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333)
334화 조력자 (2)
내부의 결속을 이끌어내는 데 외부의 적을 두는 것은 언제나 통용되어온 전략이다.
쉔룽은 갑작스러운 수호 길드의 방문을 이용하기 이전에 그들의 목적부터 수소문했다.
쉔룽의 지시를 받은 직속부하가 그를 은밀히 찾아왔다.
“그래, 알아봤나?”
“네, 여러 시민들이 인터넷으로 구조 요청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구조?”
지금으로서는 딱히 위험한 몬스터가 없다.
아니, 있긴 하지만 타이베이 자립기구의 각성자 전력도 결코 만만한 것은 아닌지라, 영역을 잘 구축하고 있었다.
주변에 자리잡은 군주급들과 엇비슷한 취급 정도는 받고 있는 바, 영역의 경계가 잘 유지되고 있었다.
“내가 모르는 사이 신급 군주라도 출몰했나?”
“아닙니다.”
“그럼?”
“……아무래도 내란 때문에…….”
부하가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쉔룽은 얼굴을 굳히곤 억지로 화를 참았다.
3주 전 의견 대립을 이루던 지도부 몇을 숙청했다. 그에 반발한 시민들 주둔지를 이탈했으나 상관없는 바다.
야생이나 다름없는 타이베이 인근에서 살아남으려면 이 주둔지에 붙어있는 게 이득이니까.
특히나 대만은 섬이다.
날개가 있지 않는 이상 수십, 수백이 뭉쳐 나가봐야 이리저리 떠돌이 삶을 살 뿐이다.
‘결국 후회하고 돌아오겠지.’
그렇게 이탈한 인원이 누적되어 이천 명을 훌쩍 넘었지만 상관없다.
언젠가 돌아오거나, 어차피 자신의 통치에 반하는 세력이었으니 죽어도 상관없다.
아니, 상관없다 여겼다.
“이것들이…….”
가랑비에 젖듯 조금씩 빠져나가는 인원들이 남은 이들의 마음에 불안감을 지필 것을 계산하지 못했다.
“후, 제대로 단속하지 못한 내 책임이 크군.”
“아닙니다. 국장님.”
“그래, 나가봐. 수호 길드 쪽 동태는 하나도 놓치지 말라고.”
“네, 그것이…….”
“뭔가?”
“그들 몇몇이 저희 주둔지를 활보하고 있습니다.”
이것들이 누구 허락을 받고?
“시민들 반응은?”
“인기가 많아 보였습니다.”
마치 전쟁통에 도착한 원군을 보듯이 말이다.
“후, 나가 보게.”
“네.”
부하가 나가고, 쉔룽은 이 사태를 어찌 해결해야 할지 고심했다.
지도부가 미덥지 못해 외부의 세력을 불러들인 꼴이 아닌가?
“멍청한 놈들.”
범을 잡자고 이리에게 의탁한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쉔룽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으나 딱히 취할 조취는 없었다.
“국장님!”
쉔룽은 자신의 방을 찾는 이들을 보면서 속으로 미소 지었다.
남의 집에 놀러온 이리가 마음에 안 들기로서는, 언제나 의견을 반목하던 저치들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이대로 있을 수 없습니다. 벌써 시민들이 동요하고 있습니다.”
“맞는 말일세.”
“대책이 필요합니다.”
내놓는 대책마다 반대하던 놈들이 잘도 지껄인다.
고깝지만 지금은 외부의 적을 상대로 내부의 결속이 필요한 때이다.
*명진과 서민수, 웨이중이 주둔지를 돌아다녔다.
“없어요.”
웨이중은 풀이 죽은 얼굴이었다.
명진을 따라 타이베이를 벗어나 수호 길드로 향한 웨이중이다.
떠나기 전에 있었던 자신의 친구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으음.”
명진도 침음성을 삼켰다.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사람들을 지도하고 몬스터 사냥법을 훈련시킨 건 명진이다.
그때 두각을 보이던 각성자들이 지금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소식을 들었다면 분명 마중 나왔을 터인데…….
“어? 차이엔!”
“웨이중?”
차이엔은 웨이중을 보곤 헐레벌떡 뛰어와 안았다.
“네가 떠날 때 바짓가랑이라도 잡고 나도 갔어야 했어.”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대체?”
차이엔은 이야기하기 앞서 주변을 살폈다.
눈치 빠른 서민수가 슬쩍 자신들의 주둔지로 고개짓했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는데 식사 초대나 하지.”
“아, 그게 좋겠네요.”
“좋아요. 벌써 이틀은 굶은 것 같아요.”
차이엔은 수송 드론이 착륙한 그곳으로 향하다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게 대체…….”
수송기 주변엔 어느새 그럴듯한 막사가 세워져 있었고, 주변으로 간이 철책이 둘러져 있었다.
“우리 거처보다 나아 보여.”
