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Lives Eight Lives RAW novel - Chapter 266
266화
잘 가 대머리. 나는 그의 명복을 빌어주며 착지 지점을 살폈다. 이런, 온통 용암만 흐르잖아?
나도 위험하다. 초능력도, 마나도 거의 다 써서 비행 방향을 바꾸기도 힘들다. 이럴 땐 내가 아니라 기물의 힘을 빌려야겠지.
직검. 네가 나설 차례다.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직검을 쓰다듬었다. 대머리를 죽이고 원하는 직검을 얻었지만, 내 마음은 공허만이 가득했다.
진실이란 참 허무하기 그지없다.
대머리의 직검. 익스퍼트 최상급의 오러에 망가지지 않는 마법 회로, 심지어 음의 오러를 지속적으로 투입했는데도 마법 회로는 멀쩡하다.
세상이 이런 미친 물건이 있을 줄이야! 이거 만든 장인 누구냐! 납치하는 한이 있더라도 게리소님으로 영입해야 해!
하지만 그럴 순 없다. 장인이 늙어 죽거나, 기타 다른 이유로 사망한 게 아니다. 직검 장인은 애초부터 이 세상에 없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직검은 ‘이 세상’의 인류가 만든 물품이 아니란 소리였다.
이 세상. 르암인도, 여타 이종족도 아닌 다른 종족. 즉, 이건 승천자가 만든 유물이다. 웨일로 살 때, 그랑 사막에서 망가져 가던 승천자의 유물을 발견한 것처럼, 이 직검 또한 승천자가 남긴 유물이었던 것이다.
승천자 제(製) 무기였으니 오러에도 망가지지 않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추론이다.
르암인이 뭐가 잘났다고 익스퍼트 최상급의 오러를, 상급인 소니아와 싸우는 와중에도 조금의 손상도 일어나지 않는 최최최최고급의 마법검을 제작할 수 있을까.
나는 착각을 한 바보 같은 내 머리를 쥐어박으며 직검의 구조를 파악했다.
이것은 직검 말고도 다른 무기로 변할 수 있는 변형기능이 있다. 종류는 40종 이상. 하지만 대부분 시간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망가져서 몇 개밖에 남지 않았다.
변형만 망가진 게 아니다. 거의 모든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다. 열에너지를 흡수하여 화염, 폭발을 일으키는 기능도 사실은 다른 용도를 위해서지만, 작동이 안 되어 그것만 겨우 하는 거였다.
‘이걸 고칠 생각을 안 하고 좋다고 마법검으로 써? 무식한 르암인 같으니라고.’
나는 혀를 차며 대머리를 떠올렸다.
항성을 이동하는 문명인이 기껏해야 이깟 부지깽이 만들려고 기술력을 투자해준 줄 아나? 직검을 비롯한 40여 개의 외형 변화는 그저 장식에 불과하다. 사실 장식까지는 아니고, 총검처럼 위안거리로나 쓰라는 의미는 되지.
즉, 이것의 본래 용도는 검 따위가 아니라…….
“아, 나도 못 하네.”
이건 나도 못 고친다. 본래 용도, 의미 없었네.
원숭이가 나뭇가지만 가지고 망가진 자동차를 고칠 수 있으면 나도 할 수 있겠지. 왜 직검으로만 쓰냐고 타박해서 미안하다. 르암인아.
나는 르암인과, 특히 대머리에게 사과한 뒤 직검의 열에너지 흡수 기능을 발동했다. 근처에 흐르는 용암 표면이 식으며 열기가 직검에 빨려 들어간다.
목표는 아직도 힘든 싸움을 벌이는 게리소님 병력과 활활 타오르는 용암의 힘을 빨아들인 정령을 사역해 우세한 싸움을 벌이는 피랄 연합체의 마법사들!
퍼엉!
막강한 화염이 수백 미터 밑을 향해 분출되었다. 긴 꼬리를 무는 청색 구체가 화염 정령을 사역하는 마법사의 등을 타격했다. 마법사는 뼛조각 하나 남기지 못하고 타올라 즉사했다.
