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286)
287화 웰컴 투 시티 (2)
똑똑.
부사장실 문을 두드리고 기다렸다.
안에서 들려온 인기척에, 여기까지 그를 안내한 비서가 문을 열었다.
“들어가 보세요.”
“네.”
조민규는 박수호 사장을 만날 때만큼이나 긴장한 채 열린 문으로 들어갔다.
수호 길드 부사장실.
실질적으로 수호 길드의 모든 사항을 결정하는 곳이다.
막강한 권한을 가진 길드 내 2인자의 집무실.
“어서 와요.”
포근한 미소로 맞이한 그녀를 보며 조민규는 깍듯이 인사했다.
“넵.”
“일단 앉아요.”
조민규를 자리에 앉히곤 말했다.
“영상 올라온 건 봤어요.”
세부 수복 영상.
조민규의 시선으로 담긴 그 영상은 꽤 길었지만, 편집부에서 적절하게 편집해 보고를 올린다.
아직 유튜브를 통해 대중에 공개되진 않았지만, 김미소는 이미 보고받고 내부 네트워크에 올라온 영상을 보았다.
“고생하셨던데 더 쉬시지 않고, 면담은 왜……?”
조민규는 수호가 검은 포탈에 입장한지 꼬박 24시간을 사투했다.
함께한 서른 마리의 늑대들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그는 죽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게 가만히 생각하니, 이상한 게 조금 있어서…….”
“네, 말하세요.”
“사장님이 던전 공략 중에 제가 외부에서 버틴 시간이 하루입니다. 수천이 넘는 스켈레톤들이 몰려들었고요.”
“네, 고생하셨더군요.”
“그런데, 던전에서 나오신 사장님 말씀이 조금 걸리는 게 있어서요.”
“음. 별 말씀 없으시던데요?”
김미소도 영상을 다 봐서 안다.
“아, 직접적인 이야기는 없으셨는데 뉘앙스가 좀.”
“어땠나요?”
“던전 공략을 순식간에 마친 듯 보였습니다.”
“…….”
외부에서 보낸 시간이 24시간이다.
통상의 던전은 현실보다 시간이 더 빠르게 흐른다.
외부의 시간이 24시간이면 던전은 그보다 더 많이 흘렀을 터.
“왜 그렇게 느꼈죠?”
“잠깐 다녀왔는데 왜 이렇게 많이 몰렸냐는 식으로 물으셨어요.”
“흐음.”
김미소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가만히 자신을 기다리는 조민규를 보곤 멋쩍게 미소 지었다.
“가 보셔도 좋아요. 이건 그냥 물어보는 게 빠르겠네요.”
“넵.”
사장님이 부재 중인 것도 아니고 길드에 계신데, 직접 물어보면 빨리 해결될 일이다.
‘9성 던전일까? 아니면 게이트일까.’
미처 던전의 에너지를 측정하지 못한 게 아쉬웠다.
‘데이터야 곧 나오겠지만.’
지금 만주국에 생성된 검은 포탈에 측정기가 설치되어 있다.
아직 포탈이 완성된 게 아니라서 제대로 된 데이터가 나오지 않고 있지만, 포탈이 완성되는 순간 측정될 것이다.
9성 던전인지, 혹은 다른 세계로 통하는 게이트인지, 그것도 아니면 새로운 변종 던전인지 말이다.
“그럼 쉬세요.”
“넵, 이만 나가 보겠습니다.”
조민규가 자리를 떴고, 김미소는 비서실에 이 일을 맡기려다가 자리를 정리하곤 일어섰다.
“어디 가세요?”
그녀의 그림자 같은 비서실장 이소진이 즉시 따라붙었다.
“사장님 어디 계시지?”
“동쪽 구역에 계세요.”
“요즘 거기 많이 계시네. 가 보자.”
“넵.”
“오늘 스케줄 많니?”
“굵직한 건 둘입니다.”
“뭐야?”
“후쿠오카시티에서 온 비밀사절단과 필리핀의 대통령 방문입니다. 그 둘은 오늘 중으로 만나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음, 다른 건?”
“며칠 전부터 시내에 머무르고 있는 롤랑 길드의 용병 다비드 씨가 지속적으로 사장님과의 면담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내가 아니라?”
“네.”
김미소는 걸어가면서 태블릿을 들어 보았다.
다비드의 프로필을 띄워 보니 과거 접점이 있었다.
“사장님과 구면인가 보네. 이건 보고해 봐야겠네.”
“넵.”
필리핀으로 떠났던 수호가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김미소는 길드 내성을 지나쳐 동쪽 성문으로 나섰다.
처음 옛 지명 의정부에 수호시티가 자리잡을 땐 두 구역뿐이었다.
수호 길드 내성과 서쪽의 야수 쉼터.
그리고 이후에 성 밖에 지어졌던 봉림사 터 인근의 동쪽에 새롭게 나무 성벽을 쌓으며 동쪽 구역이 되었다.
이후에 남쪽으로 커다란 구획을 아울러 외성이 만들어졌다.
동쪽 구역은 내성의 동문으로만 출입 가능한, 외부인의 출입이 불가능한 지역이다.
