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Lives Eight Lives RAW novel - Chapter 194
194화
* * *
‘빠르다!’
웨일은 그가 예상한 것보다 몇 배는 빠르게 쏟아지는 흑마력에 가슴을 졸였다.
저것만이 홀로 다른 시간대에 존재하는 것 같다. 흑마력의 밀도가 너무 높아서, 그리고 저것이 지닌 상위의 힘 때문에 극소적으로 시간관념이 일그러진 것이다.
찰나(刹那)의 순간도 지나기 전, 폭포수처럼 쏟아진 흑마력이 뿌리를 감싸고 검은 인간의 형상을 만들어냈다. 그러곤 알아서 꿈틀거리며 세세한 형태를 잡는다.
흑마력과 수만이 넘는 몬스터의 살점으로 이루어진, 암흑인(暗黑人)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뼈가… 내려온다?’
추가로 흑마법사의 둥지에 고이 보관된 막대한 양의 뼈가 이동하며 암흑인의 몸 곳곳으로 퍼진다! 둥지에 보관된 뼈는 바로 악신의 뼈!
웨일은 션으로 살적에 본, 악신의 묫자리를 떠올렸다. 악신이 누운 흔적으로 덩치를 역산하면, 절반 가까이 되는 뼈가 흑마법사의 둥지에 남아있었다.
피와는 달리 조각만 떼어내면 몇 번이든 재활용이 가능한 뼈였기에, 수십 년간 마구 써도 절반이나 남은 것이다. 트록바는 그 남은 뼈를 몽땅 써서 이번 일에 투입했다.
꿀렁꿀렁!
그 뼈가. 뇌 부위에 고이 모여 있던 뼈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는 흑마력을 타고 암흑인 곳곳에 자리 잡는다. 군데군데 빈 곳이 절반이 넘었지만, 나머지 부위는 곧 흑마력과 몬스터 시체에서 빼낸 뼈로 채워졌다.
뿌리가 계(系)를 이루고 흑마력이 형태를 다잡는다. 그리고 뼈가 기둥이 된다.
그렇다면 살은? 살도 걱정할 게 없다. 설하의 땅에 널리고 널린 것에 몬스터 사체. 트록바는 마지막 실수만 제외하면 모든 것을 면밀하게 계획했다.
스르륵!
둥지 외각을 감싸던 살덩어리가 뼈와 함께 밑으로 이동한다. 흑마법사의 둥지가 줄어들었다고 생각한 것이 착각이 아니었다.
둥지를 감싸던 막대한 양의 살덩어리가 아메바처럼 내려와 암흑인의 살점을 이루었다. 근육이 생기고, 뿌리를 통해 흑마력의 순환을 이루며, 뼈가 그 모든 과정을 안정적으로 통제한다.
신장 백미터가 넘는 암흑의 거인이 설하의 땅에 우뚝 섰다. 어슴푸레한 백야가 암흑의 거인의 등을 비춘다. 전면부는 그림자에 가려져서 어둑어둑하지만, 텅 빈 눈구덩이에 자리 잡은 불길한 빛만큼은 또렷하게 타올랐다.
“으, 으아아아……!”
그 압도적인 위용에 수천 병력도 기겁하며 창을 슬그머니 내렸다. 상식을 뛰어넘은 흑마력은 암흑인을 바라본 필멸자에게 세상 그 자체가 굴러와 자신을 압사시키는 공포감을 느끼게 했다.
“끼이익!”
“꺅! 꺄악!”
그것은 언데드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흑마법의 하위 법칙에 속한 언데드였기에 일반인보다 암흑인이 발하는 파동에 몇 배나 더 강력한 영향을 받았다.
언데드는 생명체에게 적의를 불사지르는 것조차 잊고, 죽은 것들이 죽음의 공포에 질린다는 모순을 몸소 보여주며 땅에 고개를 박고 조아렸다.
