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96)
97화 어쩌다 용병 (2)
수호의 장벽 공사로 수호시티의 영역이 한껏 넓어졌다. 기존에 있던 장벽으로 인해 내성과 외성으로 자연히 공간이 나뉘었다.
외성 공간은 아직 정리되지 않은 필드 그 자체의 상태.
기존에 있던 서울로 통하는 남쪽 도로를 제외하면, 주변은 그냥 버려진 도시 폐기물과 우거진 수풀이 혼재된 필드다.
하지만 야수들이 쉼터를 벗어나 돌아다니기 시작하며 적어도 몬스터로부터는 안전을 확보한 공간.
내성의 공간으로도 아직 충분하기에 외성까지 개발이 진행되고 있진 않지만, 직접적인 거주공간과 몬스터들이 다니는 필드와의 사이에 완충지대가 하나 더 생겨 심리적 안정감은 많이 높아진 상태다.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는 야수들이 순찰 도는 경찰보다 더 믿음직스럽지만, 그렇다고 꼭 장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수호시티 내성 중심부.
잘 정돈된 길가에 비워졌던 상가가 하나둘씩 주인을 찾았다.
길드 자체가 워낙 유명해져 사내식당 모집에 지원자가 몰리면서 뜻하지 않게 요리대회가 되어버린 면접을 뚫고 입점한 사장님들의 인테리어가 한창이었다.
사업자 자체로 임대 계약을 맺는 것과 수호 길드에 입사해 소속 직원이 되는 두 가지 방법이 있었는데, 모든 지원자들이 후자를 선택했다.
그도 그럴 것이, 외부인들의 왕래가 거의 없다시피한 수호시티에서 장사해서 이익을 낼 방법이 없다.
수호시티 중심부에 쭉 뻗은 거리 양쪽으로 다양한 음식점의 여러 간판들이 내걸리고 있는 식당거리.
쉐프들도, 종업원도 모두 수호 길드 스텝이고, 이용하는 손님들도 스텝들이다.
복지부에서 운영하는 사내 식당이 되어버린 여러 가게들 중 유독 횟집이 고통받고 있었다.
“아니! 이눔시키들이 또 왔어!”
수호시티 횟집 사장은 사시미를 들고 나갔으나, 오토바이보다 큰 악어를 보고 차마 휘두르진 못하고 발로 찼다.
“쯔어.”
악어는 수조에 고개를 처박고 바닥에 납작 붙은 광어를 결국 물었다.
“이눔시키야! 다 먹으면 장사 어떻게 해!”
그래도 이놈은 새낀가 보다.
어제는 소형차만 한 악어가 특수소재로 만든 수조를 깨먹고 안에 든 생선을 죄다 먹어치웠는데 말이다.
“어휴, 저리 가 이놈아!”
횟집 사장의 발길질에 시무룩해진 악어가 짧은 발을 놀리며 도로로 나섰다.
“어휴, 이거 뭔 장사를 할 수가 있어야지.”
수호 길드에 합류한 지 보름.
이제는 완벽히 적응한 횟집 사장이다.
처음엔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늑대나 곰을 보고 기겁을 했으나, 수호 길드의 야수들은 사람을 해치지 않기에 그저 길가에 흔하게 다니는 비둘기 수준으로 대했다.
수조에서 생선 훔쳐가는 악어들은 자라 수준인가.
“어휴, 저 집도 난리네.”
그는 횟집 못지않게 난리 난 건너편 정육점을 보곤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매장 앞에 식재료를 진열한 상가들이 죄다 습격받고 있었다. 길가에 어슬렁거리던 악어들이 그냥 슬쩍 먹어버리는 거다.
“다른 애들은 다 어디 가고 죄다 악어 천지여. 어휴.”
횟집 사장은 혀를 차곤 다시 장사 준비를 했다.
계약 기간 동안 받는 기본 연봉 외에도 이용직원이 많을수록 성과급이 크기에 음식점마다 경쟁도 치열했다.
수호가 레벨업 시키기 위해 야수들을 죄다 데려간 뒤로 야수 쉼터에서 갑자기 나타난 악어 떼가 수호 길드를 점령하자 여기저기서 문제가 터져나왔다.
복지부장인 이숙자가 관리감독하는 직원 사내식당에서 주방 찬모 하나가 꽥 소리 질렀다.
“아이고! 이놈의 쥐새끼 또 나왔네!”
야수들이 어슬렁거릴 땐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쥐들이 어딜 통해서 들어왔는지 식당 음식을 노리고 여기저기 숨어들었다.
“흐미, 미쳐부러. 저건 바퀴 아녀?”
“아이고, 한 놈 생기면 퍼지는 거 순식간인데 큰일이네그려.”
바퀴벌레가 사람의 눈에 띄었을 때는 이미 건물 전체에 퍼졌을 확률이 높다.
“시스콘가 뭔가 불러야 하는 거 아녀?”
“여까지 온담?”
