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424)
425화 주울부족 (1)
수호는 귀물을 떠올리곤 즉시 아공간을 뒤져 그것을 꺼내들었다.
파팟.
손에 꼭 맞게 들어온 돌멩이를 공깃돌 가지고 놀듯 위로 던졌다 받았다 했다.
“아아!”
드워프 융은 여전히 돌멩이 상태인 귀물을 보곤 탄식했다.
‘형태의 변화가 있을 줄 알았는데.’
드워프 융은 내심 기대했으나, 전에 보았던 모습 그대로인 귀물의 상태에 매우 실망했다.
저것은 드워프의 관점에서 그저 광물일 뿐이다.
금속이라 부르기도 힘든 돌멩이.
그럼에도 기대했던 이유는 이름 높은 드워프 장인들도 저것의 성분을 구분하지도, 녹여내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드워프들이 가공을 포기한 광물.
신께 진상되었던 귀물.
‘분명 원래부터 저런 모습은 아니었을 거야.’
귀물은 스스로 주인을 찾는다지 않은가?
그 대상이 있다면 신이 되어버린 인간.
박수호가 가장 유력하지 않을까?
하지만 여전히 귀물은 아무런 형태의 변환도 없었고, 무기라 부르기엔 다소 투박한 모습.
돌멩이 그대로였다.
아쉬워하는 융을 보며 수호는 피식 웃었다.
“너 줄까?”
“아, 아닙니다.”
융이 가진 것은 호기심과 탐구욕이지, 소유욕이 아니었다.
“이거 뭐, 변신하고 그러는 거야?”
“그렇지 않을까 추측합니다.”
“으음.”
수호는 조화력을 불어넣어 봤으나 별다른 징후는 없었다.
파파팟.
“단단하네.”
조금 특이한 게 있다면 스펀지처럼 조화력을 빨아들이는데도 여전히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지간한 돌멩이였다면 기의 응집을 버티지 못하고 터졌으리라.
우우우웅.
응집된 기들이 귀물에 감응해 잠깐 모여있는 듯하더니, 이내 좁다고 아우성이었다.
수호가 제어력을 거두자 기들이 재빠르게 흩어졌다.
“뭐, 나중에 변하면 알려줄게.”
“예에, 감사합니다.”
융은 아쉽지만 호기심을 누를 수밖에 없었다.
신은 할 일이 많으시고 세상은 혼란하니, 귀물을 두고 연구에 몰두해 주십사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파팟.
수호는 귀물을 인벤토리에 도로 집어넣었다.
지금으로서는 그저 단단한 돌멩이 정도의 가치밖에 없었다.
수호는 일행의 뒤를 조용히 따라오고있는 하이엘프 가즈라를 보곤 손을 까닥했다.
“같이 고향에 좀 가자.”
“예에?”
가즈라가 깜짝 놀랐다.
하이엘프는 수명이 길다.
가즈라가 지구에 정착한 지는 고작해야 9년 정도.
수백 년은 이미 아루카에서 살았을 가즈라가 보인 반응치고는 어딘지 모르게 우스웠다.
“뭐 죄짓고 도망쳤냐?”
“죄라니요.”
“그럼 뭐, 왕따라도 당했어?”
“…….”
가즈라의 묵묵부답에 수호가 눈을 크게 뜨고 이내 웃었다.
“뭐야? 진짜야?”
불편한 이야기였기에 가즈라가 급히 화제를 전환했다.
“하실 말씀이 무엇인지요?”
“아, 그냥 대신해서 몇 가지 물어볼 게 있었는데…… 여기선 좀 그래서.”
수호의 턱짓에 가즈라가 고개를 돌리니 사람들 시선이 꽤 많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자밀라가 보좌관들을 우르르 단 채로 따라오고 있었고, 총성과 비명이 끝난 전장덕에 여기저기 가옥에서 사람들이 고개를 빼곰 내밀고 구경하고 있었다.
무슨 대단한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가즈라는 의문이 들었으나 일단 수호를 따라가지 않을 수 없었다.
‘금방 돌아오지 뭐.’
고작해야 게이트 넘어갔다가 대화 후에 돌아오면 되는 일이다.
고민하며 걷는 사이 아루카 행성으로 향하는 게이트존까지 와버렸다.
우르르 몰려온 사람들이 워낙 유명한 인물들인지라, 게이트 출입을 관리하는 공무원이 당황했다.
“어, 어디까지 알아보고 오셨어요?”
“뭘 알아보고 와?”
“헙, 하, 아닙니다.”
긴장에 헛말이 나왔다.
예약 이용객 명단을 확인한 공무원은 수호 길드를 찾아내곤 고개를 끄덕였다.
절차상 문제가 없다.
“입장하시면 됩니다.”
“수고해!”
“헙, 넵!”
수호가 어깨를 두드려주자, 큰 영광이라도 된 듯 공무원이 허리를 펴고 우렁차게 대답했다.
