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330)
331화 리더의 부재 (1)
“됐다!”
사제와 기사 임명이 완료되었다.
대사제로 임명한 김미소와 얽혀들어간 의식 한줄기가 느껴진다.
‘근데 이거 꼭…….’
테이밍한 야수들과 느끼는 유대감과 비슷하다.
어쨌든 그게 문제가 아니다.
신계, 그것도 위성인 구천에 있는 수호가 지구에 있는 김미소에게 의사를 전달할 수단이 생겼다는 점이 중요하다.
“미소야! 신도 급해. 숭배 스탯 올라야 새 스킬 얻는다!”
수호는 멀어져가는 의식의 결속력에 인상을 찌푸렸다.
“벌써 끝이야?”
다시 이어지려면 얼마나 걸릴까?
슈우우욱! 콰직!
“아오, 새끼야. 좀 쉬자.”
[죽을 때가 되었구나.]블랙맨의 주먹은 쉴 새 없었고, 수호는 끈덕지게 피해내며 물러났다.
버티는 것도 싸움이다.
야생에서 강한 개체가 생존에 유리하다지만, 언제나 통용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맹수도 상처 입을 수 있고, 약하디약한 동물도 성체가 되어 압도할 수 있는 거다.
지금 수호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 시간을 벌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을 뿐이다.
“내가 이길 때까지.”
[나다운 생각이군.]“시끄러.”
블랙맨과 수호는 다르지 않다.
다른 시간대의 삶을 영위한 같은 사람이니까.
출발은 언제나 낯선 숲에 덩그러니 놓인 그 순간에서부터다.
그 이후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기본적인 성격이 어디 가겠는가.
생존에 대한 갈망.
그것이 없었다면 천 년도 넘게, 또 저놈처럼 오천 년도 넘게 살아남지는 못했겠지.
살아남기 위해서 꼭 이기기만 할 필요는 없다.
슈슈슈슉, 쾅!
수호는 쉴 새 없이 도망 다녔다.
“아오, 새끼야. 어차피 죽은 거, 한 번 더 죽어주라!”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군.]슈슈슉, 쾅.
도망 다니는 생을 죽음이 끈덕지게 따라붙었다.
*“아…….”
김미소는 온몸에 힘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터럭 하나까지도 에너지를 소비한 듯 나른했다.
“부사장님. 괜찮으세요?”
비서실장 이소진이 서둘러 다가가, 쓰러지려는 김미소를 부축했다.
“어, 그래. 고마워.”
잠깐 사이 정신을 추스르고 의자에 앉았다. 회의실의 모두가 경악한 채 자신을 보고 있다.
“바, 방금 뭐였어요?”
“내가 뭐랬죠?”
“신도 급하다고…….”
김미소는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세계수를 통한 대화와 비슷한 느낌이었는데, 좀 더 강력했다.
김미소의 입을 빌어 수호의 말이 전해졌다.
“신탁이에요.”
“허, 그럼 형님 목소리였습니까?”
분명 김미소의 입에서 나왔다고는 믿기지 않는 굵은 목소리였다.
“그런가 봐요.”
김미소 본인이야 알 도리가 없다. 자기 목소리를 자기가 듣지 못했으니까.
그저 그 강렬한 메시지만 머릿속을 맴돌 뿐이다.
“다급해 보이셨어요.”
“숭배 스탯이 어쩌고 하시던데…….”
“숭배…….”
수호 길드 간부들이 죄다 모인 자리.
장순필이 책상을 탁 쳤다.
“그렇군.”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자 장순필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주군께서는 신이 되셨습니다. 그분을 믿고 따르던 우리를 신도라 칭하면, 방금 우리는 임명을 받은 겁니다.”
신의 사제로, 기사로.
“신의 힘을 나눠 받는다…….”
홍세희가 중얼거렸다.
장순필이 쐐기를 박았다.
“신도가 많아질수록 신의 힘이 세지는 겁니다. 마력 스탯을 늘리는 것처럼 주군의 숭배 스탯이 느는 게 틀림없소!”
“일리 있는 말이군요.”
“맞아요. 사장님은 저번부터 계속 전도하라고…….”
김미소의 말에 장순필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누구보다 그를 믿고 목숨까지 받칠 각오가 되어있는 장순필이다.
“지금 주군께서 큰 고초를 겪고 있는 것이 틀림없소이다. 어서 신도를 모집하고 뜻을 널리 퍼트려야지요.”
한동수가 슬쩍 손을 들었다.
