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236)
237화 8성
“뭐야? 안 덤벼?”
수호는 공주가 계속해서 노려보기만 하자 고개를 갸웃했다.
“저 공주예요.”
“근데?”
“…….”
공주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어머니, 진정 이 사람이 제가 머무를 곳을 인도하나이까?’
수호는 공주의 고민스런 얼굴을 보며 선빵을 쳐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시주, 무언가 오해가 있는 모양입니다.”
“응?”
“도무지 싸우러 온 것 같지는 않아 보입니다.”
명진이 만류하며 말을 덧붙였다.
“애초에 동수 시주가 잘못해 빚어진 마찰입니다.”
“동수가 잘못해?”
수호가 돌아보니 동수는 눈빛이 아련해져 있었다. 한 대 툭 치면 울 것 같은 비련의 주인공 같은 모습이었다.
정의의 사도가 아니다.
무리의 우두머리일 뿐이다.
“동수, 뭐라 그랬는데?”
“…….”
따악!
“아오, 왜요?”
동수가 욱씬한 뒤통수를 만지며 항변했다.
“뭐라 그랬냐고.”
“예쁘시다고 했어요.”
“응? 그걸로 싸웠어?”
수호가 의아해하자 명진이 나서서 정정해 주었다.
“존나 이쁘다고 했소.”
“아니, 스님! 왜 고자질을 하고 그러세요?”
“사실 전달을 한 것뿐입니다.”
“아뉘! 그리고 스님이 존나 이런 말 막 써도 되요?”
“예, 됩니다.”
“와, 나 고기 먹을 때부터 땡중 같더라니.”
“고기 먹는다고 땡중 아닙니다.”
투닥거리며 싸우는 둘을 보던 수호가 뒷목을 잡아 뒤로 훌쩍 던졌다.
“어억!”
“흡.”
훌쩍 날아간 두 사람이 균형을 잡고 착지했다.
“애들도 아니고 싸우기는.”
둘 다 동갑이라서 그런지 젊은 승려와 젊은 놈은 잘도 티격태격거린다.
“뭐, 그래서 기분 나빠서 싸우러 왔냐?”
수호가 다시 물었다.
박수호가 공명정대하거나, 정의로운 인물이었다면 동수를 혼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그저 무리의 우두머리일 뿐이다.
“신탁이 있었어요.”
“음? 그게 뭐지?”
“신의 말씀이요.”
“좋아. 신이 보내서 왔냐?”
부하를 보내다니.
신이란 놈은 리더십이 없군.
“…….”
공주는 심호흡했다.
대단한 도발이다.
공주는 인내했으나 신전의 기사 하이템플러들은 그러지 못했다.
“이노옴! 감히 신을 모욕하다니!”
누가 말릴 새도 없이 알리어드가 튀어나오며 창을 내질렀다.
슈슛!
수호가 무심히 자신의 코앞에 오는 창을 잡아 비틀었다.
쯔즉!
자신의 나무창이 뿌지직 소리와 함께 꺾여버리자 알리어드가 대경실색했다.
“헙!”
세계수의 가지로 만든 창이 어떻게 꺾일 수가 있지?
상식 밖의 일이 일어날 때 사람들은 종종 패닉에 빠지곤 한다. 엘프라고 뭐가 다를까.
“아, 신이 그 신이야?”
눈 까뒤집고 덤벼드는 것 보니 알겠다.
신을 모시는 자들이구나.
“근데 말야.”
어디 신만 그러할까?
아버지가 모욕당해도 성내는 게 아들이고, 부하가 모욕당하면 대장이 기분 나쁜 법이다.
“대장끼리 이야기하는데 조무래기들은 빠져.”
후우웅!
수호가 손에 잡힌 나무창을 휘둘렀다.
꺾여 반만 붙어있던 나무창에 딸려간 알리어드가 저만치 날아가버렸다.
“……그만하세요.”
공주의 말에 수호가 어깨를 으쓱했다.
“멋대로 덤빌 때는 언제고, 그만하래?”
“오해가 있었나 보옵니다.”
“무슨 오해.”
“신을 따르는 자들의 충정일 뿐이오니, 너그러이 넘어가 주시지요.”
수호는 피식 웃고 말았다.
“당진철 같은 놈들이네.”
내로남불이 따로 없다.
“좋아 여기 온 이유나 대봐.”
“신탁이 있어 확인코자 왔습니다.”
“뭘?”
“당신이 그 신탁의 대상인지 확인이 필요합니다.”
“확인해 봐.”
“협조에 응해 주시면…….”
공주가 말을 하다 말고 수호가 승낙하자 되물었다.
“정말이십니까?”
“어, 빨리 확인하고 가.”
“…….”
너무나 쿨한 수호의 승낙에 공주는 얼떨떨했다.
