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342)
343화 고대 신 (2)
으으으으.
쿠로는 물밀듯이 밀려오는 기억의 홍수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
이것은 새로운 기억의 주입보다는 잊었던 과거의 회상이라 하는 게 맞았다.
‘뭐지?’
누구나 신계에 발을 디딘 이후부터 삶이 시작된다.
신계에 발을 디딘 이후 거인에게 붙잡혀 죽은 쿠로의 기억.
그리고 현생의 쿠로의 기억.
어긋나는 것은 거인에게 붙잡혀 죽은 아주 짧은 순간뿐이다.
신계에 발을 디디기 이전의 기억은 둘 모두 동일하니까.
수호가 죽음 이후 항상 숲에 버려진 23살 청년이 되어 방황하는 것도 같은 이유.
쿠로 또한 수많은 죽음 뒤엔 언제나 신계에 발을 디딘 이후부터의 삶을 새롭게 시작할 뿐이다.
‘누구지?’
아주 오랜 과거에 죽어서 기록되었을 이 마석의 기억이 알려주는 건 하나다.
‘과거에 거인이 신계에 있었다.’
그것도 거인 신.
알수 있는 것은 그것뿐.
신계에 발을 디디고 얼마 안 가 죽었다. 다시 시작된 삶에서 거인 신 따위는 없었다.
지금의 쿠로의 삶보다 지나치게 짧은 삶.
‘그립군.’
이질감 있는 기억은 적고, 신계에 발을 들이기 전의 기억은 같다.
그 기억의 중첩이 희미해져 가던 과거의 추억을 끄집어 내줬다.
치열했던 삶.
수인족들의 전쟁, 그리고 던전.
선택받아 신계에 발을 디딘 순간.
지구에 남은 동족의 비극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무력하던 자신.
쿠로는 눈을 떴다.
“후우우우.”
깊은 숨을 토해냈다.
눈을 뜨니 붉은 사막이다.
수호는 멍하니 눈감고 서 있었는데, 검은 연기가 그 주위를 뱅글뱅글 돌고 있었다.
“멍청한 인간.”
괜히 걱정되어 욱했으나, 사실 자신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마석의 유혹을 떨치지 못했으니까.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저 수호가 이겨내고 깨어나는 수밖에.
잠깐의 시간이 흐른 후, 수호 주변을 맴돌던 연기에 변화가 있었다.
스스슥.
모조리 수호에게 빨려들어가듯 흡수되고, 감겼던 그의 눈이 떠졌다.
쿠로는 긴장하며 수호에게 집중했다.
“쿠르…….”
이상한 기색이면 어떻게 해야 하지? 죽음에 먹혔으면?
미리 생각해 둘걸 그랬군.
쿠로가 잠깐 자책하는 사이 수호의 입술이 열렸다.
“후, 시발.”
“뭐?”
“쿠로, 지금 내가 얼마나 엄청난 걸 알게 되었는지 너도 안다면, 그딴 눈깔로 날 보고 있진 않을 거야.”
“…….”
너무 경계심 가득했나.
“인간이 맞나?”
“그럼 뭐겠냐?”
수호는 쿠로를 데리고 한쪽에 멀뚱히 서 있는 청룡을 보았다.
“너 이리 와.”
휘리리릭.
청룡이 연기로 화해 수호의 몸을 감쌌다.
순식간에 청룡인으로 변한 수호가 쿠로를 잡고 날아올랐다.
“가자.”
“어딜?”
이 인간이 갑자기 왜 이리 급발진이지?
“신계로 가야지.”
“생각을 고쳐 먹었나 보군.”
“뭘?”
“더 이상 죽음을 탐하진 않을 생각이 아닌가?”
“묘비 줄이는 것보다 더 큰일이 생겼어.”
쿠로가 꺼리는 묘비 털이보다 지금 더 심각한 일을 알아채 버렸다.
“쿠루루, 알 수 없군.”
이 인간의 태세 변환의 이유를 듣고 싶었다.
“그놈의 기억 속에서 무엇을 알아차린 거냐?”
“신계 멸망.”
“…….”
쿠로가 인상을 팍 썼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확신해?”
“확신한다.”
“왜?”
“내가 살아있는 동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너 몇 살이나 살았어?”
“사천쯤 되지 않았을까 한다.”
“신계의 전부를 안다고 확신하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한 시간이지.”
“…….”
딱히 반박할 수가 없다.
내가 죽어도 신계는 돌아가고, 또 다른 내가 살아간다.
과거는 이곳 구천에 묻어 두고.
“일단 신계로 가서 들어봐야겠어.”
