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Lives Eight Lives RAW novel - Chapter 195
195화
* * *
“투혼?”
“투혼이라니, 어떤 종족이… 아니, 악신이 아니라고?”
사방에서 질문이 날아왔지만, 웨일은 질문에 답할 여유가 없었다. 그는 최대한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며 투혼의 정보를 떠올리는 데 집중했다.
투혼. 승천자의 우주에서, 승천자가 은하계의 패권종족이 되는 것을 가로막는 유일한 전투종족. 타 동족을 허락하지 않는 상호파멸정신으로 무장하여 끊임없는 전쟁을 벌여, 전투를 통한 자율진화 끝에 신이 되고자 하는 미치광이 종족.
아니, 애초에 투혼은 종족으로 정의할 수 있는 일반적인 생명체가 아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버튼 하나만 눌러도 행성을 싸그리 불태울 병기와 싸울 수 있는 강력한 육체를 지닐 수 있었다.
삼사드가 공부하기에는 투혼은 몇 개의 등급으로 나뉘어있다. 웬만한 아파트만 한, 가장 작은 개체에서부터 애송이였던 삼사드에겐 허락되지 않는 최고 등급 개체까지
‘그렇다면 저놈은…….’
덩치로 보았을 때 되살아난 투혼은 최저등급! 그렇다면 현 전력으로 투혼을 이길 수 있는가!
웨일은 단언했다.
‘절대 불가능.’
이들이 모두 승천자라면 가능하다. 하지만 이종족의 몸으로 덤비는 것은, 제아무리 무술의 달인이라도 거식증 환자가 모여 봤자 돌진하는 트럭을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행성 보기를 돌보듯이 하던 승천자와 우격다짐으로 싸움을 벌일 수 있는 유일한 종족. 그런 투혼은 최저등급이라 할지라도 무시해선 안 된다.
“어어! 저 씨발 새끼가……!”
웨일이 한창 생각하던 와중, 트라칸이 욕설을 내뱉으며 투혼을 가리켰다. 모두가 시선을 돌려 투혼을 응시했다.
쿠르르르르!
투혼의 입에서 뻗어 나간 화염이 검게 물든 채찍으로 변모했다. 꿈틀대는 수백 가닥의 채찍은 빙하 곳곳에 널브러져 죽어있는 이종족에게 향했다.
채찍은 포도알을 따먹는 뱀의 혓바닥처럼, 이종족을 감싸곤 수축해서 투혼의 입으로 전해주었다. 수백 개의 촉수가 사망자를 한 번에 투혼의 입안으로 전달했다.
꽈드득! 꾸득!
앙 다문 입안에서 시체가 어떤 식으로 소화되는지 알아내는 것은 힘들었다. 하지만 씰룩거리는 볼과 강철 밧줄이 꼬이는 기괴한 소리는 시체가 어떤 꼴을 당하는지 단적으로 설명해주었다.
꿀꺽! 하고 삼키자마자 조각난 살점과 피가 투혼의 몸으로 퍼졌다. 투혼의 몸이 형언할 수 없이 움찔거리며 흑마력과 사기가 혼탁하게 섞인 육체가 조금씩 안정적인 흐름을 보여주고 있었다. 잘린 왼쪽 정강이도 흑마력으로 이루어진 물체로 대체되고 있다.
‘육체가… 육체가 안정화되고 있어?’
웨일은 식인(食人)행위를 했다는 것보다 투혼의 육체가 인간의 살점으로 완성된다는 사실에 더 큰 혼란을 느꼈다.
투혼은 살아있지만, 생명체가 아니다. 차라리 하나부터 열까지 몬스터의 살점만 쓰는 게 더 말이 된다. 인간의 육체는 투혼에겐 가장 맞지 않는 부위다.
하지만 웨일은 곧 식인을 하는 투혼을 보고 조금의 희망을 찾았다.
‘흑마법사가 악신이라 칭하고 숭배하던 개체는 투혼이다. 악신, 즉 투혼은 뼈와 피와 살 세 부위로 나뉘었고 저것에는 오로지 뼈만, 그것도 절반만 들어갔어. 거기에 이상하게 변질되어서 인간의 살점까지 필요하다.’
