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meless martial arts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104
103화 결사대(5)
xx
피슛.
도의 날이 스치고 간 어깨에서 피가 튀었다.
그제야 느껴지는 통증.
백중천의 섬광검만큼…… 아니, 더욱 빠를지도 모르는 일격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뚫고 들어가야 뭐라도 하지.’
도무지 거리를 잡을 엄두가 안 났다.
물론 방법은 있다.
상체를 가린 용린갑을 믿고 몸부터 들이밀면 어떻게든 될 테니까.
문제는.
‘팔다리가 잘릴지도 모른다는 거지.’
앞으로 인생의 질을 생각했을 때, 의족, 의수는커녕 봉합 수술도 없는 이곳에서 사지 절단은 절대 안 될 말이다.
그렇기에 내 선택은 간단했다.
“흡!”
쑤엉! 파지직.
온 힘을 다해 전룡기를 내뿜는 것.
덕분에 노인의 도가 속절없이 튕겨 나갔다.
“제법이구나!”
물론, 계속 이렇게 버틸 수는 없다.
아무리 전왕류가 효율이 높다 해도 호신강기는 기본적으로 막대한 내공을 소모한다.
즉, 언제가 되었든 내공이 떨어지는 순간이 온다는 뜻이고 그 전에 무슨 수를 내야 했다.
“호오, 그 나이에 그토록 고절한 호신강기라……. 네 피를 바치면 혈신께서 좋아하시겠구나.”
“싸우기 전에 하나만 물읍시다.”
“말하거라.”
“아까부터 계속 혈신 혈신 하는데 그게 대체 누구요?”
“천하 만물의 죽음을 관장하시는 위대한 신이시다.”
“본 적 있소?”
질문을 들은 노인은 무슨 개소리를 하냐는 듯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실제로 본 적 있냐고 물었소. 아니면, 목소리라도 들어봤다든지.”
“미친놈, 위대한 신께서 한낱 피조물 앞에 모습을 드러낼 거 같으냐?”
“그럼 용과 기린, 여친처럼 상상 속에서나 존재하는 것이 아니오?”
“흥, 네 말대로라면 숭산의 중놈들이 믿는 부처는 무엇이더냐? 놈들 역시 눈으로 본 적이 없을 터인데.”
“부처야 석가모니라는 엄연한 실존 인물이 있지 않소?”
“우리 혈교도 태성혈정이라는 위대한 선지자가 있다.”
“응? 전혀 못 들어 본 이름인데? 방금 지어낸 것이 아니오?”
“죽어서 혈계에 가면 알게 될 것이다.”
“나이 먹고 구라 치면 안 쪽팔리오?”
“이노옴!”
대로한 노인이 도를 움직였고.
“흡!”
나는 노인과 대화하는 동안 몰래 준비해 둔 정정당당한 현철 못을 빠르게 날렸다.
전왕기를 있는 대로 때려 넣어서 말이다.
검은색 강기에 휩싸인 현철 못이 날아가자 노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
후우웅!
그가 기를 잔뜩 실은 도를 휘둘렀지만, 검은색 강기에 둘러싸인 현철 못은 끄떡없었다.
파직.
오히려 노인의 공격을 튕겨 내기까지 했다.
생각보다 강한 위력에 그가 대경하며 쌍도를 휘두르자.
“이 노옴!”
도기와 도강이 주위를 가득 채우기 시작했고.
파직. 콰아앙!
강기와 현철 못이 부딪치자 커다란 충격파가 일어났다.
“컥!”
“피, 피해라!”
후드득.
충격파가 주위로 퍼져 나가자, 미처 피하지 못한 십마련도들의 몸이 갈라지며 피 웅덩이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직감했다.
“빌어먹을.”
전심전력을 쏟아부은 일격이었음에도 노인이 죽지 않았다고.
어디 한 군데 잘리기라도 했으면 그나마 해볼 만하겠지만…….
휘오오.
먼지가 걷히고 모습이 드러난 노인은 약간 지친 것을 제외하고 너무나도 멀쩡했다.
“흐으……. 다 했느냐?”
“와……. 이게 막히네…….”
“혈신의 종에게 불가능한 것은 없다.”
찌걱. 찌걱.
노인이 찐득한 핏덩이를 밟으며 걸어왔다.
“지랄 염병하고 있네.”
“내 자비를 베풀어 편안히 보내 줄 터인즉. 혈신님을 만난다면 꼭 죄를 빌거라.”
어느새 붉게 달아오른 쌍도를 든 노인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노인과 대화하며 준비한 건 현철 못만이 아니었다.
전음으로 응원군을 섭외해 놨던 것이다.
“당주니이임!”
내가 목청을 쥐어짜자.
“……?”
노인의 눈에 의구심이 어렸고.