‘이자는 적어도 옹졸하지는 않구나.’
공주의 평가가 어떻든, 수호는 빨리 볼일을 끝내고 드워프의 마을로 가고 싶었다.
마음은 콩밭에 가있는데 붙잡으니 빨리 해결하고 가려는 마음뿐이다.
“…….”
공주가 자신을 가만히 보고만 있자 수호가 인상을 찌푸렸다.
“뭐하냐. 확인 안 하고.”
“귀인께서는 어디로 가시려는지요?”
“드워프 만나러.”
“어느 부족을 찾으십니까?”
“모르지. 쟤가 안내해 줄 거야.”
갑자기 지목된 카쿤이 어리둥절한 얼굴이 되었다.
“제가요?”
“허허, 아들아. 그렇게 되었다.”
오장로가 자기 아들을 길잡이로 붙여주려는 모양이었다.
여전히 황당한 얼굴의 카쿤을 오장로가 나서서 설명했고, 수호는 공주를 보았다.
“확인 다 된 거야?”
“아닙니다.”
“이거 골치 아픈 놈이네.”
공주에게 놈이라니.
아직 날아가지 않은 로매드가 버럭 나섰다.
“말을 삼가시오!”
“이놈도 웃긴 놈이네. 너네 공주지, 내 공주냐?”
“이익……!”
로매드는 화는 나지만 섣불리 덤벼들지는 못하고 괜히 역정을 냈다.
“정령은 어떻게 뺏은 것이오!”
“내가 뺏었냐, 얘들이 왔지.”
슈슉.
수호의 부름에 땅에서 노움이 솟구쳤고, 어깨 위의 바람이 뭉쳐 실프를 형상화했다.
“노, 노우움.”
로매드의 얼굴이 울상이 되었다.
저리도 행복한 얼굴의 노움이라니.
낯선 남자의 다리에 매달린 너의 얼굴이 나를 무너뜨리는구나.
“노움.”
“이상한 놈이네.”
수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공주를 보았다.
어딜 가나 광신도들이 문제지.
“다했으면 난 간다.”
“안됩니다.”
공주의 제지에 수호가 슬슬 인상을 굳혔다.
“한 번만 더 막으면 나 화낼 거야.”
수호의 재촉에 공주가 결정을 내렸다.
‘나의 숨이 머무른 곳, 스치는 바람에 뿌리 내릴지어다.’
신탁을 되뇌었다.
‘이자가 맞다.’
이자가 인도해 주리라.
그의 어깨 위에 앉은 실프가, 다리에 매달린 노움이 증명하고 있다.
하이템플러의 정령마저 유혹이 될 정도로 정령 친화력이 좋은 자.
신의 축복이 함께한다면, 이자가 아니고 누구겠는가.
“당신을 따라가도 되나요?”
“왜?”
“신탁에서 당신이 저를 운명의 장소로 인도한다고 했어요.”
“그거 이상한 신이네.”
저만치 날아갔다가 복귀한 알리어드와 로매드가 으르렁 거렸다.
“이익.”
“으으음.”
필사적으로 참는 모습이 마치 똥 마려운 강아지 같아 웃겼다.
“싫어.”
굳이 함께할 이유가 어딨나.
수호는 카쿤을 봤다.
“이봐, 가자고.”
“헙, 알겠소.”
카쿤이 다가오자 수호가 태사와 명진을 보고 이소진을 부탁했다.
“잘 데리고 가.”
“걱정 마십시오.”
“우린 가자.”
휘리리릭.
수호의 소환에 비룡이 나타나자 엘프들이 놀라워하며 뒤로 주춤 물러났다.
“허억, 저게 뭐지?”
“저렇게 큰 동물이라니.”
“날개도 있어.”
타탓.
수호 일행은 너무도 익숙하게 탑승했고, 수호는 카쿤을 들고 훌쩍 뛰어올랐다.
‘힘이!’
카쿤은 수호의 힘에 깜짝 놀랐으나, 의문을 표하기도 전에 등에 탑승한 상태였다.
후우우웅, 후우우웅!
날갯짓과 함께 비룡이 날아오르자 금세 지면과 멀어졌다.
“어엇!”
놀랐던 엘프들이 그 광경에 입을 딱 벌리고 구경하는데, 공주는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공주님. 왜 그러십니까?”
“드, 드래곤.”
“네?”
“드래곤이에요!”
공주의 외침에 엘프들이 경악성을 내질렀다.
“드래곤이라고요?”
“저게?”
“아니, 그럴 리가!”
“드래곤이야!”
“드래곤이 복수를 위해 돌아왔어!”
“꺄아아아!”
엘프들이 소리치며 혼란스러워했다.
그들의 반응에 이소진이 조용히 태사신니와 명진의 소매를 잡아 끌었다.
