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Sword Seven Flesh Divine Martial Arts RAW novel - Chapter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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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감옥[獄]
“내게 무슨 일이 있어 왔느냐, 무명아.”
이소호칸은 슬쩍 미소를 흘리며 말했다. 오늘따라 무명의 귀에는 이소호칸의 말이 너무나도 무미건조하게만 들렸다.
무명은 허리를 깊숙이 굽히며 이소호칸에게 말했다.
“어르신, 다름이 아니오라 밖에 결박되어 있는 소녀의 문제로 찾아왔습니다.”
무명이 최대한 공손하게 말을 하였지만 주제가 주제인지라 그 말은 이소호칸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이소호칸은 무명의 말을 듣고 송충이같이 늘어진 흰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 소녀에 대해 나와 무슨 말을 하고자 여기까지 온 것이냐?”
이소호칸의 말투에서 명백히 껄끄러움이 묻어나왔다. 무명은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이소호칸 어르신, 제가 오늘 수에르 형님에게 전언을 들은바, 밖의 저 소녀를 이번 축제에 음식으로 사용한다고 하신 줄 압니다.”
“그래, 내 축제에 소녀를 다른 지파의 손님들에게 대접하려 한다. 너는 그것에 불만을 가진 것이냐?”
“불만이 아니오라…….”
무명이 얕게 속삭이며 말하자 갑자기 이소호칸이 탁자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둔탁한 원목의 탁자가 둔중하게 울렸다. 이소호칸의 심기가 상당히 불편한 듯했다.
“불만이 아니면 나를 왜 찾아온 것이냐! 어물쩍거리며 주제를 회피하려 하지 마라! 너는 분명 그 이야기를 듣고 나에게 불만을 가졌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 자리에 오지도 않았을 것이 아니냐!”
이소호칸이 외치자 무명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여기에 무언가 반박을 하다가는 더 큰 화를 초래할 것만 같았다.
“보지 않아도 빤한 일이다. 너는 지금 나에게 그 소녀를 풀어달라고 간청하려 이 자리에 온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나는 한 번 말했던 것을 번복할 생각은 없다.”
이소호칸의 이어지는 말에 무명이나 수에르는 밖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큰 불안과 난처함이 마음속에 피어올랐다.
이소호칸이 공진희를 풀어주지 않는다면 그녀가 살 수 있는 실낱같은 가능성은 없어지기 때문이었다. 무명은 그 가능성의 오라기라도 잡고자 서둘러 입을 열었다.
“하오나 어르신…….”
무명이 말을 꺼내들려 하자 이소호칸은 매몰차게 고개를 흔들며 손을 내저었다.
“물러가라! 그 주제로는 더 이상 나눌 말이 없다.”
무명의 얼굴에서 좌절감이 피어올랐다. 이렇게 이소호칸이 강직하게 대처하는 것은 그의 의견을 결코 바꾸지 않겠다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었다.
수에르는 살짝 울상을 지었지만 대족장의 명에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에르가 판단하기에는 더 이상 가망이 없었던 탓이었다.
무명은 쉽게 엉덩이를 뗄 수가 없었다. 이 자리에서 물러난다면 그것이야말로 공진희가 사문(死門)으로 이르는 길이었기 때문이었다.
무명이 자리에서 쉽게 일어나지 못하자 이소호칸의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마진츠가 슬며시 입술을 열었다.
“아버지, 그래도 아버지가 아끼는 제자 무명의 생각입니다. 이야기는 들어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아버지께서 꿈꾸던 인간과의 공동생활을 위해서는 무명의 존재가 필수불가결이지 않습니까. 그런 무명의 의견을 묵살하신다면 그 공동의 생활을 이룩하는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라 봅니다.”
마진츠가 아버지인 이소호칸에게 의견을 피력했다. 이소호칸은 입을 굳게 다물고 눈을 감고는 생각에 잠겼다.
무명은 고개를 들어 마진츠를 보며 눈빛으로 감사를 표했다. 마진츠는 부드럽게 그의 감사를 받았다.
수에르는 일이 이렇게 되자 나갈지 다시 앉을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멍하니 서있었다.
“좋다, 마진츠. 네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잘 알겠다. 쉽게 나의 생각을 번복하지는 않겠으나 무명의 의견을 들어보는 것은 너나 우리에게 해가 될 것은 없을 것이다. 좋다. 무명아, 말해 보아라.”
이소호칸이 잠시간의 정적을 깨고 입을 열었을 때 무명은 속으로 안도했다.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여기서 물러나게 되는 건 면하게 된 것이었다.
수에르는 무명의 발언이 허락되자 다시 자리에 앉았다. 무명은 혀로 입술을 적시며 말을 꺼낼 준비를 했다.
