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Star Kingdoms RAW novel - Chapter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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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감옥[獄]
“인간 전체를 위해서 말씀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악물고 마지막 말을 뱉어내었다. 그러나 들려오는 것은 싸늘한 대답뿐이었다.
“내 선택을 더 이상 시험하지 말거라. 나는 본래 인간을 육(肉)으로 사용할 생각은 없었다. 저 여자는 규율을 어긴 죄를 받는 것이고, 그 값은 합당하다 여긴다. 더 이상 내 결정을 번복하려는 반론은 받지 않겠다.”
“백모의 아버지시여.”
수에르가 한마디를 더하려고 하자 이소호칸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외쳤다.
“갈(喝)! 수에르, 똑같은 말을 반복할 거라면 자네에게도 더 이상의 말을 허락하지 않겠네.”
수에르와 무명은 고개를 내리깔고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것은 마진츠도 마찬가지였다.
무명이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자 이소호칸은 하는 수 없이 손을 들며 말했다.
“수에르, 무명을 데리고 나가게. 슬슬 다른 손님들이 오실 때가 되었네. 그리고 자네에게 무명과 함께 축제 기간 동안 근신을 명하네. 자네의 집에서 무명과 같이 근신하도록 하게.”
이소호칸의 명령에 수에르는 마지못한 듯 고개를 숙이며 권상의 예를 올렸다. 대족장의 명령은 지엄한 것. 거기에 따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수에르는 무명의 소매를 잡아 일으켰다. 무명은 뭔가 더 말을 잇고 싶었으나 더 이상 섣부르게 외치다간 스스로나 수에르의 안위를 보장할 자신이 없었다.
무명은 입술에 피가 배어 나올 정도로 깨물면서 터져 나오는 말을 가까스로 참았다.
“대족장님, 심려를 끼쳐 죄송합니다. 그럼 축제 기간 동안 근신으로 벌을 받겠습니다.”
수에르가 권상하며 말했다. 무명 또한 고개를 숙이며 수에르와 함께 인사를 올렸다.
이소호칸은 목례하여 그 인사를 받았다. 무명과 수에르는 슬그머니 뒷걸음질하여 방에 나와 문을 닫았다.
“흐음…….”
문이 닫히자 이소호칸이 콧바람을 내쉬며 한숨을 지었다.
“아버지, 조금은 무리한 처사가 아니었는지요? 의견을 수렴해도 아버지 선에서 충분히 마무리 지으실 수 있지 않으십니까.”
마진츠가 조심스럽게 이소호칸에게 물었다. 최대한 이소호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모습이었다.
“손님들이 없다면 내 선에서 마무리 짓겠지만 이것은 내 위신이 걸린 문제다. 어느 지파도 인간의 번식을 허용한 전례가 없다. 임신 사실을 좌중에게 알리고, 그 일을 인정하다간 나뿐만이 아니라 우리 동쪽 지파 전체의 위신이 달린 문제라고 본다.”
이소호칸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마진츠도 그 말에 수긍하듯 입을 닫았다.
“게다가 이미 내 입으로 그 소녀를 먹겠다고 다른 이들에게 선포해 놓은 상황이니 쉬이 엎치락뒤치락할 수 없는 일이다. 대족장으로서 소신은 지켜야 하지 않겠느냐.”
이소호칸은 조금 식어버린 찻잔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는 차가 더 식기 전에 잔을 들어 목 뒤로 넘겼다.
마진츠가 따라놓은 수에르와 무명의 잔은 마시지 않은 탓에 가득 차있었다. 마진츠는 주전자를 들어 이소호칸의 잔을 채웠다.
“너도 내 결정을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듯싶구나.”
이소호칸이 다시 채워진 찻잔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마진츠는 그런 이소호칸을 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아버지의 결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소자, 지금까지 아버지께서 인간을 위해 지켜오신 것들이 이번 계기로 무너질까 고심합니다.”
“그런 것은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이번이 특별한 것일 뿐이다.”
이소호칸이 딱 잘라 말하자 마진츠도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나저나 너는 눈치채지 못했느냐?”
이소호칸이 슬며시 웃음 지으며 물었다. 마진츠는 차를 마시려다 멈추고 고개를 갸우뚱 틀었다.
