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45)
46화 수호시티
부으으응.
“거 운전 잘하네요.”
“넵, 군대를 운전병으로 갔다 왔습니다.”
“요즘도 군대 가요?”
“당연하죠. 5년 전부터 모병제로 아예 바뀌어서 이제는 안 가지만요.”
대격변 이후 10년이다.
초창기에는 계엄령에 예비군까지 모조리 동원해 육군 전력으로 어찌 난리를 피웠으나, 엄청난 사상자만 발생시켰다.
도시방벽을 건설한 뒤 최후전선으로 삼은 이후로, 군대의 주력은 육군이 아니라 공군과 전차부대가 되었다.
타격점이 정해지면 일시에 퍼붓는 포탄세례야말로 지금 국방력의 꽃이다.
“저기 세워줘요. 내 동생 오라고 불러놨으니까.”
“넵, 와아! 이게 사진으로만 보던 나무성이군요.”
“사진으로 봐요?”
“네, 인터넷에서 엄청 유명합니다. 아참, 동수티비 요즘 왜 방송 안 하나요? 저 초창기 구독자인데.”
“요즘 던전 다닌다고 바빴나 보네요.”
“하하, 수호 길드의 성장을 보는 맛이 있습니다. 언제나 응원하겠습니다.”
“고마워요. 다 왔네. 그럼 조심히 가요.”
“넵.”
성의 입구.
아치형으로 자란 나무줄기들과 쭉 내려오는 넝쿨과 버들잎 때문에 꼭 테마파크의 입구처럼 느껴졌다.
성벽을 기점으로 황무지와 도로뿐인 밖과 숲길로 꾸며진 안이 별개의 세상으로 나뉘었다.
차에서 내려 신기한 듯 한참 구경하던 김 대리는 숲길 사이에서 픽업트럭 한 대가 오는 걸 봤다.
그 모습이 묘하게 평화로워, 꼭 동화 속 세상을 보는 듯했다.
“어? 형 웬 차예요?”
“던전 갔다 온다더니 웬 차를 사 왔어?”
“와, 이거 엄청 비싸던데.”
모델 V를 보며 호들갑 떨던 동수와 준호가 그제야 김 대리를 발견하곤 머쓱하게 고개를 숙였다.
“누구……?”
“아! DGB 비서실 근무하는 김주호입니다.”
“아 예, 근데 여긴 왜……?”
“아! 이건 저희 그룹에서 지난번 던전 관리 소홀에 대한 사죄의 의미로 드리는 선물입니다.”
“아, 네.”
“들어가자. 김 대리도 잘 가요.”
“넵, 안전운전하십시오.”
꾸벅 고개를 숙이는 김 대리를 뒤로하고 동수와 준호가 투닥거렸다.
“제가 몰게요.”
“아냐, 내가 먼저 타봐야지.”
“뭐하냐?”
수호의 핀잔에 동수가 재빠르게 와서 아부했다.
“아니, 큰형님. 작은형님은 픽업트럭 있잖아요. 저 차는 제가 운전하게 해주시죠.”
“그래. 네가 몰아.”
“아싸! 충성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이미 모델V를 사고도 남을 정도로 돈을 모은 동수지만, 저게 사고 싶다고 아무나 사는 모델은 아니다. 생산 대수도 적고, 세계적인 셀럽이나 큰 회사에만 판매하는 차다.
그렇게 떠나는 셋을 보곤 홀로 남은 김 대리는 머리를 긁적였다.
“이거 미리 콜 부를걸 그랬나.”
왜 되돌아갈 때 생각을 못했을까?
왜 실장님은 픽업할 차량을 같이 보내지 않았을까?
“쳇, 실수 한 번 한 것 가지고.”
아랫사람들에게 예의바르게 행동하는 천대명 실장이지만, 그게 어디 아랫사람의 입장에서야 그렇겠는가?
칼 같은 성격에 하루하루가 불안할 뿐이다.
이건 분명 오늘 있었던 자신의 실수에 대한 벌이 틀림없다.
“예, 기사님. 여기가 어디냐면요…….”
*
나무 성으로 둘러쳐진 거대한 보금자리.
중앙에는 숲 전체를 돌아볼 수 있는 큰 나무가 자라 있었다. 평소 나무정령들이 가장 많이 달라붙어 있는 나무는 수호가 자리를 비울 때에도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다.
그 나무 아래 평상이 수호의 자리.
그리로 가는 사이 포탈 주변엔 여전히 사람들이 많았다.
“이거 아직도 안 없앴네.”
“오셨어요?”
귀환자관리팀 김미소는 수호가 왔다는 소식을 듣곤 다가왔다.
“조사가 진행중이니까요.”
“별거 없다는데도 뭘 그리 꼼꼼히 봐요?”
“……저도 그리 생각하지만, 포기에도 이유가 필요한 법이니까요.”
“뭐, 알아서 해요. 새로 구해준다는 사냥터는요?”
“레벨3 다섯 곳, 레벨4 두 곳, 레벨5 한 곳이에요. 언제든 이용하세요.”
