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Star Kingdoms RAW novel - Chapter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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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배움[學]
무명은 아니안의 손에 이끌려 한 허름한 초가집 앞에 다다랐다.
아니안은 간단하게 집의 위치와 구조, 간단한 규칙들을 설명했다. 화장실의 위치나 아이들이 일하는 시간, 밥 먹는 시간같이 간단간단한 것들을 알려주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도망치지 말라는 거다. 인간의 거주지 내에서 너희는 상당히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지. 하지만 여기를 벗어나면 너희는 너무나 쉽게 죽임을 당할지도 모른단다. 여기를 제외하고는 사방에 범족만 있기 때문에 거주지에서 도망친다 하더라도 너희는 어쩔 수 없이 범족에게 잡힐 수밖에 없다.”
아니안은 굽힌 허리를 투덕이며 고요히 무명을 노려봤다. 그녀의 표정에서는 말하지 않아도 심각함이 가득 내비쳤다.
“잡힌 자는 더 이상 노예로 부리지 않는단다. 이소호칸 어르신도 도망친 자에게까지 자비를 주시는 분이 아니다. 도망에 대해 경각심을 심어주기 위해 본보기로 너희 앞에서 산 채로 잡아먹힌 적이 한둘이 아니지. 무모한 짓은 하지 마라. 저기 저 산등성이를 넘는다면 살아서 다시 아침을 보기 힘들 것이야.”
아니안은 으슬으슬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어투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평범했으나 그 내용이 담고 있는 어감 때문에 무명에게 그녀의 목소리는 더욱 냉정하게 들렸다. 그만큼 도망을 경고하는 듯했다.
무명은 그녀의 말이 끝나자 묵묵히 고개를 끄떡였다.
아니안은 무명을 보고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켜더니 손가락으로 방을 가리켰다.
“저기가 바로 네가 묵을 곳이다. 식사 시간이 되면 다들 돌아와 배급을 준비할 테니, 같이 밥을 먹고 지내보도록 해라. 무슨 일이 있다면 내가 알려준 길을 따라 내가 있는 곳으로 와서 나에게 말하고. 알겠니?”
“네, 알겠습니다.”
무명이 공손히 말하자 아니안은 등을 돌리고 돌아갔다.
무명은 아니안이 가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다가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그녀가 안내해준 방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자 매캐한 노린내가 코를 찔렀다. 누런 이부자리가 삐뚤빼뚤하게 접혀 방구석에 수북하게 얹어져 있었고, 벽은 들떠 퍼렇게 변색되어 있었다. 냄새는 떠있는 벽과 이부자리에서 심하게 풍겼다.
방은 무명 정도의 소년이 일곱 명가량 누우면 가득 찰 만큼 좁았다. 아까 넌지시 들은 바로는 무명까지 11명이 지내는 숙소였다.
더럽고 불쾌하기 짝이 없는 공간이었지만 워낙 무명은 이러한 것에 무감각했다. 낙엽이 썩어가는 산자락에서도 다리 펴고 누울 곳이 있다면 그것으로 감사했다. 혹여 비나 눈이 올 때엔 동굴에 들어가서 지붕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었다. 잠 잘 자리를 찾지 못해 쫄딱 젖을 때도 있었으니 말이다.
무명은 방 한쪽 벽으로 다가가 등을 기대고 미끄러지듯 쭈욱 내려앉았다. 혼자 방 안에 앉아있으니 지금까지의 일들이 머릿속에 정리되면서 아니안이 말해준 이곳의 생활을 하나하나 되짚어볼 수 있었다.
남자아이들은 모두 이곳에서 생활했고, 수는 약 650명에 달하는 듯했다. 나이는 적으면 일곱에서 많으면 스물셋. 나이가 어릴수록 단순 노동을 하는 듯했다.
염의 동쪽은 풍토와 날씨가 좋아 일 년에 두 번 경작을 할 수 있었는데 보통 4월과 10월에 추수하였다. 4월에는 보리를, 10월에는 쌀을 추수했고, 8월인 지금은 토지를 개간하는 기간이었다.
염의 땅은 무지막지하게 넓었기에 경작지로 활용될 토지는 차고 넘쳤으나 개간이 전혀 되어있지 않아, 매년 모내기철과 추수철이 아니면 수확량을 늘리기 위해 토지를 계속 개간하였던 것이다. 지금은 북쪽을 개간하고 있다 했다.