“무엇이 말입니까?”
“역시 잘 모르나 보구나. 조금 더 눈썰미를 기르는 편이 좋겠구나.”
이소호칸이 미소를 띠며 말하자 마진츠는 더욱 궁금해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저 소녀가 임신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라 보느냐?”
“그저 남자아이와 연분이 나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게 가당키나 할 것 같으냐? 연분이 나는 것은 둘째 치고, 관계를 맺을 장소나 시간이 절대적으로 나질 않을 텐데 말이다.”
“음, 그렇겠군요…….”
마진츠가 이소호칸의 말을 듣고 턱에 나있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소호칸만큼은 아니지만 마진츠도 풍성한 수염을 가지고 있었다.
“내 계속 생각해 보았지만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지.”
“그렇다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기에 소녀가 임신한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소호칸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양손에 깍지를 껴 탁자 위에 올렸다.
“무명과 수에르다.”
이소호칸의 말에 마진츠는 짐짓 놀랐으나 겉으로는 큰 내색을 하지 않았다. 조금 전 둘을 보기에는 전혀 그런 기색이 없었다. 마진츠는 살짝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버지, 너무 앞서나가신 게 아닙니까? 제가 아까 보기에는 둘에게 그런 기색을 전혀 찾을 수 없었습니다.”
마진츠가 손을 저으며 말하자 이소호칸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것은 네가 무명에게만 시선을 집중한 탓이다.”
마진츠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설명을 요구하는 듯하자 이소호칸은 계속 말했다.
“이야기의 주체가 무명이었기 때문에 네가 그런 오해를 한 것이다. 수에르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지. 그렇기에 네 시선이 수에르 쪽으로 옮겨가지 못한 것이다. 수에르가 대화 내내 어떠한 기색이었는지 너는 기억하느냐?”
“확실히 수에르의 표정이나 기색은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수에르는 거짓을 고하지 못하는 성격이다. 그것은 녀석의 행동에도 잘 나타나있지. 그 녀석이 도를 다룰 때 허초란 없다. 정직한 품새, 정직한 경로로 상대하지. 조금만 꾀를 부릴 줄 알면 고스보치와 겨뤄도 쉽게 지지 않을 녀석이다. 녀석의 큰 단점은 무예만큼이나 악기를 다룸에 시간을 너무 투자하는 것과 바로 투박한 정직함이다.”
이소호칸은 깍지를 맺은 손 위에 턱을 올려놓으며 옥색 눈으로 마진츠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나 또한 고스보치가 말해 주지 않았다면 수에르에게 시선을 두지 않았겠지. 무명은 상당히 재간이 있는 아이야. 그 녀석은 진실로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영특함을 지니고 있다. 무명의 말만 들었을 경우에는 소녀와 무명의 관계는 전혀 없어 보이지. 무명이 내건 대화의 주제는 인간을 위해 소녀를 풀어달라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니까.”
“고스보치가 무언가 아버지께 말해 주었습니까?”
마진츠의 물음에 이소호칸은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보초를 서지 않아도 되는 수에르가 보초를 서기 시작했다, 라는 말을 고스보치로부터 들었을 때 조금 의심을 하긴 했지. 하지만 오늘 수에르의 표정을 보고 확신했다. 아무리 숨겨도 녀석의 표정은 자신의 성격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지. 수에르와 무명은 분명 밖에 있는 소녀와 연관이 있다. 그렇기에 나는 둘을 근신하라 명한 것이지.”
“하지만 무명의 말에는 전혀 그런 낌새가 없었습니다. 무언가 연관이 있다면 지레 말투에서 배어 나와야 하지 않습니까.”
“앞서 말하지 않았느냐, 무명의 영특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저렇게 어리게 보여도 자신의 감정을 완벽하게 제어할 수 있는 아이다. 나 또한 무명만 볼 때 녀석이 이 일과 관계가 없다 생각한다. 하지만 수에르가 용의에 오른다면 무명이 빠질 수는 없는 일이지. 둘은 분명 소녀와 연관되어 있음이 확실하다.”
마진츠는 이소호칸의 확신에 염려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확신하신다면 둘에게 벌을 내리실 것입니까?”
“벌? 벌은 이미 주었지 않느냐.”