유수화접과 초능력을 이용하여 화염이 방출된 반작용을 흘린다. 용암 지대로 향하던 추락 방향이 비틀려서 맨땅 위에 안전하게 착지했다.
착지는 끝났지만, 화염포는 한 번으로 부족하지. 나든, 게리소님이든 말이야. 직검을 땅에 박고 열에너지를 흡수해서…….
펑! 퍼엉!
수차례 화염구를 쏜다. 수천 도의 열기를 간직한 푸른 화염이 피랄 연합체의 마법사, 기사를 가리지 않고 불살랐다. 마법사도 내 저격을 눈치 채고 화염 보호막을 쓰는 모양이지만…….
꽈앙! 이번에는 폭발이다. 화염 보호막이 터지고, 마법사와 함께 수 명의 기사가 폭발에 휘말려서 사망했다. 그렇게 몇 번 화염구와 폭발 화염구를 번갈아 쓰자 게리소님의 전투도 허무하리만치 쉽게 끝을 맺었다.
이제 거의 끝났다. 성력. 성력이 필요하다. 즉시 성력을 운용해서 망가진 몸을 치료한다. 그러며 게리소님 병력을 확인한다.
병력은 전투가 끝나자 신속하게 분화구를 내려갔다. 몇 명의 마법사가 기사들에게 보호마법을 걸어주었다. 보호마법이 걸린 기사가 분화구를 뛰어 올라온다.
그들이 몇 무리로 나뉘어서 쓰러진 지오란보와 한보, 소니아 등을 수습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한눈 팔지 않고 내게 똑바로 달려오는 녀석이 있었다. 탁센이었다.
탁센이 시커멓게 탄 얼굴을 들이밀며 나를 둘러업었다. 나는 그에게 업혀 내려가며 그의 갑옷을 살폈다.
마법 회로를 보건대, 기초적인 생존, 호흡, 열기 보호 마법이 그려진 방어구를 입고 있었다. 저기 모인 이들 수백 명 모두가 이 비싼 마법 무구를 장착했다.
역시 렉시놈.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준비가 아주 철저하다. 나는 흐뭇해하며 탁센의 냄새나는 뒷머리에 고개를 박았다.
“주여! 정신이 드십니까!”
시발. 주는 대체 뭐야. 이 새끼 또 이상한 말버릇 붙였네. 나는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참으며 탁센에게 물었다.
“보로… 보로하고 스톤은?”
“스톤은 피랄 연합체의 습격을 막기 위해 서쪽 영지에 남았습니다. 보로는 함께 따라왔는데… 화염 화살을 복부에 맞았습니다. 갑옷 덕분에 크게 다치진 않았습니다.”
“영주님과 고위 마법사는? 왜 안 보이시지?”
“그게…….”
탁센의 설명은 이러했다. 분화구를 올라가는 와중에 대머리의 기습을 받고 초반에 큰 피해를 입었다. 소니아 등의 익스퍼트는 일반 병사들이 휘말릴까 봐 대머리를 데리고 멀리 떨어졌다.
이스마일 등의 고위 마법사는 둘로 나뉘어 병사와 소니아의 전투를 도와줄 생각이었지만… 그 순간 용암이 폭발할 것처럼 부글부글 끓었다.
이건 위험하다. 대머리 죽이겠다고 시간 낭비하다간 다 같이 죽는다. 해서, 어쩔 수 없이 고위 마법사가 한 명씩 빠져서 피랄 연합체의 마법사를 막으러 떠났다.
그렇게 한 명이 빠지고, 또 한 명이 빠지고. 내가 도착했을 땐, 그들을 보조하는 고위 마법사가 단 한 명도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 알겠다.”
“예! 이제 주인님도 제 부축을 받고 피신을……!”
“아, 아니. 아니야. 도망치면 안 돼. 탁센, 나를 기사들에게 데려가.”