“성님, 우짠대요? 김 부사장한테 말해야 하는 거 아녀?”
이모들의 시선이 복지부장 이숙자에게 몰리자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뭐 이런 대수롭잖은 일로 바쁜 양반까지 부르고 그려. 저런 건 약 쳐 놓으면 금방 죽어나가니께 나 좀 돕드라고.”
이숙자는 계란을 몇 판 삶아 노른자와 설탕, 길드 보급고에서 가져온 붕산을 섞기 시작했다.
“다 만들었응께 여기저기 뿌리더라고.”
“아따, 성님. 기술도 좋아부러, 바퀴벌레약도 만들어버리고.”
이숙자의 주도아래 만들어진 바퀴벌레약을 주방 여기저기, 건물 외부에도 뿌렸다.
“저쪽에도 바퀴벌레 나왔다는디?”
“그려?”
식당 건물 외에도 여기저기 생긴 바퀴벌레들을 잡기 위해 약을 쳤다.
“근디 이게 효과가 있을랑가?”
“며칠 지나보더라고, 싹 다 배 뒤집고 뒈질라니께.”
이숙자의 말에 이모들은 그저 고개를 끄덕여 동조할 뿐이었다. 약에 죽든 안 죽든, 어차피 수호가 사냥을 끝내고 야수들이 돌아오면 놀이 삼아 쥐잡기를 하느라 다 쫓겨날 터였다.
*사사삭.
바퀴벌레들이 약을 음식으로 착각해서 먹고 숙소로 돌아가 약을 다시 토해 새끼들을 먹였다. 사이좋게 약을 나눠먹은 바퀴벌레들이 또 약을 먹었다.
그 한가로운 대가족 식사에 불청객이 찾아왔다.
“찌,찍!”
유달리 눈이 붉고 덩치가 큰 쥐가 나타나 바퀴벌레들을 모조리 해치웠다.
“찌찍!”
평소였다면 두엇 잡아먹히는 것으로 끝났을 텐데, 약빨에 행동이 느려진 바퀴벌레들은 대부분 그 자리에서 잡아먹혔다.
“쥐지직.”
게거품을 문 쥐가 쓰러졌다.
레벨 2 들쥐가 죽자, 무형의 에너지가 어딘가로 흘러갔다.
*수호가 6성 던전 공략에 나선 지 25일이 지났다.
이제 내일이면 공략을 마무리하고 던전 소멸 후에 돌아올 것이다.
“아이고, 이게 뭔 일이래?”
이숙자는 최근 들어 허리 통증도 사라지고, 머리도 점점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평소보다 그 개운함이 남달랐다.
“허허, 오래 살고 볼 일이여.”
건우 하나 보고 정에 매여 따라나선 길이었는데, 이숙자 본인에게도 득이 된 것 같았다. 집에서 홀로 죽을 날만 기다리던 늙은이가 활동적으로 살다 보니 회춘한 느낌.
“이거 원, 오십 대로 돌아간 거 같네.”
몸이 가뿐한 것이 그냥 느낌이 아니라, 진짜 움직이는 것도 자연스럽다. 삐걱대던 관절도 아프지 않고, 오래 서 있으면 아프던 다리도 오늘은 온종일 걸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기분 좋은 상쾌함을 만끽하며 아침을 준비했다.
그녀의 아침 일과는 언제나 산책부터 시작한다.
아직 일출 전이지만, 새벽이 물러가며 주변은 어스름한 풍경을 자아냈다.
“쿠오!”
“오냐, 곰탱이 잘 잤냐?”
“쿠오, 쿠오.”
“오야, 욕 본다잉.”
수호와 함께 사냥 나갔던 야수들이 비룡을 시작으로 한둘씩 보이더니, 지금은 늑대 녀석들도 거리를 배회중이다.
“토깽이 너 이눔, 그거 먹으면 못써.”
산책길에 만난 검은 토끼가 쥐를 잡아먹고 있자 발을 굴렀다. 토순이가 괜히 붉은 눈을 흘기면서도 깡충 뛰어 사라졌다.
“아이고, 복지부장님 오늘도 일찍 일어나셨네요.“
“잉, 김 사장도 아침부터 욕 보제.”
이제야 어느 정도 식당 거리가 정비되었다.
사람들하고 뒤섞여 거리를 배회하는 야수들의 모습도 그렇고, 특이한 성벽과 성을 아우르는 숲의 아늑함도 그렇고, 여기가 관광지가 된다면 앞으로 이 식당 거리는 외부손님으로 북적일 것이다.
수호 성격에 그럴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녀는 평소보다 빠른 걸음으로 자신의 아침 산책을 마무리하는 북쪽 성벽에 올랐다.
내성과 외성 사이가 가장 가까운 북쪽 성벽이라, 부지런히 걸으면 굳이 차를 타지 않아도 금방이다.
성벽 아래 난 나무계단을 타고 올라가 저 멀리 강원도 쪽에서 떠오르는 해를 보았다.
