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Lives Eight Lives RAW novel - Chapter 337
337화
“헤헤헤. 어떠십니까요.”
뭐든지 분위기가 중요하다. 기왕이면 말투도 장사치처럼 음흉하게 바꾸는 게 좋겠지.
성게의 마력석을 안정적으로 여섯 조각으로 쪼개고, 마나석으로 바꾸는 것은 나에게도 힘든 일이다. 마음먹으면 할 수 있지만, 워낙 일거리가 산재해 있어서 이거 하나에만 매달릴 여유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쉘리 반데스에게 부탁한 것이다. 물론 쉘리 반데스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었고, 마력석을 마나석으로 바꾸는 데에만 5개월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쉘리 반데스 수준의 능력자가 그만한 시간을 투자한 일거리였는데, 쟈기가 장사치가 되는 것 따위야 얼마든지 해줄 수 있지.
“흐음……?”
애석하게도 르데앙과 뮤온 보트라는 분위기라는 걸 모르는 삭막한 인간들이었다. 내가 기껏 파리처럼 손바닥까지 비벼가면서 설명해주는데도 관심은 눈곱만큼도 없고, 성게의 마나석에만 정신이 팔렸다.
“잠시…….”
르데앙이 우윳빛으로 빛나는 손톱 크기의 마나석을 꺼냈다. 마나석에 마나를 불어 넣자 형광등처럼 빛이 발생한다. 그녀가 빛을 내는 우윳빛 마나석을 성게의 마나석에 툭, 접촉했다.
르데앙은 뮤온 보트라처럼 간접적으로 마나석의 품질을 알아낼 능력이 없다. 정확히 말하면 ‘이 정도 급’의 마나석을 알아챌 능력이 없는 거지.
때문에 일반적인 방법을 써서 성게 마나석의 품질을 조사하려했다. 그것이 우윳빛 마나석을 사용한 이유다.
기운의 일부를 빛 에너지로 바꾸어주는 기능을 보유한 마나석을 품질을 조사하고자 하는 마나석과 접촉, 마나석이 발하는 광량을 통해 얼마나 순도 있고 많은 양의 마나를 품고 있는지 간접적으로 알아보는 방법이다.
그렇기에 그녀의 행동은 특별히 지적할 것이 없었다. 일반적으로 따진다면 말이지. 그러나 이 마나석은 결코 일반적이지 않고, 여섯 등분을 했음에도 고암 사막에서 잡았던 괴물 거북이의 그것보다 월등히 뛰어난 품질을 보유했다.
그런 녀석에게 빛을 내보내는 작용기작을 붙인다면? 말할 것도 없다. 극도로 밀도 있는 광 재해가 두 사람의 눈은 물론이고 유전자까지 조각내버릴 것이다.
단순한 빛 발생 마법도 생물학적 재해로 만들어버리는 위용. 그것이 성게의 마나석이 지닌 격이다.
“아, 잠……!”
미처 내가 말릴 새도 없이 일어난 일이다. 나는 성게의 마나석 내부가 기기괴괴한 변화를 일으키며 빛을 발생시킬 준비를 끝낸 것을 느꼈다.
이건 막을 수 없다. 나는 성게 마나석 내부의 흐름을 막기보단, 이 녀석 외부에 커튼을 쳤다.
‘어둠에 물든 시야, 어둠의 장막, 암중의 가림막,’
두 사람의 눈꺼풀에 어둠에 물든 시야를 건다. 원래는 시야를 어둠으로 가리는 건데, 지금은 시신경을 보호하기 위해서 건 마법이다. 어둠의 장막이 둘의 몸을 덮는다.
동시에 암중의 가림막이 스무 겹으로 겹쳐져서 성게의 마나석을 감쌌다. 그걸로도 부족해서 얼른 속성력을 일으켜 주변의 무기물을 끄집어내 암중의 가림막 외부를 감쌌다.
또한 자기력으로 무기물을 감싸 일시적으로 금속화한다. 구리와 비슷한 성질을 품게 해서 위험한 빛의 투과성을 극도로 낮추었다.
푸확!
마법 발현이 끝나는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성게의 마나석이 빛을 뿜었다. 외부로 방출되는 광량을 극적으로 줄였음에도, 눈을 감아도 시각세포가 망가져 버릴 것만 같은 압도적인 빛!
암중의 가림막은 화염 방사기 앞의 커튼처럼 순식간에 소멸했다. 무기물 방어벽도 구멍이 뻥뻥 뚫리고, 그 틈으로 브레스 같은 빛이 뿜어져 나온다.
지글지글!
