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Lives Eight Lives RAW novel - Chapter 443
443화
* * *
다두는 감옥에 갇혔다. 당연한 결과였다. 당연한 결과지만, 그 이전의 과정을 설명하자면…….
우선, 젤 포이만의 목에 (강제로) 칼날을 댄 지 30초도 지나지 않아 100명이 넘는 이종족 특수 대원이 대 익스퍼트 용으로 강화 개조된 마법총을 들고 달려와 그를 포위했다.
도시의 요격용 마법진은 킬로톤 단위의 에너지를 다두에게 쏟아낼 준비를 하고, 수십 명이 넘는 마법사는 마비 등의 신체 제약 마법을 걸었다.
젤 포이만은 다두가 억압되는 와중에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한술 더 떠서 그의 손을 정답게 붙잡고는 목에 겨눠진 칼을 유지했다.
퍽퍽! 뻑! 뻐억!
파쇄추를 든 거인족, 거합베기의 달인 검사 등이 기함하여 검을 쥔 다두의 손을 때리고 베었지만, 다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다두는 두들겨 맞고, 베이며 강력히 항의했다.
“항의한다! 너희 다 봤잖아! 젤 포이만, 이 새끼가 내 검 뽑아서 제 목에 들이대는 거 봤으면서 왜 내 팔만……!”
논리적인 설득은 눈곱만큼도 통하지 않았다. 국가 대원수의 목에 칼을 대었는데 상식적인 항의가 통하길 바라는 건 욕심이었다. 특히나 이런 세상에서는.
폭력과 함께 관저로 이송된 다두는 어떠한 변명의 기회도 얻지 못한 채, 관저 자체에서 운용하는 가장 깊고 엄중한 감옥에 갇혔다. 이종족 연합지역의 수도, 중앙에서 서기관을 살해하려 한 시도는 무거웠다.
젤 포이만은 다두가 감옥에 갇히는 순간을 앞두어서야 비로소 깍지 낀 손을 풀었다. 그가 목을 겨눈 칼을 무르곤 호위에게 건네었다.
철컹!
이 난리 끝에 감옥에 갇힌 다두. 그가 물러나는 젤 포이만을 흰 눈을 뜨며 노려보았다.
“너, 진짜. 여기 나가면 존나 팰 거야.”
뻑!
이종족 혼혈의 용서 없는 철봉 내려치기가 다두의 정수리를 때렸다. 머리통 부피의 콘크리트도 가루로 만드는 일격이었지만, 철봉만 휠 뿐 다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다두가 철봉을 내려친 이종족 혼혈을 노려보았다. 화가 뻗친 그가 철봉을 붙잡았다. 그러고는 이종족 째로 철봉을 창살 안으로 끌어당겼다.
그의 팔다리, 상하체에는 40개가 넘는 구속구가 부착되어 있었다. 마스터 급 절대 고수의 마나 운용을 제약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하지만 그것들도 다두의 괴력을 막기는 무리였다.
꽈당!
“어흑?!”
신장 2미터 이상, 체중도 200 킬로그램 이상 나가는 이종족 혼혈은 다두의 괴력에 태풍에 날아가는 우산처럼 딸려와 쇠창살에 몸을 부닥쳤다. 다두가 그와 눈을 마주치며 철봉의 반대쪽 끝을 잡고 휘었다.
끼이익-!
철봉이 비명을 내지르며 저항하지만 무의미. 강화 마법에, 마법 금속까지 미량 함유된 합금 철봉이 가래떡 휘듯이 너무나도 가볍게 휘어졌다.
호위병의 키만큼 기다란 철봉이 휘고, 휘고, 휘어진 끝에 바움쿠엔처럼 둘둘 말렸다. 말리지 않은 부위는 반대쪽 끝 부분, 이종족 혼혈이 들고 있는 손잡이만 남았다.
다두가 철봉의 둘둘 말린 부분을 쥐고는 으르렁거렸다.
“야. 씨발. 사람이 때리는 대로 얌전히 맞아주니까 누굴 병신으로 보나.”