모두 인근 2시간 이내의 필드에 위치하는 던전들이다.
조사를 위해 앞마당 던전을 내줬으니 수호 길드의 레이드 장소를 마련해 줘야 했다. 입장료도 받지 않으니 딱 사냥하기 좋았다.
“좋네. 그럼 수고해요. 근데 노랑머리는?”
“복귀했죠.”
본래 그녀의 소속은 감지팀.
차원 균열을 조기에 감지해 던전 발생지를 특정하는 것이 본래의 업무이다. 혹시 사람들 눈에 띄지 않은 던전이 터져 한 번에 몬스터가 쏟아지는 브레이크를 막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뭐, 그럼 수고하시고.”
수호가 중심부 나무 근처에 다다르니 제법 많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있었다.
“음?”
“오셨습니까?”
명진이 다가와 합장하는데, 그의 뒤로 반짝이들이 많이 서 있었다.
반짝이들 중 중년이 앞으로 나와 합장했다.
“명조라 합니다. 사제의 말을 듣고 이리 오긴 했으나, 폐가 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박수호입니다. 잘 오셨습니다. 앞으로 한 가족이니 잘 지내봅시다.”
“갈 곳 없는 저희를 거둬 주셔서 감사합니다.”
명조 스님이 다시 합장하자 그 뒤에 병아리처럼 서 있던 동자승들이 꾸벅 고개를 숙이며 합장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크큭.”
인사 한 번에도 저들끼리 장난치는 모습에 수호가 피식 웃었다.
제법 소년티가 나는 아이도 있었고, 건우 또래의 아이들도 있었다. 개중에는 중년 여인들이 안아들고 있는 갓난아이도 있었다.
“저 세 분은 저희를 도와주시는 보살님들입니다.”
명진이 그동안 시간만 나면 사형을 찾아갔던 것도, 특별한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일손이 모자라서였다.
동자승 틈에 건우도 끼어 놀고 있었는데, 수호는 그렇게 환하게 웃는 조카의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잠깐의 휴식 와중에 수호의 평상으로 길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자잘한 일들이야 준호가 결정한다지만, 큰 계획은 길드마스터인 수호가 세워줘야 했다.
“형. 이거 구획부터 나눠야 해.”
준호는 지도를 가져와 펼쳤다.
수호는 나무를 중심으로 둥글게 자리잡은 숲을 짚었다. 한 달간 열심히 키우고 세운 나무성이다.
“여긴 다 야수들 쉼터야.”
나무성 유일한 출입구 쪽을 짚었다.
어차피 성내에서만 살긴 힘들다. 시티를 오갈 일이 많으니 입구 쪽이 나을 테다.
“사람들 지낼 건물은 여기다 짓자.”
수호는 입구 쪽 나무성 입구에 작은 동그라미를 쳤다.
본래의 성에 작은 동그라미가 붙어 눈사람 같은 모양이었다.
“새로 방벽 칠 테니까 여기에 건물들 지어. 주거지로 정하자.”
본래의 숲은 야수들의 사육장으로 쓰고 새롭게 사람들이 지낼 공간을 만들기로 했다.
“알았어. 혈석 발전소도 여기 지어야겠어. 수도시설은…….”
“나머지 알아서 해.”
수호는 큰 그림만을 그렸다.
이 성과 숲을 이루는 데 한 달이 걸렸지만, 성 밖에 새로운 작은 방벽을 치는 건 며칠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간 레벨이 어마하게 오르며 조화력이 전과 비해 몰라보게 성장했으니까.
“그보다 여기에 애들 오지 않았어?”
“어? 아무도 안 왔는데…….”
“건축사무실에서는 실측하러 내일 온댔습니다.”
“아니, 사람 말고 늑대들.”
수호의 감각에는 분명 이들의 존재가 느껴졌다.
“일늑아!”
“컹, 컹!”
수호의 부름에 나무 사이를 헤치고 덩치 큰 늑대가 뛰어와 엎드렸다.
“애들 불러봐.”
“아우우우우!”
일늑이 길게 울부짖자 여기저기서 숲길을 헤치고 늑대들이 뛰어왔다. 그 수가 무려 22마리.
일늑부터 이십이늑까지!
“아유, 귀여운 것들.”
길들인 지 얼마 되지 않아 일늑이나 이늑이처럼 덩치가 크진 않지만, 지구의 늑대에 비하면 대형이다.
“와! 언제 이만큼 들어온 거지?”
관리국에서 파견 온 기동대가 여기저기에 많이 있었는데도, 늑대들은 그들의 눈에 띄지 않게 몸을 잘 감추고 저마다 흩어져 있었다.
“앞으로 식구들하고 사이좋게 지내라.”
“아우우우!”
늑대 무리의 하울링에 동수가 깜짝 놀랐으나 곧 눈이 초롱해졌다.
‘이거 그림 좋네.’
수호가 던전 귀환자임이 밝혀지자마자 조회수가 급감하긴 했지만, 동수티비는 여전히 구독자도 많고 인기 있는 채널이다.