바로 얼마 전 도착한 이들이 구축한 야영지가, 자신들이 벌써 몇 달째 주둔하는 집보다 나아 보였다.
“이 많은 물건들을 어디서 싣고 오는 거야?”
“어디긴, 여기서지.”
웨이중은 허리춤에 달린 가죽주머니를 보여주었다.
차이엔이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웃하는데, 그가 주머니에서 긴 칼을 쑥 뽑아냈다.
“와우! 그거 아공간 아티팩트였어?”
“이런 건 수호 길드 용병이면 누구나 보급받는 거야.”
“허!”
수호 길드 용병들은 따로 짐꾼이나 매니저를 두지 않는다.
여타 길드의 용병들처럼 개인이 장비를 구매하고 보수해야 하지도 않는다.
군대처럼 길드에서 장구류 일체를 지원받는다. 그것도 아공간 주머니에 들어있는 채로.
던전 사냥을 나갈 때나, 필드 사냥을 나갈 때 거추장스러운 보급 라인이나 짐꾼이 필요 없는 이유다.
“그거 귀하다고 들었는데…….”
웨이중이 그렇게 대단한 사람인가?
“에이, 나는 그냥 말단이야.”
웨이중은 실제로 말단이다. 각성등급도 아직 그렇게 높지 않고, 서민수 부대 휘하의 2군 용병 중 하나일 뿐이다.
“진짜 귀한 건 대장님이 착용한 것 같은 거지.”
주머니나 배낭, 가방 형태의 아공간 아티팩트는 상대적으로 흔하다.
서민수가 낀 팔찌 같은 형태의 액세서리 아티팩트보다는 말이다.
“세상에…….”
“일단 가자고.”
“아, 알겠어.”
웨이중이 차이엔을 이끌고 막사 하나로 들어갔다.
내부에서 보기보다 더 큰 막사에는 각종 취사도구가 즐비했다.
“지, 진짜 밥을 주려는 거야?”
“뭘 그렇게 놀라? 마침 점심때니 먹자고.”
“아, 알겠어.”
웨이중은 말단답게 익숙하게 캠핑도구들을 이용해 고기 몇 덩이를 구워냈다.
“먹어.”
“이거 몬스터 고기는 아니지?”
“소고기야.”
“진짜?”
한입 뜯어 먹어본 차이엔은 걸신 들린 것처럼 고기를 해치웠다.
허기가 채워진 뒤에야 차이엔이 이성을 찾았다.
“후우, 사실 이틀 전부터 정말 하나도 못 먹었어.”
“왜? 배급이 안 나와?”
“나오기야 하지.”
차이엔은 이틀 전 자신들의 앞으로 나온 고깃국이 고블린을 넣어 만들었다는 것을 알고는 속에 든 걸 모두 게워냈다.
배급품에 대한 신뢰도가 땅으로 떨어지고 나니 더 이상 입에 음식을 댈 수가 없었다.
“일주일 전부터 고기가 나와서 좋다고 먹었는데, 사실 몬스터 고기였던 거지.”
목축 자체가 사라져버린 지금에 이르러서는 필드에서 간간히 야생 가축을 사냥하는 것 외에는 고기 수급이 어렵다.
“고블린도 잘 먹으면 먹을 만한데.”
서민수의 말에 차이엔의 얼굴이 헬쓱해졌다.
“아, 극한상황에서 말하는 겁니다.”
던전 공략 중에 식량이 떨어지면 뭐라도 먹어야 한다. 가릴 처지가 어딨나.
고블린이라도 삶아 먹어야지.
“식량 배급이 그럴 정도면 주둔지 상황이 심각한가 봅니다.”
어느 정도 배도 불렀겠다, 서민수가 넌지시 떠봤다.
“위엣놈들이 식량을 착복하는 게 틀림없어요. 분명 전투조에서 사슴 두 마리를 잡은 걸 봤는데.”
차이엔은 분노 가득한 얼굴로 지도부를 욕했다.
“불만을 품으면 알게 모르게 위험한 곳으로 경비 구역을 바꾸고, 위험한 사냥터로만 보내죠.”
차이엔은 묻지 않은 것까지 술술 토해냈다.
“자립기구 초반에 활약하던 사람들은 이미 다 떠나고 없어요. 저도 용기를 내 그들과 함께했어야 했는데. 물론 제일 좋은 건 웨이중을 따라 한국으로 가는 거였고요.”
차이엔은 뒤늦게 후회했다.
서민수는 이탈했다는 사람들의 행방에 대해 물었다.
“몰라요. 노마드가 되었겠죠. 아니면 지금쯤 타이중이나 가오슝에 도착했을지도 모르죠.”
나라가 국가로서의 결속력을 잃어버리면 지금처럼 된다.
대만 내에 대도시는 셋이었으나, 정부가 자리잡고 있던 수도 타이베이가 순식간에 멸망 수순을 밟으며 와해되었다.