이미 주위는 밝았지만 해는 산등성이에 가려 보이지 않고 있었다.
“허미……. 밖은 지옥이구만, 지옥이여.”
저 멀리 오크 두 마리가 고블린 하나를 잡아 뜯어 그대로 게걸스럽게 먹고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오크 정도의 몬스터가 필드를 배회하면 대대적인 토벌을 하거나 현상금을 높여 용병들의 필드 사냥을 유도할 텐데, 요즘은 필드는 그저 방치하는 모양새다.
“잉? 참말로 회춘이라도 했는감. 어찌 저까지 보인당가.”
이숙자는 눈을 비벼봤으나 저 멀리 오크들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평소에는 눈이 침침해 눈앞엣것도 선명하지 않았는데, 이게 대체 무슨 조환지 모를 일이다.
“오래 살고 볼 일이여. 허 참 내.”
자꾸 머릿속에 떠오르는 ‘독 제조’에 관한 지식과 스킬 사용법이 떠오르는 것을, 이숙자는 고개를 저어 흩었다.
“참 별일이여. 별일.”
간밤에 희한한 꿈을 꿨나 보다.
요상한 생각을 털어내고 얼른 직원들 깨기 전에 아침 메뉴를 차리러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 거리가 생긴 뒤로는, 기존의 복지부 직원식당에서 조식만 담당하면 된다.
자신의 직속 소속의 이모들도 더 증원되었고, 세탁이나 청소 등의 인력들도 많이 늘어나 복지부 소속 직원만 50명.
“늙은이, 오래 살고 볼 일이여.”
죽지 않고 사니 이런 날도 오는구나 싶었다.
*“마지막이네.”
수호는 마지막 던전을 돌면서 생각했다.
그간 하위레벨에 머무르던 녀석들이 거의 A급으로 성장했다. 경험치를 더 독식해 S급을 만들 수도 있지만, 그러려면 한둘에게 모든 몬스터를 몰아줘야 하고 사냥 시간도 수십 배 더 걸린다.
기존에 경험치가 이미 많이 찼던 비룡이만 60레벨이 되면서 S급이 되었고, 은근히 경쟁심에 불타던 일곰이도 60레벨을 찍어 사냥에서 빼줬다.
일늑이부터 시작하는 늑대 녀석들은 레벨 50을 찍고 A급이 되자 모두 야수 쉼터로 돌려보냈고, 뒤를 이은 토순이 대저 등도 모두 A를 찍었다.
뒤늦게 길들인 야옹이들은 42레벨.
겨우 B등급에 올랐고 길들일 때부터 48레벨이던 호수악어들은 시간이 없어 사냥에 한 번도 참여하질 못했다.
야수들 사냥을 도와주느라 정작 수호는 여전히 58레벨이지만,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레벨업이 가능하기에 조급해하진 않았다.
“한번 해치워봐.”
“넵.”
서민수가 비장한 얼굴로 검을 쥐고 마지막 리저드킹을 향해 달려갔다. 그 뒤로 세 명의 현장지원팀 인력들이 합공을 위해 뒤따랐다.
“취직!”
“하압!”
촤악!
그간 레벨업을 야수들만 한 게 아니다.
D등급이던 퇴역 군인이 다시 감각을 찾고 발전하는 데는 25일, 던전에서 보낸 75일의 시간이면 충분했다.
“취직!”
“후우, 후우.”
털썩 쓰러진 리저드킹을 보면서 서민수는 주체할 수 없이 몸을 떨었다. 두려움이나 긴장 때문이 아니다.
‘내가 6성 보스를 잡았다.’
팀원들이 돕긴 했지만, 그저 시선 분산 정도일 뿐이다.
저들은 실전 경험도 없고, 얼떨결에 각성자가 되어 그저 혈석 채집기 수준의 노동을 했을 뿐이니까. 그럼에도 각성 등급이 무려 C급에 올랐다.
어깨에 올라오는 손길에 서민수의 떨림이 멈췄다.
“수고했어.”
“……감사합니다.”
수호 길드의 지원부 현장지원팀장이 A급 용병이 되어버렸다.
지이잉.
능숙하게 세 명의 팀원들이 전리품을 수거하는 사이 출구 포탈이 열렸다.
“어우, 이제 집에 가서 좀 쉬겠네.”
차라리 자신이 사냥하고 말지, 연약한 부하들 죽을까 봐 이리저리 신경 쓰느라 더 피곤했다. 앞으로 부하들 교육은 동수나 준호에게 다 맡겨버려야겠다.
새로 합류한 서민수나 최수영도 훌륭한 교관이 되어줄 것이다. 그들은 군대에서의 경험도 있고, 던전 경험도 수호 길드에서 박수호 외에 가장 많으니까.
“돌아가자.”
“넵.”
파팟.
던전을 나오니 포탈은 완전 소멸되어 사라져 있었고, 신라 길드원들이 여기저기서 박수 치며 그들을 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