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66)
67화 새 영역 (2)
철제 테이블 하나와 의자 두 개가 전부인 방에 아키코가 무료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딸깍.
문이 열리고 들어선 초능관리청장 다케오를 보는 아키코의 눈빛이 사나와졌다.
“당신, 실수하는 거야.”
“암고양이가 아직 기가 살았군.”
“지금이라도 되돌릴 수 있어.”
“아, 물론이지. 하지만 조금 더 후가 되겠지.”
다케오는 능글맞게 웃으며 테이블 위에 팔찌 하나를 꺼내 올렸다.
“……!?”
“익숙한 물건인가 봐? 놀라는 걸 보니.”
익숙할 수밖에. 그녀의 아공간 아티팩트니까.
평소 차고 다니던 것도 아니고 몰래 숨겨놓았는데 어떻게 찾은 거지?
“네년이 입을 열지 않는 탓에 고생 좀 했지.”
“…….”
“클클, 그리 눈알 굴릴 것 없어. 이미 내용물은 다 꺼내봤으니까. 아주 재밌는 노트가 있더군.”
“그냥 일기야.”
“워어, 정확히는 미래일기라고 해야지.”
아키코는 눈을 질끈 감았다.
“네년도 이성우를 믿지 않았지?”
“아니야!”
“그러니까 따로 그런 노트를 만들어서 기록한 것 아닌가?”
“아니야! 그건 만일을 대비한 기록이야.”
“흥!”
다케오가 다짜고짜 아키코의 턱을 잡고 올렸다.
“히로가 널 곁에 두는 건 이 얼굴 덕이지?”
히로의 비서이자 연인.
아키코는 전 일본, 아니 동양인을 모두 모아도 독보적일 정도의 아름다움을 타고났다.
“아니야.”
“아니긴, 모두가 아는 사실이야. 히로가 거둔 사람 중에 네년만큼 자질이 떨어지는 사람이 없지.”
아키코의 현재 등급은 A랭크.
그녀보다 더 늦게 히로의 팀에 합류한 제자들도 모두 S급이 되었는데, 아직도 그녀는 A랭크다.
랭크야 몬스터 사냥만 많이 하면 올릴 수 있지만, 문제는 타고나는 전투감각이나 스킬 조합이다.
‘팀에 민폐가 되고 있어.’
전투에 소질없는 사람을 억지로 S랭크까지 올려 봐야 팀웍만 망친다. 이성우가 아키코를 감쌀수록 팀원들과 사이가 나빠진다.
그녀 스스로 재능없음을 알고 레이드에 빠진 지 몇 해가 지났다. 그녀가 3년 전 A랭크를 달성하고도 아직 그대로인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그 뒤로도 쭉 히로의 팀에 속해 있긴 했지만, 하는 일은 정보 수집이나 비서의 일에 가까웠으니까.
“노트는 히로도 모르고 있었겠지?”
“…….”
“클클, 거 봐. 앙큼한 년.”
“이거 놔.”
“흥!”
다케오가 아키코의 얼굴을 놓고 의자에 앉았다.
노트엔 그간 히로와 이야기하며 담긴 미래 내용들이 담겨 있었다. 어떤 사람이 미래의 영웅이 되는지, 어떤 이가 악당이 되는지.
“이런 줄도 모르고 국민적 영웅이니 뭐니 떠받들었군.”
히로의 사람 보는 눈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의 훈련법이 그들을 단련시켰다고 생각했다.
‘비겁한 녀석.’
그게 아니었다.
녀석은 포텐이 터지기 전의 인재들을 싹쓸이해서 자신이 키워낸 것처럼 거들먹거렸을 뿐이다.
가만히 놔둬도 알아서 성장해 일본의 미래가 되었을 이들이 히로의 팀에서 그를 존경하며 따르게 만들려 했다.
“네년 덕에 일이 좀 더 수월해졌지만, 가장 중요한 게 빠져있더군.”
