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220)
220화 황금
북한에 본래 2개의 대도시가 남아 있었다.
평양과 개성.
개성이 얼마 전 7성 던전의 브레이크를 막지 못해 궤멸되었고, 그 많던 인구가 평양으로 피난하면서 평양의 거주인구가 한계에 다다랐다.
그 와중에 터진 황충은 도시에 시한폭탄을 가져다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배급제를 시행하는 평양시에서 식량의 증발은 곧 권력의 증발로 이어질 위기였다.
김정운이 외부와의 갈등으로 내부 결속을 이끌어내고 문제를 해결하려 했지만…….
“수고핬서!”
리중만은 전화를 끊고 그답지 않게 희열에 가득 찬 얼굴이었다.
“되싸! 해낸 기야!”
“대장 동무 만세!”
“만세!”
리중만의 집무실에 있던 대원들이 환호했다.
그들의 가족이, 친우가, 인민들이 굶고 있다.
외부에 핵을 쏘기 전에 내부의 핵이 터질 판이었다.
리중만이 결단했을 때 지금 이 자리에 모인 대원들은 흔쾌히 혁명에 응했다.
각성자들의 레벨업과 등급업은 그들의 신체한계만을 늘리지 않았다.
아무리 세뇌하고 정신교육을 하여도 불거지는 비합리성과 문제점들에 대한 고찰을 이어온 자들이다.
상위종이 하위종에게 지배당할 수 없듯이, 진화를 이끌어낸 신인류는 지배당하길 거부했다.
초능부대의 99%가 넘는 동지들이 혁명에 참가해, 대장인 리중만이 외려 놀랐을 지경.
혁명은 성공적이었고, 김정운 정권은 몰락했다.
사실 총기조차 통하지 않는 각성자 부대를 군대의 힘만으로 막아낼 수는 없었다.
아니, 각성자들로 구성되어 있다뿐이지, 그들 또한 군대였다.
강제적인 징집, 사상교육, 각성을 위한 사냥까지 이뤄지다 보니, 사실 제 손으로 목을 조른 셈이다.
F, E등급의 하위 각성자 수로만 보면 가장 많은 수를 자랑하는 게 북한일 것이다.
북한정권의 생각은 그랬다.
고위 각성자들은 통제력을 잃는 순간 정권을 위협하는 폭탄이 되지만, 하위각성자들은 고급인민군이 된다.
일정부분 맞는 말이다.
리중만의 부대가 결국 혁명에 성공해 정권의 몰락을 가져왔으니까.
사상교육으로 세뇌된 고급인민군은 틀렸다.
스스로 생각하고 고뇌하는 시민을 양산했을 뿐이다.
‘이 겨울만 넘기면…….’
리중만은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꼈다.
언제까지 조선인민공화국이 가난과 배고픔의 행군을 이어나가야 하는가.
울분을 삼키고 또 삼켰다.
이제 인민은……. 평양은 개돼지처럼 살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 겨울을 일단 넘겨야겠지만 말이다.
“대장동무! 림종성 부대장 동무가 급히 오고 있다는 소식입네다.”
“벌써?”
“그랐습네다. 수호길드 사람들과 함께 출발했다 합네다.”
리중만이 눈을 빛냈다.
인접국 어디든 수호 길드만큼 시원시원히 결정하는 데가 없다.
죄다 시간을 질질 끌고, 하나라도 더 이득이 될까 재고 또 잰다.
저 간악한 쪽바리 놈들은 아예 대꾸도 없고 말이다.
그에 반해 수호 길드는 의사결정에서부터 실행까지 뭐 하나 미적거리는 게 없다.
당장 사람을 보낼 줄이야.
“귀빈을 맞을 준비를 하자.”
“알겠습네다!”
아마 수호 길드 사절단일 것이다.
그들이 평양에 도착하면 본격적인 식량수급 협상에 들어갈 것이다.
곡물의 종류부터 수량까지.
‘아루카 행성까지의 무역로만 확보하면.’
리중만이 원하는 건 딱 그거 하나다.
황충으로 인한 피해는 평양보다 만주국이 더 심하지만, 그들은 영토에 아루카 행성으로 통하는 게이트가 있다.
게이트 너머 행성에서 얼마든지 식량을 수입해 올수 있기에 구명줄이 있다.
반면 북한은 타 행성과 이어지는 게이트 자체가 전무.
타국을 통한 중개무역뿐인데, 이미 몰락한 김정운 정권에서는 절대 개방하지 않았을 정책이다.
평양 일대가 어수선하지만 군부에 대한 장악은 끝났다. 그와 뜻을 함께하는 혁명동지들만 수천이다.
배고픈 인민들이 수백만이고, 개성에서 피난와 집도 없이 평양 외곽에 거주하는 이들만 수십만이다.
거기에 도시가 아니지만 저들끼리 영토를 떠돌며 이리저리 몬스터를 피해 살고 있는 인민들은 또 얼마나 많겠는가?