앞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하나도 모르겠는데 두들겨 맞고 감옥까지 갇혔다. 다두의 기분은 최악이었다. 살기까지는 아닌, ‘기분 나쁨’의 감정이 마나에 실려 감옥 밖까지 퍼졌다.
“…….”
꿀꺽!
감옥 안에 모인, 거의 백 명이 넘는 이종족 능력자들이 다두의 기세에 입을 다물었다. 익스퍼트나 중위 마법사도 마찬가지였다.
침묵에 감싸인 감옥. 다두는 흥! 하고 콧김을 불곤 말아진 철봉을 호위병에게 되돌려주었다.
“나 기분 나쁘니까 적당히 나대라.”
그렇게 관중들이 조용해지자 젤 포이만이 나섰다. 그가 삐친 듯 등을 돌아앉은 다두를 달래듯이 말했다.
“다두 아와 훔. 당신은 죄인이에요.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는 크나큰 죄를 저질렀습니다.”
“아니, 니 때문에 그런 거잖아요. 이 씨발님아.”
“당신은 당신을 믿는 사람을 배신했어요. 신뢰의, 믿음의 균열. 저는 그 사실에 크나큰 실망을 했습니다.”
“이보세요? 우리 지금 같은 주제로 대화하고 있는 거 맞죠?”
“하지만 기회를 한 번 더 드리겠습니다. 제 눈이, 당신을 믿는 이들의 눈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해주세요.”
“감옥 안에서요?”
“어디서든, 언제든.”
“와, 나 돌겠네. 진짜 치매가 왔나…….”
800살이면 치매가 오고도 남을 나이이긴 하다. 다두는 정신 나간 1세대 정령족에게 다스려지는 이종족 연합지역의 미래가 심히 걱정되었다.
그의 걱정과 달리 젤 포이만은 지극히 논리적으로 그가 할 말을 했다.
“공정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제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지원을 해드리겠습니다.”
“아아. 쌩쇼는 그쪽이 했는데 저 혼자만 감옥에 갇힌 건 공정성을 해치지 않는다?
“그렇습니다.”
“…….”
대화가 안 통한다. 다두는 800살이 넘는 젤 포이만이 대체 무슨 일을 겪었기에 30년 만에 사람이 확 바뀌었는지 이유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하지만 성격이 저 따위로 변했는데 물어본다고 해서 답이 나올리는 없겠지. 참. 미친 짓을 했지만, 때리기는 뭐 하고, 나쁜 뜻으로 한 일도 아니어서 대놓고 화내기도 뭐 하다.
다두는 이 이상 가면 봐주지 않을 거란 각오만 한 채, 그들을 등지고 앉아있기만 했다. 젤 포이만은 대화가 끝났다는 판단이 들었는지 더는 말을 걸지 않고 일어섰다.
“일단 여기서 쉬십시오. 불편한 점 없이 최대한 편의를 봐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씨, 감옥 발, 안이지만, 말이지.”
“후후. 뭐 따로 가져다드릴 거라고?”
“개, 펜하고. 새, 종이. 끼, 최대한 많이.”
“알겠습니다. 쉬십시오.”
“지랄하게 고맙다.”
다두의 시큰둥한 말과 함께 젤 포이만과 백 명의 요원들이 물러났다.
우르르!
몇 분이 지나고, 관저 근무자가 호위자와 함께 감옥으로 내려와 다두에게 펜과 종이를 건네주었다. 수백 장은 되는 듯한 새하얀 종이 더미. 과거, 웨일에서 시작된 펜 네 자루.
다두가 그것을 받고 가져가려 했지만, 근무자는 손을 놓지 않는다. 근무자가 날카로운 눈으로 다두에게 무언가 말하려고 했다.
“…당.”
“저기요. 시비 걸지 말고 좋게 갑시다. 예? 안 그래도 시간이 얼마나 남아있는지 모르겠는데 감옥까지 갇혀서 저도 화나는 걸요? 나 진짜 미치는 거 보고 싶어?”