아키코가 작성한 미래일기엔 ‘최후의 날’까지의 굵직한 사건들이나 몇몇 인물에 대한 프로필, 미래에 나타나게 될 몬스터 정보 등 쓸 만한 게 많았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정보가 빠져있었다.
“회귀의 돌에 대해서는 왜 언급되어 있지 않지?”
결국 찾는 게 저거구나.
아키코는 피식 웃었다.
“모르니까.”
취조실의 유리벽면 너머에 진실감정의 스킬을 가진 직원이 보고 있다. 다케오의 귀에 끼워진 이어셋에서 그의 말이 흘러나왔다.
-진실입니다.
“칙쇼!”
이성우. 이 천하의 음흉한 새끼는 제 여자에게도 회귀의 돌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도 없었다.
빌어먹을 놈.
몇 번이나 더 취조해봤으나 아키코에게서 더 얻을 건 없었다.
“흥! 성우가 날 구해줄 거야.”
“클클, 꿈도 큰 년이군. 네년은 갇힌 채 종말의 날을 맞이할 게다.”
초능관리청.
초능력자들을 가둬두는 특수감옥이 있다.
갇힌 채 한 달만 지나도 투항하리라.
예쁘장한 얼굴 말고는 별 쓸모없지만 한때 이성우의 여자였다. 그가 잠적한 이상, 아직까지 이용가치는 충분했다.
“어디에 붙어야 그 반반한 얼굴이라도 들고 다닐지 한번 잘 생각해보라고.”
재능 없는 년의 의지는 얼마나 갈까?
다케오는 한 달이 지나기 전에 그녀가 투항할 거라 봤다.
특수결박된 아키코가 끌려가고, 다케오는 미래일기를 다시 펼쳐보며 인상을 썼다.
벌써 몇 번이나 분석해봤지만 회귀의 돌에 대한 실마리는 없다.
“그놈이라면 가지고 있을 텐데.”
이성우가 자신의 아공간에 보관하며 이따금씩 꺼내보는 노트가 있다고 했다. 회귀자 본인이 작성했다면 필시 정확한 정보들이 가득할 것이다.
아키코가 그의 말을 받아 적은 이 허술한 미래일기가 아니라.
“쯧, 그래도 조선은 명을 다했군.”
전쟁 위협까지 갈 것도 없다.
아키코의 기록에 따르면, 한국은 의정부에 생긴 7성 던전에서 S급 각성자 5명을 잃을 것이다. 이후 차례로 생겨나는 7성 던전을 감당하지 못해 서울이 무너지고, 부산이 무너진다.
한반도는 몬스터들이 점령하고, 한국인들의 탈출이 일어난다.
제주도에서 작은 정부를 이어가지만 그 과정에서 대부분의 국민들이 버려지고, 한반도에서 탈출한 각성자들은 새로운 둥지를 틀 것이다.
중국이 무너진 지금, 그 역할은 일본이 맡게 될 것이다.
“클클, 민족반역자인 줄 알았더니 이런 흉계를 꾸미고 있었을 줄이야.”
이성우는 그렇게 탈출한 한국인 각성자들의 일본 이주를 돕고 자신의 세력 기반으로 만들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이성우의 잠적으로 모든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고, 아키코의 미래일기를 통해 다케오가 알게 됐다.
“히로. 좋은 선물을 주고 가는군.”
조선이라는 나라는 결국 일본의 지배를 받게 되어있다. 알아서 망국이 될 것이고, 인재들이 몰려와 개를 자처하리라.
대일본제국의 앞날이 밝다.
*부산.
해운대구의 편의점.
“2만 9천 원입니다.”
“여기요.”
20대 남자가 내민 카드는 체크카드의 역할을 함께 하는 각성자 등록증이었다.
이우성 C등급
“와우, 엄청난 분이시네요.”
일반인들에게는 하위 랭크인 E, F야 일반인들도 브로커를 통하거나 안전한 레벨 1 던전 위주로 돌다 보면 가능하기에 도전해볼 만한 경지다.
