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85)
86화 수호시티 (1)
전장 정리에 꼬박 하루가 걸렸다.
아직 몬스터 사체가 가득한 평야를 태우기 전에, 수호는 복지부장 이숙자가 깨어났다는 소식에 그곳을 찾았다.
“이모 일어났어요? 좀 어때요?”
“썩을 놈아. 또 어디 나당기다가 일 나봐. 그땐 아주 가만 안 둬.”
“하하, 알았어요. 나가더라도 애들은 남겨둘게요.”
“어휴, 이 늙은이 꾀어낼 땐 언제고, 맹 죽을 고생만 시켜. 내가 영감 코앞까지 갔다가 왔어.”
본래 서울에 남았어도 되었지만 건우가 눈에 밟힌 데다 수호가 설득하면서 수호 길드를 따라다니게 된 이숙자다.
“그래도 안 죽었잖아요.”
살아남았다. 그게 중요하다.
지극히 당연하다는 듯한 수호의 말에 이숙자가 픽 웃었다.
“그려, 탓해서 뭐혀.”
맞는 말이다. 더 탓해봐야 늙은이 꼬장밖에 안 된다.
“나 안 죽었응께, 그만 나가서 일 봐.”
수호가 바쁜지 이숙자도 뻔히 안다.
“대충 끝내고 왔어요. 어우, 배고픈데.”
수호의 너스레에 이숙자가 팔을 치켜들었다.
“이 몹쓸 놈이 늙은이를 놀려. 썩을.”
그 모습에 수호가 씩 웃으며 방을 나섰다.
“하하, 농담이에요. 나갈 테니 좀 더 쉬세요.”
조금 기운을 차린 모습에 수호가 안심하고 나가려는데 이숙자가 말렸다.
“어휴. 기다려봐. 내 밥 챙겨줄 테니까.”
“역시 이모!”
상처나 기력이야 진즉 나았다.
수호가 치료해줬으니까.
그냥 누워있었던 건 너무 놀란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서다.
“건우도 가자. 어유, 이 기특한 것.”
박건우는 할머니가 걱정되어 계속 옆에서 병상을 지켰다.
그 옆의 최수영 또한 마찬가지.
오전 9시의 식당은 이미 한차례 길드원들이 다녀가, 수호처럼 뒤늦은 아침을 위해 찾은 몇 테이블이 전부였다.
복지부의 이모들이 있지만 이숙자는 굳이 주방 안으로 들어가 수호의 밥을 준비했다.
“어유, 복지부장이 뭐하러 직접 해요. 저희가 할게요.”
“일들 봐. 늙었다고 놀면 뭐해. 죽을 날만 기다리는 것도 아니고.”
“아유, 성님도 참.”
가장 연장자이자 계급자인 이숙자를 따르고 있지만 다들 친구처럼 지내고 있는 이모들이다.
병실에 누워있을 때보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일을 하고 있는 지금의 이숙자 얼굴은 전보다 훨씬 생기가 감돌았다.
“저도 뭐 도울 거 없을까요?”
식당까지 따라간 최수영이 어슬렁거리자 복지부의 다른 이모들이 만류했다.
“아가씨는 또 왜 그려.”
“어휴, 손님이 이런데 들어오고 그려. 얼른 나가봐.”
“맞어, 우리가 할 테니까 손님은 그냥 자리 앉아유.”
“……네.”
유달리 손님이라는 말이 크게 가슴에 담겼다.
최수영이 식당 자리에 앉자 수호가 그녀를 보고 말했다.
“너도 고마워.”
“빚 갚는 거라고 했잖아요.”
“하하, 그래도 고마운 건 고마운 거지. 서울도 난리라던데 남 식구 챙기기가 쉽나.”
수호의 감사함은 진심이었다.
들어보니 서울도 난리였다는데 그 와중에 자신의 길드를 위해 와준 그녀 아닌가.
김미소야 어차피 13지부인 이곳에 있었다지만, 수영의 등장은 좀 뜻밖이었다.
그 순수한 감사인사에 최수영은 지난날 자신의 옹졸함을 반성했다.
“제가 더 고마워요. 두 번이나 목숨을 구했는데 진심으로 감사를 전하지 못했네요.”
“음? 그거야 당연한 거지.”
일부러 그녀를 구하러 간 게 아니다.
그냥 어쩌다 함께 위기에 빠졌고 탈출하는 과정에서 그녀도 구함 받았을 뿐이다. 두 번째야 그녀가 있는 줄도 몰랐는데 가보니 있었던 거고.
“어여, 드세요.”
“이야, 맛있겠네.”
그사이 나온 밥을 맛있게 먹던 수호가 물었다.
“이건 무슨 국이야?”
“오이냉국이에요.”
“오. 맛있다.”
지구로 돌아와 시간이 꽤 지났지만, 아직도 여전히 먹어본 음식보다 먹어보지 못한 음식이 많다.