“어르신, 제가 여기에서 어르신의 가르침을 받은 지 짧다면 짧고 길면 긴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렇게 이곳에서 인간의 생활을 겪어보면서 어르신께 인간을 다루기 위한 몇 가지 방법을 말씀드렸고, 그중 어르신의 마음을 흔들어 저희의 편의가 개선된 부분이 있습니다.”
무명이 말하자 이소호칸은 그간 무명이 자신에게 건의했던 몇몇 이야기들을 떠올리며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무명의 말에 따라 인간에게 조금이지만 고기를 허용한 것도, 인간이 조금 더 일을 융통성 있게 하기 위해 할당량을 채운다면 휴식 시간을 늘려준 것도 무명이 자신에게 이야기해 주어 바뀌게 된 것들이었다.
범족의 입장에서는 아주 소소한 것이었지만 그로 인해 인간들이 얻게 된 편의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어르신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에 저희 인간은 더욱 좋은 성과를 내었다고 생각합니다.”
무명의 말은 이소호칸을 긍정적으로 만들었다. 턱을 괴고 있던 이소호칸은 고개를 계속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인간에게 당근을 주어 나태해졌다면 이소호칸도 이렇게 무명의 말에 설득당하지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인간에게 적절한 당근을 주니 더욱 열심히 일하여 성과를 내었다. 무명의 말은 타당한 것이었다.
“어르신께서 생각하신 인간과 범족의 공동생활의 취지는 바로 저희 인간을 통해 범족이 더 활력 있고, 풍요로운 삶을 살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어르신께서 생각하신 대로 동쪽 지파는 그 어떤 다른 지파에 비해 인간으로 인해 삶이 풍족해졌습니다.”
무명은 말라가는 입술을 혀로 다시 핥았다. 무명은 말하면서 계속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지금까지 무명이 살아오면서 이토록 절박하게 생각한 때가 없었다.
대족장을 설득해야 한다는 긴장감과 압박감이 가득 몰려와 눈앞을 흐리게 만들었지만, 무명은 더욱 초롱초롱하게 눈을 뜨며 마음을 곧게 잡았다. 이소호칸의 마음을 확실히 움직일 만한 문구와 말들을 계속 머릿속에서 찾았다.
“어르신께서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을 잘 알고 계십니다. 다른 지파에서는 저희를 돼지처럼 가축으로 부리지만, 오직 어르신만은 생각을 달리하여 이 풍족함을 얻으셨습니다. 저희를 가축으로 쓰지 않고 일꾼으로 부리시는 게 더 생산적인 것을 선견지명으로 알고 계신 것입니다.”
무명은 절박했지만 섣불리 주제를 꺼낼 수는 없었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화두를 옮기는 것이 선행되어야 했다. 무명은 계속 머리를 굴렸다.
“수에르 형님에게 본디 축제에 인간의 고기가 쓰이는 것은 당연하다 들었습니다. 범족은 그 무엇보다 인간의 고기를 좋아하며 최상급으로 친다고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르신께서는 인간의 잠재력을 잘 알고 계시어 단 한 명의 인간도 고기[肉]로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유수같이 쏟아지는 무명의 말에 듣는 수에르도 마진츠도 이소호칸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무명은 열 살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현명했고, 재치 있었다.
무명이 조숙하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던 그들이었지만 그의 조리 있는 말에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또한 무명은 인간의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유창하게 범어를 구사하고 있었다. 범족의 열 살배기 아이들은 결코 무명만큼 말을 할 수 없었다. 인간으로 보나 범족으로 보나 특출한 아이임은 틀림없었다.
“어르신, 지금 인간을 고기로 쓴다는 것은 이제까지 어르신께서 지켜온 결심을 저버리는 행위라 생각되옵니다. 부디 재고(再考)하시어 인간을 굽어 살펴주소서.”
무명의 말은 일단락되었다. 그 자리에서 아무도 섣불리 이야기를 꺼내는 이는 없었다.
무명은 등줄기에 땀이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이어지는 정적에 긴장감이 풀리면서 땀이 스멀스멀 피부를 통해 기어 나오는 듯했다.
“대족장님, 미천하나마 제 생각도 무명과 같습니다. 부디 가지고 계시던 초심을 굳건히 하시고, 인간을 고기로 쓰는 것을 철회해 주시길 간곡히 바랍니다. 일전 저도 인간에 관해선 관심을 가지지 않았으나 무명을 통해 그들의 생활을 들여다볼 수 있었고, 대족장님의 혜안(慧眼)으로 저희가 다른 지파에 비해 풍족히 살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인간은 먹는 것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운 것이 많습니다.”