“…예?”
탁센이 경사로를 구르듯이 내려가다가 속도를 늦췄다.
화산이 분화되기 직전인데 부상자가 뭔 개소리를 지껄이나 싶은 거겠지. 하지만 아직 끝이 오지 않았다. 대머리가 중요한 게 아니라 마법사를 막는 게 중요했다.
마법사를 막지 않는 한, 이 싸움은 끝이 온 게 아니다. 나는 탁센에게 그 사실을 고지한 후, 어서 기사들에게 나를 데려가라고 명령했다.
“…알겠습니다. 저도 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
뭘 그런 말을 다 하냐. 넌 싫다고 해도 체력, 마나 회복을 할 때까지 나 업고 다녀야 해.
어쨌든, 알아서 짐꾼 노릇 해준다는데 찬물을 끼얹을 필요는 없다. 나는 탁센에게 업힌 채로 분화구를 내려가는 병력에 합세했다.
나는 부상자를 응급처치하기 위해 설치한 이동 막사로 불려갔다. 치료를 받는 와중, 탁센의 명을 받고 상급 지휘자들이 들어왔다.
십 수 명의 상급 지휘자가 모인 이동 막사. 개중, 1차 전쟁 때 나와 함께한 밀스 기사가 내게 물었다.
“쟈기 남작님. 하명하실 일이라도?”
“스칼러는 몇 명이 남았나.”
“스물하나입니다.”
“싸울 수 있는 이는?”
밀스가 눈을 빛내며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스물하나입니다.”
“아니… 스물둘입니다.”
한 명이 절뚝거리며 걸어와서 손을 들었다. 보로였다. 그가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싸울 일이 있습니까? 저도 데려가 주십시오.”
“흠…….”
나는 보로에게서 시선을 떼고, 기사 중 가장 선임인 함부룩스를 응시했다. 보로를 데려가도 괜찮은지 묻는 것이다.
밀스와 같이 1차 전쟁 때부터 나와 함께한 함부룩스 기사. 그가 굳은 얼굴로 보로를 내려다보더니… 퍽! 하고 보로의 복부를 세게 때렸다. 보로는 미동도 않고 함부룩스를 노려보았다.
함부룩스가 그 모습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방해는 되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알겠다. 보로 기사까지 합해서 총 스물둘. 3결… 아니, 중위 마법사는?”
이종족 연합지역은 결로 마법 경지를 구분하지만, 남쪽 대륙은 하위, 중위, 고위로 구분한다. 1~2결은 하위, 3~5결 초반은 중위. 5결 중반~그 이상은 고위 마법사.
그래서 할리나 이스마일 등은 고위 마법사인 것이다. 여하튼, 내 질문에 마법사 몇 명이 손을 들었다.
“다섯이 여유가 있습니다.”
“좋아. 다들 알겠지만, 한 번 더 정리하지. 우리는 피랄……. 아, 몰라 시팔. 여하튼 개새끼들이 화산 폭발을 일으키려는 걸 막으려고 여기에 왔다. 그리고 나와 소니아 공녀님, 한보와 지오란보 님은 최상급 실력자를 죽였고, 너희는 자잘한 마법사와 방어 병력을 처치했다.”
“그렇습니다.” 함부룩스가 대답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놈들이 주요 전력이 아니라는 거다. 이런 잡스러운 놈들 수백을 죽여도 의미 없어. 화산 폭발을 일으키는 핵심 마법사를 죽여야 해.”
“아!”
“이스마일 영주님은 어디 계시지? 할리 마법사님은? 시즈믹스 노인네나 마냐툴 님은 다 어디로 흩어지셨나. 마법사를 죽이고, 그분들의 탈출을 도울 때까지 우리의 임무는 끝나지 않는다.”
“…….”
