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403)
404화 공허 (2)
지면과 가까워지자 미소는 독수리 발톱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탓.
김미소가 안정적으로 착지한 옆으로 내려온 독수리가 흩어지듯 연기로 화하더니, 다시 뭉쳐 인간이 되어 착지했다.
“침식이네.”
수호의 짧은 감상평에, 김미소가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풀어냈다.
“돌멩이 같은 무생물에 반응해 검게 물들었습니다.”
김미소가 발치에 있는 돌 하나를 찼다.
투욱, 툭.
검은 공간에 던져진 돌은 접촉면부터 서서히 타오르듯 검게 물들어갔다.
수호는 색을 잃어가는 돌멩이를 보다가 시야를 넓혔다.
둥글게 퍼져있는 검은 공간은 원을 이루고 있었다.
그 가장자리에 걸친 나무가 있어 눈길을 끌었다.
세로로 절반이 쪼개진 것처럼 한쪽은 검게 변했고, 나머지는 나무 본연의 고동색을 뽐내고 있었다.
수호가 다가가 나무결에 손을 얹었다.
“살아있네.”
전해진다.
살아있는 나무의 박동이 느껴진다.
절반이 넘게 검게 변했는데도 나무의 생명력은 안정적이기만 하다.
쇠약의 기미도 없다.
‘죽음이라.’
이것이 죽음의 저주라면, 그 영향으로 절반이나 검게 죽어버린 나무라면, 나머지 부분에 영향을 미쳐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지금 수호의 손을 통해 전해지는 느낌으로는, 이 나무는 본디 절반만 나고 자라 평생을 뿌리내린 것 같았다.
본디 절반만 존재했던 것처럼.
검게 변한 나무는 본디 없었던 것처럼.
나무의 일생에서 그 부분만,
도려내듯…….
‘삭제인가.’
수호는 삭제된 영역.
아예 무로 돌아간 그곳에 한 걸음 내디뎠다.
땅을 밟았음에도 흙 밟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나뭇가지를 밟았음에도 부러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는 공허에 발을 디딘 느낌.
“일전에 호주에서 생명체를 붙잡아 실험해 봤습니다.”
고블린 하나를 잡아와 검은 공간에 던져 넣은 적이 있었다.
고블린은 타오르듯 잠식되어 존재가 사라져 버렸고, 그게 제물이라도 되었다는 듯 검은 공간이 조금 넓어졌다.
“돌이나 나무처럼 검게 융화된 것이 아니라, 아예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공간이 늘었죠.”
김미소가 수호를 따라 한 발 내디뎌 따라왔다.
“저나, 제가 자라게 한 신목들은 이 공간에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다.”
검게 변하지도, 사라지지도 않았다.
“신의…….”
스스로를 인간으로 칭하는데 신으로 모실 수는 없다. 김미소는 얼른 말을 바꿨다.
“사장님의 힘이 깃든 것들에겐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합니다.”
신의 힘이 아니다.
인간 박수호의 힘이다.
“흐음.”
수호는 검은 공간을 휘이 둘러보았다.
살아있는 모든 생명에게 느껴져야 할 조화력이 이곳에선 한 줌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다못해 흩날리는 먼지에도 있는 게 조화력이건만…….
털썩.
수호가 검은 공간 한가운데 주저앉았다.
더 집중하기 위해 눈을 감았다.
김미소는 그런 수호를 보며 숨도 조심히 쉬며 지켜보았다.
“다리 아픈데 앉아.”
“네에.”
수호는 눈을 감고 주변 모든 걸 느껴보려 했다. 하지만 검은 공간에서 느낄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오로지 하나.
자신의 옆에 앉아있는 김미소뿐이었다.
자연스럽게 관찰 대상이 공간에서 그녀로 넘어갔다.
이 공간이 그녀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저항하는군.’
수호는 그녀의 몸 전체를 두르는 미약한 에너지의 막을 느꼈다.
이 죽음의 공간은 통상적인 수준의 죽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삭제, 혹은 소멸.
아예 존재가 지워져 버리는 것에 대한 저항이 느껴졌다.
그 힘의 근간은 신력.
스스로를 신으로 정의하는 것을 부정하면서도 그리 말하는 건 마땅히 대체할 말이 없어서다.
있다면 창조력 정도라고 해야 할까?
소멸과 창조가 서로 끈끈한 줄다리기를 하는 느낌이다.
서로 대척에 있는 힘이라 묘하게 균형을 맞춘 느낌.
이 공허의 공간이 가진 소멸성에 대한 대척점은 한 가지뿐이다.
‘창조.’
수호로서는 어찌 다루는지 모르는 힘이다.