3분의 1로 나뉜 것의 절반만 함유된 투혼! 피와 살, 그리고 부족한 뼈는 전부 몬스터의 그것으로 대체되었다. 그러니 ‘저 투혼’은 삼사드가 알던 그것보다 훨씬 약할 것이 분명했다.
생각을 정리한 웨일이 말했다.
“제가 아는 투혼이 아닙니다. 투혼은 인간 따위를 먹지 않습니다. 더욱이나 인간을 먹고 육체나 마나 흐름이 안정되는 종족도 아니죠. 저 녀석은 흑마법사가 기이한 방법으로 되살린 불완전한 언데…….”
꾸왕!
웨일의 말을 끊고, 정강이를 회복한 투혼이 오른발을 굴렀다. 신장 백 미터가 넘는 괴인의 발 구름은 상상을 초월했다.
앞선 전투로 더 부서질 게 남아있나 의문이었던 빙하가 재차 부서지고, 얼음을 통해 전달된 충격에 곱게 쌓여있던 눈이 수 미터 위까지 치솟다가 바람에 흩날렸다.
그 한 수에 저 멀리 도망치던 병력도 발이 묶였다. 전방에 보이던 눈 언덕은 무너지고, 옆으로 지나가던 길은 빙하에서 일어난 소규모 눈사태에 묻혀 막혔다.
웨일이 재빨리 말을 바꿨다.
“아, 예. 힘 하나만큼은 제가 아는 그 투혼이 맞나 봅니다.”
“…….”
“하… 씨! 미치겠네……. 잘 들으세요. 투혼 아니, 악신이라고 하죠. 다들 보셨다시피 악신이 언데드화 하자마자 한 짓은 식인이었습니다. 어째서인지 모르지만, 악신의 육체를 안정시키는데 인간의 살점이 필요한 듯하군요.”
“안정화라고?” 카보머가 물었다.
“예. 저놈은 아직 완성된 언데드가 아닙니다. 쉽게 말해서 뭔가… 뭔가가 불안정해요.”
“그걸 네가 어떻게 알지?”
“저도 몰랐습니다. ‘저 상태’가 안정된 건지 불안정한 건지 직접 본 적이 있어야 알죠. 하지만 인간을 먹자마자 급격하게… 이전보다 마나 흐름이 안정적으로 흐르게 변한 게 보인 게 느껴집니다.”
“??”
웨일은 최대한 요점만 짚어서 설명한다고 했지만, 그도 당황하여 횡설수설하는 게 있고 같은 표현도 반복했다. 다행히 나세르 2세가 그가 한 말의 요지를 정확하게 집었다.
“이유도 모르고 원인도 모른다. 하지만 투혼… 또는 악신이라는 저 언데드는 아직 불완전하며 인간을 먹어야 그 불완전함을 채운다. 그러니 무엇보다 식인 행위를 막는 게 시급하다. 이 말인가?”
“…아마도요.”
“그러니 우리가 할 일은 저 녀석이 ‘다수의 인간’을 먹지 못하게 방해하는 거군.”
“…예.”
“대답에 자신감이 없는데?”
“제 말이 틀렸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냥 운 좋게 식인 행위와 마나 안정화 타이밍이 겹쳤을 수도 있어요. 저도 저런 걸 처음 보기에…….”
딱!
카보머가 손가락을 튕기며 시선을 집중시켰다.
“그렇군. 좋아. 그럼 빠르게 정리해보지.”
카보머가 막 왼다리를 들어 올리는 악신을 보며 마나를 끌어 올렸다. 그가 전신에서 뇌광을 발하며 빨리 말했다.
“하나. 우리는 상급 지휘관으로서 저 미친 괴물이 남하하는 것을 막아야 할 의무가 있다. 둘. 나머지 병력의 무장으론 악신에게 유의미한 타격을 입히지 못한다. 흑마법사 용으로 준비한 게 있긴 있지만, 준비 시간이 오래 걸리지.”
“맞습니다.” 웨일이 맞장구쳤다.
“즉, 안정화니 뭐니를 떠나서 병력의 개죽음을 막고, 악신을 막고, 지원이 올 때까지 시간을 끌며 약점을 파악한다. 그게 우리가 할 일이다. 결국, 어째 됐든 저 거인 언데드하고 한 판 떠야 한다. 다른 의견 있나?”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본 뒤 세 조로 나뉘었다.