“……”
“그래요. 저 다두고 쏠트리먼의 그 허풍쟁이올시다. 근데 소문은 진짜였고, 젤 포이만은 제 말을 듣자마자 제 칼을 뽑곤 자해하려 했고요.”
탁!
다두가 짜증을 내며 근무자의 손에서 펜과 종이 무더기를 뺏었다. 공허하게 펼쳐진 근무자의 손바닥. 다두는 손을 들어 바로 앞의 창살을 집었다. 아니, 살을 꼬집듯이 엄지와 검지로 창살을 꼬집고 비틀었다.
끼이익! 따앙! 하는 금속 떨어지는 소음과 동시에 창살의 쇠 부분이 그의 꼬집기에 뜯어졌다. 찰흙을 꼬집어서 엄지와 검지에 잡히는 만큼만 때어내듯이, 두 손가락 힘으로만 마법금속 합금을 뜯어낸 것이다.
다두는 뜯어낸, 뜨겁게 달아오른 합금 덩어리를 근무자의 손에 올려놓았다.
“다들 아시다시피 젤 포이만은 나하고 한 시간 넘게 손을 맞잡고 있었어. 그게 무슨 뜻인지 이걸 보면 잘 알 수 있을 거야. 그러니 눈치껏 입 닥치고, 줄 거 줬으면 얼른 꺼져.”
사람이 착하게 나오니깐 진짜로 착하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다두는 아니었다. 그는 착하다기보다는 사람에 따라 대우가 극명하게 다른 것에 불과했다.
그리고 적어도 오늘 처음 본 호위자와 중앙 근무자에게까지 젤 포이만에게 그런 것처럼 무르게 대할 필요는 없었다.
“…….”
다두의 싸늘한 대우에 무어라 협박을 할 생각이었던 근무자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떠났다.
사각. 사각.
다들 떠나고 감옥에 홀로 남은 다두. 그는 땅에 불편하게 엎드려서 빈 종이에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철커덩!
“씨벌! 갑자기 왜 이래!”
한 시간 후, 걸쭉한 욕설과 함께 트라칸이 감옥에 입장했다.
그가 감옥에 온 이유는 다두와 동행자라는 괘씸죄 때문이었다. 그래도 다두처럼 온몸에 구속구를 둘둘 말지 않았다는 게 다행이었다.
그저 무기만 수거하고, 과거 몇 번 사고를 쳤을 때하곤 질적으로 다른 경고와 함께 감옥에 온 게 전부.
그러나 트라칸의 표정은 다두보다 나빴다. 중앙의 경고 강도가 엄청나게 강했기 때문이었다.
쏠트리먼을 언급한 협박성 발언까지 곁들인, 트라칸도 난생 처음 들어보는 수위의 경고! 제아무리 천방지축 트라칸이라도 그만한 경고를 듣고는 난리를 피울 수 없어서 얌전히 인도에 따랐다.
쿵쿵!
트라칸은 불편한 심리가 드러나는 발걸음으로 감옥 중앙까지 와선 주저앉았다. 라코아와 만나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급작스럽게 잡혀 와서 짜증 나는 게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가 멈추지 않고 종이에 무언가를 적는 다두에게 물었다.
“너는 대체 뭔 짓을 한 거냐? 중앙 놈들이 왜 저리 화가 났어?”
“자살하려는 인간 안 말리고 구경했다고 여까지 잡아오더군요.”
“뭐?”
트라칸의 어이없다는 되물음. 하지만 다두는 답하지 않고 종이를 채우는 작업을 반복했다. 트라칸이 다가와 종이에 채워지는 내용을 보고는 눈썹을 꿈틀댔다.
“웬 공식? 마법이냐? 왜 여기까지 와서 마법을? 너 설마… 도망치려는 거냐?”
“그런 거 아니니 방해하지 말아 주십시오. 할 일 없으면 잠이나 자세요.”
“…….”
이 새끼.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말이 심하게 짧다?
트라칸은 다두의 대부, 마호프 오먼과 대작할 때 그가 하던 말이 생각났다. 아주 싸가지가 바가지에, 제 할 일만 하고 다른 건 신경도 안 쓰는 미친놈이라고 했었지.
