.”
바오는 하던 일을 멈추고 일어서 합장했다.
타이베이를 구한 영웅.
모든 사람들이 그를 향해 합장했다.
“나무관세음보살.”
심지어 방금 치료받던 남자도 몸을 일으켜 세우려 했다.
“누워 계십시오.”
“아닙니다. 스님이 오셨는데 어찌…….”
그는 영웅이다.
타이베이를 구하고, 사람들을 모으고, 그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지금도 생존자들을 계속해서 합류해, 벌써 5천 명이 넘었다.
그들 모두가 각성할 수 있도록 체계를 잡아주고, 이제 어느 정도 시스템을 갖추니 정작 자신은 한발 물러나 있다.
자립기구는 민주적으로 구성되었다.
작은 의회도 설립되었다.
이게 다 명진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의 절대적인 힘과 명성, 그리고 살신성인 정신이 아니었다면 자립기구 절반은 이미 약탈자나 범죄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명진은 규칙을 찾아준 은인이자 생불이다.
“언제나 저희 곁에 머물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떠나지 않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무관세음보살.”
“옴마니반메홈.”
“옴마니…….”
명진은 대꾸하려다 슬쩍 보니 웨이중이다. 피식 웃어 주고는 물었다.
“통신시설의 복구는 어찌 되었습니까?”
“아직 불안정하지만 연결에는 문제없습니다.”
“아직도 소식이 없지요?”
“……예.”
명진이 잠깐 어두운 얼굴을 하곤 사람들 틈에서 멀어졌다.
“참으로 곤란합니다.”
이미 이곳에서 명진이 할 일은 다 했다.
이제 떠나기만 하면 되는데, 데리러 오질 않는다.
“차라리 직접적인 메시지를 보내는 게 어떻습니까?”
웨이중의 의견에 명진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될 말입니다. 전 세계가 보고 있습니다.”
“후, 메일이라도 읽어 주시면 좋으련만.”
수호 길드 공식메일로 수백 통의 메일을 보냈는데 하나도 읽지 않았다. 거기에 전화를 걸어 봐도 죄다 연결도 안 된다.
“사진이나 하나 찍어 주시지요.”
“예, 스님.”
딱, 딱, 따악.
명진은 SOS가 작게 적힌 목탁을 두드렸다.
찰칵.
“허허허, 이번에도 부탁드립니다.”
“이를 말입니까.”
웨이중은 사진을 명진의 SNS에 업로드했다.
누구라도 눈치채 주길 바라면서.
아니, 제발 전화나 메일만이라도 읽어 주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