이소호칸의 말에 마진츠는 어리둥절했다. 이소호칸이 어떤 벌을 내렸는지 짐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둘에게 근신하라 한 것이 벌이다. 소녀를 죽음의 운명으로부터 구하지 못하는 게 둘에겐
그 어떠한 것보다 큰 벌이 되겠지.”
“그런 것입니까…….”
“뭐, 차후 수에르에게는 엄중히 더 경고를 해야겠지만 지금은 이 정도만 해도 괜찮을 것이다. 자, 그럼 아들아. 다음 올 손님맞이할 준비를 하자.”
이소호칸은 아들과의 대화를 마치고 여시종을 불렀다. 여시종은 탁자에 놓인 잔을 치우고 새로 끓인 차 주전자를 올려놓았다.
이소호칸과 마진츠는 내일 있을 축제에 대비해 또 다른 손님을 맞을 준비를 했다.
* * *
응접실에서 나온 무명과 수에르의 표정은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특히나 무명은 응접실 근처를 벗어나자마자 눈물이 눈가에 그렁히 맺혀 바로 볼 아래로 떨어질 듯했다.
“아무래도 대족장님께 우리가 했던 일을 들킨 듯하다.”
“…….”
무명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그저 수에르를 올려다보았다. 무언가 분하면서 원통함이 가득 서린 얼굴 표정이었다.
“대족장님께서 네 이야기를 듣는 와중 나의 표정을 유심히 관찰하셨다. 나는 너처럼 능숙하게 티가 나지 않게 있지 못해서 말이다. 아마 우리가 공진희와 관계가 있다는 것을 들켰을 가능성이 높아. 근신 또한 대족장님께서 이 일에 대해 벌을 주신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에게 죄가 없다 생각하셨으면 근신이란 처분을 내리시지 않았겠지. 근신 처분이 내려진 것은 바로 죄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아무런 행동을 하지 말라는 뜻이기도 하지.”
“그런…가요.”
무명이 입술을 움찔거리면서 대답했다. 또르르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하…….”
수에르는 눈물을 차마 감추지 못하고 떨구는 무명을 바라보며 무명의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무명은 서럽고 슬픈 마음에 수에르의 다리에 얼굴을 묻고서는 눈물을 흘리며 엉엉 울었다. 다행히도 주변에는 아무도 없어 무명은 한참 동안 수에르의 다리맡에서 흐느꼈다.
“뭐라 위로해 줄 수가 없구나. 오히려 나에게도 위로가 필요할 정도니…….”
고개를 푹 숙이며 수에르도 한숨을 내쉬었다.
인적이 없다 해도 도로에서 한참을 울고 있을 수는 없었다. 수에르는 무명을 달래 걸음을 걷게 했다.
무명은 치밀어 오르는 서러움에 눈물이 계속 흘러나왔다. 눈물을 멈추고 현실을 직시해 보려 해도 도저히 샘솟는 눈물을 막을 방도가 없었다.
수에르는 넓은 도포 자락으로 무명의 얼굴을 가리고 장원을 빠져나왔다
장원을 빠져나오는 와중에도 공진희를 보기 위해서 장원이 북적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수에르의 도포에 눈물을 적시고 있던 무명은 공진희의 모습을 생각하자 절로 이가 갈렸다.
결국 그녀를 구할 마지막 방법이 사라지게 된 것과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걷고 또 걸어 수에르가 도포 자락을 걷어내니 어느새 장원 밖, 수에르의 집 앞이었다.
무명은 아직까지도 진정하지 못하고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무명의 훌쩍임을 들었는지는 몰라도 유기이가 둘을 맞으러 나왔다.
“무슨 일이야? 무명은 왜 울고 있니?”
유기이의 품에는 갓 낳은 수에르의 아이가 안겨 젖을 빨고 있었다.
무명은 그런 유기이를 보며 더욱 공진희의 생각이 간절해졌다. 무명이 울음을 멈추지 않자 수에르는 한숨을 계속 쉬며 하늘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무슨 일이냐고, 무슨 일인데 그리 행동하는 거야? 수에르, 당신은 왜 또 그래? 망부석처럼 거기 있지 말고 일단 들어와.”
유기이가 간신히 둘을 이끌고 집 안으로 밀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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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07 출판 본으로 본문을 수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