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89)
90화 전력 강화 (1)
외벽공사가 마무리되는 데는 이틀이 더 걸렸다.
옛 의정부 지역을 아우르는 일대를 수호시티로 인정받았는데, 서울 쪽과 인접한 남쪽 경계는 정해져 있었지만 북쪽으로는 경계가 모호해 임시로 경계를 만들었다.
그래서 항아리처럼 동, 남, 서쪽을 두르는 해자가 둘러졌고, 북쪽으로는 이후 어디까지 경계를 지을지 명확하지 않아서 그냥 나무로 된 외성벽만 두었다.
아직까지도 북에서 내려오는 몬스터들이 간간히 출몰하는지라 준호나 재식이 간간히 나가서 연습 삼아 사냥을 다니기도 했다.
현재 위태로운 만주국과 북한 상황을 생각하면 언제 대륙발 몬스터 웨이브가 닥칠지 알 수 없었기에 북쪽으로 방비를 튼튼히 해야할것 같지만 수호는 자신만만하게 열어두었다.
“앞으로 필드 사냥은 이쪽으로 간다.”
사냥감이 알아서 몰려와준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내성벽과 북쪽 외성벽 사이 거리는 불과 100미터.
뻥 뚫린 북쪽 성문은 자신감의 표현이자, 야수들이 출입하며 간간히 먹이를 사냥해 먹는 통로다.
남문과 북문의 단 두 곳의 출입구를 가진 외성벽이 완성됨으로써 수호시티의 경계가 확정되었다.
김미소는 도시구획 정리계획에 착수했고, 수호는 북문을 통해 정찰에 나서려했다.
막 떠나기 전 반가운 얼굴이 찾아왔다.
“일거리 없어서 짤렸으니 받아줘요.”
노랑머리 최수영이 뚱한 얼굴로 서 있었다.
관리국 소속 감지팀에서 활약해 온 그녀다.
최근 필드의 던전을 미리 발견하는 게 그리 큰 의미가 없는지라 실제 감지팀의 역할이 축소되고 있긴 했지만, 그녀의 능력을 생각하면 짤리진 않았을 것이다.
A급에 오르며 실력이 눈에 띄게 늘어, 어느 공격대를 들어가도 에이스로 받을 인재다.
하지만 그 변화가 어디서부터 시작된지 아는 그녀다.
많은 고민을 했고, 결국 그의 앞에 왔다.
“환영하지.”
수호가 흔쾌히 최수영의 합류를 반겼다.
“우와! 드디어 우리 공격대도 에이스가 왔구나.”
“앞으로 던전 공략이 더 쉽겠어.”
길드의 용병들도 최수영의 합류를 기꺼워했다.
괴물같은 감각의 수호를 제외하면 최수영만큼 기감이 예민한 각성자를 만나본 적이 없다. 실제 던전에서 그녀는 몬스터 레이더급 활약을 한다.
“좋아. 합류한 김에 일 좀 해.”
그리고 던전이 생기기 전 차원충돌도 미리 감지하는 그녀에게 있어, 이미 생성된 던전을 찾는 건 아주 쉬운 일.
“오자마자 부려먹는 거예요?”
“그러려고 온 거잖아?”
“강해지고 싶으면 따르라면서요?”
“아, 그래서 온 거야?”
“…….”
최수영이 입을 꾹 다물었고 수호가 씩 웃었다.
“쓸 만한 던전 찾아와. 같이 가주지.”
“쳇, 알았어요.”
“그럼 일들 봐.”
“대장은 어디 가요?”
“유능한 부하를 얻었으니 대장은 쉬어야지.”
수호는 그리 말하고는 정말 야수 쉼터로 향해버렸다.
“동수야, 네가 수영 씨랑 좀 가라.”
잡다한 스킬이 가장 많은 동수다. 탐색 정찰에는 그가 재격이다.
“네, 알겠어요.”
슬슬 A등급의 몸도 적응이 되던 상황이라 그들도 더 높은 곳을 향한 훈련소가 필요했다. 6성 던전이라도 찾으면 금상첨화.
야수 쉼터 중앙.
커다랗게 자란 나무의 주변으로 초록빛 나무정령들이 빼곡하게 붙어있었다. 숲의 절반은 되는 나무정령들이 모인 듯 쉬는 곳.
휘리릭.
하늘에서 떨어진 매가 나무 꼭대기에 다다라 사람으로 변했다.
“웃차.”
애초에 방공포대가 자리한 야산에 형성된 숲의 정상. 그중에서도 가장 큰 나무라 주변 일대가 훤히 보였다.
꼭대기에 매달려 주변을 휘이 둘러보는 수호의 얼굴엔 흐뭇함이 가득했다.
굶어 죽을 걱정도 없고, 더 이상 외로워하지 않아도 된다.
모여든 부하들은 알아서 사회를 구성하고 굴러가고 있었고, 야수들 중에 늑대 몇은 벌써 새끼를 깠다.
평화롭고 평화로운 자신의 마을이 만들어졌다.
대장이 할 일은 이 마을을 지키는 일.