후우웅! 퍽.
한 줄기 검강이 벼락처럼 날아와 노인의 머리를 꿰뚫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노인의 머리.
나는 머리 잃은 시체를 보며 외쳤다.
“당주님! 나이스 샷!”
곧이어 엄지를 치켜들자 멀리서 지휘를 하고 있던 묵룡당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일검(射日劍) 후예사일.
신화 속 후예가 해를 쏘아 떨어뜨렸다는 전설상의 신공절학이 노인의 머리를 터뜨린 것이다.
이제 남은 건 조무래기들 뿐.
“싸움은 역시 다구리지. 안 그래?”
히죽 웃으니, 나와 노인의 시체를 번갈아 바라보던 십마련도들의 얼굴이 시퍼레졌다.
* * *
내가 노인을 처지하고 청룡당이 혈종의 교도들을 해치우자 싸움은 일방적으로 흘러갔다.
수비하기에 유리한 좁은 지형, 개개인의 강력한 무위,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나의 완벽한 작전.
지려야 질 수가 없는 싸움이 아니겠는가.
덕분에 구룡성의 무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중턱의 공터를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십마련 원정대에 커다란 피해를 준 것은 물론이고 놈들의 사기를 크게 꺾은 것이다.
하지만, 누가 마구니들 아니랄까 봐 이런 상황에서도 놈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인력을 갈아 넣어 길을 뚫으려 한 것이다.
물론, 놈들 역시 생각이라는 걸 할 수 있는 인간이다 보니 아무나 갈아 넣지는 않았다.
“고수다!”
후방에 대기하고 있던 고수들을 투입한 것이다.
하지만, 머릿수는 딸려도 고수들 개개인의 경지는 우리 쪽이 압도적으로 위였다.
“가십시다.”
“좋지요.”
“요새 것들에게 늙은 생강의 맛을 보여 줘야겠습니다.”
마찬가지로 후방에 있던 우리 쪽 노고수들이 차례로 나섰다.
그렇게 노고수들이 전장을 휩쓸며 십마련도들의 고수와 부딪쳤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결과가 나왔다.
완승.
경험 많은 노고수들이 십마련의 고수들을 완전히 압도했던 것이다.
단순히 무공이 강해서가 아니다.
모두가 하나의 무공만을 익히는 명문정파의 특성을 살려 완벽한 합격술을 펼쳤기 때문이다.
1+1가 2.5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서걱!
묵룡당주 인현진인의 검에 마지막 한 놈의 머리가 떨어지는 것을 끝으로 놈들이 물러나기 시작했다.
“아직 끝난 것이 아니오! 언제 놈들이 달려들지 모르니 각 당은 지금 즉시 인원을 파악하고 전열을 정비하시오!”
인현진인의 외침에 각 당의 어른이 나서서 자파 제자들을 살폈다.
사망 셋, 부상 일곱.
단 열 명의 사상자만이 발생한 대승이었다.
하지만, 인현진인의 말처럼 전쟁은 끝난 것이 아니다.
아직 피날레가 남았으니까.
* * *
적일, 적이, 적삼 형제가 붉은색 잔상만을 남기며 점창산 초입을 뛰어다녔다.
적영신보(赤影身步).
극성에 달하면 붉은색 그림자만이 겨우 보인다는 절정의 보법.
당연히 내공 소모가 막대했지만, 이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없다. 더욱 빨리 움직여라.]목숨까지 불태울 각오로 달릴 뿐이었다.
이윽고, 적들의 후방에 다다르자 적일이 모두에게 지시했다.
[여기서부턴 셋으로 갈라져 준비한다. 늦어도 세 시진 뒤 다시 여기로 모일 수 있도록.]끄덕.
열다섯 적혈대와 적일의 동생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렇게 세 시진 뒤.
모든 준비를 마친 그들 앞에 적일이 나타났다.
[천지살은?]그의 물음에 적혈대주가 깊이 가라앉은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해 놨습니다.] [신호를 주면 바로 펼쳐라.] [예, 소주.] [적들이 내려올 때까지 잠시 휴식을 취한다. 요상단을 먹고 내공을 보충해라.]적일이 작은 주머니를 꺼내 환단을 하나씩 나눠 줬다.
미래의 췌서이자, 자신의 매제가 될 진무전이 챙겨 준 것이다.
생긴 것은 거무튀튀하고 냄새가 고약했지만, 효과만 뛰어나면 그딴 것이 대수랴.
해 떨어진 사막에서 전갈을 산 채로 씹어먹던 때와 비교하면 충분히 먹을 만했다.
적일은 요상단을 한입에 털어 넣자마자 깨달았다.
가문 비전으로 내려오는 요상단보다 훨씬 뛰어난 물건이라고.
‘이게 무슨!’
