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Star Kingdoms RAW novel - Chapter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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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백모봉[峰]
이소호칸은 무명이 몸이 좋지 않다는 수에르의 꾸며낸 이야기를 듣고선 아예 금주는 편히 쉬라고 수에르에게 일렀다. 지금까지 무명은 잔병치레를 전혀 하지 않고 쉼 없이 공부를 해왔기에 어느 정도 심신을 안정시키기 위한 이소호칸의 배려가 깃들어있는 휴식이었다.
얼떨결에 휴식 시간을 얻게 된 무명은 이소호칸의 따스한 배려에 기뻐하며 감사했다.
“그래서 말인데 이번 기회에 기초 체력 훈련을 해두는 게 좋을 거 같단 말이지.”
수에르는 고개를 내려 자신의 품속에 있는 무명을 바라보며 말했다.
“훈련이요? 수련을 위해서 말인가요?”
무명의 질문에 수에르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응, 본격적으로 수련에 들어가면 체력적인 것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그게 단기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거든. 적어도 이 기회에 적응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고 말이야.”
“그럼 어떠한 것을 먼저 준비해 두면 될까요?”
수에르의 말에 무명은 호응하며 말했다. 그러자 수에르는 슬며시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뭐, 매일 아침 이렇게 나와 차가운 자연 환경에 동화되는 게 시작이지.”
그 말을 듣고 방금 전에 있었던 끔찍한 사태를 떠올리며 무명은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기초 체력 훈련은 근력과 지구력이 있어야 나중에 있을 혹독한 수련을 충분히 견뎌낼 수 있지.”
수에르가 말하자 무명은 입을 앙다물고 굳은 눈빛으로 수에르와 눈을 마주쳤다. 그 표정은 이미 모든 훈련과 수련을 각오하고 있다는 것을 대변하고 있었다.
“오늘부터 하실 건가요?”
“아~니.”
수에르는 그대로 뒤로 벌렁 누웠다. 무명은 그의 폭신한 가슴 안에서 덩달아 뒤로 넘어갔다.
“나도 가끔은 쉬고 싶을 때가 있거든, 오늘은 쉬어야지.”
수에르의 말에 무명이 키득거리며 웃었다. 나자빠진 수에르가 대자로 팔을 벌리며 햇살을 만끽했기 때문이다. 그의 흰 털이 바람에 살랑이는 햇살을 그대로 받아내었다.
“그리고 쉬는 데는 이게 제격 아니겠냐.”
품을 뒤적거리던 수에르는 자신이 원하던 것을 찾았는지 그것을 꺼내 하늘 위로 번쩍 들어 올렸다. 그의 손끝에 들려있는 기다란 막대기를 보고 무명은 슬며시 웃음을 지으며 자신 또한 항상 지니고 있던 그것을 찾기 위해 누워있던 몸을 일으켰다.
“가져왔지?”
“물론이죠.”
수에르의 물음에 기분 좋게 응답한 무명은 이전에 입었던 옷을 뒤적거려 피리를 찾아내 들었다.
“좋아, 그럼 오늘은 내내 피리 소리로 여길 가득 채워보자구!”
수에르가 꺼내 든 무명의 피리를 보고 호탕하게 웃으며 외쳤다. 그리고 바로 피리를 입가에 대고 긴 저음의 음조를 불었다. 무명은 그 음색을 따라 자신도 피리에 손가락을 얹고 음조에 어울리며 연주를 시작했다.
***
무명은 빠르게 새로운 생활에 적응했다. 워낙 적응력이 빠른 무명이기에 바뀐 상황을 순식간에 이해하고 쉽게 스며들었다.
이전에는 이마진이 무명의 생활을 하나하나 바로잡아 주었다면 이번에는 관엽이라는 선배가 무명을 잘 교육시켜 주었다.
하지만 무명에게도 힘들고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수에르와의 수련이었다. 무명은 훈련이 그렇게 어렵고 힘든 것이란 것을 처음 알았다.
수에르는 상당히 순진하게 보여도 지파 내에서 실력을 알아주는 전사이며 지파의 신출내기들을 가르치는 무예 교관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그는 무명의 한계치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무명은 또래에 비해 상당히 육체적인 조건이 좋았고 근력도 잘 발달해 있었다.
하지만 수에르가 원하는 것은 바로 최상의 상태를 가진 몸이었다. 일단 수련을 시작하게 되면 극한까지 몰아붙이는 경우도 더러 있었으므로 육체를 최상의 상태로 만드는 것이 시급했다.