지금 대만 섬에 건재한 도시는 둘.
타이중과 가오슝뿐이었다.
그들로서도 제 앞가림하기도 바빠, 타이베이 수복 같은 건 엄두도 못내는 상황.
“그놈들이 더 나빠요. 벌써 수십 번도 넘게 구조 요청을 보냈는데도 꿈쩍도 안 해요. 어떻게 같은 국민으로서 이럴 수 있죠? 오죽했으면 수호 길드 채널에 SOS를 보냈겠습니까.”
같은 국민이 아닌 다른 도시민으로 받아들이겠지만, 굳이 팩트체크해 줄 필요는 없었다.
“대강의 사정은 알겠습니다.”
서민수가 뭐라 하려는데 용병 하나가 뛰어왔다.
“대장님. 쉔룽 국장이 찾아왔습니다.”
“음?”
아까 보고 가 놓고는 왜 벌써 왔지?
서민수가 나가 보니, 쉔룽은 꽤 많은 사람들을 이끌고 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미리 알려드리지 않은 것이 있어 왔습니다.”
“뭡니까?”
“이곳은 보시다시피 타이베이 자립기구의 영역입니다.”
“압니다.”
“먼 길 사냥 오셨으니 막지는 않겠지만, 이곳은 본디 타이베이의 땅입니다.”
서민수가 눈썹을 찌푸렸다.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사냥에 나서서 얻게 될 부산물들을 조금 나누어 주십시오.”
서민수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외려 분노한 것은 웨이중이었다.
“지금 세금을 걷겠다는 말입니까?”
“세금이라니 당치 않습니다. 기부라 생각하시지요.”
강제적인 기부와 세금의 차이가 뭐란 말인가?
“허! 은혜를 원수로 갚아도 유분수지. 여기서 몬스터들을 줄여주면 자립기구에도 좋은 일이 아니오?”
“이 주변은 이미 군주 몬스터들이 자리잡아 나름의 균형을 유지 중입니다. 괜히 그것이 깨지면 우리 주둔지도 위험해질 수도 있기에…….”
웨이중이 뒷목을 쳤다.
“허, 세상에. 당신들 눈에 이분이 보이지 않습니까?”
웨이중이 가만히 서 있는 명진을 가리켰다.
“도시를 이 잡듯 뒤지며 여러분들을 구해낸 게 누굽니까?”
“…….”
“굳이 남아 자립기구가 어느 정도 기틀을 갖출 때까지 애써 준 이가 누굽니까?”
“…….”
명진은 가만있었고, 쉔룽을 비롯한 지도부도 대꾸할 수 없었다.
서민수가 웨이중을 뒤로 물렸다.
그는 씨근덕대면서 대장을 거역하지는 않았다.
“하고자 하는 말뜻은 충분히 전달되었습니다.”
서민수가 쉔룽의 뒤를 보았다.
각성자가 되면 축적된 차원에너지에 따라 내뿜는 기세라는 게 있다.
L등급에 이른 서민수는 저들의 대략적인 등급이 가늠되었다.
‘저들을 믿고 그러는 건가?’
날카로운 기세의 몇몇은 S등급으로 보이긴 했으나, 그 정도면 지금 서민수의 부대에도 널리고 널렸다.
“좋습니다. 우리는 저 장벽 안으로 가죠. 저기까지 자립기구의 영역이라고 하지는 않겠죠?”
“으음, 물론입니다.”
쉔룽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기부를 가장한 수수료 떼기는 저들의 심기를 거스를 명목일 뿐이다.
그저 더 이상 시민들이 흔들리지 않도록, 눈앞에서 치우는 게 목적.
‘희망은 없다.’
외부에서 온 저들이 내 통치민들의 희망이 되어서는 안 된다.
내 땅에서 꺼져라.
쉔룽은 말하지 않았으나 서민수는 철수를 지시했다.
“도시로 이동한다.”
“네.”
모두 불만은 있었지만 누구 하나 거역하지 않고 막사를 해체하고 수송기에 탔다.
투두두두두.
여섯 대의 수송기가 떠오르자 쉔룽은 앓던 이가 빠지는 기분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분합니다.”
웨이중은 여전히 화를 감추지 못했다.
“으음, 충동적으로 행할 일이 아닌 듯 싶습니다. 상처가 있다면 도려내야 할 일. 소승은 이미 각오가 되었으니, 출혈을 감내할 준비를 마쳤습니다.”
중생들이 고통스러워하지 않는가?
머리가 썩었다면 머리를 쳐낸다.
명진의 굳은 얼굴에 서민수가 피식 웃었다.
“스님, 너무 과격하십니다. 제게 다 계획이 있으니 너무 염려 마십시오.”
“어떤 방법이오?”
서민수가 저 아래 보이는 무너진 도시를 내다보았다.
“진짜 도시를 재건해야죠.”
먼저 김미소의 결재가 있어야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