그가 가진 조화력도, 야생력도 창조와는 다른 힘이다. 본디 있던 것들의 성질을 변화하는 힘.
수호의 몸에 창조력이 깃든 것은 순전히 ‘숭배’ 스탯이 생기고 난 뒤다.
인간들의 숭배를 받으며 그들이 신으로 추앙할 때 생긴 힘이다.
‘신이라면 역시 창조력을 다루는 창조주뿐이다.’
그가 무슨 마음으로 이 힘을 나눴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이것만이 죽음의 저주, 혹은 침식에 대항하는 유일한 수단 같아 보였다.
소멸에 대비하기 위한 창조력.
문제는.
‘어떻게 얻지?’
숭배 스탯이 생기고 나서도 수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리 많지 않았다.
사제의 임명과 기사의 임명 정도.
‘신수 길들이기도 있네.’
신계에서 나고 자란 영물들.
지금 수호의 야수 쉼터에 있는 이들과 비교하면 상당한 전력들이다.
지금도 청룡만 소환해 부리고 있지만, 여전히 신계에 대기하며 수호의 부름을 기다리는 신수들이 여럿이다.
“아!”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있던 수호가 벌떡 일어섰다.
그 갑작스러운 변화에 김미소가 기대감이 가득한 얼굴로 수호를 보았다.
무언가 방법을 찾았음인가?
“숭배 스탯이야.”
“네?”
“스킬을 익히려면 스탯에 제한을 받지.”
스킬마다 붙은 허용 스탯이 있다.
근력 10의 조건이 붙은 스킬은, 그 아래 근력 보유자들은 아예 익힐 수조차 없다.
”네?”
“잠깐 있어봐.”
“…….”
수호는 궁금한 게 많아 보이는 김미소를 내버려두고 업적 상점을 열었다.
숭배 스탯이 오를 때마다 업적 상점에서 해금되는 스킬이 있다.
– 소모품
– 장비
– 스킬
‘스킬 쪽에.’
숭배 스탯을 요구하는 스킬들만 추렸다.
영면에 든 고대 야수를 소환할 수 있다.
영적으로 연결된 신목을 통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숭배 스탯이 생기며 가장 먼저 해금된 스킬들이다.
이미 습득 완료했고, 그 이후에 배운 스킬들도 여럿이다.
‘그다음 스킬들이…….’
수호는 숭배 스탯과 관련해 아직 배우지 않은 스킬들을 살펴봤으나,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뭐야?”
“네?”
김미소의 눈에는 당연하게도 업적 상점이 보이지 않는다.
그녀의 눈엔 수호가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을 이리저리 보다가 갑작스레 화를 내는 것처럼 보였다.
“와, 이게 없네.”
처음 배운 두 스킬 뒤로 배운 것들.
수호는 가만히 턱을 쓰다듬다가 업적 상점을 닫았다.
어차피 경우의 수는 둘 중 하나다.
신전 건립이 마지막이든지, 상점 목록에는 없지만 숭배 스탯이 더 높이 쌓이면 자연스럽게 해금되는 것이든지 말이다.
‘후자일 것 같은데.’
신의 힘을 다루는 스킬이다.
히든 스킬이라면 마땅히 이해할 만한 사정이다.
“가자.”
“네?”
갑자기?
김미소는 엉덩이를 떼고 일어서는 수호를 따라 일어서 걸었다.
검은 공간에서 벗어난 수호는, 물음표가 수십 개 달린 것 같은 그녀의 얼굴을 보며 웃었다.
“왜 그런 얼굴이야?”
“네?”
김미소는 그리 되묻고는 시무룩해졌다.
이거 물어봐도 되나?
내가 들을 자격이 있는 건가?
짧은 순간에 너무 많은 생각들이 쌓여 논리적인 대답이 나오질 못했다.
“알고 싶어요.”
“음? 저거?”
수호는 검은 공간을 가리켰다.
김미소가 알고 싶은 건 수호의 생각과 행동의 이유지만, 일단 찬찬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듣다 보면 납득이 되겠지.
“저건 공허다. 지워진 거지.”
“죽음과 다른가요?”
“죽으면 시체가 남지.”
“아…….”
하다못해 죽은 짐승도 시체가 남는다.
다른 짐승의 먹이가 되고, 썩어 흙이 되기도 한다.
헌데 저 검은 공간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지형지물 그대로 검게 변해버린 저것은 땅도, 바위도 나무도 아니다. 그저 뭉뚱그려 텅 비어버렸을 뿐이다.
“그래서 소멸이군요.”
“그래.”
지구의 것은 죽더라도 지구에 남아, 어찌 되었든 순환한다.