그를 뒤로하고 일행이 하나둘 게이트를 통과해 아루카 행성으로 사라졌다.
*
파파팟.
수호는 게이트를 통과하자마자 몸부터 살폈다.
아무런 이상 없는 모습에 고개를 끄덕였다.
“미소.”
“네.”
“던전은 괜찮은데, 아루카와 구천은 첫 입성 때 기절했었다.”
“알고 있어요.”
괜히 수호 길드 2인자겠는가.
수호가 알지 못하는 것도 그녀는 알고 있다.
세계에서 수호 길드가 차지하는 위상을 생각하면, 세상사 모든 일들이 그녀에게 보고된다고 해도 무리는 아닐 정도다.
그중에 사장인 수호가 알아야 할 일이라 생각하면 따로 보고하는 것이 그녀의 의무다.
물론 어지간한 일은 그녀의 권한에서 잘 처리되지만 말이다.
‘잘하고 계시겠지?’
김미소는 지구에 남겨진 또 다른 부사장 걱정을 잠깐 만에 털어내고는, 수호를 보며 미소지었다.
“첫 입장 때만 그런다고 하셨죠. 사장님은 지구의 관리자시니 타 행성에 침입하신 걸로 되셨다고 했던가요?”
“그렇게 생각했지. 근데 말이야.”
수호는 어쩌면 처음부터 모든 걸 다시 생각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여겼다.
“던전이 지구의 파편화된 기록이란 것도 야누르가 알려줬지.”
“그 요정왕이란 분이요?”
“맞아. 근데 거짓일 수도 있겠어.”
신계엔 지성체라고 할 만한, 대화가 통하는 신이 둘 있었다.
야만왕 쿠로와 요정왕 야누르.
쿠로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수인족들의 신이라, 신계의 역사 같은 걸 잘 알지도 못한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과거의 마석을 흡수해 만 년을 가뿐히 뛰어넘는 삶을 경험한 인간신인 자신이 쿠로보다 더 많이 알고 있을 수도 있다.
요정왕 야누르는 신계의 태초부터 존재해온 자.
가장 많은 역사를 보았겠지만, 녀석이 자신에게 해온 말들이 모두 진실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멍청하게 믿어버렸지.”
상상도 하지 못했다가 정확한 표현이리라.
어쩌면 신계가 신계가 아닐 수도 있고, 지구가 신의 요람이 아닐 수도 있다.
아루카와 구천이 그의 말대로 지구를 돕기 위한 보조 행성이 아닐 수도 있고…….
아무튼 그가 한 모든 말을 잊으려 애썼다.
새롭게 알아간다.
그리고 김미소의 역할이 그 여정을 옆에서 함께하며 관찰하고 분석하며 의견을 제시하는 거다.
수호는 신의 관점으로.
미소는 지구인의 관점으로.
“가지.”
“네.”
지구와 아루카를 연결시킨 첫 게이트다.
지구 쪽인 자카르타 시티는 주변이 꽤 번화한 데 반해, 아루카 행성의 게이트 주변은 조금 휑한 느낌마저 들었다.
몇 개의 커다란 창고와 몇몇 엘프들과 인간 상인들이 있을 뿐인 모습이다.
게이트 하나를 사이에 한쪽은 관광객을 위한 공항, 다른 한쪽은 화물 운송을 위한 공항 같았다.
방명록 작성 같은 간단한 절차가 끝나고, 허술해 보이는 울타리를 넘어 작은 교역 마을을 벗어났다.
작은 샛길 따라 멀지 않은 곳에 거대한 성체가 하나 보였다.
성은 키 큰 나무들을 두르고 있었다.
“가즈라.”
“……네에.”
가즈라는 마뜩찮은 얼굴로 걸음을 빨리해 수호 옆에 다가왔다.
“저기가 너희 부족인가?”
“그렇습니다.”
“왕따시킨 애들이 저기 살아?”
“…….”
대답을 삼킨 가즈라가 역으로 질문을 했다.
“하실 말씀이 무엇인지요?”
“응?”
“용건만 마치면 돌아갈까 합니다.”
“호오.”
간략하게 말해, 할 말만 빨리 하란 소리다.
“천천히 하자.”
“후우…….”
가즈라의 옅은 한숨에 수호가 웃었다.
“너 없다고 지구 안 돌아가는거 아니다. 이번 여정까지만 함께해.”
“…….”
처음부터 할 말이 있다는 건 핑계였던 모양이다.
눈앞의 신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가즈라도 바쁜 몸이다.
한가하게 유랑하듯 보낼 시간은 없다.
“적어도 여정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알아야겠습니다.”
“그렇지.”
수호는 자신을 어려워하면서도 할 말은 다 하는 가즈라 같은 사람이 좋았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들은 절대 하지 못하는 일들을 이런 자들은 한다.
“신전에 갈 거다.”
“……!”
“야누스라고 했던가?”
엘프들의 어머니 이름이다.
그분의 신전엔 왜…….
“얼마 안 걸려. 용건은 그때 전하지.”