지금까지 조용히 관망하던 수에르가 조심스럽게 입술을 들어 이야기했다.
이소호칸은 수에르의 말이 끝날 때까지도 고요히 생각에 잠겨있었다.
“아버지, 둘의 생각도 어긋난 점이 없다 사료됩니다. 지금 우리가 우리 지파만의 축제를 열 수 있는 것도 모두 인간 덕분입니다. 다른 지파에서는 감히 이런 축제를 할 엄두를 못 낼 것입니다. 축제를 열 수 있는 것도 풍요롭기 때문이지 않습니까. 인간이 지반을 다져 주었기에 다른 지파에서는 먹고살기에도 빠듯하지만 우리 지파만은 곡식으로 술을 넉넉히 빚을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마진츠는 잠깐 말을 끊고 비어있는 찻잔에 주전자의 목을 옮겨 잔을 채웠다. 간단한 행동이었지만 풍겨오는 국화차의 은은한 향기로 분위기가 한결 전환되는 듯했다.
“그런 인간을 배려해 주는 것이 제 생각에도 좋다 여겨집니다. 앞으로도 계속 그들과 생활을 같이 이룰 터인데 다른 지파는 몰라도 저희 동쪽 지파에서는 인간에 대한 좋은 인식을 가지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진츠가 말을 마치자 이소호칸은 더욱 마음이 흔들리는 듯 양 미간을 오므렸다.
무명은 어느 정도 희망을 가졌다. 자신의 말에 마진츠마저 힘을 실어주니 공진희를 살릴 수 있다는 것이 점점 현실화되고 있다고 느꼈다.
“나도 오랫동안 생각해 오면서 너희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소녀에게 자비를 베풀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바로 그녀가 임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랜 침묵 끝에 이소호칸이 말을 이었다. 무명은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이소호칸을 완전히 설득시킬 수 없던 것이었다.
“너희도 알고 있겠지만 그녀는 만삭의 몸이다. 나는 분명 인간의 남자와 여자가 연을 잇지 못하도록 장벽을 두었다. 나는 인간과 같이 공존하며 생활하는 것에 대해서는 찬성하나 그들이 자식을 낳고 기르는 것에는 찬성하지 않는다. 자식을 가짐으로써 일의 효율이 떨어지고 딴생각을 품게 된다. 자고로 생물이란 무언가를 소유하면 또 다른 것을 소유하고 싶어지고 소유한 것을 지키고 싶어지는 법이다. 이미 전례도 있지 않느냐.”
무명은 일전 이소호칸이 들려준 이야기를 기억했다. 자식을 가진 인간들이 반란하고 여기를 벗어나려 했다는 이야기였다. 지킬 것이 있는 자들은 더 나은 조건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이러한 전례가 있었기 때문에 남성과 여성을 서로 격리시킨 것이었다.
무명은 물러나지 않았다.
“어르신, 전례는 다시 고치면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자식을 낳아 기르게 되면 더 이상 인간의 국가에 쳐들어가 납치할 번거로움도 없어질 것입니다. 적절한 규제를 한다면 인간들은 그것을 따를 것입니다. 인력을 더욱 효율적으로 사용하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무명은 진정을 다해 말했다. 하지만 이소호칸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인간의 세를 불리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수가 아니다. 납치를 통해서 우리들은 충분히 인력을 감당할 수 있다 생각한다. 굳이 우리 내에서 인간의 세를 불릴 필요는 없다.”
이소호칸이 딱 끊어버리자 수에르나 마진츠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무명은 포기할 수 없었다. 그에겐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어르신, 규제를 한다면…….”
무명이 억지로 말을 꺼내 이으려 하자 이소호칸이 중간을 자르고 으르렁대며 말했다.
“더 이상 말을 꺼내지 말라. 내가 내린 선택에 다른 이견을 낼 거라면 새로운 의견을 말해라.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지 마라. 또 똑같은 이야기를 번복하려 한다면 나는 아무리 무명 너라도 참고 들어줄 수 없다. 이 일에 너는 네 목숨을 걸 셈이냐? 어차피 너와는 상관없는 타인이 아니냐. 네가 저 소녀를 위해서 나에게 이리 매달릴 이유가 있는 것이냐?”
무명은 이소호칸의 물음에 입을 닫았다. 여기서 더 깊게 들어가면 수에르에게 폐를 끼칠지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소호칸의 관점에서는 무명과 공진희는 엄연한 타인. 타인에게 목숨을 건다는 것은 상식상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무명은 마지막의 마지막이라도 붙잡아야 했다.
“인간 전체를 위해서 말씀드리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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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07 출판 본으로 본문을 수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