그런 수호의 모습을 가만히 보는 수영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뭘 그렇게 빤히 봐?”
“아녜요.”
“으음.”
수호가 숟가락을 놓고 그녀를 마주보자 최수영이 흠칫 놀라 말했다.
“또 개소리할 거면, 미리 말하는데 그만둬요.”
“신성한 구애를 모욕하는 말이군.”
“…….”
수호는 피식 웃고는 하려던 말을 했다.
“내가 널 살린 건 지극히 당연한 거야.”
“……?”
“넌 약하고 난 강하니까.”
“…….”
최수영이 입술을 깨물었다.
“약자를 돕는 건 지극히 당연한 거야. 네가 도움을 받는 것도 당연한 거고.”
당연하지 않은 세상이다.
당연하게 여기기엔 최수영의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어떻게 당신처럼 강해질 수 있죠?”
일반적인 상식이 통하지 않는 강자다.
수호도 A등급, 수영도 A등급이지만 그 격차는 하늘과 땅만큼 컸다.
“으음.”
최수영의 진지한 표정을 보고 수호도 진심으로 답했다.
“계속 싸워 이기거나.”
“그리고요?”
“강자를 따르거나.”
“…….”
최수영이 그의 말을 곱씹으며 생각이 잠기자 수호가 다시 밥을 먹었다.
띠리리리.
휴대폰 소리의 주인은 건우였다.
“삼촌, 전화 받아도 돼요?”
“당연하지. 누군데?”
“아빠예요.”
“받아봐.”
건우가 휴대폰을 받았다.
– 건우야! 괜찮아? 어디 다친 데 없어?
“네, 없어요.”
– 하,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전 괜찮아요. 아빠. 삼촌이 좀 바꿔 달래요.”
전화기를 건네받은 수호가 물었다.
“던전 이제 나왔냐?”
– 어.
“빨리 와, 임마. 할 일 많아.”
– …….
“왜 대답이 없냐?”
– 가고 있는 중이야.
수송드론을 타고 오고 있으니 금방 도착할 터였다.
“어, 그럼 얼른 와.”
뚝.
수호가 휴대폰을 돌려주자 건우가 동그란 눈을 뜨곤 물었다.
“아빠가 뭐래요?”
“어, 온대.”
“네.”
오물오물 밥을 먹던 건우가 일어섰다.
“잘 먹었습니다.”
“왜 그렇게 급하게 먹냐?”
“배고파서요. 그럼 저 먼저 일어날게요, 삼촌.”
“어, 그래.”
건우가 자기가 먹은 밥과 반찬 그릇이 담긴 쟁반을 들려 하자, 근처에 있던 복지부 이모가 도와주었다.
“어이구, 우리 건우 밥도 잘 먹네.”
길드마스터인 사장의 조카이자 부사장의 아들.
복지부장이 거의 손자처럼 여기는 건우이기에 특별하기도 하지만, 애가 예의바르고 인사도 잘해 길드 내의 어른들에게 사랑받고 있었다.
후루룹.
“아, 새콤하니 맛있네.”
수호가 다시 밥을 먹고 있자 최수영이 상념에게 깨어나 핀잔했다.
“애가 아빠랑 전화하는 걸 왜 뺏고 그래요.”
“응? 내가 언제 뺏었어. 달라고 했지.”
“어휴, 그게 그거죠. 아빠랑 다시 전화하려고 급하게 먹고 간 거잖아요.”
“음, 그런 거야?”
“어휴.”
최수영이 한숨을 쉬었다.
왜 이렇게 사회성이 부족한 것인가?
하지만 영 이해 못할 것도 아니다.
정말 천 년을 홀로 외롭게 살다가 돌아왔으면서도 이 정도 사회적응력을 보이는 게 외려 대단한 일.
어쩐지 너무 완벽하지 않은 그의 모습에서 조금의 위안을 얻었다.
“밥이나 드세요.”
최수영도 그제야 자신의 앞에 놓은 밥을 퍼먹기 시작했다.
“여기 계셨네요. 앉아도 될까요?”
김미소가 다가와 옆에 앉자 박수호가 물었다.
“밥 먹었어요?”
“먹었죠.”
밥도 먹었는데 식당에 왔으면 자기에게 볼일이 있어서다.
“말해요.”
“어젯밤 정부에서 제안이 하나 왔어요. 이건 수호 길드가 제안을 받아들였을 때 얻게 될 것과 잃게 될 것들을 제가 분석하고 정리한 내용이에요.”
“이런 건 애들이 잘 보는데.”
수호가 쭉 정리된 글을 읽다가 물었다.
“그냥 말로 해줘요.”
“정부가 수호 씨 거취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어요.”
“이민 갈까 봐?”
