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285)
286화 웰컴 투 시티 (1)
“넌 뭐냐?”
끼릭.
수호의 물음에 놈은 그저 얼굴을 비스듬히 기울였다.
“대답 안 하면 좀 맞아야지.”
수호가 검을 집어넣고 주먹을 들자 녀석이 울었다.
[크으으으으.]그것은 입으로 냈으나 머리로 들렸다.
그 소리는 지옥에서 올라온 듯 끔찍했고, 또 슬펐다.
“…….”
수호가 한 발 다가갔다.
“정체가 뭐지?”
[날 왜 죽였지?]“……?”
수호의 발걸음이 멈췄다.
[우리는 복수할 것이다.]“우리?”
쐐애액!
검은 인영이 달려들었다.
콱!
수호는 검은 인영의 목을 쥐었다.
파팍, 퍽!
검은 인영이 손발을 휘저으며 저항했으나 수호의 팔엔 별 생채기도 나지 않았다.
“미친놈인가.”
실성한 놈임에 틀림없다.
“복수를 논하기에는 너무 약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콰직!
수호가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놈에게 뼈가 있었다면 목이 꺾였겠으나, 검은 액체 같은 몸이다.
압력에 터져버린 듯 산산조각 나버렸다.
스으으읍.
수호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별걸 다 흡수하네.”
수호는 무거워진 머리를 털었다.
어딘가 모르게 찜찜한 기분.
“언데드였나?”
아마 언데드 계열이리라.
왜 이렇게 빨리 죽였지?
“약하니까.”
뭐 손을 나누고 할 것도 없이 대단치 않은 놈이었다.
즈아아앙.
때마침 열린 출구 포탈을 향해 걸었다.
파밍하고 말 것도 없는 온통 검은 세상이다.
더 있고 싶지 않았다.
*조민규는 눈알을 데굴데굴 굴렸다.
“이, 이제 어쩌죠?”
“그르르르.”
미치긴 미쳤구나.
늑대한테 말이나 걸고.
아니지, 이 늑대들 아니었으면 지금쯤 피 토하고 누워 있겠지.
“그어어어!”
리치킹의 괴성 같은 주문에 누워있던 시체들이 다시금 일어섰다.
“시발.”
이건 뭐 무한 리필도 아니고, 시체들 치우는 사이에 다시금 몰려든 언데드들로 인해 주변 일대가 꽉 찼다.
아이돌 콘서트 현장도 이 정도는 아닐 것이다.
“그어어어.”
“저리 좀 가라. 좀!”
퍼억!
조민규의 도끼질에 스켈레톤 머리통이 박살나며 주저앉았다.
다행스럽게도 스켈레톤 하나하나의 전투력은 높지 않다.
위협이 되는 것은 이 압도적인 숫자와 끊임없는 추가 증원.
“와, 이게 다 뭐냐?”
그때 들려온 소리에 조민규는 이제 환청까지 들리나 싶었다.
“늑대도 말을 하네.”
“누구 나?”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아니, 시발. 사장님!”
“시발?”
“아니, 그게 아니라 너무 놀라서!”
수호는 픽 웃었다.
“왜 이렇게 많냐?”
“사장님이 갑자기 포탈로 들어가시고 얼마 안 있어 저 리치가 나타났는데, 그때 시체 무더기들이 죄다 살아나가지고…….”
조민규가 흥분에 말을 빠르게 쏟아냈다.
합격 목걸이라도 걸어주고 싶은 조민규의 상황 설명에 수호가 납득했다.
“리치가 어딨나……. 저깄네.”
수호는 시체들 사이에 불쑥 솟은 해골바가지를 보았다.
“근데 사장님 언제 오셨어요?”
“방금.”
수호는 훅하고 조화력을 일으켰다.
그의 기운에 반응한 주변 나무정령들이 날아와 힘을 보탰다.
파아아앙!
수호를 중심으로 바람이 휘몰아쳤다.
아주 뜨거운 바람이.
화르르륵.
‘파, 파이어 토네이도!’
불기둥을 보며 조민규는 몸을 떨었다.
‘이거 게임에서 봤어.’
이런 광범위한 살상마법을 직접 시전하는 마법사가 있을 줄이야.
그것도 대한민국에.
그게 사장님일 줄이야!
멋지군.
조민규가 감탄했고, 불기둥이 사방으로 흩날리며 시체들을 빨아들여 소각했다.
그 불의 행진 사이에 오연히 버티고 선 해골 하나.
입고 있던 로브에 무슨 마법이 걸려 있는지 터럭 하나 타지 않고 멀쩡한 모습이다.
“리치 킹.”
“네가 만들었냐? 검은 포탈.”
말을 못하는 놈이군.
이빨이 없나?
수호는 인벤토리에서 제왕검을 소환했다.
신급 군주도 두 동강 내는데, 군주급인 리치킹 따위가 버틸쏘냐.
스컥!