하늘을 날던 좀비 독수리는 파동에 살점이 산산이 분해되어 뼈만 남은 채로 추락한다. 미라 울프는 흑마력이 넘쳐나서 스스로 불타오르고 예티는 광분해서 몽둥이를 휘둘러 자기 머리를 깨부순다.
으직!
깨진 두개골 사이로 검게 썩은 뇌수가 흘러내렸다. 수천이 넘는 언데드가 죽고, 공포에 질려 움직임을 멈추고, 그리고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
그렇게 죽은 언데드의 몸에서 흑마력이 튀어나와 암흑인에게 되돌아갔다. 암흑인은 피부로 언데드의 흑마력을 흡수하며 신체구성 과정을 점점 가속화했다.
“막아! 성륜(聖輪)의 철창(鐵窓)!”
한발 늦게, 살저 하라한과 마법사들의 힘을 쥐어짠 마법이 발현되었다. 성자의 성력이 필수적으로 들어가야 하는, 고대의 신성마법!
형광빛으로 빛나는 푸른색 창살이 소환되어 암흑인을 둘러쌌다. 창살의 길이는 신장이 백여 미터에 다다르는 암흑인보다 머리통 하나만큼은 더 길었다. 그런 성력의 창살 수십 개가 암흑인을 포위한다.
창날 위아래로 백색의 원형이 만들어진다. 원통형 감옥에 암흑인이 갇히고, 신성스러운 힘에 반하는 모든 기운은 흐름이 봉인된다.
암흑인의 신체구성 과정, 흑마력 흐름과 뼈가 자리를 잡는 속도가 단번에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고무적인 성과였지만, 정작 신성마법을 쓴 살저 하라한은 어이가 없어서 눈을 크게 떴다.
“이래도 움직인다고? 이, 이디티! 이디티 에이!”
“…헉! 뭐, 뭐요?”
“성륜의 철창을 쓰면 대장로급 흑마법사라 할지라도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다는 게 사실이오? 저 미친 거인 새끼는 움직임만 느려졌지 도무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데?”
“뭐? 그럴리… 허어! 맙소사!”
숨을 헐떡이며 마나를 모으던 이디티 에이가 거인을 보곤 눈앞이 새까매졌다. 인간이 감히 감당할 수 없는 흑마력 흐름이 신성마법에 저항하고 있다.
또한 암흑인을 이루던 뼈, 악신의 뼈에 담긴 미약한 신력(神力)이 있기에 성력이 일부 섞인 게 고작인 신성마법으로는 암흑인을 완전히 막을 수 없었다.
어쨌든 느려진 건 사실이다. 웨일이 눈을 시퍼렇게 빛내며 암흑인에게 돌진했다.
“뿌리! 흑마력! 베!”
웨일이 악을 썼다. 그가 최대치의 힘을 담은 마하결을 내쏘며 줄기차게 떨어져 내리는 흑마력을 베었다.
이건 성력을 숨기니 어쩌니 할 때가 아니다. 있는 힘껏 성력을 담아 푸르게 빛나는 오러가 암흑인의 왼쪽 허벅지를 베었다.
쩌엉!
하지만 막힌다! 성벽도 일검에 관통할 오러가 허벅지를 절반쯤 베다가 단단한 무언가에 막혔다. 징징! 울리는 검신이 손끝에서부터 전신까지 떨림을 전달한다. 웨일이 얼얼한 손바닥에 힘을 주며 검을 올려 베었다.
막혔으면, 베이는 곳만 베이면 되는 일! 가로로 베어진 검광 가운데가 툭! 삐져나오더니 위아래로 확장되었다. 전력을 담은 연환십자로(連環十字路)가 펼쳐지며 세로로 죽! 그어진 오러가 암흑인의 허벅지를 넘어 가슴까지 살점을 크게 베었다.
다시 가슴에서 이어진 연환십자로!
오른쪽 가슴에서 터지듯이 분출된 백색의 선이 암흑인의 가슴을 가로로 길게 가른다! 웨일은 가로 중심부, 흉부 부분에서 재차 연환십자로를 터뜨렸다.
퍼어엉!
