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416)
417화 관리자들 (3)
수호는 대충 대주천을 마친 당진철을 이끌고, 사천당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아미파 분타를 찾았다.
“태사!”
“오셨습니까? 으음…….”
태사신니는 수호와 함께 온 당진철을 보며 깜짝 놀랐다.
명경지수에 이른 그녀의 경지를 생각하면 보기 드문 감정변화였다.
“선배. 오랜만에 봅니다.”
조금은 껄렁한 당진철의 말에 태사신니가 부드럽게 웃었다.
무림인이라고 어찌 다 같이 사이가 좋을까?
당진철은 무림인들과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다.
전대 무림맹주와는 악연이었고, 무림맹은 사천당문을 무림공적으로 몰아 멸문시켰을 뿐만 아니라 당진철에게 거액의 현상금을 걸었다.
무림공적으로서의 삶은 결코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었고, 당진철은 독기 하나로 버텨 성장했다.
그런 그에게 있어 아미파도 다른 무림인들과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고초를 겪었던 시기에 아미파의 최고수인 태사신니가 은거한 상태였다곤 해도, 딱히 무림인들에 대한 거리감이 반전을 꾀할 요소는 되지 못했다.
어쩌면 스스로도 자각하지 못한 그 거부감으로 인해, 당진철은 아무렇지도 않게 사천당문을 지구에서 새롭게 개파했는지도 모른다.
“시주께선 어인 일을 겪으셨길래 이리 다른 사람이 되셨습니까?”
“으음,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허어, 내 무욕하다 자부했으나 호기심이 일어 마음을 다스리기 어렵군요.”
태사는 그리 말하며 잔잔하게 웃었다.
당진철은 그런 태사와 눈이 마주치곤 그녀의 맑은 눈에서 욕심을 읽었다.
추잡한 욕심이 아닌, 탐구열, 지적 호기심, 순수한 궁금증에서 비롯된 열망이었다.
무위자연을 설파하며 세상사에 통달해 관심이 희미해져 버린 모습의 태사신니가 저 정도 열정을 보이고 있으니, 외려 당진철이 놀랐다.
“으음, 내단을 얻었소.”
“영물의 내단 말이오?”
“영물이라 하기에는 격이 더 높지. 용의 내단이었으니까 말이오.”
“허어!”
태사신니가 감탄했다.
용의 내단이라니!
“정말 정순한 기운입니다. 맥문을 잡아보지 않아도 느껴질 정도이니…….”
자연의 정순한 기운이다.
태사신니의 눈빛이 갈구하는 바는 명확하다.
맥문을 잡고 네 내공의 정체를 한번 보자.
“흐음, 신니께서는 선을 넘으려 하지 마시오.”
당진철의 말에 태사신니가 흠칫 놀라며 급히 합장했다.
“빈승이 큰 결례를 범할 뻔했습니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맥문은 상대에게 자신의 내력 수준을 모두 내보여주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사혈을 내어주는 것과 진배없는 일이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 정도가 아니면 요구할 수도, 행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도 아니면 엄청난 고수가 강제로 행하든가 말이다.
“탓하지 않겠소.”
당진철의 말투엔 예의가 없었으나 태사신니는 감히 탓할 수 없었다. 자신은 더 큰 결례를 범했으니, 상대의 입에서 욕이 튀어나오지 않은 것만 하여도 감사할 일이다.
‘하지만 어찌…….’
태사신니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사그라들지 않는 호기심에 곤욕스러웠다.
사람이 어찌 이리 짧은 순간에 기운의 색 자체가 바뀔 수 있는지, 그녀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용의 내단이 대체 어떤 효용을 지녔기에…….
기존에 익힌 기운을 희석시켜 저리도 다른 성질의 기운으로 화할 수 있단 말인가?
느껴지는 분위기나 기세로만 보면 정종의 내공심법을 수십 년 수련한 도사나 풍길 법한 기세다.
내공심법은 구천 행성에 존재하는 가문의 수, 문파의 수만큼이나 다양한지라 내력의 색은 무수히 많다.
어떤 색이든, 또 거기에 어떤 색을 섞든 간에 투명해질 수는 없는 법이거늘…….
당진철의 지금 상태는 마치 단전을 아예 비워내고 새로운 물을 채운 듯 깨끗해 보이기만 했다.
‘내 어찌 이리 기괴한 생각까지 한단 말인가.’
태사신니는 급히 머릿속의 망상을 비워냈다.
단전이 무슨 신발도 아니고, 그리 쉬이 갈아신듯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무림인에게 있어 유리 심장과 같아, 한번 부서지면 다시는 제 기능을 할 수 없는 기관이 아닌가?