휘둘러진 검에 공간을 격하고 날아간 검기로 리치킹의 몸이 두 쪽 나 버렸다.
상체와 하체가 분리되었으나 하체는 하체대로 걷고, 상체는 상체대로 로브자락을 펄럭이며 날았다.
“뭐?”
악당 같은 말을 지껄이는군.
수호는 검을 다시 휘둘렀다.
뼈다귀뿐이라 베인 것만으로는 죽지 않는다면, 아예 가루로 만들어 주마.
파파파파!
사방에서 조여 오는 검기의 망.
팔방풍우에 리치의 몸이 산산조각나 버렸다.
오랜만의 경험치.
수호는 검을 수납하곤 주변을 둘러보았다.
초토화되어 검게 탄 백골밖에 남지 않았다.
“정리하고 가자.”
조민규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초토화되어버린 일대에 더 이상 몬스터는 남아있지 않았다.
리치킹도 칼질 몇 번에 죽어버렸다. 자신이 할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조민규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 넵.”
조민규가 비장한 얼굴로 도끼를 들자 박수호가 고개를 저었다.
“너는 액션캠이야.”
“아…….”
“얼른 일해.”
수호는 그리핀 하나를 소환했다.
휘리릭.
“타고 가.”
“넵.”
자신의 할 일은 눈에 모든 것을 담는 거다.
리치킹 레이드 장면 따위를 담는 게 아니다.
세부가 수복되었음을 확인해야 했다. 그리핀을 타고 날아오른 그를 보며 수호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항공뷰 촬영엔 역시 그리핀에 영상기억각성자 조합이지.
고성능 카메라를 단 촬영 드론이 부럽지 않다.
수호는 세부 섬을 더 조사했으나 검은 포탈은 하나였다.
“한둘이 아닐 텐데.”
세상은 넓고 드넓은 대륙에 미치던 인류의 영향력은 줄었다.
인류의 발길이 닿지 않는 필드는 늘었고, 어디서 또 이런 검은 포탈이 생길지 알 수 없었다.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먼저 처리할 수 없으니, 선제공격엔 한계가 있었다.
결국 검은 포탈도 언젠가는 브레이크가 일어날 터.
통상적으로 던전 브레이크 시 한 단계 위급의 몬스터가 나왔음을 생각하면 검은 포탈에서는 어떤 존재가 나올지 궁금했다.
“돌아가자.”
세부에서의 일이 끝났다.
*파팟.
다비드는 모로코시티에서 수호시티로 눈 깜짝할 사이에 이동하였다.
“후, 혈석이 아깝지 않군.”
사진으로만 보던 수호 길드의 세계 포탈 존이다.
밟고 선 땅의 지형을 보니 아프리카 북부다.
“환영합니다.”
곧 안내직원이 나와 다비드를 안내했다.
포탈 존은 거대한 콜로세움 같은 모습이었다.
웅장해 보이는 성벽, 그 사이 유일한 출구를 향해 걸었다.
출구는 지형으로 보면 남극의 극점에 있었다.
“신분증을 제출해 주시겠습니까?”
“여기.”
다비드는 신기한 듯 직원들을 보았다.
‘아티팩트를 착용했군.’
직원이 동시통역 아티팩트를 착용했기에 그의 한국말을 다비드가 알아듣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저 아이템은 사람의 의지를 그 사람이 아는 언어로 들리게 하는 마법이 깃들어 있다.
꽤 귀하고 비싼 물건인데, 가장 부유하다는 수호 길드답게 아티팩트를 여럿 구입한 모양이다.
언뜻 보이는 직원 열댓 명이 죄다 통역 아이템을 지닌 걸 보니 말이다.
“롤랑 길드의 다비드 씨. 확인되었습니다.”
돌려주는 신분증을 받고 나니 간단한 차원에너지 검사가 있었다.
곧 U등급을 목전에 둔 SS등급의 세계적인 각성자이건만, 수호 길드에서는 밥 먹다 옆 테이블만 둘러봐도 수두룩한 등급이라 직원들 태도는 시큰둥했다.
“여기 간단한 생활수칙이 있습니다. 불이행시 강제적인 구속 및 구금, 추방될 수 있다는 점 유의해 주시고, 읽으신 후 사인해 주세요.”
각국 언어로 적힌 안내문 중 영어로 적힌 것을 내어 주었다.
읽어 보니 상식적인 안내문이다.
절도, 방화, 살인 등을 금하고 수호 길드 내성과 몇몇 시설에 대해 접근하지 말 것을 권고하는 등의 상식적인 내용.
스슥.
사인을 마치고 나서야 다비드는 포탈 존을 나설 수 있었다.
나가기 전, 그가 직원에게 물었다.
“박수호 사장을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오?”
“내성 입구에 길드 안내실이 있습니다. 그쪽에 가서 문의하시면 됩니다.”
“알겠소.”
다비드가 나서고 직원들이 고개를 저었다.