흉부에서 터진 연환십자로! 그가 연환의 무리(武理)에 따라 수검술을 펼치며 흉부와 흉부 바로 밑의 복부를 연속으로 베었다.
시작과 끝이 이어진 면면부절(綿綿不絶)한 검술이 힘을 축적한다. 단 일검에 연환검을 수십 번 펼진 힘이 응축되었다. 웨일은 흉부의 상처에 모든 검력과 성력을 쏟아 부었다. 그러며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카보머 등에게 외쳤다.
“베라고! 다리든 팔이든 어디든 좋으니까 무조건 사지 하나는 떼어내!”
“허? 아, 알겠다!”
카보머가 당황을 수습하고 뇌수(雷手) 극한 찌르기를 날렸다. 앞을 가로막는 눈보라를 극소단위로 없애며 날아간 뇌전의 오러가 암흑인의 무릎을 정확하게 파고들었다.
무릎관절 사이로 들어간 극한 찌르기가 플라즈마처럼 내부에서 빛을 내며 무릎 위아래의 흑마력을 소멸시킨다. 엄청난 힘이 발휘되는 와중에도, 무릎을 이루는 악신의 뼈는 거뭇거뭇하게 탈 뿐 조금도 손상되지 않았다.
“또 무슨 일이야?! 대체!”
“트라칸! 질문은 나중에!”
빈틈으로 트라칸의 폭검, 아본의 비기 연화엽(蓮花曄)이 펼쳐진다. 막대한 폭발이 무릎 관절을 벌리고, 정교하게 맞물린 오러의 회전이 살점과 연골을 베어내며 벌어진 틈을 유지한다.
겨우 왼쪽 허벅지와 정강이가 분리되었지만, 절단면에서 흑마력이 촉수처럼 튀어나와 상처를 메꾸려 한다. 그 타이밍에 나세르 2세가 날린 은하섬(銀河剡)이 상처를 메꾸려는 흑마력을 베었다.
“다른 데는 신경 쓸 겨를이 없군. 가슴 부분은 웨일에게 맞기고 우리는 다리 하나라도 자르지.”
“예!”
콰과광!
다섯 무인의 폭격에 왼다리가 마구 뒤흔들린다. 분명히 왼다리 무릎 밑이 분리되었는데, 정강이는 무형의 힘이 작용하는지 떨어지지 않고 공중에 떠 있다.
이대로 가다간 밑도끝도없는 소모전만 계속된다. 결심한 웨일이 흉부를 베는 것을 그만두고 성륜의 철창 안으로 들어갔다.
“끄하압!”
그가 전신에 초능력을 걸고, 신체능력을 최고도로 상승시켜서 밑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초능력 가속마저 사용하자 한순간이나마 음속을 돌파한 비행속도!
그 힘을 모조리 발끝에 담아, 정강이를 때린다!
콰아아앙!
폭음이 울려 퍼지며 정강이와 무릎 사이에 시퍼런 광구(光球)가 만들어졌다. 초능력과 오러, 성력의 조화가 흑마력 흐름을 일시적으로 끊었고, 그 순간 공중에 둥둥 떠 있던 왼쪽 정강이가 밑으로 추락했다.
“결박(結縛)!”
이디티 에이가 숨을 헐떡이며 떨어진 왼쪽 정강이에 결박 마법을 걸었다. 르데앙이 창백한 안색으로 성력을 더했다. 빛의 실이 왼쪽 정강이를 둘둘 말아서 암흑인에게서 멀리 떨어뜨린다.
정강이 하나. 여섯 명의 절대고수와 7결 마법사 둘. 수십 명의 보조 마법사가 힘을 합쳐서 겨우 왼쪽 정강이 하나를 분리했다.
그 사이에 암흑인은 변화를 거의 끝마쳤다.
암흑인의 신체가 부풀고, 인간 체형에 맞지 않는 근육질 몸매로 변한다. 얼굴은 괴물의 그것처럼 일그러지며 전신에서 검게 빛나는 불꽃이 타올랐다.