저 북쪽 영토 끝자락 회령 땅엔 애저녁에 반기를 들고 독립한 반동분자 세력들이 존재한다.
전 정권이 몰락했으니 그들과도 연락을 취해 볼 작정이다.
“대장동무! 평양의 남측 경계를 지났답네다.”
“음? 고저 뭐 그리 잽싸게 오고 그라네. 날아오는 것도 아니고 말이디.”
“맞습네다. 날아오고 있답네다.”
“…….”
하긴 도로 사정이 워낙 열악하니 헬기를 타고 오는 게 더 나을 것이다.
“17부대 착륙장으로 유도하라우.”
17부대.
통상 초능력부대로 불리는 그곳이야 말로 리중만의 집과 같은 곳이다.
아직 여기저기 시체들도 치우지 못해 어수선한 당 지도부에서 맞이하는 것보다 그곳이 차라리 낫다.
어차피 이번에 오는 것은 사전협약을 위한 실무진일 터.
“천혜림 동무 대기하라 이르라우.”
천혜림은 17부대의 브레인이다.
부대 내 살림을 맡을 정도로 실력이 출중한 간부이자, 리중만의 숨은 전략관.
그녀라면 약삭빠른 남측 협상관들과의 말빨에서 밀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사정이 급한 평양이지만, 마냥 손해 보는 장사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너는 혈석 창고 점검하라우.”
“벌써 두 번 세 번 점검했습네다.”
“또 하라우.”
“알겠습네다.”
부대 내 부관들이 여기저기 분주해졌다.
남조선과 처음 하는 거래이자, 마중물이다.
이제 공화국은 지겹도록 쌓여왔던 우물둑을 까부수고 세상으로 나갈 것이다.
투두두두두.
계류장에 착륙한 것은 헬기가 아닌 수송 드론이었다.
착륙한 수송 드론 앞으로 17부대 정예요원들이 일렬로 늘어서 에스코트 길을 만들었다.
그 길의 끝에 리중만이 듬직하게 서 있었다.
“와, 여기가 평양이야?”
정확히는 평양시 외곽 17부대 주둔지다.
“그런 것 같네요. 이야, 이거 유튜브 각 제대로 뽑히네.”
“돌발행동은 자제해 주세요.”
드론에서 내리는 건 고작 2남 1녀.
“음?”
멀찍이서 그들을 보던 리중만이 눈을 부릅떴다.
“박수호?”
남한에서 제일가는 요주의 인물을 왜 모를까?
왜 그가 이 자리에 직접 왔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이러면 마냥 손님 맞듯이 대기할 수 없었다.
자신이 직접 맞이해야 격이 맞다.
리중만이 절도 있게 걸어가 그들을 향해 인사했다.
“박수호 동지의 평양 방문을 환영하우.”
“그래요.”
수호는 군복 입은 그를 훑어보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냉면집 사장?”
그렇게 보이진 않는데.
“…….”
그때 뒤늦게 수송 드론에서 내린 림종석이 하얀 얼굴로 나서며 소개했다.
“이, 이쪽은 혁명전사들을 이끌고 계신 리중만 대장입네다.”
“아, 그쪽이 여기 대장.”
수호는 손을 내밀었다.
“박수호야.”
“리중만이오.”
수호는 씩 웃었다.
레벨 70 – SS
전사
스킬 – 투지
갓 SS급에 오른 따끈한 등급의 각성자다.
그의 주변에 S급 각성자들이 즐비한데 누구 하나 SS급이 없다.
리중만이 대장답게 가장 높은 레벨의 각성자로 보였다.
사설 군대 따위를 용납 불가능한 구조의 북한에서 용병 따위가 존재할 리 없다.
각성자들은 모두가 군인이고, 그 군인들 중의 정예들이 여기 모인 이들이다.
‘이러니 개성이 무너지지.’
애초에 7성 던전에 대한 공략 능력이 없다.
사람들로 바글바글한 평양도 재수 없게 7성 던전이라도 하나 생기면 생지옥이 될 판이다.
북한은 던전 대응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하지만 멀리서 다가오는 재앙보다 당장 눈앞의 걱정이 더 큰 법.
“먼 길 오시느라 피곤할 터인데, 잠깐 쉬실 곳을 안내해 드리갔습니다.”
“별로 안 멀던데.”
수호시에서 곧장 날아왔다.
직선거리로 따지면 부산보다 더 가깝다.
“밥부터 먹읍시다. 평양냉면으로.”
“…….”
리중만은 도무지 어떻게 대우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렸다.
국가원수 대접은 아니지만, 막 혁명에 성공한 혁명부대의 최고 대장이다.
이건 무시인가?
시험인가?
“하하하! 그럽시다. 금강산도 식후경인데 식사부터 하십시다.”
리중만이 눈짓했고, 옥류관에 자리가 비워졌다.