“그렇죠. 서울은 지금 위기를 넘겼지만 세계적으로 상황이 아주 심각하거든요.”
7성 던전의 브레이크와 공략은 아직도 세계적으로 진행 중이다. 그중 대부분의 던전들이 소멸시키지 못해 결국 브레이크가 일어날 운명.
박수호의 가치는 일개 개인을 넘어선지 오래다.
“외국엘 뭣하러 가.”
실컷 기반 닦아놨는데 또 이사하란 말인가.
“저야 알죠. 그래도 또 정부 입장에선 불안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외국에서 어떤 제화가 보상, 명예, 권력을 약속해도 수호는 가지 않을 것이다.
박수호의 심리와 수호 길드의 사정을 분석해 내놓은 최고의 당근.
“대한민국 정부가 수호 길드의 자치권을 인정하기로 했어요.”
“지금하고 뭐가 달라요?”
“서울 13구역이 아닌 수호시티가 되는 거죠. 그리고 그 소속이 서울이 아닌 대한민국이 되겠죠.”
대한민국.
서울, 부산, 광주, 대구의 4개 대도시를 비롯해 포항, 전주, 안동, 제주도 4개의 중소도시로 이루어진 집합체.
아직도 하나의 정부를 구성하고 있긴 하지만, 실상은 도시국가의 연합이라 하는 게 옳다. 필드로 단절된 거리만큼 각 도시의 자치권은 강화되었고, 부산만 해도 공공연하게 독립을 논할 정도로 거대한 도시니까.
한국 정부가 부산에 취한 조치는 한 가지다.
잃을 바에야 먼저 준다.
모든 자치권을 인정하고 부산대도시는 그저 대한민국의 그늘아래 있었다.
지금 대한민국은 4개의 대도시, 4개의 소도시, 그리고 몇 개의 레벨 5 길드가 이룬 소도시들이 연합을 이룬 형태.
“레벨 0의 격상이 의미하는 건 하나예요. 모든 것에 대한 권리, 그리고 의무.”
도시국가 형태로의 분리.
지방정부의 설립.
모든 것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그리고 그 모든 것에 대한 의무도 진다.
“내 땅 내가 지켜라?”
잃게 되는 것은 크게 이야기해 한 가지.
국가의 보호다.
수호시티로 할당된 땅을 지키기 위해 국방부는 미사일은커녕 탄환 한 발도 쓰지 않을 것이다.
“쿨하고 좋은데? 각자 지키자?”
수호의 긍정적 대답에 김미소가 중요한 부분을 언급했다.
“중요 골자는 반대죠. 서로 돕고 살자.”
여전히 군대를 배치하고 수호시티 주변의 필드를 지켜줄 것이다.
그에 따른 방위비를 내도 좋고, 인력으로 갚아도 좋고.
수호의 무력을 빌리고 싶은 거다.
정부가 낸 궁여지책이다.
강대국들이 수호의 이민을 돕기 위해 준비한 선물꾸러미 경쟁에 이길 자신이 없기에, 뺏기기 전에 놓아준 거다.
이제 그들은 뺏을 수 없다.
대한민국은 그를 가지지 못했으니까.
“정부의 메시지는 하나예요. 당신을 인정한다. 친구로 지내자.”
“오호.”
김미소의 말이 마음에 드는지 수호가 턱을 쓰다듬었다.
“괜찮은데.”
“그리고 한 가지 제안이 더 있어요.”
“뭐죠?”
“절 고용해줘요.”
“음?”
수호는 물론 최수영까지 놀라서 김미소를 보았다.
“뭘 그렇게 놀라나요? 저 야망 있는 여자예요.”
길드도시의 출범.
국방부를 넘어서는 무력을 가진 길드다.
대격변 이후 불안정한 이 시대에 이보다 더 든든한 배경이 있을까?
수호가 씩 웃었다.
안 그래도 싸우는 놈만 있었지, 뭔가 컨트롤 타워의 역할을 할 인재가 없었다.
“좋아. 부하로 받아주지.”
“어머, 고마워요.”
다짜고짜 수호의 반말에 김미소가 살풋 웃었다.
“아직은 관리국 소속이니 일은 마무리해야겠죠. 이 제안서에는 먼저 처리해줘야 할 간단한 일이 적혀 있어요.”
“뭐지?”
“도망친 뱀파이어들의 섬멸이에요.”
정부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일이자, 이 제안서의 핵심.
김미소는 일부러 가장 나중에 이야기했고, 수호는 흔쾌히 넘겼다.
“별일 아니군.”
수호가 사인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금방 잡아오지.”
“든든하네요.”
온 서울이 걱정하는 일을 별거 아니게 처리하는 남자.
이 사람이 버티고 선 도시가 어찌 대도시로 성장하지 않을 수 있을까?
밤을 꼴딱 새운 하루의 고민이 무색하게 김미소의 마음이 설레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