르데앙이 낀 장갑이 붉게 달아오른다. 분명히 냉광(冷光)임이 분명한데도, 광량이 압도적으로 많아서 가죽 장갑이 타버릴 정도의 열기가 발산된 것이다.
나는 당황하는 르데앙의 손등을 때려서 성게의 마나석을 땅바닥으로 떨어뜨렸다. 그러곤 지체하지 않고 흙더미를 모아 마나석을 감싸서 빛이 외부로 방출되지 않게 가렸다.
탁탁!
발로 차서 우윳빛 마나석을 떨어뜨리고, 안정화 마법으로 성게의 마나석을 비활성화시킨다. 잠시의 시간이 지나자 흙더미는 발갛게 달아올라서 뜨뜻한 열기를 위로 올려보낸다.
흙을 치우자 비활성 상태에 들어선 성게 마나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나석은 청자색(靑瓷色)에 적색을 더한 것만 같은 기묘한 색깔을 내며 은은한 빛을 발했다.
“무, 무슨 일이 일어난……?”
르데앙이 여전히 사정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했다. 뮤온 보트라도 마찬가지였다. 단언컨대 빛의 수호자도 이만한 마나석은 다뤄본 경험이 없을 것이다. 나만, 정확하게는 승천자였던 삼사드만 있지.
“아, 그게 말입니다.”
나는 영문을 몰라 하는 둘에게 조금 전에 일어난 불상사를 설명했다. 만약 빛을 차단하지 않았으면 가시광선과 적외선 파장이 우리의 피부를 몽글몽글하게 대우고 자외선이 근세포의 유전자를 가닥가닥 끊어놓았을 거라는 설명과 함께.
“흐음……?”
두 사람은 조금 전이 꽤나 위험했다는 것까지는 이해했지만, 밀도 있는 빛이 자신을 죽였을 것이란 가능성은 받아들이지 못하는 기색이었다.
그래. 이해하든 말든. 너희 마음대로 해라.
“어쨌든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었다는 것만 알아주었으면 합니다. 이종족 연합지역에 줄 때에도 반드시 지금 일을 예로 들어 주의하라는 말을 전해주십시오. 실험 잘못하다가 인명 피해 발생하면 제 탓 아닙니다.”
그래도 경고는 해주마. 내 진지한 발언을 듣자 르데앙과 뮤온 보트라의 안색도 덩달아 진지해졌다. 마법과 관련해서 마법사가 위험하다 말하면 진짜로 위험한 거다.
그 말을 허투루 들은 이들은 대다수 끔찍하거나 고통스러운 또는 역겨운 죽음을 맞이했다. 재수 없으면 끔찍하고 고통스럽고, 역겨운 죽음을 한번에 다 당하는 일도 있었다. 조금 전의 르데앙처럼.
“겨우 빛 하나 때문에…….”
“그만큼 이 마나석이 엄청엄청 엄청나다는 걸로 이해하십시오.”
“허!”
뮤온 보트라가 감탄성을 내비치며 본인의 손 위에 들린 마나석을 홀린 듯이 바라보았다.
마법적 지식이 없어도 빛의 수호자가 이룩한 수많은 것들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그이기에, 이 마나석을 가지고 할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을지 알 것이다.
어쨌든, 이걸로 뮤온 보트라와 르데앙도 게리소님에 있을 명분이 사라졌다. 눈이 펑펑 내리는 신년 초, 두 무인도 서서히 본인의 둥지로 떠날 날이 다가왔다.
나는 두 사람의 마나석에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깔끔하고도 안정적인 봉인을 걸었다. 이 봉인을 풀 때는 적어도 6결 이상의 마법사가 동참하고, 이 말을 따르지 않았을 시 죽어도 책임 못 진다는 경고문을 붙여두는 것은 덤이었다.
1월 말. 험클리가 챠르 섬과의 다섯 번째 거래를 끝내고 마탄 항구로 복귀했다.
남쪽 대륙 동쪽 지역의 감찰을 끝내고, 서쪽 지역을 돌던 나는 다섯 시간 가까이 하늘을 날아 마탄 항구로 가서 그를 맞이했다.
항구에 도착하자마자 험클리가 능숙한 태도로 사람들에게 지시하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배에서 성게의 가시가 내리고,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다섯 척의 목재선에 금속, 나무, 겨울을 날 식량 등을 한가득 싣는다.
하역과 거래, 물자 교환 등… 이 모든 일을 외부인인 험클리가 주관하고 있었다. 사실상 챠르 섬과의 대외무역 처장이 된 그였다.
