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341)
342화 고대 신 (1)
홍세희는 그리핀을 타고 돌진했다.
방패를 쥔 반대 손에는 아공간 반지에서 꺼낸 커다란 해머가 들려 있었다.
레드 드래곤은 갑자기 달려드는 그리핀을 파리 취급했다.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지만 신경을 거스르는 존재.
휘이이익.
아무렇게나 내저은 앞발을 그리핀이 유려하게 피하자, 그 위에 타고 있던 홍세희가 홱 뛰어올라 레드 드래곤의 뒤통수에 매달렸다.
“하압!”
홍세희는 망치를 들어 내리쳤다.
별다른 의미는 없다.
그저 조금이라도 타격을 주고자 한 공격.
콰직!
하지만 망치는 단번에 레드 드래곤의 두개골을 깨고 막대한 타격을 입혔다.
쿠오오오!
레드 드래곤이 고통에 겨워하며 발광했다.
그 덕에 비행을 유지하지 못하고 바닥으로 추락.
‘이게 뭔…….’
맞은 레드 드래곤도 억울하겠지만, 지금 가장 황당한 건 홍세희였다.
이놈 머리가 약한 것인가, 자신의 해머가 강력한 것인가.
쿠우우우우웅!
레드 드래곤이 바닥에 처박혔다. 그전에 몸을 날려 바닥에 착지한 홍세희는 발광하는 드래곤을 보았다.
“이게 대체…….”
그냥 수송 드론에 얌전히 타고 오고 있는 다른 야수들이 오기 전에 시간이나 벌자고 달려든 건데.
“어쩌면…….”
왠지 그런 자신감이 들었다.
해볼 만하다.
아니, 이길 것 같다.
도무지 질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았다.
꾸욱.
망치와 방패를 든 손에 힘을 주었다.
할 수 있다.
아니, 할 것이다.
이 힘을 나눠 준 게 누구인가?
“나의 신을 위해.”
누구보다 신념 가득한 홍세희가 달려나갔다.
고통에 겨워하면서도 레드 드래곤은 필사적으로 홍세희의 접근을 차단하려 했다.
화르르륵!
제대로 기를 모으지 못한 빈약한 화염 브레스가 쏘아졌으나 그녀의 타워실드에 가로 막혔다.
은은하게 퍼진 신성 보호막이 티끌만한 불꽃도 접근하는 걸 허락치 않았다.
멀리서 지켜보면 불구덩이를 뚫고 전진하는 전차를 보는 듯했다.
“하압!”
방패로 앞을 막고 달려나간 홍세희가 도약했다.
불길 속에서 불쑥 솟아오른 그녀를 보고 레드 드래곤이 고개를 치켜들었으나 늦었다.
쾅!
그녀의 망치가 드래곤의 코를 때렸고, 놈이 발광했다.
안 되겠다 싶었는지 급히 도약하려는데, 홍세희가 급히 꼬리를 붙잡았다.
덩치 차이가 워낙에 크기에, 누가 보면 붙잡은 게 아니라 꼬리에 매달린 수준.
후우웅, 후우우웅.
“으으.”
아무리 악력이 세다고 한들 중량의 차이는 어마어마했고, 홍세희의 발이 지면에서 점점 한 발씩 떼졌다.
“으아아아.”
홍세희는 서민수가 대머리 독수리로 변했던 것을 떠올리면서 고심했다.
신께 하사받은 이 능력을 가지고 무엇으로 변신해야 할까?
한번 모델을 정하면 다시는 되돌릴 수 없다.
‘지켜 낸다.’
홍세희는 모델을 정했다.
휘리리리릭.
회색 연기가 그녀의 몸을 감쌌다.
색을 입히듯, 찰흙을 붙이듯 그녀의 몸이 점점 커졌다.
연기가 털로 화했고, 커다란 덩치의 곰이 나타났다.
일곰이와 같은 덩치의 거대한 반달곰이 레드 드래곤의 꼬리에 길게 세운 발톱을 박아 넣었다.
콰직!
단단히 디딘 지면을 박차 뛰어오른 곰이 드래곤의 몸을 타고 올랐다.
떨어트리기 위해 이리저리 몸을 비틀었으나, 곰은 그대로 날갯죽지로 가더니 날개를 잡고 꺾어버렸다.
두두둑.
쿠오오오오!
덩치가 워낙에 커 날개도 거대했으나, 한 부분이 삐걱하자 더 이상 날갯짓을 할 여유가 사라져 버렸다.
쿠우우우웅!
다시 추락한 레드 드래곤이 힘차게 날카로운 발톱을 휘둘렀으나, 곰은 피하긴커녕 그대로 잡아버렸다.
두두둑.
쿠오오오오!
인간 상태에서 휘두른 망치에도 타격을 입은 드래곤이다.
곰으로 변신해 몇 배나 뻥튀기되어버린 홍세희의 스탯을 감당하지 못했다.
여기저기 부서지기 시작하더니 종래에는 축 처져 포효하기만 했다.