무명은 눈을 감고 한참을 생각하다 졸음이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저녁까지 잠을 잤다고는 하나 밤새도록 이소호칸과 대화를 나눈 것은 확실히 피곤한 일이었다. 더구나 워낙 말을 안 하다가 말을 태산처럼 토해냈더니 더욱 힘들었다.
무명은 그대로 눈을 감은 채 잠을 자려 했다. 지난밤 두 개의 주먹밥을 맛있게 먹어 아직 배도 든든했다. 잠을 자기로 결심하고 채 5분도 되지 않아 무명은 잠에 빠졌다.
“이봐, 일어나. 일어나 봐.”
누군가가 자신의 어깨를 잡고 천천히 흔들고 있었다. 무명은 누군가가 자신을 깨우자 무의식에서 천천히 발을 빼었다.
고개를 두어 번 흔들고 눈을 천천히 떴다. 눈썹 사이에는 누런 눈곱이 메말라 붙어있었다.
무명은 자신의 눈을 두어 번 비벼 눈곱을 떼어낸 후 자신을 흔든 사람을 멍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몇 번을 흔들어도 안 일어나서 난 네가 기절하거나 죽은 줄 알았잖아.”
이마에 회색 두건을 덮은 소년이 맑게 웃으며 말했다.
인간 소년이었다. 어림잡아 무명보다 대여섯 살은 더 먹어 보였다. 송충이처럼 두터운 검정 눈썹과 초롱초롱한 갈색 눈 사이로 곧은 코가 자리 잡고 있었다. 입술은 분홍빛이 감돌았으며 턱은 딱딱 굽어져 있었다. 얼굴이 새카맣게 타있지만 않았다면 귀공자라 해도 손색없을 정도로 훈훈한 얼굴이었다.
무명은 자신을 걱정해주며 웃는 그를 보고 살며시 웃음 지었다.
“제가 너무 깊게 잠들어 있었던 탓인 것 같네요.”
“갑자기 숙소에 모르는 얼굴이 잠들어 있어서 놀랐다. 신입이니? 언제 온 거야?”
무명이 주위를 살펴보자 열 명 정도 되는 인원이 모두 무명을 둘러싸고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모두가 의문에 가득 찬 표정이었다.
무명이 열려있는 창을 슬쩍 쳐다보니 자신이 잠든 지 오래된 것 같지는 않았다.
“오늘 아침에 왔어요. 아니안이 오늘부터 이곳에서 묵으라 했어요.”
“사흘 전에 모든 애들을 배정한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구나. 이름은 뭐고, 나이는 몇이니?”
그는 손가락으로 코를 훔치며 말했다.
그의 말은 시원시원해서 듣기 좋았다. 사람을 많이 다뤄본 말투였다.
“이름은 무명이고, 나이는 아홉입니다.”
무명은 본래 이름을 살짝 떠올리며 조금 뜸을 들였지만 이내 자신을 무명이라 소개하고 나이를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상대방은 살짝 놀란 듯했다.
“체구를 보아하니 열하나에서 열둘 정도로 돼 보이는데 상당히 어렸구나. 말투도 어린 것에 비해 많이 조숙하고 말이야.”
“형님, 우리 배급 시간입니다. 늦으면 밥 못 먹어요.”
말이 끝나자 그의 뒤에서 메주 코를 가진 뚝심 있게 생긴 녀석이 투덜거리듯 말했다.
무명은 그의 말에 이제 식사 시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식사는 하루에 네 번, 각 숙소들은 배정된 시간별로 식사 배급 장소에 가서 밥을 배급받는 구조였다.
아니안이 아까 누누이 언급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식사 배급이었는데, 시간에 늦으면 다른 숙소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밥을 먹지 못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래서 최대한 식사 시간은 철저히 지키라고 계속 언급했었다.
“아차차! 그래, 그랬었지. 미안하다. 신입이 들어온 건 간만이라 말이지.”
그는 뒷머리를 긁으며 메주 코에게 말하고는 무릎을 짚고 일어나 무명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것은 명백히 무명을 일으켜 세우기 위한 동작이었다.
무명은 거부감 없이 그 손을 잡았고, 그는 손을 당겨 무명을 일으켜 세웠다.
그의 손은 까칠까칠한 것이 굳은살이 가득했고, 당길 때엔 당찬 힘이 느껴졌다. 무명 또한 단단한 손과 힘을 가졌으나 그만큼 굳세지는 않았다. 그것은 나이 차이도 있었지만 고된 노동에서 생긴 자연스러운 힘이라 그 차이가 컸다.
“반갑다, 무명아. 나는 열여덟 살. 이마진이라 한다. 잘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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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31 출판 본으로 본문을 수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