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meless martial arts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147
145화 구룡병창
그날의 대화 이후에 외형적으로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그에게 답을 주지 못했고, 북궁백 역시 내게 답을 요구하지 않았으니까.
나는 계속해서 외당의 조장으로 남기로 했고 그는 외당주로 남았다.
다만, 이거 하나만큼은 확실히 했다.
‘앞으로 사부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징그럽다.’
‘싫으면 말든가요.’
‘……크흠, 정 소원이라면 허락하지.’
‘절 받으십쇼. 싸부! 평생 적당히 모시겠습니다!’
‘…….’
정식으로 사제지간을 맺은 것이다.
비록 내 의지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그가 내게 전왕류라는 신공절학을 내려 준 건 확실하니까.
그리고 그 전왕류가 아니었다면 한중상련이란 협동조합을 소유하기는커녕, 여태 살아남을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남천궁과의 전쟁에서 죽거나 병신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즉, 지금 내가 가진 모든 건 전왕류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은혜를 입었는데, 명색이 동방예의지국에서 살다 온 내가 어찌 입을 닦겠는가.
당연히 사제지간을 맺어 북궁백을 모셔야지.
‘흐흐흐, 이제 나도 뒷배가 생겼다 이거지. 그것도 십대고수씩이나 되는 뒷배가.’
뭐, 그 외에도 나름대로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만족하는 북궁백의 얼굴을 보니 마음은 편했다.
그렇게 신화경의 고수를 사부로 모신 다음 날.
“에잉…….”
출근하여 본 외당의 모습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쯧쯧.”
명색이 십수천패, 아니 천지투왕(天地鬪王)의 직속 제자인 내가 도착했는데 아무도 마중 나오지 않는다니.
‘무림의 기강이 엉망이구나!’
아무래도 조만간 하루 날 잡아서 푸닥거리 한번 해야지 싶다.
“우리 일조장님께서 웬일로 이렇게 일찍 출근하셨을까?”
일조각으로 가던 중 외당의 홍일점 십오조장과 마주쳤다.
“오늘도 역시 아름다우시……. 아니지.”
‘이게 아니야.’
그간은 내가 상급자였어도 선배 대접을 해 주느라 공대를 했지만, 더는 그래서는 안된다.
철저하게 상급자로서의 위엄을 보여 줘야 흔들리는 기강 앞에서 샴푸 향을 느끼게 해 줄 수 있다.
“커험! 오랜만이구려. 십오조장.”
“어머? 말투가 어른스러워졌네요?”
“아무래도 사회적 위치가 위치인지라…….”
“아이구, 그랬써용? 우리 귀여운 일조장님. 호호호.”
그녀가 밝게 웃고는 몸을 돌려 걸어갔다.
나도 모르게 탄탄한 둔부에 시선이 꽂혔다.
‘헉!’
잠시 경치를 감상하다 번쩍 정신을 차렸다.
‘이래서야 외당의 기강을 바로잡을 수가 없지 않은가!’
이렇게 휘둘려서야 윗사람으로서의 위엄을 어찌 세울까.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일조각으로 향했다.
“구룡!”
문을 열자 보이는 우제준의 모습.
공적으론 일조의 부조장에, 나보다 칠 년이나 선배임에도 그는 항상 내게 깍듯했다.
끄덕끄덕.
흡족한 마음이 절로 들었다.
‘그렇지. 이게 바로 옳게 된 조직이지.’
나는 우제준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그래, 별일 없었나?”
“예, 조장님 덕분에 무탈하게 근무 중입니다.”
“허허, 이 사람도 참! 다 자네가 열심히 한 덕이지 무슨 내 덕이라고. 허허허허.”
“과찬이십니다.”
겸손까지 갖추고 있다니.
이 시대의 참된 일꾼이 바로 여기 있었다.
흡족한 마음으로 자리에 앉으니 그가 서류 몇 장을 건네줬다.
“응? 왜 이것뿐이야? 평소의 반의반도 안 돼 보이는데?”
“조장님께서 ‘말씀도 없이 장기 출장’을 가셔서 제가 미리 처리했습니다.”
“……그, 그렇구만.”
“확인하고 싶으시면 다시 올리겠습니다.”
“아니야. 아니야. 우리 우 부조장이 어련히 잘해 놨을까. 전혀 걱정 안 하니 앞으로도 알아서 해 주게.”
본격적인 업무는 삼 분도 안 되어 끝났다.
“술 먹고 난동을 부리다 옆집 양 씨를 폭행한 오 씨는 태형 두 대. 돈을 빼앗으려고 살인을 저지른 육가는 내일 아침 참형을 집행해.”