최초에 터를 잡은 봉림사가 위치했고, 이후에 아미파 분타, 사천당문 등의 문파에 자리를 내어주며 구천 행성에서 이주해 온 무림인들을 위한 집성촌처럼 되어버렸다.
지나는 길에 당진철이 김미소를 발견하곤 웃으며 아는 체를 했다.
“오, 김 총관 오셨소.”
“별일 없으시죠?”
“별일이야 있겠소? 하하. 저것 좀 보시오.”
당진철이 자랑스레 가리키는 곳에는 목조건물들이 뼈대를 갖추고 올라가고 있었다.
“얼추 다 지어져 가네요.”
“하하, 이를 말이오. 저 정원은 또 어떻소?”
“예쁘네요.”
사실 별 감흥이 없다.
정원이 따로 필요한가 싶을 정도로 수호시티는 녹지들이 대부분인 자연친화적 도시니까.
“아니, 그리 시큰둥할 게 아니오. 이 정원의 배치는 과거 사천당문의 고풍스런 정원 모습을 그대로 복원한 것이오.”
당진철의 설렘과 한이 느껴졌다.
모두 죽고 사천당문의 유일한 혈족이라 했던가?
“진철 씨도 후인을 둬야 하지 않나요?”
당진철의 얼굴이 잠깐 어두워졌다가 금새 웃었다.
“하하하, 내 백방으로 알아보고 있소. 이거야 원, 영 눈에 차는 인재들이 없어서.”
건우를 알아버렸는데 그보다 못한 둔재들을 제자로 들이자니 영 마뜩찮았다.
“결혼을 하시면 되잖아요?”
“하하하하, 어어, 거긴 그리 칠하면 안 되는데.”
당진철은 담벼락 공사 중인 인부들을 보고 급히 시선을 주었다.
“그럼 소저는 일 보시오. 에헤이, 거긴 붉은색이라니까.”
당진철이 급히 가버리자 김미소가 미소 지으며 걸었다.
“참 별난 사람이야.”
사장님과 의동생을 맺은 인재다.
전투력만으로 따지면 수호 길드 내에서 탑3 안에 들어가는 절대강자다.
그러고 보니 이 동편에 전투력 최강자 셋이 다 모여 있다.
그중 둘이 정자에 앉아 대화 중인 게 보였다.
*졸졸졸.
시냇물 소리를 음악 삼아 팔베개를 하고 누웠다.
세계수 나무에 한번 들렀다가 오는 길이다.
엘프 공주의 영혼이 대장나무에 깃든 이후엔 꼭 누가 지켜보는 듯해, 그 아래서 낮잠 자기가 꺼려졌다.
대신할 곳을 알아보다 동쪽 구역 아미파 분타 앞의 정자를 자주 찾게 되었다.
아예 야수를 소환해 보초를 두고 잠을 잘까 싶었지만 관두었다.
낮잠 한번 자는데 무슨 거하게…….
어차피 죽으면 평생 잘 건데.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더 없이 깨끗하게 들렸다.
같은 소리가 아니다.
한번 흐른 물이 다시 오를 리가 없으니, 지나간 소리는 지나가버린 그대로다.
물은 늘 한곳으로 흘러 좋다.
마치 시간처럼.
그래서 저 물소리가 좋다.
“선인께서 요즘 자주 찾으십니다.”
누운 채로 슬쩍 눈을 떠 주었다.
“왔어?”
태사신니가 정겹게 웃으며 포권했다.
“조카분이 걱정되어 찾으십니까?”
건우가 아미파 무승들과 함께 수련 중이다.
아미파 무술에 흥미가 동한다기보다는 그저 취아를 따라다니는 것 같이 보이지만…….
어쨌든 조카가 아미파에 수학 중이니 삼촌된 입장에서 참관차 오는 줄 착각한 모양이다.
“어휴, 새끼는 그렇게 키우는 거 아니야.”
위험한 사냥터도 아니고 보금자리 안인데 굳이 찾아다니고 구경하는 건 취향에 없다.
“그러십니까.”
태사신니가 후후 웃으며 다가와 앉았다.
완전히 오해했군.
“왜 왔어?”
“그냥 왔지요.”
“할 일이 없나 보군.”
“선인도 그렇지 않습니까?”
“내가 왜 할 일이 없어?”
톡 쏘아붙인 수호는 곰곰이 누워 있다가 팔베개를 풀고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맞네. 나도 할 일이 없네.”
이루고 싶은 건 다 이뤘다.
지구로 돌아왔고, 사람을 만났다.
더 이상 외롭지 않다.
외롭지 않은데…….
외롭지 않아야 하는데…….
“용건이 뭐야?”
“꼭 용건이 있어야 합니까?”
“…….”
수호는 픽 웃고는 정자에 다시 너부러졌다.
그렇지, 꼭 용건이 있어야 이리 얼굴 보는 건 아니지.
더군다나 여긴 수호 길드의 영역 안이지만, 조금 더 파고들면 아미파의 영역이기도 하니까.
“고민이 많아 보이십니다.”