거짓말이거나 과장이 심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모습을 보면 마호프 오먼은 최대한 솔직히 평가를 한 거였다.
“…괜한 짓만 하지 마라.”
성질 같아선 주먹을 날려 이빨을 몽땅 부러뜨려야 하지만 에일이라는 설정 탓에 그러지 못하는 트라칸. 그저 찜찜한 얼굴로 다두에게서 멀어져, 감옥 구석에 드러누워 낮잠을 청했다.
트라칸은 용병으로 일할 땐 이보다 더 험한 곳에서 구른 적이 있다. 그 덕분에 맨 땅에 드러누워도 불편해하는 기색 없이 빠르게 잠에 빠졌다.
“드르렁! 커어억!”
사각사각!
얼마 지나지 않아 트라칸의 코고는 소리와 다두의 글 쓰는 소리만이 감옥을 채웠다.
드르륵! 철컹!
몇 시간 후. 또 다시 감옥 문이 열리고는 몇 명의 사람들이 바퀴가 달린, 엄중하게 봉인된 관을 끌고 왔다. 택배를 우악스럽게 트럭에 내던지듯이, 관을 감옥으로 대강 밀고는 말도 없이 창살을 닫고 나간다.
드르륵! 쿵! 감옥을 주륵 굴러간 관이 벽에 충돌하여 멈춘다. 이동이 멈추자 관 안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쉘리 반데스의 목소리였다.
“흐흐! 살다 보니 이런 대우까지 다 받는군.”
공식적으로 세계에서 제일가는 마법사 쉘리 반데스. 특정 분야에선 그보다 뛰어난 이가 수두룩하겠지만, 전반적인 마법의 깊이로 그를 따라올 이는 아무도 없다.
극도로 뛰어난 마법사의 신체에 상해를 입히지 않고 제약하는 건 이종족 연합지역에도 힘든 일. 때문에 봉인 결계가 엄중히 쳐진 관속에 그를 넣는다는 초강수를 두었다.
“여기는 어딘가? 어이! 거기 누구 없나?”
쉘리 반데스는 관속에 집어처넣어 졌음에도 일절 화난다는 기색이 없었다. 그저 지극히 흥미롭다는 말투로 바깥 상황을 살폈다.
“진짜 나 혼자만 있는 건가? 트라칸? 다두? 아무도 없나?”
“어, 어어? 마법사? 당신인가? 당신, 왜 관에 들어가 있는 거지?”
잠에서 깬 트라칸이 어리둥절해하며 관으로 다가갔다. 그가 관을 칭칭 묶은 쇠사슬을 집으려고 했을 때, 쉘리 반데스의 키득거리는 음성이 트라칸의 행동을 막았다.
“어어. 설마 오는 건가? 혹시나 해서 경고하는데 아무것도 건드리지 말게. 쇠사슬 하나라도 풀면 폭발해.”
“뭐? 시발?! 폭발한다고?”
“그렇네. 참고로 말하면 폭발하는 조건은 그거 하나가 아니니깐 아예 손도 대지 않는 걸 권장하네.”
쉘리 반데스가 히죽거리며 관이 폭발하는 조건을 줄줄 읊었다. 개중에는 체내의 마나가 조금이라도 움직이거나 마나 회로의 발현 기색이 일말이라도 느껴지면 폭발한다는 어마무시한 조건도 있었다.
그걸로 끝이 아니다. 중앙의 근무자는 쉘리 반데스의 뱃속에 상급 마나석을 넣었다.
“노인네의 목구멍에 엄지손가락만 한 덩어리를 쑤셔 넣다니. 이종족 연합지역은 고약한 취미가 있구만.”
관의 봉인과 구속구로도 그의 마법 발현을 막지 못하면, 상급 마나석 한 개를 통째로 사용한 고위의 폭발 마법이 그의 위장에서 발생한다.
그야말로 입이 떡 벌어지는 제약에 트라칸이 말을 잃었다. 겨우 정신을 찾은 트라칸이 관을 때리려고 주먹을 들었다가 슬그머니 내렸다.