트라칸, 티안, 길이 한 조. 나세르 2세, 웨일, 베노브란도가 한 조. 카보머, 아본, 단 오가 한 조. 이렇게 세 조로 나뉘어서 악신에게 달려들었다.
후우웅!
목표는 왼발을 내려치는 악신! 카보머가 전신에 모인 뇌전 오러를 오른팔에 응축했다. 그의 뒤를 이어 아본과 단 오도 각자의 비기를 준비한다.
“먼저 가겠습니다!”
단 오가 외치며 양팔을 흩뿌렸다.
108 폭쇠아(爆碎牙)!
던진 것은 얇디얇은 바늘! 하지만 오러가 바늘을 감싼 끝에 흉험한 단검으로 변했다. 108개의 오러 단검이 대륙을 건너는 철새 무리처럼 일사불란하게 오와 열을 맞춰 허공을 가르더니, 지면에 박혔다.
단검은 정확하게 거신의 오른발 바닥 주위를 포위했다. 힘이 안 되면 지혜를 쓰면 되는 일. 단 오가 이마에 핏줄을 잔뜩 세우며 양손을 마주 잡았다.
“끄합! 터져라!”
꽈과광!
단 오의 조종에 오러가 한 점에 모여들고, 바늘 전체가 붉게 빛나더니 세차게 폭발했다. 오러에 의한 폭발, 오러 중심에 있는 바늘의 폭발. 이중 폭발에 순식간에 빙하가 20미터 이상 깎여나갔다.
지지대가 사라지자 우람하게 대지를 딛고 선 오른발이 추락하고, 악신이 휘청인다. 땅을 찍으려던 왼발도 타점이 어긋나 미끄러진다. 악신이 한쪽 무릎을 꿇으며, 왼발 무릎이 땅을 찍었다.
꽈르릉!!
무릎이 땅을 찍었는데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빙하가 뒤흔들린다. 악신이 입에서 지옥불을 내뿜으며 움찔대는 시점,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아본의 창과 카보머의 주먹이 불을 뿜었다.
에레스발다 섬전 투창술!
뇌수! 극한 찌르기!
얼음으로 만들어진 창이 짙푸른 오러에 감싸여 왼쪽 무릎과 정강이 사이를 타격한다. 어둠을 뚫고 수 미터나 파고든 오러가 폭발을 일으키며 커다란 상처를 만들었다.
쉐엑!
바로 뒤이어, 유려한 백색의 선이 공간을 압축하듯이 전면을 향해 쏘아진다! 뇌수 극한 찌르기가 어둠이 시작되는 왼쪽 정강이 무릎을 정확하게 찌르고 들어갔다.
악신의 뼈만 아니면 마스터의 오러는 무적! 어둠도 찬란하게 터지는 백광에 무릎과 맞닿은 어둠이 산산이 흩어지며 정강이가 너덜너덜해진다!
퍼엉! 콰과과과곽!
두 번째 폭발에 다시 악신이 미끄러져 빙하 위에 몸을 뉘었다. 산이 쓰러지는 듯한 기막힌 장면이 펼쳐지며, 그 거대한 몸뚱어리가 수북이 쌓인 눈을 밀어낸다.
그 사이 트라칸과 나세르 2세의 조는 악신의 좌우로 자리 잡았다. 악신의 양팔, 세 쌍의 손에 고이 잡힌 채찍과 대검, 창이 눈에 선명하게 아른거린다.
트라칸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 새끼… 의외로 허당인데?”
티안이 말했다.
“웨일의 말대로 불완전한 게 맞나 보군.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꿀꺽!
누군가가 삼킨 침을 신호탄으로, 나세르 2세가 높게 외쳤다.
“공격해! 손가락을 잘라!”
좌우에서 쏘아진 오러가 악신의 손가락을 베는 것을 시작으로, 마지막 싸움이 시작되었다.
* * *
그 시각 흑마법사는…….
“아, 끄… 끄웨에에엑!”
뇌에 삼켜진 흑마법사 중 한 명에 눈, 코, 귀에서 검은 피를 줄줄 흘리며 고통에 잠긴 비명을 질렀다. 비명은 몇 초간 이어지다가 이내 멎었다.