역시,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드는 사내다.
그렇게 내공을 회복한 지 한 시진.
어느덧 해가 지고 달이 떠오를 즈음, 적일의 기감에 엄청난 수의 무인이 느껴졌다.
필시, 전투에서 패한 십마련 놈들이 내려오는 것이리라.
[준비한다.]그의 지시에 적룡당의 모두가 기척을 숨겼다.
긴장감 속에서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마침내 십마련의 무리들이 목표 지점에 다다랐을 때였다.
[지금!]적일의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적혈대주가 손을 당겼다. 얇디얇은 천잠사 가닥들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그리고.
스걱.
아무것도 모른 채 그 위를 지나던 수십 십마련도의 몸이 수십, 수백 갈래로 갈라졌다.
“함정이다!”
후욱 풍겨 오는 피 내음이 산 근방을 가득 채웠다.
십마련이 혼비백산한 건 당연했다.
무슨 함정인지도 모른 채 수십의 동료들을 잃어버렸으니까.
적일은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낮이라면 모를까 밤이라면 보이지 않을 터.’
십마련도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안력을 집중해도 보이지 않는 실.
검기에도 끊어지지 않는 실.
적룡당의 보물인 천잠사를 삼 년에 걸쳐 가공해 만드는 천살사.
그것으로 펼치는 천지살은 적룡당이 자랑하는 비기 중의 비기였다.
이제 십마련이 취할 수 있는 행동은 몇 되지 않았다.
하나는 초절정 고수들을 앞세워 강기로 천지살을 끊어 내는 것.
하지만 아무리 십마련이라 해도 그런 고수들은 숫자가 많지 않았고, 그마저도 앞선 전투에서 힘을 빼 지쳤거나 아예 죽었을 터였다.
그렇다면 남은 방책은 하나.
“모두 산개하여 산을 빠져나간다!”
길을 버리고 사방으로 흩어져 내려가는 것뿐이다.
그리고 그건 적일이 바라는 바였다.
씨익.
적일이 입가에 사나운 미소를 걸고 전음을 흘렸다.
[놈들에게 소살검의 매운맛을 보여 주도록.]그의 지시에 천지살을 펼치는 두 명의 적혈대원을 제외한 나머지가 사방으로 산개했다.
적일도 그들과 함께 움직여 자리를 잡았다.
“후우…….”
양손에 소살검을 움켜쥐고, 적일은 무전에게 들었던 말을 회상했다.
‘제가 장담하건대 해가 지면 천살소검 앞에서 살아남을 사람이 없을 겁니다.’
단순히 비무를 보는 것만으로 천살소검의 진면모를 알아차리다니…….
참으로 천재가 아니던가.
적일이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 * *
적룡당의 살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지살(地殺)과 인살(人殺).
지살은 함정을 뜻하고 인살은 무공을 뜻한다.
그 말인즉슨.
푸푸푹. 푹.
“끄아악!”
지금 사방에서 들리는 소리는 함정을 밟은 십마련도의 비명이라는 뜻이다.
적일, 적이, 적삼 형제들을 비롯하여 적룡당의 모두는 너무나도 능숙하게 그런 적들의 혼란 속으로 잠입하여.
“누, 누구?”
“저승사자.”
푸확!
적들의 수급을 취했다.
“저기다!”
그때마다 그들을 발견한 십마련도들이 소리를 질러 댔지만.
펑!
적혈대원들은 준비해 둔 나무를 쓰러뜨리거나 미리 파 둔 땅굴을 통해 몸을 숨기는 등, 너무나도 쉽게 포위를 빠져나갔다.
귀신같은 모습에 십마련도들이 아연실색했다.
물론, 그들이라고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이따위 잔재주가 통할 것 같으냐?!”
호신기를 끌어올리며 날아오는 화살을 막아 내거나.
“흥! 소용없다!”
발을 잡아끄는 밧줄을 순식간에 잘라 버리는 고수가 있던 것이다.
심지어.
“큭.”
“감히, 내 앞에서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았나?”
몇몇은 적혈대원을 공격하여 곤경에 몰아넣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적일이 앞으로 나섰다.
천살소검(天殺小劍).
하늘마저 죽인다는 천하제일 살공이 십마련 고수들의 이마에 작은 구멍을 냈다.
소름 끼치도록 정밀한 검법.
적룡당주의 실력과 비교하여도 큰 손색이 없었다.
그 뒤로도 적일은 미친 듯이 움직였다.
마치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증명하려는 듯이 말이다.
그러기를 반 시진.
깔아 둔 함정이 바닥나고 적혈대원들의 체력이 떨어질 즈음.
“형 왔다!”
저 위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훗.”
웃음이라곤 모르고 살던 적일이 처음으로 순수하게 웃은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