“알겠습니다.”
애초에 나 같은 천재에겐 너무나도 쉬운 업무였다.
‘그냥 집에 갈까…….’
일이 쌓여 있을 거라 생각해 일찍 왔건만, 할 게 아무것도 없을 줄은 몰랐다.
그렇게 자리에서 엉덩이를 떼려던 찰나.
머어엉.
전 십칠조 패거리 네 명 역시 하는 일 없이 멍하니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저놈들 왜 저래?”
“아, 안 그래도 설명해 드리려던 참이었습니다.”
그거 고개를 숙여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조원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뭐? 아니 왜? 쟤들이 모난 구석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게, 아무래도 출신이 출신이다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으음…….”
그 말을 들으니 또 그럴 만하다 싶었다.
당양강과 당진형, 당팔은 녹룡당 방계 출신으로 절정에 이른 무공을 자랑하는 놈들이고, 유소평은 군사부주인 문상의 아들.
게다가 이 넷은 한때 현 성주의 장손, 차기 구룡성주가 될 것이 확실했던 자의 호위단이기도 했다.
아무래도 정체가 밝혀진 이상, 평조원 입장에선 어울리기가 조금 애매할 수밖에 없다.
싫어서가 아니라 부담스러워서 말이다.
‘나만큼 매력적인 사람이 아니고서야, 고수가 조직에 녹아들기는 힘들지.’
이어지는 우제준의 말에서 나는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었다.
“거기다 최근에는 신입이 많이 들어와 일손이 충분하다 보니, 저 네 사람이 다른 이들과 함께 출동하는 횟수도 매우 줄었습니다.”
“으음……. 그건 문제가 좀 있군. 공평하게 출동 순서가 돌아가도록 제도적으로 해결하게.”
“알겠습니다.”
이건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외당이 무슨 초등학교도 아니고, 다 같이 사이좋게 지내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그저 전 십칠조원들이 잘 적응하길 바라는 수밖에.
‘에잉……. 뭐 하나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어.’
* * *
다음 날, 드디어 구룡병창에서 갑급 무구를 받는 날이었다.
나는 백일장을 떠나는 초글링과 같은 마음으로 구룡산을 향해 달렸다.
왜냐고?
구룡병창이 바로 구룡산 한가운데를 뚫어 만든 인공 동굴이었으니까.
‘굴삭기와 다이너마이트도 없는 세상에서 어떻게 뚫은 거지?’
보면 볼수록 미스터리 그 자체인 구조물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도착한 구룡병창.
고속도로 터널만 한 거대한 동굴 앞에 엄청나게 커다란 문이 서 있었다.
앞에서 잠시 서성이자 검녹색 무복을 입은 무인 하나가 어둠 속에서 불쑥 솟아올랐다.
성주 직속 무력 부대인 암독단이었다.
흑호단이 적들을 찌르는 날카로운 비수라면, 이들은 적들의 비수를 막아내는 두꺼운 방패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어서 오시오. 진 조장.”
“크흠, 저를 아시나 봅니다.”
“성의 녹을 먹는 무인으로서 투룡의 얼굴을 모를 리가 있겠소이까?”
성주 곁을 떠나지 않는 암독단이 내 얼굴을 알고 있다니.
SNS도 없는 무림 세계에서 말이다.
이런 걸 보면 나도 나름 셀럽의 반열에 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
잠시 뿌듯함을 즐기고 있자 그가 헛기침을 하며 손을 내밀었다.
“흠흠, 가지고 온 패를 주시겠소? 절차라는 게 있어서 말이오.”
그의 말에 품에서 ‘갑(甲)’ 자가 새겨져 있는 백금패를 꺼내어 건넸다.
일전 문상에게서 받은 입장패였다.
암독단의 무인이 아주 천천히 패를 살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구를 고를 시간은 한 시진이오. 시간이 지나면 절진이 발동되니 그 전에 나오셔야 하오. 만약 나오지 못한다면…….”
그가 짐짓 진지한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꿀꺽.
나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나오지 못하면, 뭐 굶어 죽게 되기라도 하는 건가?
“우리가 일을 두 번 해야 하오. 삼 일이나 걸리는 힘든 일이니 꼭 지켜 주셨으면 좋겠소.”
“에이……”
허탈한 대답에 혀를 차며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커다란 문을 열었다.
“성주님께서 말씀하시길, 신병이기는 자신에게 어울리는 주인을 만나면 스스로 그를 부른다고 하셨소. 그 울림을 따라가면 진 조장과 가장 상성이 좋은 무구를 고를 수 있을 것이오.”