삐걱! 끄그극!
검은 불꽃이 성륜의 철창과 힘겨루기를 하며 무수한 스파크가 튄다. 성륜의 철창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삐걱대고, 그 틈으로 무시무시한 흑마력 파동이 발산된다.
스르륵!
흑마력이 텅 빈 눈구덩이에 모이더니 불길한 불길을 감싼다. 구형으로 모인 흑마력이 눈동자를 이루고, 불길이 화룡정점을 찍듯이 동공에 자리 잡는다.
아직 눈이 다 완성되지 않았음에도 세상이 암흑인의 눈동자에 사로잡힌 듯했다. 세상 모든 존재에 대한 악의(惡意)를 보여주는 듯한, 한없는 투지를 담은 눈동자!
마치 악신의 표상(表象)이라 할 수 있는…….
‘아, 악신……. 아! 이거였구나!’
암흑인의 눈동자를 보며, 웨일의 머릿속에 수년도 더 지난 대화가 떠올랐다.
웨일과 실험체가 세상에 나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그는 르데앙과 함께 연구소로 돌아가다가 살의 렉시놈 일파인 솔을 만났었다.
그때 솔이 이렇게 말했다.
[흑마법사의 목적은 단 하나야. 영생불멸과 불로불사. 완벽한 상인(上人)의 탄생. 즉, 신이 되는 것.] [울타르는 모르겠고, 트록바는 각 종족의 장점을 취합하고, 성력까지 보유한 완벽한 인간을 탄생시키는 것으로 그 첫발을 내딛으려고 했어.]웨일도, 르데앙도, 심지어는 말하는 솔조차 실험체를 만드는 것이 신이 되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를 몰랐다.
하지만 서서히 섬세한 형태를 갖춰가는 암흑인을 보고, 웨일은 드디어 트록바 최상부의 목적을 알아냈다.
‘악신의 탄생 또는 재생! 아니면 언데드화!’
으득! 웨일이 피가 나올 정도로 입술을 강하게 깨물었다.
‘악신의 뼈! 인간! 한 개체의 강력한 몬스터! 이 등신 새끼! 최소한 저걸 보면 알아챘어야지!’
그가 진실을 알지 못한 것은 그의 탓이 아니다.
트록바가 워낙 점조직화 돼 있어서 중간 조직마다 노리는 점이 달랐다. 예를 들면 연구소는 몸 갈아타기 등으로 실험체의 육체를 뺏으려 했고, 제노이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흑마력 보유량을 달성하려 했다.
트록바의 최종 목적과 연구소와 제노이가 노리는 것이 달랐기에 복잡한 인간의 욕망을 뚫고, 단 하나의 진실에 도달하기란 지난한 일이다.
굳이 잘못을 찾으라면 흑마법사를 너무 얕봤다는 것?
설마 어두컴컴한 창고에 처박힌, 자기가 세상 최고라고 착각하는 비타민 결핍 찐다들이 악신을 되살릴 기술력이 있을 거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않은 웨일!
하지만 션이 죽고 30년간, 흑마법사는 줄어들고 세력은 더욱 약화될지언정 악신의 유해(遺骸)를 이용하는 능력은 매년 상승했다. 그 기술력의 혜택 중 하나가 바로 웨일과 같은 실험체의 탄생이었다.
몬스터를 만든다. 후천적으로 강화된 인간도 만든다. 아예 처음부터 인체의 설계도를 그려서 여러 종족의 장점이 포함된 완벽한 인간도 만들었다!
물론, 흑마법사가 그 정확한 방법을 아는 건 아니지만, 여하튼 악신의 뼈를 이용하여 그것들을 생산할 기술력은 갖췄다. 그렇다면 그 세 개의 기술을 응용하여 악신의 육체를 재구성할 수도 있지 않을까?
즉, 몬스터의 탄생과 개조, 후천적인 인체 개조법, 인간을 탄생시키는 방법. 이 모든 것은 악신의 육체를 이루고자 하는 하위 연구과제에 불과했다!