“간략히 말하겠다. 나머지 일반 병사들은 분화구를 내려가 피신해라. 나와 기사들, 중위 마법사들은 이 자리에서 그들과 따로 떨어져, 약간의 휴식과 정비를 끝낸 뒤 다시 셀트리번 산을 올라 영주님을 도와 핵심 마법사를 처치한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탕탕! 기사들이 동시에 외치며 가슴을 두 번 때린다. 가슴을 때리는 웃기지도 않는 관습은 나-탁센-나머지 기사들. 순으로 퍼진 것이다. 과거의 나를 때려죽이고 싶은 부끄러운 풍경이었다.
“5분 준다. 기사들은 불에 타지 않는 활과 화살, 투창을 챙기고 마법사는 열기 보호 중첩 마법. 그리고 신선한 대기와 수분을 있는 대로 모아라.”
“예.”
“그 외에 준비해야 할 것은 지면 다지기, 암석포, 대지 분쇄, 거센 바람 방출, 마비, 제압, 단거리 메시지 전달, 이게 제일 중요한데 진공 거품 결계막. 그리고…….”
말하는 와중에 은근히 눈을 깜빡이고, 광대를 씰룩인다. 3결 이상의 중위 마법사는 한 명도 빠짐없이 렉시놈 소속. 그들에게 렉시놈의 힘을 몰래 드러내는 한이 있어도 준비를 끝내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쟈기…….”
희미한 목소리가 내 말을 막았다. 소니아가 정신을 차리고 나를 부른 것이다.
담요와 막대기로 만든 들것을 만들고, 멀쩡한 병사가 부상자를 나른다. 소니아도 그 들것에 실려 있었다.
“나도… 나도 도와줄…….”
소니아가 그렇게 말하며 상체를 일으키다가 울컥! 피를 토했다. 치료 마법사가 기겁하며 그녀를 도로 눕혔다. 그녀는 내장이 조각나고 흉골이 바스러졌다. 척추에도 금이 갔다.
평범한 르암인이면 두 번 죽고도 남을 상처다. 신체 개조자라서 이렇게 말이라도 할 수 있는 거다. 소니아도 자신의 몸이 어떤지 알고는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다.
지원을 포기한 그녀가 내게 손을 뻗으며 가는 목소리로 애원했다.
“아버지를… 아버지를 부탁해. 제발…….”
아니, 아가씨. 제가 사는 세상에서 플래그라는 단어가 있거든요. 그런 말 함부로 하면 안 돼요.
나는 심란한 속을 정리하고 소니아에게 빙긋 웃었다.
“걱정 마십시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지켜 드리겠습니다.”
“…후.”
그 말에 소니아가 안심한 듯 들것에 몸을 기댔다. 그러곤 몇 초 지나지 않아 눈을 감았다. 마법사가 급하게 그녀의 생명반응을 확인했는데, 다행히 기절만 했다.
나는 모두가 정신이 없는 틈을 타서 몰래 성력 기반의 광범위 회복 마법장을 걸었다. 이거면 죽을 상처를 입은 놈들도 영구적 장애만 남고 살아나겠지.
…끄덕!
쓰러진 그녀를 보고 렉시놈 마법사들이 남몰래 의견 교환을 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이 새끼들. 내가 명령했을 땐, 고민하더니 소니아 부탁에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결정하는 것 봐.
화를 내고 싶지만, 그럴 틈이 있으면 체력과 마나를 조금이라도 회복해야 한다. 나도 들것에 실린 채, 누워서 눈을 감고 성력을 일으켰다. 마법사들도 빠져서 마법을 준비했다.
우르르!
그렇게 나와 스물두 명의 기사. 다섯 명의 마법사는 병력을 따라가지 않고 그 자리에 남았다. 몇 십 명의 병사들도 함께 남아 우리의 준비를 보조한다.
물을 나르고, 투창, 활과 화살을 준비하고, 보급물자에서 완드와 마나석을 꺼내 5 등분 하여 마법사들 앞에 놓는다. 분화구로 가는 길을 살펴 용암을 피해 올라갈 길을 지도에 그려주고, 기사들의 방어구 착용을 도우며 마나석을 교체해준다.