아니, 이 괴성은 포효라기보다는 신음이라 표현하는 게 맞았다.
쿠르르르르.
변신을 푼 홍세희는 아공간 반지에 들어갔던 망치와 방패를 들고 달려가려다 멈칫했다.
어느새 그녀의 뒤에 구미와 짭쿠로가 당도해 있었다.
“묘오오.”
“크허어엉.”
두 야수는 홍세희를 보고 있었고, 홍세희는 망치를 내렸다.
“처리해.”
자신이 저놈을 잡아봐야 경험치만 얻을 것이다.
L등급. 90레벨이 되고 나서는 더 이상 레벨업하지 못한 홍세희지만, 야수들에게라면 양보가 가능하다.
야수들은 신급 군주를 잡으면 그 신급 군주의 특성을 체득하고 스스로 진화하니까.
후왕이 그랬던 것처럼.
눈치 볼 것도 없이 구미가 잽싸게 움직여 레드 드래곤의 눈알에 긴 손톱을 찔러 넣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레드 드래곤의 숨통을 끊기에 충분치 않았고, 황급히 도착한 쿠로가 연신이 체중이 담긴 앞발질을 날렸다.
콱콱!
두 야수의 무차별적인 공격에 레드 드래곤의 숨이 멎어 버렸고, 짭쿠로가 포효했다.
“크허어엉!”
구천 행성 출신의 남만 호랑이가 아가리를 들고 포효하며 불을 뿜었다.
*“놀랍습니다.”
사령관 맥스 장군의 말에 홍세희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게요.”
가장 놀란 건 홍세희다.
그녀의 용병대는 군주급 정도는 손쉽게 사냥이 가능한 수준이다.
하지만 그것은 개인이 아닌 팀이기에 가능한 일.
군주급도 아니고, 신급 군주를 개인이 사냥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신의 축복은 그녀를 몇 단계나 진화하게 만들었다.
“이게 다 신의 가호 덕입니다.”
“신의 가호요?”
“네.”
“하나님을 믿습니까?”
“아뇨.”
“그럼……?”
“수호신이요.”
“…….”
맥스는 헛기침을 하곤 말했다.
“어쨌든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국빈으로 대우할 겁니다. 제 부관이 쉴 곳으로 안내할 것입니다.”
지금 그들의 대화를 멀리서 카메라들이 찍고 있었다.
애당초 이번 사냥에 대해 언론의 취재를 통제하지 않았고, 언론사에서는 목숨 걸고 전장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대대적인 포격에 이어 의외로 손쉽게 사냥이 끝나자 모두의 관심은 홍세희에게 몰렸다.
부관을 따라 휴식처로 안내 받던 홍세희를 향해 기자 하나가 소리쳤다.
“인터뷰에 응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물론이죠.”
홍세희의 시원한 대답에 기자들의 얼굴에 흥분이 떠올랐다.
“일단 조금 쉬고 자리를 마련하죠.”
“아 넵!”
스포츠 스타도, 할리우드 스타도 아니다. 먼 나라에서 날아와 미국에 나타난 괴수를 처치한 히어로다.
동부 미국의 시민으로서 은혜를 입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자는 붙잡지 않았고, 홍세희는 고급진 숙소로 안내되었다.
“아니, 대장님!”
“혼자 다 잡으면 저희는 왜 데려온 겁니까?”
“어허, 지금 미국인들이 캡틴 토르래요.”
“인터넷은 난리 났어요. 지금.”
비장하게 출동했으나 할 일이 없어져 대접만 받고 있던 팀원들이 왁자하게 떠들었다.
“대장, 근데 진짜 어떻게 된 거예요?”
모두가 궁금해 홍세희만 보았다.
함께 싸워왔기에 대장의 전투력은 누구보다 잘 아는 그들이다.
“신의 가호다.”
“예?”
홍세희는 그저 웃고 말았다.
“기자회견이나 준비해.”
“와, 대장 지금 인터넷 보면 거의 슈퍼맨 급으로 취급받고 있어요.”
“생방으로 다 탔더라고요.”
“진짜 기자회견해요? 엄청 귀찮게 할 텐데.”
“해야지.”
어딘가에 있을 수호에게 도움이 된다면.
하나라도 더 그에게 힘을 보태 줄 수 있다면.
*파파팟.
“쿠로오오.”
“후우우.”
수호와 쿠로는 거대하게 몸집을 불린 블랙맨을 두고 길게 숨을 뱉었다.
며칠이 지났을까?
블랙맨의 동체가 누워 있었다.
“결국 잡네.”
“쿠로오오.”
쿠로의 음성에서 지친 기색이 느껴졌다.
휘리리릭.
수호는 청룡과의 변신을 풀었다.
“후, 이렇게 오래 싸워 보는 것도 오랜만이네. 그치?”
“네놈이 귀찮게 덤벼대긴 했지.”
“그러게.”
쿠로와 몇 날 며칠을 싸운 적도 있었다.