“어휴, 아미파에서 점도 치나 봐.”
“점쟁이가 아니라도 누구나 선인을 보면 그리 느낄 테지요.”
“내 얼굴에 쓰였어?”
“아주 크게 쓰였지요.”
“…….”
수호는 곰곰이 생각하다 불쑥 물었다.
“죽음이 뭐라 생각해?”
“윤회의 시작이지요.”
“땡중 같은 말을 하는군.”
“중 맞습니다.”
“죽음은 그냥 끝이야.”
“어찌 아십니까?”
“누구나 알아. 종교쟁이들이나 사후세계를 논하지.”
“그렇군요.”
태사신니는 논쟁 대신 인정을 택했다.
“뭔 반응이 그래?”
“어찌 반응해야 합니까?”
“놀리는 재미가 없잖아?”
“선인의 말씀에 현기가 가득한데 어찌 농이겠습니까?”
“쳇, 땡중들이란.”
수호가 혀를 찼고, 태사신니가 웃었다.
“그래서 끝내기 두려우십니까?”
“…….”
수호는 웃으며 시냇물을 보았다.
좋겠다.
어디로 갈지 생각지도 않고 그저 흐르는 대로 흘러서.
*태사신니는 눈치껏 자리에서 일어섰다.
수호를 만나러 김미소와 이소진이 다가와서다.
“하루? 이상하군. 난 두 시간도 안 있었어. 아니, 정확히 모르겠네. 안 재 봐서.”
“그렇군요.”
김미소는 기록하곤 다음 보고를 이었다.
“다비드 아세요?”
“덩치 큰 애?”
강석호랑 붙여 놓으면 아주 피지컬 훈련에 대해 하루를 쌓을 놈이다.
“네, 맞아요. 세계 랭커죠. 우리 길드만 빼면요.”
“걔가 왜?”
“사장님을 만나러 왔어요. 보시겠어요?”
“그래? 지금 어딨는데?”
“호텔에 머무르고 있어요. 왕일 씨가 요즘 자주 만나는 거 같던데요.”
“왕일이? 걔가 왜 거깄어?”
“종종 관광객 만나러 나가나 봐요.”
무공 수련에 질려버려 외유를 나가는 모양이다.
사람이란 지나온 삶대로 앞으로를 살아간다. 평생 상전을 모시며 살다가 갑자기 무사로 살아라 하니 좀이 쑤시는 모양이다.
“한번 만나 보지.”
“네.”
“더 할 이야기는 없어?”
“없어요.”
“그래.”
요즘 포탈 존을 통해 외국인들이 많이 들락거리던데, 그거야 보고할 거리가 아니겠지.
수호가 휘릭 고양이로 변해 수풀 사이로 뛰어갔다.
*다비드가 수호시티에 머무른 지 나흘이 지났다.
‘부재 중이라 만날 수 없습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수호 길드에 와 보니 수호가 없었다.
다시 롤랑 길드로 복귀했다가 오려다가, 기다리기로 하였다.
무엇보다 이 도시는 구경거리가 넘쳤다.
“저기가 코끼리들 영역이에요. 물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종종 악어 떼와 다투기도 하는데, 크게 싸우진 않아요. 그냥 툭 치는 정도죠.”
왕일의 설명에 다비드가 어색하게 웃었다.
“통역에 오류가 있소?”
코끼리 코에 붙잡혀 하늘을 날았다가 바닥에 내리꽂히는 악어의 모습은 패대기라 칭해야 옳았다.
“에이, 죄다 L등급인데 저 정도면 그냥 노는 수준이죠.”
진짜 힘을 썼으면 벌써 피를 봤단다.
고수들의 싸움은 한 끗 차이라, 승부를 보려고 하면 진즉에 난다나?
“참으로 매력적인 도시요. 도시 전체가 마치 사파리 같은 모습이오. 동물들도 참으로 많소.”
“저희 사장님 취미가 야수 수집입니다.”
실제로 수호는 처음 보는 야수는 꼭 길들여 데려왔다.
“허허허. 그땐 이토록 대단할 줄 몰랐는데…….”
다비드는 과거를 회상했다.
와이번을 길들여 나타났을 때만 해도 드래곤나이트라 부르며 대단한 테이머라 생각했다.
근데 이 정도로 많은 수의, 강력한 야수들을 사역마로 둘 줄이야.
“저긴 뭐가 있소?”
“아, 저긴 서쪽 숲이에요. 접근하지 않는 게 좋아요.”
외성에서 바라보는 서쪽 숲은 지대가 높아 산림으로 우거진 산처럼 보였다.
모두 큰 나무들로 군락을 이룬 그 숲은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는 천혜의 자연 그대로의 모습 같았다.
“이 도시는 정말 신비롭소.“
“하하, 좋은 구경 하셨으니 오늘 맥주도 사시는 겁니다.”
“이를 말이오? 가십시다.”
식당들이 늘어선 번화가인 4번가로 향하는 그들의 앞에 고양이가 나타났다.
“음? 처음 보는 무늬인데…….”
왕일의 중얼거림에 고양이가 연기로 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