“조안… 이런 썅! 조안나! 어떻게 된 거야!”
“죽었어!?”
뇌에 삼켜진 흑마법사들이 얼굴만 내밀어 조안나라는 흑마법사가 갑자기 왜 죽었는지 토론한다.
쭈루룩!
곧이어 조안나라는 흑마법사의 얼굴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었다. 이윽고 조안나는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살에 흡수되고, 흑마법사들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잠시 후 침묵을 깨고 한 흑마법사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아, 악신의 육체가… 우리를 먹었다.”
“먹었다?! 핀트! 그게 무슨 소리야! 이건 언데드가 아니었나? 우리와 동화(同化) 되었는데 같이 죽어야지! 이런 식으로 하위 개체처럼 흡수되는 것은 말이 안 돼!”
“닥쳐! 맥! 그걸 나한테 따지면 어떡해! 우리도 몰라! 아니, 아무도 모르지! 이 중에서 악신이 정확히 어떤 생명체인지 아는 녀석 있어?”
“…….”
“어차피 죽을 각오로 이런 몸이 된 거 아닌가?”
“하, 하지만…….”
“그래! 이런 개 같은… 나도 살고 싶다고! 악신의 언데드화에 성공했는데 여기서 죽는 건 억울해서 못 참겠다! 다들……. 우리가 죽지 않을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는 걸 잘 알겠지!”
“이, 인간을…….”
휙!
핀트라는 흑마법사가 고개를 돌려서 입을 연 흑마법사를 바라보았다. 그가 검게 물든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만자흐마비코, 네 말이 맞다. 너도 알고 우리 모두가 알지. 어서 인간의 육체를 투입해서 안정화를 해야 해. 우리가 아니라 저기 널린… 이종족을!”
흑마법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악신을 죽이는 법은 간단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나머지 병력을 악신이 먹지 못하게 막고 시간만 끌면 되는 일이다.
식인만 막는다면 악신의 육체는 안정화되지 못하고 스스로 자멸한다. 악신의 뇌에 파묻힌 흑마법사도 자멸 과정을 이겨내지 못하고 악신과 함께 숨을 거둘 것이다.
웨일 일행은 그 사실을 모르기에 악신과 싸운다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안다 해도 싸우는 건 마찬가지다.
현재 악신의 육체는 뇌에 삼켜진 다수의 흑마법사가 조종하고 있다. 그들 또한 빠른 시일 내에 인간을 먹지 않으면 악신과 함께 죽으리란 것을 알기에 무슨 수를 쓰더라도 병력이 있는 곳으로 향할 것이다.
그런 흑마법사에게 악신의 생존을 방해하는 웨일 등은 반드시 처치해야 하는 대상! 심지어 초반에 다리를 두 번이나 자른 것도 흑마법사가 웨일 등을 무시할 수 없게 만들었다.
핀트가 입에서 피를 토하며 외쳤다.
“사지를 조종해! 저놈들을 치우고 도망치는 먹잇감을 쫓아!”
“모, 못 움직이겠어!”
“아까 다리를 든 건 뭐야! 기지개도 켜고, 입에서 불도 뿜었잖아!”
“모, 몰라! 방어본능인가 봐!”
“니미! 방어든 뭐든 일단 움직였잖아! 우리도 똑같이 하면 된다고! 기어서라도 가! 팔을 마구 휘둘러! 무기까지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
뇌에 삼켜진 흑마법사가 우왕좌왕하며 악신을 움직이려한다.
만약 흑마법사가 들어있지 않고, 순수하게 악신만 언데드로 만들었으면 이런 일이 없었다. 언데드가 된 악신은 본인의 권능을 써가며 인간을 죽이고 불완전한 육체를 되살렸겠지.
하지만 그 결말에서 흑마법사의 영화(榮華)는 더 이상 없다. 흑마법사 또한 제어되지 않는 악신의 육체 안정화를 위한 첫 희생양이 될 뿐이다.
그러니 흑마법사는 죽이 되나 밥이 되나 악신과 하나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그것이 그들이 살아나고, 그 이상을 성취할 확률이 높아지기에.
끄그그극!