“이거 분위기 좀 안 좋아 보이죠?”
“그, 그러게요.”
“나무관세음보살.”
“아니, 우리도 데려가 주시지…….”
가는 길에 게이트 앞에 내려주면 될 것을.
“드래곤이야!”
“신이시여.”
“종말이야, 종말이 찾아왔어.”
“내 마법이 쓰일 날이 왔구나.”
“흥, 문제없어. 드래곤이든 뭐든.”
여전히 패닉에 빠진 자들도 있었고, 의지를 다지는 이들도 있었다.
이소진은 그 와중에 자신들을 똑바로 쳐다보는 공주를 보고 다가갔다.
‘도망치는 건 하책.’
분명 자신의 상사인 김미소가 있었다면 그리 말했을 것이다.
이 일의 원흉이라기엔 그렇지만, 가장 영향력 있어 보이는 공주와 담판을 지으리라.
이소진이 공주를 향해 다가갔고, 명진과 태사신니가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호위처럼 뒤 따랐다.
“멈춰라!”
하이템플러들이 공주를 보호하기 위해 앞으로 나섰다. 이소진이 걸음을 멈췄다.
대화하기에 충분한 거리다.
“공주님께선 드래곤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신전에서 늘 보고 연구하는 게 드래곤이에요.”
“실물로 본 적이 있냐는 말입니다.”
“없지요.”
이소진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저 생물은 드래곤이 아닙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분명 저것과 같은 외형이었어요.”
“세계의 종말을 부를 정도의 존재가 한낱 인간에게 길들여지는 게 가당키나 한 이야깁니까?”
“…….”
“더불어 공주께서는 좀 전에 이야기하지 않았습니까? 우리 사장님이 신탁의 대상이라 하였지요?”
“…….”
“신께서 종말을 몰고 올 리가 없잖습니까?”
“…….”
아무 말도 못하는 공주를 보며 이소진은 이 논쟁이 끝났다고 여겼다.
‘좋았어.’
길드로 돌아가면 오늘의 무용담을 김미소에게 자랑해야지. 의기양양한 이소진이 공주의 얼굴을 보곤 고개를 갸웃했다.
그녀의 표정은 어둡기는커녕 개운해 보이기만 했다. 마치 일주일치 변비를 해결한 듯 말이다.
“이제야 모든 의문이 풀렸어요.”
“…….”
이제 침묵하는 건 이소진이었다.
“신께서는 제게 마지막 소임을 다하라는 계시였어요.”
“…….”
“저를 희생해서라도 막아 보이겠어요.”
“…….”
위험하다.
뭔가 위험해지고 있다.
“신탁은 종말을 막으라는 계시예요!”
“헙.”
뭔지 모르지만 주옥된 각이다.
“저들을 잡아들이세요! 드래곤의 복수로부터 이 행성을 지킵시다!”
차차착.
엘프 기사들이 검과 창을 들었고, 마법사들의 손바닥 서클에 저마다 불꽃과 얼음 따위의 마법을 만들어냈다.
반항하는 순간 저것들이 덮치리라.
“어쩌죠?”
“나무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하, 집에 가고 싶다.”
이소진이 속으로 울며 두 손을 들어 올렸다.
*비가 오려면 구름이 쌓여야 한다.
거기에 더해 천둥번개라도 치려면 검은 먹구름이 그 징조를 먼저 내보인다.
세상 모든 일에는 전조증상이라는게 있다.
인간의 인지능력을 초월한 초자연적인 현상에도 그런 증상은 있었고, 그것을 캐치해내는 감각을 지닌 인간도 있었다.
최수영은 가만히 눈을 감고 감각을 집중했다.
‘느껴진다.’
수백, 수천 번 했던 일이다.
주변의 공기를 느끼고, 세상을 느낀다.
흐르고 흐르는 기의 흐름 속에 불안정하게 뭉친 기운들이 느껴진다.
“저쪽.”
최수영이 산 중턱을 가리켰다.
“와, 역시.”
“이야, 관리국 에이스는 다르네요.”
“이제 관리국 소속 아니잖아.”
“어쨌든.”
사람들이 최수영이 가리킨 산중턱을 향해 몰려갔다.
다시금 차원균열을 탐지하기 위해 눈을 감은 수영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건 이미…….’
기의 움직임이 심상찮다.
“어? 팀장님.”
부하직원의 목소리에 눈 뜬 최수영의 표정이 굳었다.
이건 기감이 예민하지 않은 사람도 안다.
츠츠츳.
차원균열이 포털화 하고 있었다.
“모두 물러서!”
실수로 포털에 진입하는 순간 1인 레이드를 시작해야 한다.
“파, 팔성 던전일까요?”
“모르지.”
측정해봐야 안다.
하지만 최수영의 예감엔, 이 커다란 포탈이 8성 던전일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