그가 관을 가리키며 물었다.
“마법사! 그보다 잡혀 올 때 이상한 말을 들었는데, 당신이 정말 쉘리 반데스였소?”
“지금 그게 중요한가?”
쉘리 반데스가 어이가 없다는 듯 되물었다.
종이에 무언가를 줄줄 쓰던 다두도 고개를 들었다.
“정말로 모르셨습니까?”
트라칸이 버럭! 소리 질렀다.
“본 적도 없는 양반을 내가 어찌 아나! 너도 내가 모르는 거 빤히 봤잖아!”
“저는 영락없이 알면서도 일이 복잡해질까 봐 모르는 척하는 줄 알았습니다.”
나이 먹고 국가 경영에 참여하면서 심계가 깊어진 줄 알았더니 그대로잖아. 다두가 약간은 실망 섞인 눈으로 트라칸을 흘겨보았다.
“사람 참…….”
“닥쳐! 그보다 쉘리 반데스는 어떻게 만난 거야? 길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마주쳤다니, 반데스 영지에 처박혀 있는 양반을 무슨 길거리에서 마주치나?”
쉘리 반데스가 말했다.
“영 거짓말은 아니지. 다두 녀석이 알테어에서 게리소님을 거쳐 이종족 연합지역까지 가는 비행정을 타다가 하늘 산책을 하는 내 눈에 뜨인 거니까.”
“예. 맞습니다.” 다두가 긍정했다. 거짓말도 하면 할수록 늘어나는 둘이었다.
“…….”
트라칸의 어이없는 침묵. 쉘리 반데스는 트라칸에게 그럴듯한 설정을 푼 후, 더 이상은 못 참겠다는 듯이 다두를 닦달했다.
“다두 이 녀석아. 예기치 못하게 시간이 생겼으니 얼른 약속이나 지켜라.”
“그런 꼴이 되어도 마법이 중요합니까?”
“이보다 더한 꼴이 되어도 나는 마법이다.”
“휴우…….”
저런 부탁을 할 줄 알고 미리 정리된 마법을 써놔서 다행이다. 다두는 몇 시간 동안 쉬지도 않고 종이 무더기에 쓴 수식과 이론, 설명서를 들고 관으로 다가갔다.
접근한 관을 내려다보며 고민했다. 관 속에 있는 이한테 이걸 어떻게 보여주나. 마음먹는다면 저깟 봉인 따위야, 손쉽게 풀 수 있지만 그러면 나중 일이 복잡해진다.
“왔냐? 잠시 기다려라.”
쉘리 반데스는 다두의 고민을 익히 짐작했다는 듯이 관 안에서 끙끙댔다.
주륵!
조금 시간이 지나자 관의 접합부위로 맑은 액체가 흘러내렸다. 트라칸이 물었다.
“이건 뭐요?”
“내 침일세.”
“……뭐?”
트라칸이 질색하며 무색 액체, 침에서 두 발자국 멀어졌다. 쉘리 반데스가 낄낄 거리며 무어라 주문을 외운다.
주문이 흘러나오자 찬 바닥에 고인 침이 한곳으로 모이더니 작은 유리구슬이 되었다. 유리구슬 적도 부근에 홈이 파이고, 홈이 동공처럼 상세한 형상을 이룬다.
“이제 보이는 구나. 어이쿠! 이불도 뭣도 없는 삭막한 감옥 안이었잖아?”
“…어이. 마법은 못 쓴다며.” 트라칸이 물었다.
“쉿! 공식적으로, 나는 어떠한 마법도 못 쓰는 거네. 다두, 이게 내 눈을 대신하니 여기다가 종이를 대라.”
“예.”
“…….”
트라칸은 세상 오래 살았는데도 여전히 놀랄 일이 있다는 게 신비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자기 할 일을 하는 두 미친놈을 보자니 옛날 기억이 떠오르는 그였다.
“…잠이나 자자.”
더 이상 생각하기를 포기한 트라칸은 다시 돌아누워 방해받은 잠을 이어갔다.