악신의 몸이 흔들린다. 기적이 일어나서 육체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엎어진 악신 좌우로 퍼진 나세르 2세와 트라칸 조가 악신의 몸을 타격하며 그 거대한 동체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서걱! 하고 악신과 하나가 된 그들의 감각에 텅 빈, 허기진 감각이 몰려왔다. 악신의 손가락이 하나 잘렸다.
웨일이 악신의 왼쪽 두 번째 손의 엄지손가락을 잘랐다. 그가 베노브란도와 함께 끙끙대며 두 번째 손에 잡힌 채찍을 빼려고 했다.
스아악! 하고 귓가를 스치는 섬뜩한 소리! 나세르 2세가 전력으로 오러를 끌어올려 은하를 날려서 검지와 중지 손가락마저 자른다! 웨일이 악신의 손에서 채찍을 뺏어 저 멀리 날렸다.
쭈우욱!
“끄어어… 사, 살려……!”
그와 동시에 맥이란 흑마법사의 얼굴이 쪼그라들었다. 손가락이 손실되고, 그만큼 피와 흑마력이 빠져나가 육체 안정화를 위해 인간의 살점이 필요해진 악신!
외부로 유입되는 인간은 없으니 내부에 있는 인간이라도 잡아먹는다! 맥의 좌우에 있는 흑마법사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둥! 두둥! 투우웅!
살덩어리 너머로 충격이 전달된다. 살과 피를 타고 흐른 짜릿한 기운이 흑마법사의 전신을 자극했다. 카보머의 뇌전 오러가 귓가를 뚫고 뇌까지 힘을 전달한 것이다.
이대로 가면 죽는다. 흑마법사의 정신이 번쩍 들었다. 기껏 악신을 되살렸는데! 우리는 모든 걸 포기하고 악신과 하나가 됐는데 벌레처럼 꿈틀거리다가 죽는 것이 결말이라니!
“우라질 놈의 중앙 새끼들아!”
“끄으아악! 같이 죽자!”
푸슉!
흑마법사들이 검은 코피를 흘리며 악을 질렀다. 절반이 넘는 이들은 피눈물까지 흘려가며 악신의 육체 제어권을 되찾으려 했다.
“우… 제발 움직여어어어!!”
“끄우어어어!!”
끝내, 흑마법사의 원한과 공포, 절박함이 기적을 일으켰다.
슈와악!
기지도 못하고 드러누워 있던 악신이 왼팔을 높게 쳐들었다! 왼팔에 들린 대검이 위풍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낸다!
검게 불타오르는 아파트가 높이 들리고, 백야(白夜)의 햇빛을 받아 저 멀리까지 그림자를 드리운다. 움직이지 않는 악신을 신나게 때리던 베노브란도가 고개를 쳐들어서 대검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어……?”
위로 들린 대검을 보는 베노브란도의 머릿속에 4년 전, 히드라 크라켄과의 싸움이 스쳐 지나갔다.
크기로 따진다면 히드라 크라켄의 큰 촉수가 대검보다 길다. 하지만 대검이라는, 인간이 만든 무기는 자연의 괴물과 다른 신선한 충격을 그녀에게 선사했다.
끼이이이!
곧이어 일자로 세운 나뭇가지가 툭! 하고 쓰러지듯이, 대검이 서서히 밑으로 하강한다. 속도는 느려 보이지만, 터무니없이 커다란 크기 때문에 그렇게 보일 뿐 실제로는 말도 안 되게 빨랐다.
그 떨어지는 대검 날의 중간 부분에 베노브란도가 있었다. 얼어붙은 그녀가 뒤로 물러서려다가 금이 간 턱에 발이 걸려 쓰러졌다.
“앗!”
그녀 수준의 고수에겐 있을 수 없는 실수! 베노브란도의 안색이 새하얗게 물들고, 그 위로 검게 불타는 대검이 무정하게 내려친다! 대검이 막 베노브란도와 빙하를 쪼개기 전!
“썅! 안 피하고 뭐 합니까!”
득달같이 달려든 웨일이 베노브란도를 껴안고 날았다! 바로 다음 순간, 대검이 베노브란도가 있던 지점을 뭉개고 빙하 깊숙이 파고들어갔다.
꽈아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