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Star Kingdoms RAW novel - Chapter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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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침노[侵]
나국(娜國)은 풍요로운 땅이었다.
7개의 인간의 나라 중에 백성이 가장 근심 없이 살 수 있는 나라로 나국은 항상 첫째로 거론될 정도였다.
그리고 그 이유가 바로 나국의 왕인 나주난의 성정 때문임을 백성들은 모르지 않았다.
국정 초반에는 기국과의 전쟁과 염의 침략으로 나라가 피폐해지고 세력이 많이 기울었으나 기국과의 전쟁에서 뛰어난 전술을 사용하여 승리하고부터는 나라 경제가 전반적으로 윤택해지기 시작했다.
염과 맞닿은 국경에 굳건한 산성을 지어 호인(虎人)들의 침략에 대비했고, 도로의 재정비와 치안 안정을 확립했다.
28세의 나이로 제위에 올라 장장 36년째 나국을 통치하고 있는 왕인 나주난은 신념 있고 진취적이며 올곧은 인성을 지니고 있어 정치적인 신망을 쉽게 얻을 수 있었다. 인망을 사사로운 실수로 잃는 행동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의 손에 의해 현재의 부유한 나국이 성장할 수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의 나이 64세. 평년 772년 8월, 나국은 염으로부터 씻을 수 없는 치욕을 안게 된다.
평년 772년 8월 10일.
밝아오는 새벽녘 아침은 고요했다. 어디에서나 맞는 아침이지만 나국의 남쪽 국경선인 하즈 지방의 아난 산성의 고요함은 그 수위를 넘어 적막하기까지 했다.
근간에는 호인들이 경계를 넘는 일이 적어졌다 해도 이곳은 명백히 침략을 저지하는 국경선이기 때문이다.
항시 긴장감을 유지하는 까닭에 경계를 서는 초병들도 쉬이 입을 열지 않았다. 전날 보초 중 잡담하다 걸린 초병에게 태형이 내려진 것이 아직까지 잊히지 않은 탓도 있었다.
한여름이었지만 아침은 서늘했다. 오늘은 특별히 서늘함에 더해 아침 안개까지 꼈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지만 태양은 아직 산등성이를 넘지 못하고 있었고, 안개는 근처 강에서 슬며시 피어올라 자욱하게 퍼지고 있었다.
남쪽 외곽 성곽을 지키는 두 초병 중 오른편에 있던 초병은 한여름에 느낄 수 없는 서늘함에 몸이 나른해졌는지 입을 크게 벌리고 하품을 했다.
“졸리냐?”
두 초병은 화들짝 놀랐다. 짙은 안개를 타고 자신들의 곁에 백인대장이 와 있었던 것이다.
혹여나 졸고 있었으면 태형으로 끝나지 않을 거란 걸 알고 있기에 두 초병은 등 언저리로 식은땀을 흘리며 대답했다.
“어, 어인 일이십니까, 백인대장님.”
넉살 좋게 생긴 초병이 눈을 초롱초롱 뜨며 대답했다. 얼굴은 웃고 있지만 내심 기분은 착잡했으리라.
“조용히 보초 서는 것도 중요하지만 졸면 안 된다. 보초 중에 잠을 자는 것은 잡담하여 태형을 내린 것보다 더한 형벌을 내릴 것이야.”
“네, 네. 여부가 있겠습니까. 저희는 졸지 않고 입도 닫고 열심히 남쪽을 주시하고 있었습죠. 곧 근무가 끝나기 때문에 우 씨가 잠깐 마음을 놓고 하품한 듯하니 크게 염려하지 마십시오.”
우 씨는 내심 자신을 변호해 주는 동료를 보며 머쓱한 듯 웃었다.
백인대장은 그 둘의 어깨를 두어 번 치면서 졸지 말라고 격려했다. 그리고 눈을 살짝 찌푸려 성 밖 남쪽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나저나 안개 한번 짙구나. 서늘한 것은 기분 좋은 일이나 요 앞 산자락도 분간하지 못하겠으니 경계를 서나 마나이구나.”
“경계를 서나 마나라뇨, 여기서 경계를 서고 있는 저희에게 그 무슨 섭섭한 말씀이십니까. 해가 뜨면 이 안개도 금방 사라질 것…….”
“잠깐!”
백인대장이 찌푸렸던 눈살을 더욱 찌푸리며 말했다. 그는 자신의 입술 위에 검지를 올려놓고 초병들에게 조용히 하라는 행동을 하였다.
그들이 입을 닫자 순간 정적이 맴돌았다. 하지만 그 정적 속에서도 미세하게 철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이건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아니냐?”
백인대장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그렇게 들리구만요.”
우 씨가 그 말에 조심스레 대답했다.
“오늘 우리 부대나 인근 부대에 아침 훈련이 계획돼 있더냐?”
“아마… 없을 것입니다.”
“나도 그렇게 알고 있다. 그렇다면 저 소리는 우리의 적이겠구나.”
백인대장이 눈을 감고 잠시 생각하더니 끝내 이를 악물었다.