그는 그 일에 어찌나 열의가 있는지 이번 겨울이 끝나면 대동양(大東洋) 쪽 바다를 돌아다니며 챠르 섬과 같은 케이스가 또 있을지 찾아보는 일의 책임자 역할을 맡고 싶어 한다는 기색을 대놓고 드러냈다.
“그래서 게리소님에 남아 있겠다고??”
기껏 험클리가 올 때까지 기다리던 르데앙만 쪽박을 찼다. 르데앙이 황당하다는 듯이 묻자 험클리가 미안한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미안해. 르데앙. 하지만 너도 알잖아. 나는 바닷속 한가운데에 고립되어 있을 사람들을 알면서도 그들을 버려두고 이종족 연합지역으로 떠날 수가 없어.”
“하! 험클리 너는 정말…….”
르데앙이 골치 아프다는 듯이 이마를 짚었다.
그러고 보니 전생, 웨일이 막 연구소를 탈출했을 당시에 최초로 마주한 인간들, 몬스터와 싸우는 에레스발다 인을 만났을 때 가장 먼저 그들을 도와주고 싶다고 말한 것도 험클리였다.
같은 에레스발다 인으로서 그들에게 무언가 이끌림을 느껴서 그런 것일 테지만, 험클리의 성격이 곤란에 처한 인간을 무시하지 못한 것도 있지.
“저야. 뭐, 성자님이 게리소님에 머무르면 얼마든지 환영이죠.”
“쟈기 경, 그렇게 간단히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아, 그렇군요.”
나는 손바닥 위에 주먹을 퐁! 얹혔다. 그걸 까먹고 있었네.
“험클리 경이 찾아낸 여러 섬의 주민들은 이종족 연합지역이 아니라 게리소님의 이름으로 복속시켜야 합니다. 그건 양보 못하니 유의해주시길.”
“아니, 내가 그걸 걱정하는 게 아니잖아! 이 화상아!”
르데앙이 빽! 소리 지르며 내게 화를 낸다.
이걸 걱정하는 게 아니라고? 그러면 뭘 걱정해서 저러는 거야? 가끔씩 보면 르데앙도 참 쓸데없는 일에 고민하느라 고생이 많다.
까짓거. 인생 대충대충 살다 보면 어떻게든 되는 일이 대부분인데, 그러다 안 되면 웨일처럼 죽으면 되는 거고. 뭘 그리 걱정하는지 모르겠네.
내가 진심으로 이유를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르데앙이 벙 쪄서 나를 바라보았다. 험클리가 그런 우리 둘을 쓴웃음을 지으며 말렸다. 르데앙을 진정시킨 그가 자그마한 공책을 짐에서 꺼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이걸 베노브란도에게 전해줘.”
“베노… 네가 어째서 언니를?”
“후후. 내가 말했지. 나도 나 나름대로 조사할 게 있어서 너를 따라온 거라고.”
역시 내 예상이 맞았어. 알테어로 떠났을 때, 험클리가 지나치게 수동적이라 생각했던 적이 있었지. 그때 넌지시 떠보았는데 별 반응이 없어서 그 이상 묻지 않고 넘어갔다.
하지만 험클리도 험클리 나름대로 알테어 행에 참여해야 할 이유가 있었다. 어째서인지 모르지만, 베노브란도가 그에게 무언가의 조사를 부탁했고, 그 조사 결과가 그가 건넨 공책에 담겨있었다.
“…….”
르데앙이 지그시… 험클리가 전해준 공책을 바라보았다. 당장에라도 공책을 펼쳐 읽고 싶다는 욕망이 그녀의 눈빛에 아른거렸다.
오, 꾹 참고 공책을 본인의 가방에 넣는다. 펼쳐도 상관없을 텐데. 암호문에 마법까지, 공책에 적힌 내용은 이중으로 보호되어 있어서 아무나 읽을 수가 없다. 나도 암호문 해석에는 소양이 없으니, 저건 나도 못 읽는다.
험클리를 고문하는 것 말고는 암호문 해석법을 알아낼 방법이 없다.
궁금한데 한 번 해볼까? 어차피 성자라서 뼈 부러뜨려도 장애가 안 남을 텐데.
내가 묘한 눈으로 험클리를 바라보자 그가 내 눈빛을 오해했는지 손을 내저으며 사과했다.
“아, 죄송합니다. 쟈기 경을 앞두고 영문 모를 말을 했군요.”
“아뇨. 괜찮습니다. 다만, 험클리 경은 게리소님의 사정을 깊이 아는 터라 외부로 방출되는 서적을 검열할 필요성이 있어서…….”