그땐 상상할 수 없었다.
신계에서 최강자로 군림하는 둘이 힘을 합쳐서 누군가와 싸우게 될 줄은.
“과거엔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쿠로오오.”
쿠로도 알 턱이 없다.
그의 기억 속에 수호가 이렇게 강하던 모습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몇천 년, 혹은 몇만 년, 아니 몇억 전의 일이었을 지도.
파파파파파파!
검은 세상이 무너졌다.
어지러움에 눈을 몇 번 감으니 익숙한 붉은 사막이 눈에 들어왔다.
팟.
수호는 벌써 몇 번째 보는 검은 마석을 주웠다.
“뭐지?”
“아, 이거? 마석.”
수호는 마석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기억과 힘이 담겨있지.”
“묘비군.”
“비슷하네.”
수호는 마석을 보며 떠오른 ‘흡수’와 ‘삭제’를 보며 잠깐 고민했다.
“이거 먹으면 탈 나진 않겠지?”
“좋은 선택 같지는 않군.”
“벌써 몇 개 먹었어.”
“으음…….”
쿠로는 조금 심각하게 고민했다.
“너는 그놈보다 약하다.”
“그렇지.”
“뒤섞인 이후에 너는 누가 되겠나.”
“으음.”
5천 년의 삶과 1천 년의 삶이다.
수호는 고심했지만, 이것을 그저 인벤토리에 넣을 순 없었다.
아주 강력한 유혹.
마치 본능과도 같은 끌림이 마석을 흡수하라고 재촉하고 있었다.
“후우.”
금단현상을 겪는 약쟁이가 마약을 앞에 둔 심정이 이러할까?
“쿠로.”
“왜 부르나, 인간?”
“고맙다.”
“…….”
쿠로는 콧수염을 떨었다.
“별 소릴 다 하는군. 이만 고생했으니 그건 버리고 돌아가자.”
“안 돼, 먹어야 해.”
“쿠로오오!”
쿠로가 대노해 검은 마석을 가로챘다. 청룡과 변신을 푼 수호는 쿠로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었다.
“엇! 내놔, 이 새끼야.”
“쿠로오오. 이게 다 인간을 위해서다.”
“뭐가 날 위해서야.”
“구천 행성에 발을 디딘 자들의 운명에 대해 알고 있나?”
“모르지.”
“쿠루루, 비참한 결말뿐이다.”
쿠로는 수호를 보며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늦지 않았다. 내려가자. 네 녀석이 죽음에 잡아먹히는 꼴을 보고 싶진 않다.”
“아니, 일단 그거부터 주고.”
“안 된다.”
수호가 인상을 찌푸렸다.
이건 뭐, 청소년도 아니고.
담배 뺏긴 기분인데.
“아오, 일단 그거부터…….”
수호는 단호한 표정의 쿠로를 보곤, 인벤토리에서 쿠로의 과거가 담긴 마석을 끄집어냈다.
“이거랑 바꾸자.”
“그게 뭔가?”
쿠로는 수호의 손에 쥔 마석을 보곤 눈을 부릅떴다.
“……!”
이 강력한 끌림은 뭔가?
악마가 머리를 후려치고 고막에 속삭임을 때려박는 기분이다.
저건 먹어야 해.
쿠로의 눈이 돌아버리자, 수호는 슬쩍 마석을 건네주고 그가 가진 마석을 뺏었다.
“이, 이건…….”
마석을 쥐고 귀한 보석을 보듯 눈이 빛나는 그를 보며 수호가 혀를 찼다.
“지도 똑같구만.”
약쟁이가 별게 없구나.
수호는 쿠로가 마석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연기에 동화되는 것을 보고 손에 쥔 마석을 흡수했다.
파파팟!
마석이 깨지며 기억의 홍수가 밀려들어왔다.
*“여긴 어디지?”
낯선 숲에서 눈을 떴다.
자신의 기억과는 조금 다른 지형, 다른 나무.
아우우우.
울부짖는 늑대 소리에 겁을 집어 먹었다.
달리고 달려 도망쳤다.
기묘한 일이 일어났고, 수호는 숲에 적응했고, 단련했다.
무료한 시간을 보냈고, 지구로 돌아가기 위해 애썼다.
삼천 년이 흐른 어느 날 그의 앞에 붉은 포탈이 생겨났고.
파팟.
포탈을 넘은 수호는 보았다.
수만의 오크들과 그들의 뒤에 선 거인들.
그리고 하늘을 날아오르는 드래곤들.
[신계로 향하는 관문이 열렸다! 진격하라!]마치 수호를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밀려들어오는 오크 부대와 거인족, 드래곤에 맞서 싸웠다.
일 년.
백 년.
천 년.
이천 년…….
너무 늦게 깨달아 버렸다.
미드얼 행성과 통하는 포탈을 열어버린 것은 자신이다.
이 포탈을 닫고 신계의 유린을 막기 위해선…….
수호는 죽음을 선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