수에르는 무명의 육체를 한계까지 계속 몰아붙였다. 오전에 그와 체력 훈련을 하면 오후 일과를 간신히 해낼 수 있을 정도로의 체력만 남겨두었다. 훈련을 마치면 전신이 후들후들 떨렸다.
무명에게는 호인이 훈련하는 방식인 터프하고도 다소 무리하는 듯한 식의 훈련은 자제했으나, 그것만으로도 무명은 자신이 배우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통감할 수 있었다.
자신의 의지로 몸을 움직인다는 것이 그렇게나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무명은 수에르와의 체력 훈련을 통해 철저히 실감할 수 있었다.
분명 머릿속으로는 가능하다고 느끼는데 몸은 그를 따라주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런 한계 상황을 적절히 만들어주며 수에르는 무명이 자신의 단계를 한 계단씩 뛰어넘어 성장하길 바랐다.
그렇게 고되고 피곤한 수련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점심 식사를 마치면 선고우를 수발하는 일이 무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기에 두 다리와 팔, 그리고 온몸의 근육을 편히 놔둘 시간이 없었다.
선고우를 수발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어려운 일은 없었으나 휴식 시간이 단 일각도 없는 것이 무명을 괴롭혔다.
선고우는 작업을 하는 내내 결코 쉼이 없었다. 그는 마치 불꽃에 빨려 들어가듯 망치를 계속 두들겼고 금속을 제련했다.
선고우가 제련한 금속들은 관엽과 다른 사람들이 꾸준히 가져갔는데, 선고우는 그때마다 줄을 잡아 당겨 자신 옆에 있는 종을 울렸다.
무명이 가장 처음 이곳에 와서 배운 것이 바로 종소리의 다름이었다. 종은 열 가지가 넘었는데 각자 다른 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선고우는 이 종으로 인간들을 부리고 있었다. 인간들과 대화할 방도가 없던 선고우는 이 방법을 써서 인간을 부리고 있었고 이는 꽤나 효율적이었다. 종소리에 몇 가지 조화를 주어 그 울림대로 자신의 의사를 전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무명이 온 이후로는 무명이 대신 선고우의 말을 번역해서 전해주기도 하였으나, 굳이 말을 전달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는 종의 편리함이 있었기 때문에 선고우는 계속해서 종을 사용했다.
단지 의사소통만을 위해 무명이 선고우 곁에 있는 것은 아니었다. 무명은 다리가 불편한 선고우가 쉼 없이 요청하는 것들을 정신없이 들어주어야 했다.
선고우는 무명이 오기 전에는 불편한 몸을 움직여 작업을 진행했기 때문에 작업에 집중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무명이 온 이후로는 그는 몸을 움직이지 않고 계속 불꽃과 장렬히 씨름하였다.
정말 팔과 눈동자, 그리고 망치와 꼬챙이를 쥔 손의 움직임을 제외하곤 전혀 미동도 없이 그 순간의 인생을 불태우고 있다고 비유해도 좋을 정도로 집중했다.
여기에 온 지 얼마 안 돼서 무명은 선고우의 도구들 위치를 모두 기억해야만 했고, 그것을 선고우가 필요로 할 때마다 즉각 전달해 주어야 했다.
수발의 처음은 많이 혼란스러워 선고우에게 크게 혼난 적도 여러 번 있었으나 관엽이 그럴 때마다 어느새 다가와 지도해 주었다.
이 공방에서 관엽의 역할은 인간과 선고우와의 소통이 주된 임무였지만 그것을 무명이 대체하니 그는 자신이 크게 신경 써야 할 일이 하나 줄었다며 좋아했다.
그가 이제 하는 일은 선고우의 공방에 재료를 나르는 것이었다. 상당히 여유로운 직을 맡게 된 관엽은 선고우의 공방 근처에서 작업하고 있다가 종이 울리거나 무슨 일이 있는 낌새가 느껴지면 바로 달려오곤 했다.
그는 무명을 마음에 들어했고 무명 또한 관엽의 관심이 싫지는 않았기에 둘의 사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졌다.
이전 숙소에서 같이 이동한 이마진과 동료들은 무명처럼 철을 제련하는 공방이 아닌 목재를 다루고 건축 일을 배우고 있었다.
수에르와 오전 근력 강화 훈련을 마치고 점심을 먹으러 돌아올 때면 머리에 허연 톱밥이 가득 덮어져 있는 그들을 볼 수 있었다.
주타와 고누는 이제 더 이상 무명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숙소가 달라진 이상 그들이 무명을 해코지할 수 있는 방도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그저 무명을 무시할 뿐이었다. 이마진과 가주레, 바질 정도만 무명을 반갑게 맞아주고 서로의 안위를 그때마다 들려주었다.