순순히 공책에 적힌 정보를 말하면 유혈사태는 일어나지 않을거라고 경고한다. 이번만큼은 르데앙도 내게 힘을 실어주었다.
베노브란도와 관련된 일이니 자기도 알고 싶은 거겠지. 은근슬쩍 르데앙한테 험클리 고문하는 게 어떻냐고 제안해볼까? 지금이라면 찬성할 듯한데.
“얼마든지요.”
아쉽게도 험클리를 고문할 기회는 다음으로 넘길 수밖에 없었다. 그가 짐에서 종이를 몇 장 더 꺼내 1차로 정리한 내용을 보여주었다.
알테어의 검술, 검법을 관찰한 내용이었다. 그들의 무학 수준과 검술, 마나 운용술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심층적으로 조사한 자료가 종이에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그런 뒤 공책의 아무 페이지를 펼쳐 몇 문장의 암호를 해석해서 자료 내용과 일치한다는 것까지 확인을 마쳤다.
르데앙이 자료를 읽고는 서운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이런 거라면 나에게 부탁해도 됐을 텐데…….”
“최근 10년 동안 서로 말도 안 했으면서 잘도 그런 말을 한다.”
험클리가 놀리듯이 르데앙을 달래주었다. 그렇게 공책에 관해선 일단락되었다. 르데앙만. 나는 아니다.
‘까고 있네.’
저거 이중 암호문이잖아. 적절한 코드를 품은 변환 마법을 걸면 잉크가 변화를 일으켜서 새로운 문자, 새로운 문장을 만들어낸다. 알테어 조사 목록 말고 다른 비밀 정보, 베노브란도가 원하는 게 저 안에 있었다.
하지만 게리소님의 쟈기가 이종족 연합지역의 변환 마법을 아는 건 말이 안 된다. 아쉽지만, 여기선 속아주는 수밖에 없겠군.
나는 험클리의 앙큼한 수작을 모른 척 넘어갔다.
“그러면 험클리 경은 여기에 남아있는 걸로 결정되었으니, 르데앙 경과 뮤온 보트라만 국경 인근으로 옮겨주면 되겠습니까?”
“예. 그렇게 해주십시오. 저는 올해까지는 게리소님에 머무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영주성에서 초장거리 비행 마법진을 준비하고 있죠. 두 분이서 따로 인사를 나누시곤, 뮤온 보트라를 데리고 영주성으로 오십시오.”
둘이서 할 말이 많겠지. 웨일이 아닌 나는 둘의 사이에 낄 자격이 없다. 나는 나를 묘한 눈으로 바라보는 험클리에게서 떠나, 영주성에서 초장거리 비행 마법진을 점검했다.
그날 오후. 축 처진 르데앙이 영주성을 방문해서 초장거리 비행 마법은 필요 없다고 말해왔다. 다음 주에 알테어에서 게리소님으로, 에레스발다의 무역선이 도착하고 그것을 타고 이종족 연합지역으로 돌아가면 된다고.
“알겠습니다. 그때까지 푹 쉬십시오.”
르데앙이 이렇게 처진 건 오랜만이다. 나는 그녀를 건드리지 않고 뮤온 보트라만 데리고 하늘을 날았다. 목적지는 남쪽 대륙의 중앙, 작년에 일어났던 화산 폭발 지역이다.
탁!
“여기면 됐다.”
대수림의 시작 부근. 화산 폭발에 눈까지 와서 몬스터는커녕 쥐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는다. 그곳을 통해 대수림을 관통해서 데일리케로 복귀하겠다고 밝힌 뮤온 보트라였다.
그가 품에서 파우치를 꺼내 열었다. 도토리 크기의 알록달록한 마나석이 파우치에 보관되어있다. 마나석 두 알을 꺼내 벨트에 끼우자 그의 몸이 공중에 떠오르고, 가속과 무게 감소, 은신 등의 다중 마법이 걸린다.
“쟈기 그러고 보니 이 마나석이…….”
출발하기 전, 뮤온 보트라가 할 말이 있다는 듯 몸을 돌려 내게 말을 걸었다. 자연스럽게 가방을 풀고는 성게의 마나석을 꺼내려는 듯이 팔을 놀린다. 그러다가 돌연, 내게 가방을 집어 던졌다.
휘익! 이 인간이 미쳤나? 아무리 안전장치가 있어도 저걸 막 집어던져? 기겁한 내가 몸통을 앞으로 기울여 가방을 받는 시점.
번쩍!!
뮤온 보트라의 허리춤에서 빛이 반짝였다. 소리조차 뒤로 두고 오는 극한의 쾌검이 발현되었다.