맹수는 이빨을 드러내기 전이 더 무서운 법이다.
이따금씩 무력시위로 주변 이웃들이 감히 침범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주면 되는 일이다.
오랜 세월 존재하며 각자의 영역을 가진 여러 맹수들의 위에 군림해 살아간 박수호의 방식은 딱히 변하지 않았다.
수호의 보호아래 여러 종들이 평화를 누릴 뿐이다.
그중 자신과 같은 인간들이 있다는 것이 더 없이 기껍고 행복한 일.
“안 그래?”
수호는 숲의 다른 나무보다 두 배 이상 큰 나무를 보며 물었다.
솨아아아아.
그저 바람결에 흔들리는 가지소리뿐이지만 수호에게는 나무의 마음이 느껴지는 기분이다.
이제 남은 게 있다면 하나뿐이다.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군.”
이 지긋한 불사의 저주를 벗는 것.
그 해답의 실마리는 기억의 돌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수호시티가 조금 더 안정화된 이후에 비밀을 찾기 위해 아루카 행성으로 떠날 작정이지만, 조급할 게 없었다.
천 년을 기다렸는데 몇 년인들.
수호는 가만히 바람을 맞으며 자신들의 일에 몰두하는 길드원들을 구경했다.
*서울 1구역을 맡고있는 KH길드.
방산업체를 운영중인 든든한 모기업을 두고있는 이 용병회사는, 소속 용병들에 대한 장비 지원과 인프라가 어느 곳보다 풍족하기로 유명하다.
신입용병들의 취업 1순위에 언제나 이름을 알리는 길드.
그만큼 유능한 용병들도 많고, A등급에 머무른 지 꽤 시간이 지난 베테랑들도 다수 있었다.
KH길드의 대표 용병이라면 누구나 홍세희를 꼽는다.
1공격대를 이끌고 있는 대장으로, 실력도 실력이지만 미모가 뛰어나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하고 인기 있는 용병 중 하나.
6성 던전이 아니고서는 경험치를 얻을 수 없는 S급 용병인지라, 1년 중 던전 공략에 나서는 기회는 사실 그리 많지 않다.
여타의 다른 S급 용병들이 후임들을 위한 훈련을 위해 경험치를 받지도 못하는 5성 던전을 간간히 공략하는 것과 다르게, 그녀는 비공략 시즌에는 항상 개인 피지컬 훈련이나 방송출연, CF출연 등의 용병외 활동을 해왔다.
일각에서는 그녀의 외도를 비난하는 자들도 있기 마련이나, 홍세희는 그런 시선을 의식하고 살아본 적이 없다.
‘여태 개같이 굴렀는데 이 정도는 즐겨 줘야지.’
설렁설렁해서 S등급이 될 리가 없다.
그간 사냥한 몬스터만 해도 수만 마리.
질리도록 사냥해 왔다고, 그것이 익숙하다고 해서 의미 없는 살생에 참여해 기계적으로 몸을 움직이고 싶지는 않았다. 괜히 경험치도 얻지 못하는 5성 던전 공략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의미 없는 짓.
서울시티 내에 오랜만에 6성 던전이 생겨났을 때, 또 그것이 KH가 방위하는 1구역이 아닌 다른 곳이었을 때 그녀는 아쉬움을 느꼈다.
‘아깝네.’
자기 길드의 권역이었으면 오랜만에 정체된 경험치나 얻는 건데 말이다.
그런 와중에 한국 최초로 7성 던전이 생생겨났다.
관리국의 요청이 왔을 때 그녀는 기쁜 마음으로 손진우의 선발대에 합류했다.
‘레벨업 좀 하겠어.’
경험치가 오르는 그 자체.
몬스터의 차원에너지가 흡수되어 몸에 쌓이는 그 희열.
용병 치고 그 향상심에 중독되지 않은 자가 있을까.
종종 공략에 실패해 선발대가 궤멸하는 안타까운 일이 있긴 하지만, 그것도 무려 7성 던전이지만 그녀는 걱정하지 않았다.
스스로도 대한민국 탑5 안에 들어간다고 자부하는 실력이고, 1위의 손진우도 함께하는 공략이니까.
호기롭게 7성 던전 공략에 나섰고, 선택은 실수가 되어 목을 졸랐다.
그리고 운명을 만났다.
KH길드 대표실.
그룹 회장의 넷째 아들인 김동건은 길드를 맡은 이후부터 한 번도 평가 1위를 놓친 적 없는, 수완 좋은 사업가다.
지킬 재산이 있고, 본인과 가족의 안전을 중시하는 부자들 중에 90% 이상은 각성자다.
돈만 있으면 브로커를 통해 ‘안전’하게 몬스터를 사냥해 각성하긴 쉬운 일이다.
그런 이유로 그들 중 70%는 또 F급에 머물러 있다.
각성자 판정 이후 용병으로 활동하며 각성 등급을 올리는 이들은 아주 극소수.
김동건은 그런 이들 중에서도 아주 특이 케이스.
용병등급 B.
여타의 재벌 2세답지 않은 그의 행보에, 사람들은 행동하는 부자의 모법으로까지 부른다.