“근데 신도 모집이 그냥 친구 손잡고 교회 따라다니는 그런 건 아닌 거 같은데…….”
전파의 방법을 논하는 것.
김미소가 해답을 내놓았다.
“신의 위엄을 보이고, 그분께 은혜를 입는 것. 그리고 감사를 받는 것.”
“네?”
“틀림없어요.”
대사제가 되어버린 김미소다.
그녀는 어렴풋이 머릿속을 떠도는 생각을 정리할 새도 없이 말했다.
“맞아요. 맞을 거예요. 그러기 위해 우린 힘을 나눠받았어요.”
힘을 받았으니 뭘 해야 하겠는가?
“갑시다.”
“어딜요?”
“누가 감사해할 것 같아요?”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위기에 처한 도시부터 구하러 갑시다.”
지금 막 나타나기 시작한 신급 군주만이 도시들의 위협은 아니다.
여전히 방위력이 약한 몇몇 도시들은 군주 몬스터의 출현만으로도 큰 곤욕을 겪고 있는 바.
“서둘러 봅시다. 지금 그분께서는 우리 도움이 필요합니다.”
김미소는 급히 회의를 파하고 지시를 내렸다.
지금은 모두의 의견을 모아 길드의 방향을 결정하는 자리가 아니다.
신의 힘을 받은 이들이 누구인지 조사는 끝났고, 이제 그들을 중심으로 신의 뜻을 전파할 차례다.
고군분투하고 있을 그에게 힘을 줄 차례다.
*- 수호 길드, 세계 경찰 선언.
– 수호 길드, 세계로 진출.
– 수호 길드 채널 업데이트. 내용은?
최근 한반도 연방 결성으로 화제를 모았던 수호시티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설용병회사. 수호 길드의 근거지가 되는 수호시티는 세계수 영향으로 던전 생성이 억제되어,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땅이다.
시민들이 살기는 좋으나 PMC가 자리잡기엔 그다지 좋은 환경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동포탈의 등장으로 대륙간 이동의 물리적 시간적 제약이 사라져버린 시대에, 그들은 세계로 진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는 매우 이례적인 움직임이다.
용병회사가 용병을 제공하는 것이 무엇이 이례적이냐 반문한다면, 세계 주요 도시들과 길드들의 활동을 보면 알 수 있다.
던전 생성이 가속화된 현대사회에 해당 도시의 던전 클리어만으로도 용병 인력이 부족한 때다.
이런 상황에 타 도시의 사정까지 봐가며 파견 가는 것은 요원한 일.
수호 길드는 안전지대를 기반으로 유휴 용병 인력이 생겼고, 이를 위기에 처한 세계의 주요 도시로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대상은 자력으로 수비가 불가능한 도시 위주로…….
기사에 달린 댓글들의 반응은 국적에 따라 극명했다.
-본진에 먹을 거 없으니 멀티 치러 가네.
-아니, 인력 남으면 서울부터 좀 어떻게 하지.
-서울 길드들은 서귀포 이전설까지 나돌던데.
-근데 용병회사가 지들 용병 필요한데 쓴다는데 뭔 상관.
-지금 외국 도울 때냐? 한국 안에도 위기에 처한 도시들 많은데.
-님 외국 삶? 어디가 위기임?
-아, 던전 브레이크 경보 터져서 저번 주만 2번 대피함.
-아니, 지금 딴 나라는 도시가 날아가냐 마냐 하게 생겼는데 그깟 대피 몇 번으로 징징?
연방 내부의 여론은 좀 더 자국을 위해 힘을 썼으면 하는 투정으로 가득했다.
반면, 소식을 알린 수호 길드 채널에 달린 외국인들의 댓글은 찬양 일색이었다.
-수호 길드가 우리 도시로 왔으면 좋겠어. 시장이 모든 지원을 아끼지 말고 유치해야 해.
-세계수를 놔두고?
-그냥 희망사항이야.
-어쨌든 최악의 상황에 신급 군주가 나타나도 수호 길드만 믿으면 되는 건가?
물론 부정적인 댓글도 있긴 했지만 소수였다.
-다들 착각하고 있는데, 용병회사는 돈을 버는 곳이야. 어차피 돈벌이일 뿐이야.
-일본인인가?
-하하하, 웃기는군. 왜 내가 일본인이라 생각하지?
-병신인가? 일본어로 댓글 달아놓고 어쩌라는 거지?
-ㅋㅋㅋ
수호 길드로 문의가 폭주했으나 김미소는 대부분 응하지 않았다.
“이것들이 아예 호구 잡으려고 하네.”