8년 전, 첫 만남 당시 내게 날렸던 공격보다 월등히 뛰어난 위력의 오러가 싸늘한 기세를 풍기며 내 목젖을 노렸다.
나는 왼손으로 가방을 받고, 오른손으로는 검집 채로 검을 들어 옆면으로 오러를 튕겼다. 여의반검으로 오러를 튕기자 공중에 뜬 뮤온 보트라가 미미하게 움찔했다.
하지만 그 시간은 지극히 짧았고, 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상단세를 내리쳐 내 정수리를 쪼개려고 했다.
검신이 웅웅! 떨리는 것이 여의반검의 튕겨내기를 무효화하는 수법이 담겨 있다. 일격에 담긴 변화 또한 내가 어디로 피하든 그곳을 노릴 것이란 의미가 느껴졌다.
그는 위, 나는 아래. 자세도, 위치도 내가 불리하다. 나는 그 자리에서 발바닥으로 땅을 비볐다. 발바닥에서 시작된 잔 떨림이 무릎과 허벅지를 타고 올라와 상체를 좌우로 마구 흔들었다.
슈슈슉!
상체의 흔들림에 맞추어서, 검이 마치 독사의 혓바닥처럼 갈라지며 정확하게 내 정수리를 포착한다. 눈이 부신 변화였지만, 검극이 갈라지며 미미한 지연이 발생했다.
나는 그 지연을 놓치지 않고 다음 수를 꺼냈다. 철컥! 새끼손가락으로 검집의 안전장치를 풀고, 역날로 검을 잡은 뒤 승천하듯이 올려치는 발검술!
채앵!
만변 보단 일변. 수많은 변화를 품은 내려치기는 단 일격에 모든 힘을 품은 올려치기에 파훼되었다. 안에 담긴 역도가 뮤온 보트라의 오러를 깨부수고, 그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뮤온 보트라는 공중에 뜬 채, 뒤로 공중제비를 하며 그의 몸으로 침투하는 경력을 해소했다. 몇 번이나 제자리에서 회전하여 경력을 방출한 그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몸을 추슬렀다.
“음. 훌륭하군. 잘 있어라.”
어? 그냥 가? 갑자기 살수를 두 번이나 쓰고선 한다는 말이 변명이 아니라 잘 있어라?
이건 착한 쟈기라도 못 참는다. 나는 미간을 슬쩍 찌푸린 채로 그를 노려보았다. 뮤온 보트라에게 가방을 집어던질 준비를 끝마친 뒤, 그에게 물었다.
“뭡니까?”
“지난 반년 동안 검을 잡지 않더군.”
“예?”
“혹시 실력이 녹슬지 않았나 점검해본 거다. 네가 워낙 혼자서도 잘하는 인종이니, 벽을 앞두고 엉뚱한 짓거리를 시도하는 줄 알았는데 지금 대응을 보면 올바른 길을 걷고 있었구나. 오해해서 미안하다.”
“…….”
“…….”
그리고요? 그게 끝? 목젖하고 정수리를 노린 주제에 오해해서 미안하다가 끝? 나는 어이가 없었다. 나도 똑같이 가방 집어 던지곤 받는 사이에 공격할까?
하지만 700살이나 먹은 할아버지한테 그러는 건 예의가 없다. 정말 안타까운 이야기였지만, 전생과 다르게 현생의 쟈기는 예의라는 걸 아는 우수한 사회인이었다.
퍽!
결국, 가방을 거세게 집어 던지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짓거리의 전부였다. 뮤온 보트라가 능숙하게 가방을 받더니 피식! 웃었다.
“너라면 할 수 있을 거다.”
“뭐를요? 700살 후배한테 가방 던져주는 척하면서 공격하는 거?”
“아니.”
거기까지만 말하고는 심유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물속에서도 불을 내뿜는 메탄 하이드레이트처럼, 냉정 속의 열정을 품은 눈동자가 나를 포착한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이, 훅! 하고 꺼졌다. 뮤온 보트라가 다시 여느 때와 같은 덤덤한 눈을 했다.
“잘 가라. 쟈기, 나중에는 같은 눈높이에서 만났으면 좋겠군.”
그런 뒤 하늘을 밟으며, 어둠에 물든 대수림을 떠났다. 과거와는 다르게 어떠한 충고도, 걱정의 말도 없는 이별이었다.
“역시 그는 알고 있었군.”
나는 과거처럼 그가 떠나간 자리를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몸을 돌렸다. 그렇게 뮤온 보트라와의 긴 동행이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