“이야, 너 드래곤하트 먹었냐?”
수호는 당진철이 운기조식에 애를 먹으며 주화입마 초입까지 간 이유를 이제야 알았다.
수호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드래곤이 또 넘어왔었나?”
지구로 넘어온 레드드래곤 락샤샤는 수호가 해치웠고, 백사가 마무리했다.
그것도 이곳 수호시티에서.
“큼, 큼.”
헛기침하며 고개를 돌리는 당진철의 표정이 꼭 훔쳐먹다 걸린 아이같은 얼굴이다.
“오, 너 어디서 구했냐?”
“…….”
“말 안 해?”
“……주워 왔소.”
“뭐?”
“아, 주워 왔소.”
“어디서?”
“미드얼 행성에서 말이오.”
수호가 황당한 얼굴로 당진철을 보았다.
일본에서 죄다 오크들 잡고 싸울 때 당진철은 미드얼 행성에 갔다는 소리가 아닌가?
“거길 어떻게 갔냐?”
미드얼 행성과 통하는 게이트는 오사카에 있다.
미드얼에 갔다는 것은 그곳에 운집해있는 수만의 오크 대군을 뚫고 갔다는것이다.
“적진 한가운데인데?”
“허, 형님은 이 우제를 뭘로 보고 그러시오? 적진 한가운데서 이리 장성할 정도의 잠입술은 있소.”
애초에 그의 성장 과정이 기구하다.
가문이 멸문당하고 무림공적이 된 상태에서 무림인들의 세계에서 이리 자랐으니, 그의 말마따나 적진에서 커온 것이나 다름없다.
“으음. 좀도둑이…….”
“에헤이, 형님. 이 우제가 형님이 놓고 간 전리품을 취했을 뿐이오.”
당진철은 미드얼 행성에서 죽은 드래곤의 내단을 얻었다.
취득 경로야 어떻든 간에, 먹고 죽을 뻔한 걸 수호가 구해냈다.
물론 지금 당진철의 단전에 자리한 기운은 본래 그가 쌓은 내력도, 드래곤의 내력도 아니다.
둘은 모두 상쇄되어 진즉에 증발해버렸고, 단전도 깨져버렸다. 지금의 당진철이 가진 단전은 수호가 재생시킨 것이고, 내력 또한 대자연의 기운이다.
정확히는 나무정령들의 조화력이 단전을 복구하고 남은 기운이다.
“어이가 없는 놈이네.”
수호는 전쟁 와중에 적진에 침투해 미드얼까지 가본 당진철의 발상에 피식 웃었다.
“그냥 궁금해서 가봤소. 다른 행성이 또 있다니, 이거야말로 천외천의 이치가 아니오?”
“새끼, 말은…….”
수호가 피식 웃으며 당진철의 말을 받았다.
“그렇네. 천외천이네. 잘됐다.”
“음?”
“나랑 다른 세상 구경 가자.”
“어, 어딜 말이요?”
“아루카.”
“으음.”
고심하는 당진철을 보며 수호가 피식 웃었다.
고민하든 말든 데려갈 작정이다.
그때 둘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태사신니가 끼어들었다.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만, 제게 온 용건이…….”
“건우 어딨습니까?”
“아, 건우 시주께서는 뒤뜰 연무장에 계십니다.”
건우가 아미파 분타에 있는 건 별다른 이유가 없다.
“취아도 같이 있죠?”
“늘 함께하지요.”
장취아.
장순필의 딸이자, 지구인과 무림인의 혼혈.
지구인들처럼 몬스터를 사냥해 레벨업 하면서도 무림인들처럼 수련도 하는 존재.
그녀는 존재 자체로 특별하며 유일무이하다.
‘둘 다 데려가야겠네.’
장취아를 데려가려면 건우는 무조건 따라갈 거다.
어쩌면 취아의 아버지인 장순필까지 따라붙을지도 모르지만…….
“제가 보잔다고, 본사로 좀 오라 전해 주시죠.”
“예에, 그리 전하겠습니다.”
태사신니의 목소리는 어딘지 모르게 조금 가라앉아있었다.
수호의 방문 목적이 자신이 아니어서일지, 당진철의 변화의 이유를 찾지 못해서인지 모르겠지만 아쉽기만 한 마음이었다.
*
수호 길드 본사, 부사장실.
“대충 아셨죠?”
“…….”
김미소의 말에 박준호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그런 그를 보며 김미소는 미소지었다.