“우리가 모르는 걸 누구에게 묻는단 말이더냐?”
“요정. 아니…….”
수호는 자신의 말을 고쳤다.
“야누스에게.”
요정왕 야누스.
엘프들에게 숭배받는 신.
그가 여태 쌓아온 숭배 스탯은 도대체 얼마나 될까?
아니, 그보다 더 중한 문제는 다른 것이다.
‘미드얼.’
미드얼 행성.
벼르고 벼른 드래곤들이 침범하는 걸 막아야 한다.
죽음으로 게이트를 닫아서라도…….
*
갖가지 기사가 범람하고 있었다.
기사 페이지 어딜 가나 초 단위로 댓글들이 주루룩 달릴 정도로 관심이 뜨거웠다.
히어로의 출현.
감히 인간이 신급 군주를 상대로 이 정도의 퍼포먼스를 낼 수 있을지 몰랐다.
전술핵.>
핵공격도 버티는 신급 군주를 개인이 사냥해버렸다.
작전이 성공으로 끝났지만 희생이 없지는 않았다.
그 희생을 추모하는 한편, 정부를 압박하는 대규모 시위가 일기도 했다.
시민권을 부여받는다고 하여 그녀가 미국에서 살아갈 거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녀를 붙잡아 둘 수 없다면 미국으로 오시기 편하게 길이라도 뚫어 놓아야 한다.
언제 또 이런 신급 군주가 출몰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구원자가 쉽게 와야 위기를 빠르게 해결하지 않겠나?
환호와 걱정, 미래의 불안이 뒤섞여 여기저기 시위 행렬이 이어졌다.
홍세희는 동부 미국에서 제공한 숙소에서 편히 쉬며 인터뷰를 해줬다.
구름처럼 모인 기자들의 관심은 온통 홍세희 그녀.
외모까지 빼어난 히어로의 등장에 미국 언론들이 용광로처럼 들끓었다.
홍세희는 그런 상황이 마뜩잖았다.
‘나의 신께서 고통에 차 계시거늘.’
위기의 순간이 오면 박수호부터 떠올리던 사람들이 벌써 그를 잊은 듯 했다.
어딘가에서 분명 지구를 위해, 인류를 위해 싸우고 계실 것이 분명한데 고마움을 느끼는 사람도, 존경을 표하는 이들도 없다.
거리에서 보이는 유기견의 굶주림에 눈물 흘리는 사람들도, 보이지 않는 아프리카의 기아에는 관심없는 것처럼.
캣맘의 선행에 감사하면서도, 오지에 나가 의술을 펼치는 의료진에게는 무관심한 것처럼.
홍세희는 기자들의 질문마다 수호를 언급했다.
“나의 신이 하사한 힘입니다.”
“신이요? 그런게 실체합니까?”
기자의 물음에 홍세희는 이마를 찌푸렸다. 기자의 목에 걸린 십자가가 눈에 뜨였다.
“당신은 신을 믿지 않습니까?”
“믿습니다. 하지만……”
그는 종교적 위안만을 추구할 수도 있다.
하지만 홍세희는 직접적인 은혜와 수고로움에 대해 설파했다.
“지구를 위해 싸우고, 인류를 위해 외로이 싸우고 계십니다. 우리의 도움을 바라며, 힘겹게 나아가고 있는 그분이 신이 아니라면 무엇입니까?”
홍세희는 모든 사람들이 기적을 보고 신을 찾듯 직접적인 기적을 보여주었다.
“흔한 용병 나부랭이가 어찌 신급 군주를 홀로 처치할 힘을 얻었겠습니까? 모두 신의 축복입니다. 그분께 하사받은 조그만 힘일 뿐입니다.”
“지지하고 믿어 주십시오. 그리고 감사한 걸 감사하게 여기시면 됩니다.”
홍세희는 그 말을 끝으로 미국에서의 일정을 종료했다.
목표였던 몬스터를 해치웠고, 잠깐의 휴식도 했다. 애당초 목표였던 박수호의 신도 모으기도 이뤘을지 모른다.
인터뷰를 믿든 안 믿든, 신의 존재여부를 믿거나 말거나 기자들은 그들 본연의 임무에 충실했다.
수많은 기사가 양산되었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복귀한다.”
할 일은 다 했으니, 토크쇼 출연 제안이나 백악관 초청 만찬 따위는 홍세희에게 있어 하등 쓰잘데기 없어 보였다.
그녀의 팀은 그저 통보 후 돌아갔고, 동부 미국 수뇌부는 당황했다.
“뭐? 갔어?”
“네.”
“붙잡지 않고 뭘 했단 말이야?”