하지만 D등급부터는 본격적으로 용병으로 활동하며 몬스터를 사냥했다는 의미.
그만큼 평화를 위해 기여했다는 의미이니, 시민들의 존경을 받을 만한 위치였다.
이우성은 봉지 하나를 쥐고 털레털레 걸어 해변에 앉아 바다를 보았다.
여긴 대격변 이후에도 그리 달라진 게 없다.
오히려 더 화려해진 빌딩들, 여전히 아름다운 해변, 여유롭게 산책하거나 물놀이 하는 사람들.
‘지금 많이 즐겨라.’
최후의 날이 오면 저런 여유도 끝이다.
피로 물든 바다에서 해수욕하는 정신 나간 놈은 없을 테니까.
그는 샌드위치를 다 먹곤 휴대폰을 꺼내 기사를 체크했다.
굳이 박수호라는 키워드를 넣을 필요도 없었다.
기사 란의 어떤 걸 눌러도 녀석의 기사니까.
“큭, 어이없는 놈.”
내용은 더 가관이다.
E급과 D급을 데려갔다.
짐꾼 수준의 둘을 데리고 가서 솔로 레이드?
자신감 하나는 대단한 놈이다.
놈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규격 외의 힘을 내는 녀석이니까.
놈의 활약이 대단할수록 기대감이 무럭무럭 자란다.
‘네놈의 기연을 다 먹어주마.’
회귀 후 한층 더 업그레이드될 자신의 능력이, 위치가, 명성이!
반지가 잠깐 빛나고 허공에서 노트가 나타났다.
스마트폰으로 기사를 몇 개나 보던 그가 한참 고민하다 노트에 뭔가를 적어 넣었다.
이우성은 한참이나 그렇게 해변에 앉아있었다.
*수호 길드.
숲 구경을 끝낸 관리국장과 직원들이 박준호의 안내를 받고 있었다.
“오셨으면 전화라도 주시지 그러셨습니까?”
“허허, 초대받고 온 것도 아닌데 기다려야죠.”
“일단 가시죠.”
길드 본부를 지나 곧장 동문으로 향했다.
슥삭, 슥삭.
“넘어간다!”
구구구구, 쿵!
곧게 쭉 뻗은 소나무가 모로 쓰러지며 굉음과 먼지를 풍겼다.
샤샤샥.
목수 한 명이 붙어 가지를 다 쳐내고 건조장으로 보냈다. 목재기둥을 쌓아둔 곳에 건조능력을 가진 각성자가 움직이며 부지런히 수분을 증발시켰다.
그렇게 기둥을 만들면, 목수들이 이리 깎고 저리 깎아 기둥을 세우고 보를 만들고 대웅전 건축에 한창 열중이었다.
일하는 목수들만 50명.
콘크리트 건축보다 배 이상 많이 걸리는 건축 시간을 각성자들이 달라붙어 획기적으로 단축시키고 있었다.
“저 나무들은 박수호 씨가 키운 겁니까?”
“예, 건축자재 구하기도 힘든 세상 아닙니까?”
건축목재야 대부분 수입에 의존했으나, 여기저기 몬스터가 출몰하지 않는 필드가 없으니 그쪽도 사정이 좋지 못했다.
목재 값이 비싸니 요즘 같은 세상에 한옥 건축은 사치 그 자체다.
하지만 수호는 묘목만 구해오면 순식간에 몇십 년 수령의 나무를 키워냈다.
허허 벌판인 벌판의 한쪽 구석에 키 큰 나무들이 쑥쑥 자라 숲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보면 묘한 위화감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근데 저렇게 막 잘라 써도 됩니까? 숲을 막 파괴해도 되는 건지…….”
국장의 걱정에 준호가 피식 웃었다.
“저희 형님이 엘프는 아니죠.”
숲을 좋아한다고 모두가 아끼는 건 아니다.