그렇게 5분이 훌쩍 지났을 무렵, 다섯 명의 렉시놈 소속 마법사들이 눈을 번쩍 떴다. 그들이 각자 네 개의 완드를 들어 허리춤에 꽂으며 일어섰다.
“다 끝났습니다.”
“기사들은?”
눈치 빠르게 나를 업은 탁센을 제외한 스물한 명의 기사들이 내 앞에 섰다.
불에도 타지 않는 특별품 활과 화살을 장비하고, 어깨와 허리에 열 자루가 넘는 투창을 매달았다. 세 겹으로 껴입은 가죽 갑옷에서는 생존, 열기 보호, 대기 공급 마법이 삼중첩으로 걸렸다.
“잘했어. 이제… 출발한다! 준비를 도운 병사들은 망설이지 않고 내려가서 도주 병력에 합세해라! 마법사는 옅게 지면 다지기를 써서 오르막길을 고르게 골라!”
우르르!
대답은 필요 없었다. 준비를 도운 병사들은 허겁지겁 내려가고, 마법사는 한 손에는 완드, 한 손에는 마나석을 쥔 채 지면 다지기를 썼다.
버석하게 흘러내리는 흙더미가 단단하게 골라지고, 미끄러지지 않게 올라갈 수 있는 땅이 만들어졌다. 지름은 약 3미터, 길이는 50미터 가량. 길을 다 가면 다른 마법사가 지면 다지기로 또 길을 만든다. 번갈아가며 길을 만들어서 미끄러지지 않고 오르막길을 오른다.
기사 다섯이 나와 마법사를 업었다. 그들이 다져진 길을 따라 2열 종대로 신속하게 오르막길을 올라갔다.
배열은 가장 앞 열이 나와 나를 업은 탁센, 마법사와 그를 업은 기사. 뒤의 4열은 기사. 중간에 마법사 둘과 둘을 업은 기사 둘. 다시 기사 4열. 그리고 가장 뒷열에 마법사 둘과 둘을 업은 기사 둘.
이렇게 마법사-기사-마법사-기사-마법사의 줄을 만든다. 중간마다 마법사들이 열기 보호와 대기 공급 마법을 걸어준다. 나는 가장 앞에서 몰래 성력이 섞인 광범위 회복 마법장을 걸어주고, 초능력 파동을 이용해 안전한 길을 찾는다.
분화구 거의 끝까지 올라가자 사방이 용암 천지로 변했다. 용암이 없는 길이 있긴 한데, 열기 보호막을 쳐도 사람이 통과하기 힘들 정도로 뜨거운 바람이 불었다.
“진공 거품 결계막을 쳐라!”
부글부글!
명령을 받자 마법사들이 두 번째 완드를 꺼냈다. 그들이 주문과 함께 물과 다른 화합물을 섞었다. 물이 부글부글 끓으며 수만 개의 거품을 만들어냈고, 그 거품이 우리를 길쭉한 돔 형태로 감쌌다.
딱딱하게 굳은 반투명한 거품. 거품 안은 진공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열기의 전달을 최소로 한다. 지면에서 올라오는 열기를 제외하면, 우리를 괴롭히는 열에너지는 거의 없었다.
화합물의 양이 한정되어 있어서 자주 사용할 수 없지만, 어차피 거의 다 올라와서 상관없다. 반투명한 시야도 초능력 파동이 있기에 안전한 길을 찾을 수 있었다.
내 지시에 의존해서 달리는 기사들. 몇 분이 지났을까. 마침내 분화구 정상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마법사들에게 외쳤다.
“거의 다 왔다. 다들 각오해라! 전방에 50미터 정도, 얕은 용암의 강을 지나야 한다!”
“!!”
“마법사아! 내가 신호하면 지면 다지기로 용암 위를 돌로 덮어라! 물을 뿌리고 얼려!”
두두두두!
“준비만 똑바로 해! 걱정하지 마라. 위치하고 넓이, 각도는 내가 다 알려줄 테니 너희는 그에 따라 마법만 밑에 잘 깔면 끝이다!”