“웨일. 뭔가 알아챈 것 같은데. 짐작이라도 가는 게 있나?”
얼이 빠진 웨일에게 카보머와 나세르 2세가 달려왔다. 웨일은 새하얀 얼굴을 들어 더듬더듬 겨우 입을 열었다.
“아, 아마도… 저게 악신이 아닐지…….”
“…….”
“흐, 흑마법사, 트록바는 악신을 되살리려고…….”
“…그, 그게 말이 되나?”
“그야 저도 모르죠. 하지만 저게 탄생하는데 악신의 뼈가 절반 가까이 들어갔으니까… 악신이 아니라도 그에 준하는 뭔가를 만들려고 그만한 투자를 한 거겠죠?”
“악신의 뼈라고?!”
“예. 뼈가 안 잘리지 않았습니까? 저 녀석들. 마지막까지 아껴둔 악신의 뼈를 모조리 저 생명체를 만드는데 투입했습니다.”
카보머와 나세르 2세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
그 둘은 마스터의 경지에 이르고서 오러 블레이드로 베지 못하는 몬스터는 없다시피 했다.
바닷속에 있는 규격 외 또는 드레이크 같은 최상급 몬스터가 아닌 이상에야 대부분 오러 블레이드를 일격도 버티지 못하고 죽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암흑인은 오러 블레이드를 정통으로 맞아도 뼈에 흠집만 나고, 심지어 사지를 완전히 벨 수도 없다. 웨일의 말대로 악신인지 아닌진 확실하지 않지만, 악신이나 다름없는 초월적인 무언가가 탄생한다는 것은 확실했다.
카보머가 몸을 돌려 전력으로 병력에 복귀했다. 그가 뇌전을 일으키며 뒤를 향해 뇌격을 쏘았다.
“병력을 물려! 전원 후퇴!”
꽈르릉!
뇌격이 다다른 곳은 머팔로가 쉬는 곳! 눈 언덕을 넘어 몇 킬로미터만 가면 지친 머팔로가 있다. 그곳으로 후퇴하여 머팔로를 타고 도망쳐야 한다!
어차피 언데드도 공포에 질리거나 죽어서 방해할 수도 없다.
“사망자는 놓고 가! 부상자만 이끌고 전력으로 남하한다! 어서 뛰라고!”
카보머가 채근하자마자 3,000이 조금 안 되는 병력은 사망자를 내버려두고 남쪽으로 미친 듯이 뛰었다. 수천 병력이 눈발을 휘날리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그 사이에 카보머를 비롯한 익스퍼트 상급 이상의 고수는 도망치지 않고 웨일 등에게 다가와 암흑인을 마주 보았다. 그들이 긴장된 기색으로 암흑인의 변형을 지켜보았다.
꾸물렁!
침묵과 긴장 속에서, 암흑인이 형태를 뒤바꾼다. 일반적인 인간에서 한참이나 멀어지게 사지와 머리통의 수가 늘어난다.
검은 기운이 모여들어 상체가 두 배 가까이 부풀어 오른다. 배는 넓어진 어깨를 기반으로 이미 있는 머리통 반대편에 새로운 살점이 불쑥! 솟아오른다.
살점이 뭉치더니 어둑어둑한, 새로운 머리통을 형성했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두 개의 머리통 위로 굵은, 천년 묶은 소나무와 같은 우람한 뿔이 네 쌍이나 솟구치고 외모도 악마와 같이 위협적으로 변했다.
불쑥불쑥!
변이는 머리통에서만 한정되지 않는다. 등과 어깨에서 불쑥! 하고 검은 무언가가 솟아오르더니 멈추지 않고 쭉쭉 자라난다. 자라난 그것은 곧 새로운 팔이 되었다.
그렇게 두 개의 머리, 세 쌍의 팔, 네 쌍의 굵은 뿔을 자랑하는 암흑인의 외형!
“어?”
웨일이 바보 같은 소리를 내며 신체 변환이 거의 끝난 암흑인을 바라보았다.