김동건은 지금 관자놀이를 부여잡고 스트레스를 삭혔다.
“후,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왜 안 돼? 내가 나가겠다는데.”
홍세희의 당돌한 말에 김동건이 화를 삭이며 말했다.
“계약이 우스워 보여?”
“말했잖아. 위약금 물겠다고.”
“그게 얼만 줄은……. 후, 됐다.”
어마어마한 돈을 벌어들인 그녀다.
모은 재산을 다 퍼부으면 위약금 정도는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겨우 3년 좀 더 남은 계약을 파기하자고 전 재산을 퍼부을 미친 사람이 어딨나.
“진짜 이유가 뭐야?”
“아니, 진짜 없다니까? 그냥 퇴사하려는 거야.”
“말이 돼? 홍세희가 퇴사해? 왜? 이유가 뭐야? 이제 와 겁이 나?”
“겁을 먹어? 내가?”
7성 던전 공략 실패, 박수호에게 구조 되고 난 이후 한 번도 던전 공략에 나서지 않은 그녀다.
“겁을 먹었든, 무섭든 상관없어. 치료해. 그리고 다시 싸워. 도전해! 길드에서 전폭적으로 도울 수 있어.”
홍세희는 인상을 찌푸렸다.
겨우 한 번의 던전 공략 실패로 자신을 고장 난 인형 취급하고 있지 않은가.
고장 나지 않았다. 있어야 할 곳을 찾았을 뿐이다.
“수호 길드에 갈 거야.”
“뭐?”
김동건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거길?”
“어.”
대한민국 굴지의 기업을 배경으로 하는 KH길드다. 신생 길드인 수호 길드와는 복지, 연봉부터 사사로운 대우까지 모든 게 천지차이다.
도시에서 곱게 자란 아이가 갑자기 시골로 가겠다고 하는 수준.
물론 거기에 박수호라는 세계챔피언이 있긴 하지만, 그 외에는 아무것도 볼 게 없다.
“설마…….”
선발대를 구출하는 과정에서 박수호와 뭔가 거래가 있었던 것인가?
“뭐야? 약점 잡힌 것 있어?”
“어휴, 그런 거 아냐.”
홍세희는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은혜를 갚으러 가는 거야. KH는 이제 나 없어도 잘 굴러가잖아?”
“지금 상황이 어떤 상황인데!”
김동건은 머리 뚜껑이 열리려는 걸 겨우 참았다.
후, 냉정해지자.
이미 마음 떠난 공주님을 잡을 방도가 없다.
계약파기에 따른 위약금? 돈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 건 눈곱만큼의 이익도 아니다.
“세희야, 솔직히 이야기하자. 우리 길드가 그간 못해 준 게 있냐?”
“없지. 잘해줬지. 그래서 고맙고 미안해.”
이 망할 년. 말이나 못하면.
“……그래. 넌 우리 길드가 모든 역량을 집중해 키운 용병이야. 그런데 갑자기 떠나면 그 빈자리는?”
“다른 사람이 채우겠지.”
하, 조금이라도 책임감이란 걸 느껴라.
김동건은 속마음을 감추고 말했다.
“보내줄게. 위약금? 다 필요 없다.”
“정말?”
“대신 조건이 있다.”
“뭔데?”
김동건이 손가락 세 개를 폈다.
“다섯 명.”
“뭐?”
“KH길드 소속 S급 용병이 다섯 명이 되면 널 보내주마.”
“애들 버스 태워주란 거야? 5성 던전 돌아서 몇 년이 걸릴 줄 알…….”
“6성.”
김동건 말을 가로막았다.
“이천 쪽에 생긴 6성 던전. 우리 길드가 공략권 따냈다.”
“…….”
6성 던전이라면 A급 각성자 한둘에게 경험치를 몰아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적어도 5성 던전 수십 번을 공략하는 것보다 나으니까.
한반도에 많아봐야 일 년에 서너 개 생기던 6성 던전이 동시에 여러 개 생겨났다.
고레벨 사냥터의 과잉공급.
지금 서울의 길드들이 모든 역량을 집중해 새로운 S급 용병 육성에 집중하고 있다.
“지금 상황이 심상찮다. 언제 또 새로운 7성 던전이 생길지 몰라. 이 기회에 길드 전력 강화 못하면 안 되는 거, 너도 알잖아?”
그동안 사냥터가 없어 A급에 머물렀던 베테랑들이 꽤 많이 S급에 오를 것이다.
홍세희는 입술을 꾹 다물고 생각했다.
KH길드엔 이미 A급에 오른 지 꽤 되는 베테랑들이 많다. 그들 중 다섯을 뽑아 집중적으로 육성시키면 된다.
경험치가 많은 6성 던전만 집중적으로 공략하면 반년, 어쩌면 몇 달 안에 모두 끝낼지도 모른다.
마냥 어깃장을 놓기엔 그녀도 무리임을 안다.
괜히 문제를 안고 수호에게 갔다가 피해를 끼칠 수도 있고.
“좋아.”
홍세희가 조건을 받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