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Lives Eight Lives RAW novel - Chapter 172
172화
“끄으어어어……!”
온몸이 아프다. 망치로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정성스럽게 다진다면 이런 고통을 받을까? 칼로 관절을 쑤시는 것 같은 불쾌한 감각이 전신에 감돈다.
나는 바닥에 누워 버둥거리며 생각했다.
‘어디서부터 실수를 했지?’
병기에 쌓인 마나를 브레스로 흘린다! 계획은 완벽했다. 사실 완벽하진 않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냉정히 따지면 거기서도 실수는 있었다.
우선 내가 알지 못했던 것. 아니 알긴 알지만, 더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어 일부러 무시했던 것.
그 첫째. 브레스 옆에 있다고 해서 피해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나와 살저 하라한은 브레스가 쏘아지는 방향의 정반대에 위치했었다.
스치는 것도, 옆도 아닌 완전히 뒤. 그쯤 되면 내게 전해지는 위력은 수천분의 일도 되지 않는다. 솔직히 수천도 과장된 거고 실제로는 수만 분의 일도 되지 않겠지.
하지만 그만한 힘으로도 나와 살저 하라한은 곤죽이 되고 말았다. 우리는 브레스가 쏘아지는 그 즉시, 엄청난 반탄력을 정통으로 맞고 배의 바닥까지 내리 찍혔다.
“끄엑!”
나는 비명이라도 지를 여유가 있지. 살저 하라한은 상체가 반쯤 으스러져 죽음 직전까지 몰렸다. 그가 이종족이 아니라 르암인이었으면 즉사해도 이상하지 않을 충격이었다.
나는 차오른 마나를 이용해 나와 살저 하라한을 감싸는 보호막을 만들었다. 성력으로 그의 육체를 회복시키고, 신체 강화 초능력으로 육체가 쇼크사나 기타 생물학적 위기로 죽음에 들어서지 않게 막았다.
“이, 일어… 나!”
살저 하라한을 업어 자리를 벗어난다. 이 미친 충격파는 밑바닥까지 떨어졌는데도 줄어들기는 커녕 더 강해지기만 한다.
해저 수백 미터로 보호 장비도 없이 잠수한 것만 같은 막대한 압력! 겨우 회복되어가던 살저 하라한이 칠공에서 피를 흘리고, 내 몸도 여기저기 삐걱이기 시작했다.
끼기기기기긱!
몸이 바스러질 것 같지만 쓰러지지 않는다. 나는 부서진 병기 밑바닥을 파고 내려갔다. 땅으로 깊숙이, 더 깊숙이 내려간다.
‘죽는다. 여기서 멀어지지 않으면 죽는다!’
머릿속에서 경종이 미친 듯이 울린다. 겨우 충격파만으로 끝날 리가 없다. 나는 내 위기 감지 본능을 믿고 회복된 체력과 마나, 초능력을 불길처럼 일으켜서 땅을 파고 내려가는 데 집중했다.
그 즉시. 두 번째 무시 사항이 나를 덮쳤다.
두 번째. 마력석은 마력석 조각에 불과할 뿐이다. 겨우 마력석 조각이 수천 년 넘게 마나를 흡수한 승천자의 병기를 제어할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내가 한 것은 그저 방향성을 더해준 것. 제자리에서 폭발하지 말고 브레스처럼 위로 쏘아지라고, 개미가 핸들의 방향을 튼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방향성마저 몇 초를 가지 못했다.
파창!
약 2초? 아니면 그보다 조금 더 긴 시간? 마력석이 깨지다 못해 가루가 되자 브레스의 유지 기능도 끝났다. 우람한, 신의 남근과도 같은 빛의 기둥이 갈라지고 옆으로 퍼지기 시작한다.
적절한 깊이까지 파고 내려갔을 때, 힐끔 위를 보자마자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그 광경을 똑똑히 확인했다.
“오, 이런…….”
대기권을 넘어 성층권까지 올라간 푸른색 기둥이 갈라진 오줌 줄기처럼 두 줄기로 나뉜다. 두 줄기는 눈 깜짝한 사이에 넷, 여덟, 열여섯을 넘어 수백 개의 푸른 줄기로 변화했다.
그것은 마치 푸른색 원뿔이었다. 대기권까지 치솟은 거대한 원뿔이 거꾸로 땅에 박힌 것과도 같았다. 원뿔의 밑면에 해당하는 부분이 하늘에서 점점 영역을 넓히며 구름을 증발시키고 대기를 불태우기 시작한다.