한동수와 김미소, 박수호는 그들이 제공한 차를 타고 평양을 가로질러 옥류관으로 향했다.
“이야, 내가 북한에 와보다니.”
동수는 뭐가 그리 신기한지 창문 밖으로 평양 시내를 구경하기 바빴다.
“뭐가 그리 신기하냐?”
“아니, 형님. 이게 안 신기해요?”
“뭐가?”
“북한이잖아요!”
“그게 왜?”
“허, 아프리카보다 가기 힘든 나라가 북한인데.”
“이렇게 가까운데?”
“어휴, 물리적 거리가 아니라……. 아녜요. 됐어요.”
동수는 설명하길 포기했고, 김미소는 이리저리 계산대를 굴리기 바빴다.
“사장님.”
“어.”
“여기 탐 나세요?”
“왜?”
“여기가 대륙으로 향하는 길목이니까요.”
평양을 먹으면 만주대륙까지 한달음이다.
김미소의 야망에 수호가 피식 웃었다.
“세상사람 모두를 부하로 두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 수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챙기고 지켜주겠나?
그저 자신의 가족들, 길드 식구들 정도면 충분하다.
“사장님의 뜻 잘 알겠어요.”
김미소는 살풋 미소 지었다.
어디 지배에 직접적인 지배만 있었던가?
경제권을 쥐든, 군사보호를 이유로 들든, 간접 지배하는 방법이야 차고 넘친다.
평양은 여러모로 취약한 곳이 많다.
던전 대응 능력도, 식량의 자급자족도, 국가간의 평판이나 신뢰도도 바닥이다.
“친구는 어떠세요?”
“친구 좋지.”
수호는 픽 웃었다.
친구라…….
평생 친구란 말만큼 허망한 게 없지만, 이웃끼리 사이좋게 지내면 좋은 일이다.
“좋은 이웃으로 만들어보죠.”
“알아서 해.”
수호는 창밖의 동상을 응시했다.
거 포동포동하네.
“난 냉면만 먹으면 돼.”
평양에서 먹는 평양냉면은 어떤 맛일까?
갈비집 냉면과 무엇이 다른가?
곧 옥류관에 도착한 일행은 냉면을 맛보고 수호는 고개를 갸웃했다.
“별다를 게 없는 거 같은데.”
“에이, 형님. 로컬음식이 다 현장 분위기가 반 아닙니까? 좀 즐기면서 드세요.”
수호가 물끄러미 냉면 국물을 보다가 픽 웃었다. 동수 말에 깨달음을 얻을 줄이야.
즐기면서 사는 인생이다.
맨 과일만 따먹고, 질긴 고기만 씹던 게 엊그제인데, 언제부터 미식가가 됐다고 맛 평가질이었나.
즐겁게 먹으면 된다.
“네 말이 맞다. 여기 한 그릇 더.”
“동무 식성이 참 남다릅니다.”
“뭐, 고기집 냉면보단 맛있네요.”
수호는 옆자리에 앉아 후루룩 면치기하는 리중만을 보며 씩 웃어줬다.
세 그릇을 더 비운 수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잘 먹고 갑니다.”
“어딜 가시려고……?”
리중만이 황당해하며 박수호를 보았다.
아직 제대로 된 논의는 한마디도 안했는데?
“밥값하러 가야지.”
“어, 어디를…….”
당황해하는 리중만을 김미소가 붙잡았다.
“씨 뿌리러 가시는 거예요.”
“……?”
이 새끼들, 남조선에서 온 것 맞나?
어디 사기꾼 새끼들인가?
그때 옥류관을 따라나선 리중만이 눈을 비볐다.
휘리릭.
수호의 신형이 매로 변해 하늘로 날아올랐다.
“저, 저, 저!”
갑자기 이렇게 내뺄 줄이야?
리중만의 얼굴이 덜컥 굳었고, 자연스레 그 주변의 군인들이 한동수와 김미소를 에워쌌다.
“설명하씨오.”
“북쪽으로 갔네요.”
“그게 어인 말이오?”
“가서 직접 보시죠.”
“어딜!”
길을 막은 초능부대원들의 분위기가 흉흉해졌다.
“와……. 북쪽 형들, 감당할 수 있겠어요?”
한동수가 은은히 기세를 피워올리자 부대원들이 리중만만 보았다.
“……장벽으로 간다.”
리중만과 초능부대원들이 김미소와 한동수를 대동한 채 평양시 북쪽 경계인 장벽에 올랐다.
“이, 이게 대체!”
그들의 눈앞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황무지는 온데간데없고, 온통 누렇게 익은 벼들이 고개 숙인 채 바람결에 흔들리고 있었다.
그 들판을 가로지른 매가 장벽에 올라왔다.
휘리릭.
연기로 변한 매가 수호로 변했고, 턱이 빠져라 입이 벌어진 리중만을 향해 말했다.
“추수는 셀프.”
리중만의 눈은 끝없이 펼쳐진 황금 들판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