우르르 따르는 늑대들의 모습이 꽤 근사하게 보였다.
“한동안 바쁘겠네요.”
내일이면 건축사무실에서 실측도 오고, 기반시설에 거주시설까지 공사를 시작하면 며칠은 북적거릴 것이다.
‘보기 좋군.’
늘 바래왔던 일이다.
종의 외로움까지 느꼈던 수호다.
다른 인간, 인간이 아니라도 문명의 어떤 누구라도 만나고 싶었는데 뜻하지 않게 가족도 만나고 부하들도 여럿 얻었다.
‘나도 무리를 이뤘다.’
친구들을 봤다면 자랑했으리라.
“좋은 날이야. 한잔하자.”
다 먹고살기 위해 하는 일 아니겠는가?
생존이 별거 없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지키면 된다.
죽음에 대해 고찰했던 1000년이 지나니, 삶에 대해 감사할 생이 찾아오지 않았나.
해가 지고, 임시로 지어진 천막을 찾아 동자승들이 사라지고 어른들이 모여 평상에 차려진 술상에 앉았다.
명진이 흐뭇한 얼굴의 수호를 보며 한마디 했다.
“기분이 좋아 보이십니다.”
“좋지. 기반을 닦았으니.”
명진의 눈에는 호감이 가득했다.
“절이 불타고 스승님이 돌아가시던 그날, 소승은 처음으로 악심을 품었습니다. 제 손으로 생명을 해쳤지요.”
“…….”
“수라가 되어도 좋다 생각했습니다. 여기 맺힌 응어리만 풀 수 있다면 끝에 구천지옥이 기다리고 있다 해도 마땅히 수라의 길을 걸으려 했습니다.”
명진이 가슴을 쿡 두드렸다.
“언제나 저를 보살펴주던 큰 사형이셨습니다. 아버지 같은 분이셨습니다.”
할아버지 같던 스승님과 아버지 같던 사형이다.
“사형이 저를 다스려 주지 않으셨다면, 혈기 하나로 벌써 던전에 갇혀 마귀들 손에 명이 다했을 겁니다.”
마음에서부터 무너져 스스로 파멸하려는 명진을 붙잡은 건 큰사형 명조 스님이다.
트라우마로 남은 사건은 벌써 몇 해나 지났고, 수양에 정진하며 마음을 다스린 명진이 다시 봉을 잡은 이유는 다름 아닌 돈 때문이었다.
제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 세상이 되자 더 이상은 공양을 받아 먹고살 수가 없었다. 명진은 용병이 되어 돈을 벌고 절을 재건해 사형과 동자승들의 보금자리를 만들고, 봉림사를 재건해 스승님의 유지를 이으려 했다.
“스승님은 늘 중생을 도우라 했지요.”
열둘이나 되던 사형제들이 저마다의 뜻으로 스승님의 유지를 받들었으나, 이제 살아남은 건 둘뿐이다.
“큰사형은 어린 중생들을 보살피는 일을 업으로 여겼습니다. 저는…….”
뜻이 없었다.
명상을 해봐도, 되돌아보고 되돌아봐도 마음에 남은 건 분노와 화뿐이었다.
“시주를 만나고 뜻을 세웠습니다.”
명진의 얼굴은 사뭇 비장했다.
자신만의 길을 정했다.
“이 손으로 하나의 악귀라도 더 죽여, 중생을 돕겠습니다.”
명진이 수호의 잔에 막걸리를 한잔 따라주었다.
“시주의 곁에서 기꺼이 수라의 길을 걷겠습니다.”
유일한 걱정이었던 사형과 봉림사의 재건도 이젠 이뤄진 것이나 다름없다.
분위기가 달아오르자 동수도 한잔 내밀었다.
“형님 건배사 한번 하시죠?”
수호가 사람들을 쭉 둘러보더니 막걸리잔을 들었다.
“잘 먹고 잘 살자.”
거창한 이유가 어딨나.
한귀퉁이 땅 차지하고 잘 먹고 잘 살 뿐이다.
“에이, 형님 뭔가 거창한 그런거 없습니까?”
동수의 말에 수호가 그저 웃었다.
잘 먹고 사는 게 얼마나 힘든지 모르네.
*
한창 즐거운 술자리가 이어지는데 김미소가 다가왔다.
“제가 껴도 되는 자리인가요?”
“이리와, 한잔 받아요.”
삼삼오오 떠들던 사람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모아졌다.
“한잔만 마시고 갈게요. 캬.”
한잔 받아 마신 그녀가 용건을 말했다.
“토들러 박사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한번 만나보자네요.”
토들러 박사에게 보냈던 메일에 대한 답신이 왔다.
수호를 영국으로 초청한다는 메일에 수호가 눈을 반짝였다.
차원 에너지 측정기를 만든 사람.
혈석발전기를 만든 사람.
차원산업시대를 연 과학자.
“드디어 왔군.”
그라면 알지도 모른다.
이 차원균열의 비밀에 대해.
수호가 지내왔던 행성과의 연결에 대해.
등 돌리고 돌아섰던 친구들과 다시 조우할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