“오늘로 열두 명째인가.”
“그치.”
포탈 존을 통과해 들어오는 자들은 대부분 외국인이다.
그것도 길드나 포탈이 연결된 도시의 주요 정책을 담당하는 고위급 공무원들.
하나같이 박수호 사장을 만나러 왔다고 말하지만, 대부분의 일처리는 김미소 부사장 선에서 끝난다.
포탈 존을 나온 다비드가 반긴 것은 외부로 통하는 남문과 북쪽으로 쭉 이어진 대로였다.
남문에서 번화가들이 몰린 북쪽까지는 꽤 먼 거리였기에 이동을 위한 시설들이 몇 있었다.
“수호시티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다비드는 혈석으로 움직이는 차들을 보다가 고개를 돌려 한쪽에 있는 마차를 가리켰다.
“마, 마차 아니오?”
“맞습니다. 골라 타시지요.”
가장 현대적인 모습의 자동차와 어울리지 않게, 진짜 말이 끄는 마차가 선택지로 올라와 있었다.
“마차로 하겠소.”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수호시티를 찾은 관광객 중 90%가 마차를 선택하지요.”
“그렇소?”
“200짜리 혈석 하나만 주십쇼.”
마차 운임 비용으론 꽤 비싼 금액이지만 그러려니 하고 작은 혈석 하나를 건넸다.
지붕 없는 마차에 앉자, 곧 마부의 탑승과 함께 말이 출발했다.
히이이잉. 달그닥.
천천히 이동하는 마차에 올라타 있으니 주변 풍광이 더욱 잘 보였다.
시골마을에 온 듯 정돈된 푸른 녹지를 보는 게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몬스터들이 차지한 필드는 아무렇게나 자란 수림지역이거나, 폭격을 맞아 여기저기 파인 전쟁터 같은 모습을 하고 있으니까.
“호텔에 투숙하러 오셨습니까?”
“나는 관광 온 게 아니오. 일을 위해서요.”
“오우, 그러시군요. 혼자 오셨길래 관광이신 줄 알았습니다.”
일을 위해 온 사람들은 대부분 수행원들을 달고 오니까.
“급한 일이라 서두르다 보니 혼자 오게 되었소.”
“아하, 그러시군요. 그럼 마차 속도를 조금 올릴갑쇼?”
“그래 주면 고맙겠소.”
“꽉 잡으십쇼.”
히이이잉.
마부가 채찍질하기도 전에 말이 달렸다. 그러고 보니 말고삐도 없고, 마부는 아예 빈손이다.
다비드의 이상한 눈빛을 읽었음인가, 마부가 어색하게 웃었다.
“저도 그냥 타고 가는 겁니다. 거의 가이드죠.”
말을 몰지 않는 마부는 토실대며 뛰어가는 말 엉덩이를 보며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사실 이 속도도 10분의 1 수준입니다.”
“이, 이게 말이오?”
마차가 전복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빨리 달리는데?
“하하, 그냥 마차 버리고 등에 올라타고 가면 차보다 더 빨리 갑니다.”
“말이 그렇게 빨리 달릴 수가 있소?”
“저 말이 U등급이거든요.”
다비드가 깜짝 놀라 물었다.
“아니, 그런 귀한 말을 겨우 마차 끄는 데 쓴단 말이오?”
“예? 등급이 낮은 말들이 돌아가면서 마차를 끌고 있소만…….”
“…….”
이 무슨 황당한 소리지.
말을 몰지 않는 마부…… 아니, 가이드는 말했다.
“저어기 풀 뜯고 있는 뿔 3개 달린 소가 L등급입니다. 저기 뒤에 목긴 기린은 아직 SS등급이죠.”
“SS…….”
“아직 수호 길드에 합류한 지 며칠 되지 않는 녀석들이라 등급이 낮지요. 하하.”
“…….”
SS등급이면 자신과 동급인데.
“오, 방금 지나간 고양이가 U등급입니다. 고양이 중에서는 유일한 U등급이지요.”
“고양이들도 유니크 등급이오?”
“예에, 가장 게으른 놈이지요. 다른 고양이들은 죄다 L등급인데. 쯧쯧.”
“…….”
다비드가 입을 꾹 다물었다.
여긴 뭐지?
각성자들 전력이 어마어마하다 했는데, 그건 외부에 알려진 수호 길드 전력의 극히 일부일 뿐이었다.
혹시 이 가이드도?
“실례이오만, 가이드분의 등급은 어찌되오?”
“나 말이오?”
가이드가 씩 웃었다.
“저는 등급이 없습니다. 대신…….”
아, 일반인이었구나.
“절정무인이지요. 지구로 치면 SS등급 정도 되는군요.”
일반인이 아니다.
지구인이 아니라 등급이 없을 뿐.
“그, 그런 분이 왜…….”
“아, 마차요? 취미입니다. 취미.”
일취월장한 왕일이 씩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