몇 분이 지나고, 트라칸의 코 고는 소리와 관에서 일정한 간격으로 ‘다음 장’이라고 말하는 소리만이 고요한 감옥을 맴돌았다.
그렇게 또 몇 시간이 지나고.
“음?” “아.”
관속의 마법사와 새로운 이론을 설명해주는 다두가 대화를 멈추고 벽 한쪽 면을 빤히 바라본다.
“…뭐야.”
잠을 자던 트라칸도 잠에서 깨서 둘이 바라보는 벽에 시선을 집중했다. 트라칸이 다두와 시선을 마주치며 눈으로 묻지만, 다두는 본인도 모른다는 듯이 고갯짓한다.
“…….”
삼인이 침묵속에서 벽면을 바라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쩌저적! 파삭!
단단한 벽면이 마른 논바닥처럼 쩌적 갈라지더니 모래성처럼 허물어졌다. 허물어진 벽면을 통해 건장한 체구의 남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다두와 관, 주먹을 쥔 트라칸을 보고는 트라칸에게 깊게 고개를 숙였다.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트라칸 대공.”
인사를 받은 트라칸이 얼떨떨해하며 남성의 이름을 불렀다
“어, 어어……. 바모어? 바모어 성자님 아니신가?”
적당한 장신에 스포츠형으로 짧게 깎은 머리카락. 원리원칙주의자라고 광고하듯이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엄숙한 외모.
바모어 감마 96-2. 통칭 바모어 구육이. 실험체 시절 반역에 동조한 초기 맴버 중 한 명이다. 그가 감옥을 뚫고 나타난 이의 정체였다.
트라칸은 어째서 그가 감옥 변면을 파고 등장했는지 이유를 모르지만, 일단 바모어와 인사를 나누었다.
“성자님도 오랜만이군. 한 5년 만인가?”
“마지막 만남이 라코아 녀석이 소드 마스터가 됐다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던 시기이니 그쯤일 것입니다.”
관이 끼어들었다.
“소드 마스터? 라코아 성자님이 5년 전에 소드 마스터가 되었나?”
바모어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관 님. 저희 형제 중에선 최초로 절대의 경지에 올라섰죠.”
“흐음. 신 성자단이라면…….”
탈선하려는 대화를 다두가 끼어들어 바로잡았다.
“잠깐. 소드 마스터 어쩌고는 나중에 얘기하시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바모어 성자님은 무슨 일로 감옥에 오신 겁니까?”
“만나서 반갑소. 위대한 검사, 소드 마스터 다두 아와 훔. 당신을 만나고자 하는 분이 계시기에 감옥으로 왓소.”
“저를요? 누가?”
“가시면 알 수 있습니다.”
“어디로? 그리고 그곳에 가야 할 필요가 있습니까? 굳이 감옥을 벗어나는 위험을 감수하고 싶진 않은데요.”
“그건…….”
바모어가 옆으로 두 걸음 물러났다. 그가 자리를 비키자 감옥까지 뚫린 구멍, 트라칸만한 장신의 남성도 넉넉하게 드나들 수 있는 넓은 통로가 드러났다.
바모어가 예스러운 동작으로 통로를 가리키며 고개를 숙였다.
“트라칸 대공과 관, 그리고 다두 아와 훔. 젤 포이만 님의 부탁에 따라 세 분을 중앙의 비밀 공간, 악신의 시체를 보관한 곳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분은 그곳에서 다두 아와 훔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악신의 시체. 바모어는 거기까지 말하고는 ‘따라올지 말지는 너희들의 선택이다.’라는 듯이 몸을 돌려 그가 뚫고 온 구멍으로 되돌아갔다.
“…….”
트라칸이 다두를 바라보며 어쩔 것이냐는 시선을 보낸다. 끄덕. 다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나 관을 잡았다.
“내가 먼저 가마.”
트라칸이 앞장서서 바모어를 따라가고, 관을 질질 끌고 가는 다두가 그의 뒤를 따랐다.
덜그럭! 덜그럭!
어두운 밤.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굴을 세 명의 사람과 하나의 관이 통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