“저건 우주 같은 거지.”
수호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저 소멸의 힘이 무엇에서 비롯되었는지는 몰라도 생명을 갈아먹고 커진다.”
사람이든 몬스터든 살아있는 것들을 집어삼켜 공간을 늘린다.
수호가 손짓했다.
파스스스.
검은 공간 주위로 나무들이 돋아났다.
스스슥!
빠르게 자란 나무들이 이리저리 서로 부대끼다가 엮여 자라났다.
꾸드드득.
종래에는 빈 공간 없이 오밀조밀하게 엮여 나무로 엮은 거대한 돔이 되었다.
반구로 덮힌 윗공간 외에 흙 아래도 뿌리가 감싸고 있어 생명체의 접근을 차단하리라.
그 일련의 과정들을 보면서 조금 생각이 정리된 김미소가 물었다.
“되돌릴 방법이 있겠습니까?”
“찾아봐야지. 빈 곳에 퍼부어봐야 메워지지는 않을 거야. 새로 만들어야 하는데, 이건 창조의 힘이니까.”
아직 수호는 창조의 힘을 다루지 못한다.
그저 이미 창조된 것들을 다룰 뿐.
“아!”
김미소는 이러다 창세까지 파고들 것만 같아 아찔한 기분이었다. 이것은 세상의 기원을 푸는 것과 다르지 않은 일이 아닌가.
두려운 기대가 그녀의 몸을 잘게 떨리게 했다.
“내겐 업적 상점이라는 것이 있다. 몬스터를 해치면 업적이 쌓이지.”
상점이라는 말에 김미소가 눈을 반짝하며 물었다.
“무엇을 살 수 있습니까?”
수호가 업적 상점을 열어 빠르게 소모품 하나를 구매했다.
파팟.
수호의 손에 나타난 빵을 보며 김미소가 깜짝 놀랐다.
“아! 그러고 보니…….”
김미소는 수호 길드로 적을 옮기기 전에 각성자 관리국 소속이었다.
그곳에서 하던 일은 귀환자 관리팀장.
귀환자 박수호에 관한 첫 보고가 떠올랐다.
‘빵과 물, 구현계 능력자.’
수호의 각성 능력이 구현계라 생각했는데, 이제 와 생각해 보니 간단하게 볼 능력이 아니었다.
“스킬도 사고 장비도 사지.”
“…….”
수호의 말에 김미소는 얼굴이 환해졌다가 다시 어두워졌다가를 반복했다. 해답을 찾은 것 같으면서도 다시 고민스러워, 점점 미궁에 빠지는 문제를 마주한 것 같다.
“그 업적 상점이라는 것은 창조와 맞닿아 있지 않겠습니까?”
없던 것을 사온다.
“모르지. 업적 포인트를 주고 사 오는 거니.”
등가교환이다.
“어디 신계에 있는 건지, 아니면 다른 차원에 상점이 있어 그곳에서 오는 건지.”
수호의 말에 김미소는 금세 시무룩해졌다.
그녀의 다채로운 표정 변화를 보며 수호는 씩 웃었다.
“연구해볼 가치가 있지 않겠어?”
아직 모르는 일이다.
이 업적 포인트라는 것도, 그리고 업적 상점도.
“사람들이 날 믿고 신으로 여기기 시작할 때부터 ‘숭배’ 스탯이 생겼다. 이것으로 산 스킬들에는 죄다 신력이 담겨 있었지.”
신이 다루는 힘이다.
공허에 버틸 정도의 힘.
어느 정도 창조력이 담기지 않았을까?
소멸을 버틸 정도로 말이다.
“아, 그래서!”
김미소는 조금 전의 수호의 반응을 이해할수 있게 되었다.
“숭배력을 더 키워 보면 새로운 스킬이 나올 수도 있겠지. 그 끝에 창조주의 힘이라든가…….”
김미소의 얼굴이 밝아졌다.
“숭배력을 키우면서 업적 상점에 대해 연구해 보면 되겠군요!”
할 일이 명확해졌다.
그런 그녀를 보며, 수호가 한 가지 더 중요한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다.
“침식도 막아야지.”
소멸되어 침식되어버린 공간이 벌써 둘이다.
신목을 자라게 해 더 커지는 것을 막아놨지만, 이는 응급처치일 뿐이다.
버젓이 돌아다니며 침식을 일으키는 존재가 있지 않은가?
“블랙맨도 잡아야지.”
죽은 신의 기억, 힘.
굳이 신계로 올라가 무덤을 찾지는 않을 것이다.
과거의 죽음은 이제 지구에서 수습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