“……?”
갑자기 웬 조언이냐 싶어서 쳐다보니 그가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점창산에서 의형이 진 조장 덕분에 목숨을 구했소이다. 목숨값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나 당장 드릴 수 있는 건 이것뿐이라. 나머지는 차차 갚겠소이다.”
씨익.
쿵!
그가 싱긋 웃고는 문을 닫았다.
‘돈으로 갚아도 되는데…….’
그래도 꽝을 피하는 조언을 돈 한 푼 안 들이고 들었으니 개이득은 맞았던바, 나는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여기 머물 수 있는 시간은 한 시진이었다.
자칫하면 암독단 무인들이 번거로워질 수도 있으니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무구를 가지고 나가는 시간까지 계산한다면 결코 긴 시간은 아니었으니깐 말이다.
이어진 통로를 쭉 나아가자 각각 갑, 을, 병, 정이라고 이름이 새겨져 있는 문이 보였다.
문 한가운데 나 있는 구멍에 패를 집어넣으니 굉음을 내며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우르르.
스프링도 없는 세계에서 이런 자동문은 어떻게 구현했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어디 드워프라도 있는 거 아냐?’
뭐, 이건 나중에 따로 알아보기로 하자.
문을 지나 조금 걸으니 오백 평은 되어 보이는 커다란 내부와 그 안을 채운 푸른 안개가 보였다.
수십 개의 신병이기에서 뿜어져 나온 자연지기가 동굴을 가득 채운 것이다.
그리고 나는 가장 앞에 걸려 있는 엄청난 신병이기를 목격할 수 있었다.
‘이, 이건!’
태양 같은 존재감을 내뿜는 한 자루의 검.
‘제왕검이 여기에 있었다니!’
바로 천하 명검 중 제일로 뽑히는 창천제왕검이었다.
그것도 친절하게 이름표까지 붙은 채로 말이다.
‘음…….’
대단하긴 한데, 뭐랄까. 우리는 이런 대단한 보물도 가지고 있다고 방문자에게 자랑하는 느낌이었다.
나는 제왕검에서 바로 관심을 끄고 안쪽으로 이동했다.
홍당무 마켓에 올리지도 못하는데,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내가 검을 볼 이유는 없었으니까.
‘방어구는 S급 템인 용린갑이 있으니까 필요 없고…….’
나머지는 검이나 도, 창 같은 병기가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볼 만한 게 권갑 정도였는데…….
‘뭐 이렇게 없어?’
쉰 개가 넘는 신병이기 중 권갑은 단 두 개뿐이었고 심지어 하나는 상태가 메롱이었다.
‘천령권갑이라.’
먼저 상태가 괜찮은 권갑을 먼저 살폈다.
‘튼튼해 보이긴 하는데…….’
손에 착 감기는 착용감도 괜찮고, 기를 불어넣어 보니 상성도 나름대로 나쁘지 않았다.
그냥 이걸 들고 가도 좋은 선택이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성주님께서 말씀하시길, 신병이기는 자신에게 어울리는 주인을 만나면 스스로 그를 부른다고 하셨소. 그 울림을 따라가면 진 조장과 가장 상성이 좋은 무구를 고를 수 있을 것이오.’
암독단의 무인이 해 줬던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별다른 울림이 느껴지지 않는 이 권갑은 나와 완전한 상성을 이루지 않은 것이니까.
그렇기에 상태가 좋지 않은 다음 권갑을 살폈고.
‘에라이 썅!’
곧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무협지에서 나오는 클리셰처럼 주인을 찾은 무구가 공명음과 함께 빛을 내며 탈태환골을 하는 그런 그림을 상상했건만, 아무리 살펴봐도 너덜너덜한 권갑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이런 게 어떻게 갑급 병창에 있는 거지?’
뭔가 비밀은 있어 보였지만 확실한 건 내가 주인은 아니었다.
혹시나 다른 것이 있나 싶어 반 시진 가까이를 돌아다녀 본 결과.
‘그냥 천령권갑으로 골라 가야 하나…….’
나는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시불. 뭐 이래?”
그렇게 속 타는 심정을 욕으로 승화시켜 읊기 시작한 그때.
우웅……. 우웅. 우웅…….
스마트폰 진동이 울리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이건 누가 봐도 자기를 집어 가라는 듯한 울림이었으니까.
그리고.
“뭐야? 이건?”
울림의 진원지를 찾아낸 나는 어이없는 광경에 나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