“어떤 명분으로 막습니까? 모든 제안을 거절하는데…….”
10년.
딱 10년 전만 해도, 백악관 초청만으로도 아주 큰 영광이었을 것이다.
그녀의 거절에 동부 미국의 수장, 정통적인 미국의 후계를 표방하는 동부 미국 대통령은 탄식했다.
“어쩌다 아메리카가…….”
미 연방이 어쩌다 이리 되었나.
추락해버린 세계 위상을 보여주는 일 같아 씁쓸하면서도 어찌할 방도가 없다.
지금 가장 강력한 전력을 가진 것은 수호시티.
그 도시를 가진 한반도 연방이다.
“정식으로 제안하게.”
“무엇을 말입니까?”
“수호시티와의 이동포탈망 연계를 말일세.”
위대한 미국.
다시 하나로 뭉치는 미국보다, 세계를 리드하는 강대국이 되어버린 한반도 연방와 연결되는 게 먼저다.
어차피 서부 미국이나 중부 미국, 텍사스 연합도 따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태평양 상공을 다시 날았다.
홍세희는 조금 답답한 마음이 들어 와이번에 올라 탔다.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자신이 레드 드래곤을 처치했다니.
그때 조용한 상념을 방해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크큭.”
비룡의 가슴 쪽 탑승석에 자리한 한동수가 웃자, 홍세희가 물었다.
“뭐가 그렇게 재밌어요?”
“아, 한국에서 홍 대장님을 뭐라고 부르는지 아세요?”
“모르죠.”
“아, 이건 직접 보셔야 하는데.”
동수는 탑승석 해치를 열고 비룡의 등으로 올라왔다.
그가 내민 휴대폰엔 가장 추천 수가 많은 댓글이 나와 있었다.
“하하.”
웅녀라니.
한동수가 궁금해하며 물었다.
“근데 왜 곰으로 변신했어요?”
이제 홍세희는 야수 변신을 할 수 있지만, 그 모델은 곰으로 정해졌다.
수호처럼 이것저것 자유자재로 변할 정도의 능력은 없다.
“그냥요.”
별 생각 없었다.
자신은 방패기사다.
그저 평소의 자신의 전투 스타일과 곰의 파워가 상성이 잘 맞을 것 같아서 선택했을 뿐이다.
“하긴……. 대머리독수리는 좀 심했죠.”
“…….”
“아참. 이제 공격대 이름이 정해지겠네요.”
“뭘로요?”
“아, 홍 대장님 공격대야 뭐 베어스 이런 거 아닐까요? 최 대장은 바람을 다루니 윈드?”
“아무렴 어때요.”
뭐로 불리든 그게 무슨 상관인가.
홍세희는 하늘을 보며 바람을 느끼며, 아까부터 답답하던 마음을 조금 달랬다.
‘힘내세요.’
도대체 무슨 난관이 있기에 아직 지구로 돌아오지 못하시는지.
무사기원을 빌었다.
*청룡인은 날개는 없지만 그의 몸 주변을 떠다니는 수증기 구름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힘이 있었다.
그리고 날개 없이도 하늘을 날 수 있는 기이한 능력까지.
쿠로를 뒤에서 껴안고 구천을 벗어나 신계로 향하는 둘의 모습은 마치 스카이다이빙하는 것처럼 보였다.
“쿠루루…….”
쿠로의 특유의 콧소리에 수호가 물었다.
“뭐, 왜?”
“쿠루, 이거 날고 있는 것 맞나?”
“그럼?”
“……추락 같은데.”
“뭐, 어때. 급한데.”
수호는 전속력을 다해 신계에 접근하고 있었다.
신계 주변을 떠도는 구천과 아루카. 벌써 두 개의 달이 손바닥 만해보였다.
그 말은 신계의 지면과 멀지 않았다는 이야기.
“속도 줄인다. 숨 참아.”
“흐으으읍!”
엄청난 속도로 낙하하다가 갑자기 날아오르자, 뒤에서 껴안고 있던 수호의 팔에 갈비뼈가 조여졌다.
쿠로는 눈알이 빠질까 봐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쾅!
미처 속도를 다 줄이지 못한 두 덩치가 바닥에 처박혀 작은 분화구를 만들어냈다.
“쿨룩, 쿨룩. 비행 솜씨가 형편없군.”
“호랑이가 별걸 다 따지네.”
먼지를 훌훌 털고 점프하듯 날아오른 수호가 분화구를 빠져나왔다.
“미리 마중 왔네.”
“…….”
수호가 녹색의 요정을 보며 히죽 웃었다.
“야누스.”
녹색의 요정왕이 수호의 시선을 담담히 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