브레스가 갈라진 만큼 충격파도 전방향에서 덮쳐온다. 잘게 나뉜 충격파가 땅속 깊숙이 들어간 내 몸을 두들겼다. 위로 아래로, 양옆으로! 사방팔방 골고루! 아주 다짐육으로 만들 각오로.
드드드드드!!
그 무지막지한 여파에 속이 텅 빈 항공모함 형태를 했던 병기는 원형도 남지 않고 사라졌다. 돌덩이도, 병기를 덮은 모래도 원자 단위로 소멸하여 탁 트인 하늘이 드러났다.
어떻게 보면 윗 뚜껑이 깔끔하게 소멸해서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열기에 나와 살저 하라한은 고통스럽게 푹 익어서 죽었을 것이다.
‘아니지. 이놈은 기절해서 고통도 없겠지. 괜히 나만 고통스럽게 죽었을 거야.’
나는 살저 하라한을 꽉 끌어안고 최대한 몸을 웅크렸다. 살저 하라한이 죽지 않게 그가 받을 충격파도 내가 감당하느라 기껏 회복된 몸이 다시 엉망이 되었다.
이 빌어먹을 새끼만 아니면 내가 더 수월하게 몸을 보호할 텐데 괜히 따라와서……. 아니, 따지고 보면 얘가 도와줘서 일이 더 쉽게 풀린 건가?
어쨌든 이 고생을 했는데 죽으면 허탈하지 않나. 나는 살저 하라한을 꽉 끌어안고 브레스의 폭풍이 끝날때까지 기다렸다.
‘길다. 정말 길다. 한, 한 달은 웅크려 있는 것 같아.’
첫 번째 삶의 나는 군대에 갔다 온 적 없는데, 왠지 그들의 말이 공감이 가는 진귀한 경험이다. 하루가 1년 같은 이등병 생활, 지금 나도 1초가 1년처럼 길었다.
몇 초나 지났을까. 몇 년이 흘렀을까. 망막을 태울 듯이 강렬하게 발광하는 푸른빛이 서서히 사그라들고, 피부를 자글자글 태우던 막대한 열기도 점차 줄어들었다.
치이이익! 피시식!
귀가 (물리적으로든, 감각적으로든) 뻥 뚫릴 것 같은 굉음을 토해내던 푸른 구체도 분무기에 꺼지는 양초와도 같은 소리를 낸다.
가늘고 길게 치이익~! 하는 소리. 나는 일말의 희망을 안고 눈을 살짝 떴다. 그리곤 위를 올려다보았다.
“허어…! 끝, 끝났다!”
하늘을 꿰뚫어버린 푸른 구체는 마나를 다 소모해서 주먹보다 작은 크기로 줄어들었다. 뻥 뚫린 하늘과 뜨거운 태양 빛에도 지지 않는 푸른빛을 자랑하는 보석이 구체가 있던 자리에 생겨났다.
주먹 반쪽만 한 푸른 보석. 나는 힘을 잃고 추락하는 보석을 잽싸게 잡아챘다. 초능력 파동과 마나로 분석했지만, 보석에는 단 한 방울의 마나도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 그릇만큼은 거북이 몬스터의 마력석 이상이었다. 어떻게 보면 찌꺼기라고도 할 수 있었고, 달리 보면 가장 중요한 결정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이걸 당장 어디다 써야 할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는다. 승천자의 마법을 이용하여 건드려도 보고, 성력도 주입해 봤지만, 아직까진 아무런 반응이 없다.
나는 혹시나 해서 성력을 넓게 퍼뜨려 유리구슬을 불렀다.
(어이! 아직 살아 있냐!)
[…….](이거 나 쓴다? 아니, 어떻게 쓰는 건지도 모르겠는데 알려주고 죽으면 안 될까? 그리고 네가 왜 승천자의 세상이 아니라 여기에 있는지도 좀.)
[…….]유리구슬은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주춧돌 하나도 남기지 않고 병기가 파괴되었는데 그것을 이루는 인공지능이 온전히 남아있을 리가 없었다.
드디어 흑마법사도, 병기도 사막에서 자취를 감췄다. 나는 푸른 구슬을 꽉 움켜쥐었다. 그리곤 나지막하니 말했다.