숲을 키우고 지키는 걸 사명으로 삼은 엘프들도 적당히 벌목해 목재를 쓴다. 그들은 나무 자체를 아끼는 게 아니라 숲을 키우는 것이니까.
수호는 스킬이 그렇다뿐이지 엘프의 사명 같은 게 있을 리 없었다. 그가 민감해하는 건 야수 쉼터와 길드 그 자체의 안전이다.
“그런데 이렇게 계속 공사하셔도 되겠습니까?”
“형님이 계속하라고 해서요.”
“…….”
준호는 수호가 던전을 클리어할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아, 저기 있네요. 스님!”
지어지고 있는 대웅전 앞에서 대목수와 이야기 중이던 명진과 명조가 동시에 돌아봤다.
둘이 천천히 다가와 합장했다.
“나무관세음보살.”
“아, 예.”
국장은 기독교인이지만 마주 합장해주었다.
인사가 오가고 일행은 대웅전 앞에 덩그러니 놓인 포탈에 다가갔다. 주변으로 오가는 목수들과 매우 가까운 거리다.
“으음, 조금 조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혹, 잘못 포탈에 진입이라도 하면 큰일이 날 텐데요.”
“그래서 소승이 이곳을 철통같이 지키고 있습니다.”
그 말이 아니지 않나?
철책은 아니더라도, 대충 바리케이드라도 쳐야 하는 거 아닌지.
“레이드에 나선 지 얼마나 지났습니까?”
“6시간 정도 지났네요.”
“으음.”
던전 규모 – 레벨 7 (7530)
남은 횟수 – ?88(662640)
브레이크 – 41. 23 : 59 : 21
대충 계산해도 하루에 두 번 클리어해야 소멸시킬 수 있다.
첫 공략이니 하루 정도의 시간 만에 나와 주면 상황은 많이 좋아진다. 이후에 공략 시간을 줄이면서 클리어하다 보면 던전 소멸 각을 잴 수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사람인 이상 혼자서 그 모든 걸 해낼 수는 없다. 이 던전은 무엇보다 브레이크까지 시간이 너무 짧아서 문제였다.
“수호 길드는 던전 소멸을 확신하시지요?”
“물론입니다.”
길드 공사가 한참이다. 조금도 피난 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관리국에서 적극 돕겠습니다. 지금 77특공대가 이곳으로 오고 있습니다.”
“77특공대요?”
“손진우의 부대입니다.”
“아.”
77특공대는 몰라도 손진우라면 알고 있다.
사람들이 입을 모아 진정한 애국자라고 칭하는 각성자다.
신라 길드에서 백지수표와 백지계약서를 내밀었음에도 거절하고 군인으로 남은 남자.
한국의 대표 각성자.
그가 온다는 건 던전 공략에 한손 보태겠다는 것인데.
“형님이 집안에 다른 이들을 들이는 걸 굉장히 싫어하십니다. 한번 여쭤봐야 합니다.”
“…….”
국장이 표정을 심각히 하고 말했다.
“박준호 씨 마음은 알겠습니다만, 이건 수호 길드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국가 재난상황입니다. 수호 길드에서 온전히 던전 클리어를 해낸다면 가장 이상적이겠습니다만, 만약 실패해 터진다면 어찌되겠습니까?”
“…….”
사전 정보 없는 몬스터 무리가 쏟아져 나올 것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습니다. 예상 여유시간은 하루.”
수호가 하루 만에 클리어하고 나와야 던전 클리어 각을 잴 수 있다.
그 이상이면 몇 번 더 클리어해내겠지만, 어차피 던전 브레이크를 막아낼 시간적 여유는 없다.
“하루 뒤 77특공대가 공략에 나서지요. 투트랙으로 나서는 겁니다.”
“으음.”
준호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온전히 던전의 소유권을 주장하기에는 던전의 규모가 너무 컸다.
“알겠습니다.”
그때 직원이 국장에게 말했다.
“77특공대 10분 뒤 도착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