두두두……!
“아직! 거품 사이로 붉은빛이 보이지! 저게 용암이다. 이 새끼들아! 축하한다! 너희는 인류 최초로 용암 위를 걸은 르암인으로 역사서에 이름이 남을 것이다!”
두두…!
“거의 다 왔다! 기사들! 발 똑바로 맞춰! 왼발! 왼발! 그렇게! 마법사들은 기사들의 신발에 보호 마법을 추가로 걸어라! 그리고… 기다려!”
두…!
“조금만! 조금… 조금 더! 지금!! 써!”
마법사들이 세 번째 완드를 꺼냈다. 그들이 일시에 건 지면 다지기가 뜨거운 용암의 표면에 돌로 이루어진 길을 만들어주었다.
그 위로 수십 센티미터 두께의 얼음이 낀다. 얼음은 생성 식후 엄청난 수증기를 피우며 녹아내렸다.
“뛰어뛰어! 계속 뛰어! 마법사는 마법을 준비해! 분화구 정상에서도 똑같이 한다! 범위는 내가 알려주겠다!”
가로 20미터, 세로 4미터. 딱 그 정도 범위의 땅만 확보하면 된다. 나는 분화구 정상에 올라오자마자 명령을 했고, 마법사들은 내 명령에 따라 정확히 그만한 넓이의 땅을 확보했다.
치익-!
얼음이 녹아내리는 소리. 나는 수증기가 시야를 방해하지 않게 속성력으로 수증기를 한곳에 모으며 외쳤다.
“기사들은 마법사 내려놓고 2열 횡대로 선다! 마법사는 내가 신호하면 전면, 가슴에서 머리 위 높이까지만 진공 거품 결계막을 없애! 그때를 대비해서 그 위치에만 두껍게 열기 보호 방어막을 걸어라!”
착착착! 기사들이 신속하게 자리를 잡고, 마법사는 열기 보호막을 수십 개 중첩한다.
“기사는 투창을 준비! 1열은 쏘고 바로 쪼그려! 그 다음 2열이 쏜다! 목표물은 내가 알려주겠다! 마법사는 추가로 거센 바람 방출, 단거리 메시지 전달 마법을 준비! 준비 다 끝난 마법사부터 외쳐라!”
“포이즈너 준비 완료했습니다!” “제드만 준비 완료했습니다!” “스카트……!” “오링……!”
다섯 명이 차례대로 준비가 끝났다고 답한다. 나는 말했다.
“진공 거품 보호막을 열어!”
화악! 진공 거품 보호막을 열자마자 숨조차 쉬기 힘든 열기가 몰아쳤다. 수십 개의 열기 방어막을 썼는데도 이만한 수준이다. 눈앞은 온통 시뻘건 용암만이 보였다.
하지만 초능력으로 강화된 내 눈은 용암을 뚫고 그 위에 있는 이들을 목격했다. 용암 위에서, 피랄 연합체의 수작을 분쇄하려고 죽을 힘을 쓰는 이스마일 등! 그리고 정령을 다루며 이스마일 등을 위기로 몰아넣는 피랄 연합체의 마법사 새끼들!
나는 기사들의 눈에 초능력으로 빛 필터를 걸어서 색을 차단했다. 붉은색에 익숙해진 기사들의 시야가 흑백으로 물든다. 그 틈에…….
반짝! 내 손가락 끝에서 빨강의 보색(補色)인 청록색 빛이 나와 피랄 연합체에게 닿았다. 기사들에겐 흑백의 세상에서 청록색 빛만이 반짝이는 장면이 보일 것이다. 나는 청록색 작은 광점을 서너 개 찍으며 외쳤다.
“저 빛으로 전력으로 투창!”
쑤왁! 내 명령을 받은 기사들의 투창 스물두 정이 열풍이 몰아치는 분화구의 용암을 날아 피랄 연합체에게 쏘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