“15년간 개처럼 키운 양육비. 조금 부족하지만, 이걸로 이자는 없애주겠다. 잘 죽어라.”
이름도 모르던 흑마법사의 명복을 빌어주며, 고암 사막에서의 일이 끝났다.
* * *
“살저 하라한? 정신이 들어?”
살저 하라한을 툭! 친다.
“끄르르륵……!”
인간의 언어를 내뱉지는 않는데, 살아 있기만 하면 된다. 나는 살저 하라한을 들고 구덩이를 올라왔다.
높이만 해도 1km에 다다르는 초대형 구덩이는 브레스에 의해 표면이 검게 타 있었다.
위에서 본다면 사막에 블랙홀이 나타났다고 착각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나는 구덩이를 올라와 사막의 전사들을 찾았다.
수천이 넘는 병력이었기에 멀리 떨어져 있어도 금방 찾아낼 수 있었다. 나는 멀쩡히 서 있는 이들과 땅에 누운 자들의 수를 세며 사상자를 헤아렸다.
‘약 10분의 1 정도가 사망했군.’
웃기는 건 사망자의 절반 이상이 크리쳐와의 전투가 아닌 브레스에 의해 발생했다는 점이다.
첫 충격파에 내장이 으스러져 사망하거나, 후폭풍에 굴러다니다가 뒤통수에 돌을 박아 즉사, 재수 없게 피부가 익어서 질식사한 경우도 있다.
말도 안 되는 힘을 목격하자 완전히 얼어붙어서 그 자리에서 움직일줄을 몰랐다. 내가 사막 전사들에게 다가갈수록 그들이 하는 말이 하나둘씩 들려왔다.
“끄응…!”
“이, 이 무슨 일이!?”
“하늘이 노했다! 신의 진노를 샀어!”
브레스를 목격한 사막 전사들은 완전히 얼이 나가 헛소리를 내뱉었다. 뭐 구름을 뚫고 하늘 위까지 치솟은 번개 줄기를 보면 저런 말이 나올 법도 하다.
“웨, 웨웨… 웨일!”
담대한 드롤리안도 이빨을 딱딱 떨며 나를 부른다. 그가 양손으로 어깨를 감싼 채로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불안증에 걸린 환자처럼 잔뜩 겁먹은 채 탁 트인 사막을 경계했다.
“저, 저, 저, 저 푸른……!”
드롤리안이 못내 두려운지 마지막 말을 하지 못한다. 푸른 브레스가 뭔지 물어보려던 거겠지.
나는 익스퍼트 급 무인들을 확인했다. 그들도 말만 안 했을 뿐이지 승천자의 병기가 보여준 무지막지한 위력에 잔뜩 질린 기색이었다.
저 정도면 두려운 걸 넘어서서 트라우마 직전까지 왔다. 사막의 정예가 한 번 쏘고 망가진 무기 따위에 검이 꺾인다니, 있어선 안 될 일이지.
나는 펄쩍 뛰어서 마차 위로 올라갔다. 그리곤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다들 잘 들어라!”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공포에 휩싸인 병력을 향해 외친다. 목소리에 은은하게 실린 성력이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초능력 파동을 응용한 광범위 정신제어가 영혼을 좀먹는 두려움을 몰아내었다.
“다들 하늘 높이 솟구친 푸른 브레스를 보았을 것이다! 그건 어… 2시대의 천족이 만든 결전병기이다!”
2시대라는 떡밥이 나오자 시선이 내게 집중되었다. 특히 마법사들은 눈에서 공포를 지우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뒤바뀌어 나를 바라보았다.
“흑마법사는 이 결전병기의 제어에 실패했고, 그 결과 방금 보았던 무지막지한 브레스가 위로 쏘아졌다! 그와 동시에 병기는 완전히 망가져서 돌덩어리로 되돌아갔다!”
“아아……!”
마법사들의 입에서 진한 아쉬움이 담긴 탄식이 흘러나왔다. 저놈들은 끝까지 저러네. 나는 마법사에게 죽기 일보 직전인 살저 하라한을 내던지고 이어 말했다.
“그러니까 어서 일어나서 튀어! 이 머저리들아! 몬스터 오겠다!”
사막 한복판에서 넋놓고 있다가 몬스터한테 휘말려서 죽을 일 있나! 브레스의 효과로 다들 벌벌 떨면서 다가오지 않겠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수로 밀어붙일 수도 없는 위험천만한 녀석들이 이곳에 올 것이다.