위기에 처한 도시를 돕겠다고 했지, 공짜로 돕겠다고는 안했다.
“얘들은 뭐야? 주둔 요청?”
딱히 위기상황도 아닌데 수호 길드의 용병을 돈으로 사려는 도시들도 있었고.
“미국? 얘들이 왜 불러? 신급 군주가 나온 것도 아닌데.”
자력으로 충분히 도시 인근에 자리잡은 군주 몬스터를 처치할 수도 있었으나, 싸게 해결하려는 도시들도 있었다.
“저, 부사장님.”
“네, 한 이사.”
“이거저거 재다가는 출동도 못하겠는데요?”
“후, 그렇지만 이런 요구는 들어줘도 별로 감사받을 게 없어요.”
파견 요청들이 죄다 돈을 아끼려는 국가 단위의 요청뿐이다.
아니면, 든든한 보험을 들고 싶거나.
괜히 힘만 낭비하고, 숭배 스탯도 얻지 못하며, 돈도 벌지 못하는 건 사양이다.
“그럼 차라리 이건 어때요?”
한동수는 수호 길드 채널의 어느 동영상 아래에 달린 댓글을 보여주었다.
-제 간절한 기도를 담은 메시지가 닿을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타이베이에 살고 있는…….
타이베이는 과거 뱀파이어 군주와 리치 킹의 등장으로 붕괴된 도시다.
그때 출동한 수호에 의해 뱀파이어와 리치 킹은 처리되었고, 홀로 남아 생존자들을 규합한 명진 덕에 도시 재건의 기틀을 마련했었다.
메시지를 보내온 건 그 도시 재건 멤버 중의 하나.
생존자들을 계속해서 규합하며 세를 불리고 있지만, 지도부의 잦은 충돌로 생존자 그룹이 분열되었다가 합쳤다가를 반복하고 있었다.
“이웃집 권력싸움에 끼자는 건가요?”
김미소의 물음에 한동수가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되면 죽어나는 건 시민들뿐이에요. 제대로 독립할 때까지 뒤를 봐주자는 거죠.”
“으음.”
김미소는 머릿속 주판을 굴렸다.
일심동체로 도시를 재건해도 모자랄 순간에 분열이 일어나는 중이다.
몬스터로부터의 위기는 아니지만 시민들이 안전에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
“애매한데요…….”
끼어들기 애매한 상황이지만 한동수는 한 가지 계책을 냈다.
“명진 스님 보내시죠? 명분은 충분한데.”
명진은 수호가 떠난 후에도 타이베이에 남아 도시 재건의 기틀을 마련했다.
그들 사이에서 생불이라 불릴 정도로 존경도 받았고, 그의 은혜를 아직 잊지 못하는 자들이 많으니 끼어들 명분은 있는 셈.
“좋아요. 보냅시다.”
수호의 다급한 목소리가 메아리치는 기분이다. 당장 급하니 이렇게라도 해야지.
지구에 재앙이 발생하길 바라는 건 아니지만, 거북이에 이어 두꺼비까지 등장해놓고 그 이후로 신급 군주의 출현 없이 잠잠한 게 조금 야속했다.
핵도 통하지 않는 신급 군주가 출몰하면 당연하게도 수호 길드로 도움 요청이 들어올 테고, 그걸 해결하기만 하면 되는데 말이다.
“한 이사. 시청자 제보 받으세요.”
“오, 어떻게요?”
“진정 도움이 필요한 자들. 도시정부가 해결해주지 않아 안전을 위협받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죠.”
도시 규모의 사람들을 구하고 칭송받으면 한 번에 많은 숭배 스탯을 확보할 수 있겠지만, 그게 안 되면 소소하게라도 모아야 한다.
“오, 구독자 이벤트 각이네요.”
한동수는 신나서 영상 제작에 들어갔고, 세계 각지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댓글과 영상들이 업로드 되었다.
필드의 위협에서 벗어나 도시로 결집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모두가 도시에 사는 것은 아니다.
필드의 몬스터 위협보다 기존 도시의 난민 차별과 멸시, 부당한 수탈에 도시민이 되는 것을 포기한 자들도 많았다.
도시 없이, 필드의 던전 발생을 피해 떠도는 유목민들은 셀 수 없이 많았다.
노마드들의 규모도 전부 달라 가족단위의 아주 작은 규모도 있었고, 천명이 넘는 단위의 대규모 노마드들도 있었다.
그런 노마드들 중의 하나.
중국 대륙을 이리저리 떠돌던 노마드로부터 댓글이 하나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