암흑인, 아니 이제는 악신이라 불러야 할 괴물이 몸을 부르르 떨며 여섯 개의 팔을 쫙 펼쳐 기지개를 켠다. 그 모습을 보며 웨일은 머리 한구석이 찌르르! 하고 울리는 걸 느꼈다.
그 감각은 분명한 낯익음이었다. 웨일은, 션은 단 한 번도 악신을 본 적이 없지만, 그는 왠지 모르게 악신의 모습이 낯이 익었다.
‘악신을… 내가 어디서 봤다고?’
화르르륵!
악신의 신체를 태우던 불꽃이 세 쌍의 팔에 모여든다. 불꽃은 이내 채찍, 대검, 창 등으로 변하여 세 쌍의 팔에 잡혔다.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는 입안에는 기이한 불꽃이 맴돌았다.
두 개의 머리, 세 쌍의 팔, 네 쌍의 뿔. 그리고 불타는 채찍과 악마와도 같은 외형. 산만큼이나 커다란 덩치. 웨일은 물론 션도 본 적 없는, 하지만 분명 어디에선가 보았던…….
“허으억!!??”
웨일이 몸을 뻣뻣하게 굳혔다. 그가 너무 놀라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자 무슨 일인가 다가온 아본이 그의 등을 쓸어주었다.
“웨일! 정신 차려라!”
“아, 아… 아아……!”
“웨일! 눈을 떠!”
“아,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저게 왜 여기에……!”
우우웅!
악신의 입에 검게 물든 구가 모여든다. 흑마력이 한데 모이자 삐걱대던 성륜의 철창이 망가진 녹슨 금속처럼 군데군데가 부서져갔다.
입에서 광선! 이건 확실하다. 웨일이 패닉에 빠져 외쳤다.
“모두 도망쳐! 아, 안 돼! 저건 안 된다고!”
“우리도 안다! 우리가 상대도 안 되는 건 알지만 막 탄생했을 때가 가장 약할 것이야! 중앙에서 지원이 오기 전에 저 녀석의 약점을 캐야……!”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모른다고! 당신들은 저게 뭔지 모른다고! 저, 저건… 죽든 살든 도망쳐야 해!”
“무, 무슨 소리를… 익! 뭔 힘이 이렇게……!”
트라칸과 아본이 말리지만, 웨일의 근력은 그들이 예상한 것을 훨씬 웃돈다. 두 이종족이 웨일에게 질질 끌려다니는 순간, 베노브란도가 다가와 웨일의 뺨을 때렸다.
짝!
화끈한 타격에 웨일의 정신이 되돌아왔다. 베노브란도는 그 틈을 타서 웨일의 양손을 조심스럽게 마주 잡았다. 그녀가 웨일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웨일. 저게 뭐지?”
“아, 악신…….”
“아니다. 저건 악신이라고 불릴 뿐 진짜 악신이 아니다. 저것을 부르는 이름이 있을 것이다. 네 반응을 보면 분명히.”
영하 수십 도의 온도를 자랑하는 설하의 땅. 웨일은 그 온도에서도 식은땀을 흘리며 베노브란도와 입을 벌린 악신을 번갈아 보았다. 그가 어찌할 바를 모르자 베노브란도가 은근히 그의 손바닥에 무언가를 적었다.
“! 당신이 그걸 어떻게……!”
“네게 들었어. 그러니 넌 알고 있을 거야. 우리는 모르는 악신의 진짜 이름. 너는 그게 뭔지 안다.”
“…….”
“말해라. ‘저건’ 뭐지?”
“…….”
“…….”
“투…….”
“투?”
번쩍!
웨일이 말을 하기 전, 벌어진 악신의 입이 광선을 토해냈다. 부채꼴 형태로 퍼지는 파괴의 불꽃이 성륜의 철창을 가볍게 박살을 내며 지상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화르르륵!
지상을 불태우는 불길을 바라보며 웨일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투혼. 승천자의 적. 그게… 악신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