크리쳐와 인간 시체가 진한 피 냄새를 흘리는데 지역구 지배자로서의 자존심이 있지. 초대형 몬스터는 두려움을 이겨내고 유적으로 달려와 자신이 공포에 질린 부끄러움을 덜어내기라도 하듯이 엄청난 학살을 저지를 게 분명했다.
단 한 놈이라도 마주친다면 수천의 병력 따위는 의미 없이 사라질 무지막지한 몬스터! 그런 녀석들이 오기 전에 얼렁 튀어야 한다.
“승리의 기쁨이고 뭐고 나중에 누리자. 일단 지금은 시체나 수습하고 어서 도시로 달려!”
내 말을 듣자마자 드롤리안이 정신을 번쩍 차렸다. 그가 언월도 손잡이를 우그러지라 꽉 쥐고는 병사들에게 외쳤다.
“돌격병은 시체를 수습해라!”
렌타라리티아의 지배자 홉스도 허둥지둥 외쳤다.
“무기는 버려! 최대한 가볍게 해서 마차에 태워라!”
“안타카와 렌타라리티아로 전속 전진한다! 일분일초도 쉴 시간이 없다!”
우르르르!
수천의 병력이 두 무리로 갈라져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친다. 나는 렌타라리티아로 향하는 병력에게 대규모 회복 마법을 걸어주었다.
“빛의 분수!”
파아앗!
군대 중앙에 위치한 마차에서 빛으로 이루어진 소낙비가 내린다. 효과는 적지만, 광범위하게 신체 회복을 도와주는 승천자의 마법!
코딱지만큼 성력도 섞었으니 체력분배만 잘한다면 하루종일 달려서 렌타라리티아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겨우 이만큼 성력을 섞은 것 가지고 성자라고 들키지는 않겠지?’
살저 하라한에게 밝히긴 했지만, 그래도 다수에게 성자라는 사실이 들키는 건 위험성이 너무 크다. 주로 자유로운 운신의 폭이 크게 줄어든다.
아직도 죽여야 할 놈이 한 놈이 더 남아있는데, 최소한 만자흐마비코를 죽일 때까지는 이 사실을 숨겨야 한다. 혹시 성력을 알아채도 은 동전을 마법의 매개체로 썼다고 대충 둘러대면 되겠지.
나는 미래에 대한 걱정을 집어넣곤 안타카로 향하는 병력에게도 빛의 분수를 사용해주었다.
“빨리빨리 뛰어! 이놈들아! 기껏 흑마법사 죽여놓고는 몬스터한테 죽고 싶어?”
* * *
만남이 아름다우면 헤어짐도 아름다운 법이라고 누가 그랬는가. 황량한 감성을 지닌 사막의 바보들에겐 통용되지 않는 표현이다.
대규모로 모인 병력은 안타카에서 이틀간 질펀하게 축제를 벌인 뒤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헤어졌다. 내가 모르는 곳에서 지배자들끼리 쑥덕거린 게 있는 것 같기는 한데, 표면적으로는 별로 바뀐 건 없었다.
“만나서 즐거웠다!”
드롤리안의 참신한 인사를 받으며 안타카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간다.
하나로 모인 수천의 병력이 마을을 들릴 때마다 수백씩 줄어든다.
“잘 살아라.”
“죽지 말고. 언젠가 또 보지.”
마을로 복귀하는 그들의 손에는 푸른색 보석, 거북이 마력석의 조각이 들려있었다. 그들은 마력석 조각을 보물처럼 쥐고는 인사를 끝내자마자 득달같이 마을로 달려 들어갔다.
섭섭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원래 사막 사람들의 성향 자체가 그랬다. 무소식이 희소식. 죽지만 않으면 된다.
“근데 우리가 흑마법사를 죽이긴 죽였나?”
“쉽게 끝나긴 했는데 어째 찜찜하긴 하다.”
가끔씩 이런 이야기가 들려오기는 하지만 나는 깔끔하게 무시했다. 안 죽고 잘 끝나면 된 거지 뭐가 아쉽다고 저런 소리를 해?
마을을 어지럽히는 흑마법사도 처리했고, 물을 다루는 마력석까지 얻었으니 사막도 지금보다는 크게 발전할 것이다.
“잠깐 봤는데 무지막지하게 잘 싸우시더군요. 감사했습니다.”