가즈라는 곰곰히 생각해봤으나, 어차피 자신에게 선택권 따위는 없음을 인정했다.
“그리하겠습니다.”
조금 포기하니 마음이 편하다.
복잡하던 생각이 한결 가벼워졌다.
타의에 의해서이긴 하지만 어쨌든 한가로운 유람 시간을 얻었다.
‘9년 만인가?’
9년 만에 찾은 고향 행성.
게이트를 코앞에 두고도 9년 동안 한 번도 발걸음하지 않았던 고향은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저 멀리 보이는 부족의 성은 변함없는 모습 그대로로 보였지만, 그 앞까지 이어지는 길의 옆으로 펼쳐진 드넓은 들판은 곡식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멀리서 보면 갈대밭처럼 보였으나, 가까이에서 보니 낱알이 꽉 찬 벼들이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시야가 닿는 들판 모두 벼밭이 가득이다.
“엘프들이 농사를 좋아하나 봐.”
“필요에 의해서겠지요.”
아루카 행성의 엘프들은 넓고 비옥한 땅에 인간들이 주식으로 삼는 여러가지 농작물을 심고 키워 무역품으로 쓴다.
인간들은 몬스터를 사냥해 얻은 혈석으로 거래한다.
인류가 몬스터로 인해 영역이 도시 단위로 쪼그라들어 여러 농경지가 황폐화되었지만 아직까지도 식량난을 겪지 않는 이유다.
수호를 선두로 한 일행들은 길게 걸으며 서로 잡담을 나누었다.
“흠, 신기하군요.”
일행 중 유일한 구천 행성 출신 무림인인 당진철이 벼밭을 보며 눈을 휘둥그레 떴다.
“형제, 무엇이 신기한가?”
“어째서 아루카 행성은 논농사를 짓지 않으시오?”
고향 행성에 돌아와서일까?
어딘지 모르게 들떠 보이는 엘프 알리어드와 로매드는 이방인 친구들에게 엘프들의 농사 기술에 대해 떠벌렸다.
“허허허, 내 지구에 오기 전까진 논이 무엇인지도 몰랐다오.”
“맞소. 식물은 땅에 자라는 게 이치요.”
그들의 말대로 벼는 물이 아닌 땅에 심어져 있었다.
“허, 어찌 물길도 없이 이리…….”
논처럼 물을 가둬 키우는 게 문제가 아니라, 대충 훑어봐도 어디 수로 하나 없다.
풀도 자라기 힘들어 보이는 땅에 벼들이 잘도 자란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지나가며 낱알을 훑어보니 꽉 찼다.
대풍도 이런 대풍이 없다.
“물이 없긴 왜 없소?”
“저기 보시오.”
로매드의 손가락을 따라가 보니 엘프 하나가 물의 정령을 소환해 비를 내리고 있었다.
“허, 참. 요술이 따로 없군.”
이리저리 잡담을 하며 걸으니 성채까지 금방이었다.
엘프들은 세계수를 중심으로 부족이 모여 산다. 그리고 그런 부족은 꼭 성을 쌓아 두고 있다.
드래곤과 오크들의 침공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던가?
수호 일행이 다가오는 것을 멀리서부터 경계하고 있던 엘프 문지기가 일행을 둘러보다가 깜짝 놀랐다.
오랜만이긴 한데 몰라볼 수가 없는 인물이 찾아왔다.
“이게 누구신가?”
문지기의 시선은 가즈라에게 고정되어있었다.
놀람의 표정은 금방 사라지고, 이내 냉막한 분위기가 얼굴로 퍼졌다.
“부족을 배신한 대마법사께서 우리 주울 부족 성엔 어인 일이시오?”
“…….”
가즈라의 얼굴은 잔뜩 굳어 있었고, 수호는 그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지나갑니다.”
“……?”
다른 문지기가 앞을 가로막고 나서야 수호의 발걸음이 멈췄다.
“왜?”
“……!?”
문지기 엘프는 너무 황당하여 순간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문지기가 수상한 외부인을 막아서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
불청객이라면 응당 신원과 방문 목적부터 밝혀야 하거늘.
문지기가 호통을 치려는데, 상식과 지성을 겸비한 인간의 목소리가 울렸다.
“저희는 수호 길드에서 왔어요. 이분은 수호 길드장입니다.”
드워프 융이 김미소의 말을 보탰다.
“인간들의 신이기도 하시지.”
엘프 알리어드가 그 말을 받았다.
“가이아 부족의 족장이기도 하시오.”
엘프 문지기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다른 건 다 떠나서, 부족장이라고?
부족의 탄생은 세계수의 탄생으로부터 비롯되고, 족장이란 의미는 세계수의 선택을 받은 자란 뜻이다.
하이엘프보다 더욱 고귀한 자.
적어도 자신들이 함부로 대할 인물은 아니다.
“부족장님께 알려라.”
“네에!”
문지기 하나가 급히 숲으로 뛰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