두 초병은 두려움에 몸을 떨었으나 백인대장이 눈을 뜰 때까지 서로를 바라보며 기다렸다.
잠시 후 눈을 뜬 백인대장은 지체하지 않고 두 초병에게 말했다.
“둘은 바로 부대로 돌아가 이 일을 알려라. 나는 천인대장님께 이 일을 바로 알리도록 하겠다.”
10여 년 만에 일어난 대대적인 호인의 침략. 그 시작은 나국 남쪽의 변두리, 아난 산성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야트막한 언덕 위에 돌로 쌓인 아난 산성은 수도 성의 성곽만큼 높고 위용 있진 않았으나 나국으로 들어가는 길목을 방어하는 요충지였다. 그렇기에 견고하게 지어져 방어에 효율적인 산성이었다.
마침 점호 준비를 하던 산성 내 병력들은 곧바로 집결하여 성 위에 도열했다.
각기 손에는 활과 화살이 한 무더기씩 들려있었고 도열하지 않은 병력들은 돌무더기를 흰 천으로 감싸 겹겹으로 쌓아 성 위로 올리고 있었다.
백인대장은 갑옷을 차려입고 천인대장 옆에 섰다.
천인대장은 호인들과의 전쟁에서 상당히 많이 싸워본 전과가 있는 무장이라 이 상황에도 의연하게 안개를 주시했지만, 백인대장은 호인과 대적하는 것이 처음이었다.
근근이 주변 마을의 도적 떼와 싸워본 경험은 있었지만 호인을 맞아 싸우는 것은 두려움을 불러일으켜 몸을 떨게 만들었다.
“무섭느냐.”
천인대장의 중후한 목소리가 백인대장에게 들렸다.
백인대장의 긴장감이 그에게도 전해졌는지 천인대장은 묵묵히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의 얼굴은 할퀴어진 흉터로 일그러져 있었는데, 이전 호인과의 전투에서 얻은 상처들이었다.
“이 산성은 그리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천 명이 넘는 병력이 결사를 각오하고 싸운다면 아무리 용맹한 호인 수백 무리라도 단시간에 점령당하지는 않을 것이고, 그 안에 방금 보낸 전령이 후진에서 지원병을 잔뜩 이끌고 올 것이니 우리가 이길 것은 당연한 이야기일 것이다.”
백인대장은 그 말에 한층 긴장이 완화된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워낙 호인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어온 터라 긴장감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마음 한편에 남아있었다.
침을 한 번 삼킨 백인대장은 안개 너머로 들려오는 병장기 소리가 그저 보고되지 않은 우리 군이기를 바랄 뿐이었다.
“해가 뜹니다!”
남쪽 산등성이가 푸르게 빛나며 무수히 빛나는 빛무리를 안고 경계 사이로 노란 해가 빼꼼히 고개를 들이밀었다.
회색의 안개는 햇살이 닿자 공기 중에 스며들 듯 빠르게 사라졌다.
햇빛이 성벽 위로 강렬하게 쏟아지자 병사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백인대장과 천인대장은 마찬가지로 미간을 좁혔지만 눈을 감지는 않았다. 안개 속 적의 정체를 확실히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염(焰)
북호(北虎)
성벽 아래 저편에서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다.
염의 깃발과 북호 깃발. 염 안에서도 북호, 북쪽 지방의 호인 무리들이었다.
안개가 사라진 저편에서 깃발을 본 천인대장은 안면근육을 움찔거리며 눈을 꽉 감았다.
“천인대장님?”
백인대장은 천인대장의 심경 변화를 빠르게 알아챘다. 그는 천인대장의 곁으로 가서 안색을 살피며 말했다.
“천인대장님, 괜찮으십니까?”
천인대장은 고개를 천천히 저으며 손을 내저었다. 그러곤 파리해진 안색으로 백인대장을 바라보며 입술을 움직였다.
“깃발이… 깃발의 수가 너무 많다.”
백인대장이 서둘러 고개를 돌려 나부끼는 깃발을 자세히 보았다. 일견 수십이 넘는 숫자였다.
“깃발의 숫자만 수십이다. 산골짜기에서 상단 한두 무리 낚아채는 녀석들과는 다르다. 저들은 정규군이 틀림없어. 내 이 산성이 견고하다 자신했지만 저 정도의 숫자라면 우리가 결단코 이길 수 없다.”
천인대장이 좌절하자 오히려 백인대장이 그들의 숫자가 그다지 많지 않음을 보고 반박했다.
“하지만 우리가 유리한 고지에서 지키는 것은 변함없지 않습니까? 깃발이 수십이라도 일견컨대 우리의 두 배는 되지 않아 보입니다. 흙먼지로 보아 많아봤자 천오백 정도의 군세일 것입니다.”
그 말에 천인대장은 폐부 깊숙한 곳에서부터 나오는 통탄 어린 말을 내뱉었다.
“그 천오백이면 남부를 유린하고도 남을 것이다.”
그것은 그들에게 죽음을 선고한 것과 다름없었다.
============================ 작품 후기 ============================
2014-07-30 출판 본으로 본문을 수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