헤어질 때마다 인사를 받으니 나도 은근히 기분이 좋았다. 그 좋은 기분을 바탕으로 적당히 쓸모가 있어 보이는 놈들에게 검술을 한두 개씩 알려주었다.
마을마다 서너개의 검술을 풀었으니, 그것만 제대로 익히면 흑마법사와의 다툼에서 잃은 소소한 무력도 금방 되찾으리라.
심지어 내가 그들의 수준에 맞춰서 마력석 조각을 이용할 수 있는 적당한 마법진까지 알려주었다. 아마 인구수가 두 배로 늘어나지 않는 한, 예전처럼 마실 물도 부족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미세프라, 뾰족 바위 군락도 지나치고 도시를 들르고 들러, 올스 앞에서.
바리다가 멋쩍게 웃으며 내게 깊게 고개를 숙였다.
“참. 이렇게 헤어지는군요. 웨일 님, 함께해서 영광이었습니다.”
바리다 등의 익스퍼트에게도 그들 특성에 맞는 검법과 그들이 익힌 검법의 개량본, 그에 맞는 마나 운용술을 알려줬다.
바리다와 갈리어드는 나와 가장 오랫동안 사막을 누빈 덕분에 누구보다 많은 양의 검술 지식을 얻어낼 수 있었다. 바리다가 수년에 걸쳐 이론을 정리하고, 내게서 배운 검법을 익힌다면 다음으로 갈 길이 보이리라.
바리다가 마력석 조각을 양손으로 꽉 쥐며 내게 말했다.
“제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언제라도 불러주십시오. 세상 끝까지라도 따라가서 미력하게나마 힘을 보태겠습니다.”
“헛소리하지 말고 여기서 몸 편히 잘 살 생각이나 해.”
바리다와도 헤어진다. 일행의 수는 어느새 10분의 1 이하로 줄어들어 있었다. 나는 꾸준히 걷고, 또 걸어서 흐라탄으로 가는 길목에 다다랐다.
제자리에 멈춰 왼쪽을 바라본다. 왼쪽에 있는 황량한 돌산이 바로 몇 개월 전 타칸을 만났던 장소였다.
터벅터벅!
백 수십 명의 사막 전사들과 갈리어드, 살저 하라한이 나를 지나치며 앞서나갔다. 그러다가 갈리어드가 내가 멈춘 것을 알고 함께 멈췄다.
갈리어드와 살저 하라한이 내게 다가오는 그 순간까지, 나는 돌산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살저 하라한이 무슨 이유에선지 피식 웃으며 물었다.
“바로 떠날 생각인가?”
나는 말했다.
“그럼 축제라도 하게?”
“음… 사실 비슷한 걸 준비하긴 했다만.”
“됐어.”
에레스발다의 왕인지 뭔지 하는 사람들이 부른 것도 안 갔는데, 사막의 소도시에서 하는 축제가 마음에 찰 리가 있나.
나는 말없이 왼쪽 끝, 사막을 나가는 길을 바라보았다. 사막을 나가서, 북으로 쭉 올라가 있을 또 하나의 아버지 만자흐마비코를 떠올렸다.
그제야 다른 이들도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무슨 기색인지는 눈치를 챘다.
“받으십시오.”
갈리어드가 내게 낙타와 식량, 지도를 건네주었다. 그가 돌산 너머를 가리키며 말했다.
“서쪽으로 일주일간 내리달으면 이종족 연합지역의 남동쪽에 다다를 겁니다. 바로 앞에 보이는 커다란 산에 가면 델리라는 대도시가 나옵니다.”
“고맙군.”
“아닙니다. 무운을 빕니다.”
다시 무뚝뚝한 인간으로 되돌아온 갈리어드였다. 나는 낙타에 탄 채로 떠날 채비를 마쳤다. 천천히 낙타를 모는 내게 살저 하라한이 말을 걸었다.
“웨일. 네가 어째서 그… 사실을 숨기는지 모르겠다만, 그것이 네가 바라는 바라면 나도 끝까지 비밀을 유지하겠다.”
“그래. 부탁한다. 이럇!”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손만 위로 들었다. 그리곤 서서히 속력을 올려 그들에게서 멀어졌다. 갈리어드와 살저 하라한, 흐라탄의 전사들이 내 등으로 깊이 고개를 숙였다. 내가 지평선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계속.
그렇게 사막에서의 아버지 죽이기와 간에 기별도 가지 않는 양육비 받아내기가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