애초에 단번에 모든 것을 인수인계할 수는 없다.
“비서실장이 많이 도와줄 겁니다.”
“네, 부사장님. 제가 잘 보필하겠습니다.”
비서실장 이소진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 박준호가 겨우 멘탈을 다스렸다.
“예, 잘 부탁드립니다.”
여전히 부담감을 떨치지 못한 듯한 준호를 보며 김미소는 여러 말을 떠올렸으나, 꼭 필요한 하나만을 골랐다.
“박 부사장님. 부재중인 리더를 대신하는 자리입니다.”
“후우, 잘 알지요.”
잘해야 한다.
형님의 얼굴에 먹칠하지 않게.
박준호가 그렇게 생각하는데 김미소가 고개를 저었다.
“부담감을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네?”
“모든 것을 잘할 필요는 없어요. 그냥 이 자리에 계시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습니다.”
리더의 역할은 상징일 뿐이다.
어차피 실무야 수천의 지원부 소속 직원들이 있다.
“믿고 갑니다.”
일 잘하는 사람이 앉는 자리가 아니다.
믿을 만한 사람이 맡는 자리다.
구성원들이 충분히 납득할 만한 사람이 적임자다.
그런 의미에서 박준호밖에 없다.
“맡겨 주십시오.”
준호는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렸다.
*
수호 길드 격납고에서 나온 수송 트럭 하나가 출발 준비를 마쳤다.
“다 모였네.”
수호는 말을 마치곤 모인 면면을 살폈다.
지구인과 무림인의 혼혈인 장취아.
무림인 당진철.
엘프 알리어드와 로매드.
드워프 융.
지구, 구천, 아루카 행성 출신의 종족들 중 하나씩은 모두 데리고 다닐 생각이다.
이들은 굳이 역할을 따지자면 각 행성의 대표들이다.
이번 아루카 행성의 목표는 야누르 신전의 방문.
그 신전, 혹은 야누르 신이 이들과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지켜보고 싶다.
그 모든 것을 눈에 담고, 정보로 남기며 분석할 인재 김미소가 따라감은 당연했고, 조카인 건우와 연구소장 장순필은 순전히 장취아 때문에 따라온 군식구다.
그리고 수호의 뒤에 둥둥 떠 있는 장재식은 혹시 모를 치료를 위해 함께 가는 길이다.
“가자.”
“네.”
인간과 이종족들로 이뤄진 조합들이 수송 트럭에 오르고 차가 출발했다.
부르르릉.
수호 길드 핵심 시설들이 모두 모여 있는 내성을 지나, 쭉 뻗은 대로를 따라 남하했다.
일직선의 도로를 따라 끝에 다다르면 외성 남문이다.
수호시티의 주 출입구이자 외부인들이 드나드는 유일한 출입구.
간단한 절차와 함께 빠져나간 트럭이 너비 50미터에 이르는 해자 사이로 난 길을 건너 필드로 접어들었다.
이 주변은 필드지만 어슬렁거리는 몬스터 따위는 없다.
깊은 강물 같은 해자를 영역으로 삼은 악어 떼와 상어 무리가 든든한 방어벽이 되어주기도 했거니와, 때때로 수호시티 안에 사는 야수들이 밖으로 나와 주기적인 사냥을 하는 터라 주변엔 몬스터 찾기가 외려 어려운 지경이었다.
세계수의 억제력이 미치는 범위엔 더 이상 차원균열도, 던전도 리젠되지 않으니 새롭게 몬스터들이 공급될 일도 없다.
필드.
인간들이 관리를 포기한 지역이라 하기에는 제법 잘 정비된 필드의 도로를 따라 남하하면 곧 포탈허브가 나온다.
포탈허브는 세계의 주요 도시들이 모두 이어져 있다.
“저희는 자카르타로 이동해 아루카 행성으로 갑니다.”
김미소의 설명에 일행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서귀포에도 아루카로 향하는 게이트가 있긴 하지만, 야누르 신전과는 거리가 먼 곳으로 이어진다.
아루카 행성과 지구와 이어진 여러 게이트 중에 자카르타 게이트가 그나마 신전과 가장 가까운 지역으로 이어져 있다.
“확인 끝났습니다. 입장하셔도 됩니다.”
마치 공항과 같은 검문검색 절차를 마치고 포탈허브에 들어서자, 세계지도가 그려진 바닥 위로 백여 개가 넘는 포탈들이 서로 빛을 토해내고 일렁이고 있었다.
일행은 그중 인도네시아 지도 위에 자리한 포탈을 향해 차례로 몸을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