그렇게 일주일은 섬전같이 지났다. 무명은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꽤나 훌륭히 적응하고 있다는 것에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겼다.
여전히 체력 훈련은 힘들었고, 피곤함이 극에 달했지만 인간은 적응하는 동물이라고 했던가, 힘들고 어려운 것 또한 반복되고 몸에 익다 보니 그 일상에 순응할 수 있었다.
물론 적응할 만하면 무명이 눈치채지 못하게 그 단계를 조금씩 교묘하게 더 올리는 수에르였기에 그에게 가중되는 육체적 노곤함은 그대로였다. 하나 자신이 적응하고 있다는 기분만큼은 어찌할 수 없는 것이었다.
무명은 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일어나 차갑게 얼어붙은 냇가의 얼음을 깨고, 그 아래 흐르는 무섭도록 차가운 물로 몸을 깨끗이 씻어내었다.
근간 수에르와의 훈련으로 차가운 물에 대한 내성을 충분히 기른 탓에 거리낌 없이 찬물을 몸에 들이부었다.
체온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칼날처럼 시린 바람이 몸을 거침없이 훑고 지나갔지만, 무명은 아무런 내색 없이 마치 따뜻한 물로 몸을 씻는 듯 느긋하게 세면을 마쳤다.
수에르와의 훈련의 가장 큰 요점은 바로 자신의 몸을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이게 하는 것이었다. 단지 일주일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무명은 그 이야기의 본질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수에르가 시키는 다소 무리인 듯한 체력 훈련에 자신의 몸이 말을 듣지 않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긴 했으나 기본적으로 마음을 가다듬고 몸과 마음이 일체되는 느낌은 확실히 배울 수 있었다.
이전 같았으면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몸과 정신이 따로 흩어질 만한 추위를 느껴도 자신의 몸을 제어할 수 있던 것이다.
무명이 이른 아침부터 몸을 정갈히 하던 이유는 바로 오늘이 이소호칸을 만나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일주일 동안 자신이 병―정확하게는 감기 몸살―에 걸려 휴식 시간을 준 이소호칸을 드디어 볼 수 있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무명이 몸을 씻고 숙소로 돌아오자 마침 수에르가 그를 맞이하러 저 멀리에서 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무명은 자고 있는 관엽을 슬쩍 바라보고선 수에르를 맞으러 밖으로 나갔다.
“여, 시냇가에 가서 몸을 씻고 왔나 보네.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한데?”
수에르가 귀신같이 무명이 씻고 온 것을 눈치채고 물기가 아직 남은 무명의 머리카락을 두터운 손으로 헤집어놨다.
무명의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헤집어놓는 것은 이제 완전히 습관이 됐는지 거의 만날 때마다 수에르는 무명의 머리를 까치둥지처럼 혼잡하게 뒤집어놨다.
“오랜만에 대족장 어르신 뵙는다고 몸단장한 거야?”
수에르는 무명의 마음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고, 무명은 자신의 마음을 자꾸만 읽는 수에르 때문에 부끄러워졌다. 수에르는 자신의 의중과 심중을 너무나도 쉽게 파악했다.
“네, 상당히 오랜만이니까요.”
“녀석, 대견하기도 하지. 그럼 가자.”
수에르는 무명을 보고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걸음을 옮겼고 무명 또한 그런 수에르를 따라 이동했다.
무명은 이곳에 와서 수에르를 만난 것이 진실로 천운이라 생각했다. 그의 마음을 이해해 주고 그의 생각과 행동을 진심으로 보듬어주는 것은 이마진이나 다른 인간이 아닌 수에르였기 때문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말을 미리 맞춰두자. 너는 아팠던 거야. 술 마신 적은 없는 거다. 대족장님이 물어보면 그냥 온몸에서 열이 나고 몸을 거동하기 힘들었다 해라. 나도 그렇게 전했으니.”
“네, 아파서 앓아누운 걸로 말을 맞추죠.”
무명이 수에르의 눈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수에르도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내고 계속 길을 걸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무언가가 생각이 난 수에르는 손뼉을 치며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 저번 주에 공진희에게 편지가 왔었는데 잊고 계속 안 가져왔네. 조만간 또 만나게 해주는 게 좋을 거 같아. 다음 주나 그 다음 주 내로 일정을 잡아볼 테니 말해 줘. 그리고 편지는 내일 가져다줄게.”
수에르가 말하자 무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시시껄렁한 일상 이야기를 나누며 웃음을 짓고 이소호칸의 장원으로 향했다.
============================ 작품 후기 ============================
2014-08-04 출판 본으로 본문을 수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