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meless martial arts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148
146화 구룡병창(2)
“뱀?”
그랬다.
병창 구석에서 홀로 진동 춤을 추고 있던 것은 다름 아닌 뱀이었다.
정확히는 피리 소리에 반응하는 코브라처럼 움직이는 실뭉치.
실뭉치가 혼자 움직이는 것도 놀라웠지만, 내가 진정으로 놀란 이유는 따로 있었다.
우우웅.
가슴에서 느껴지는 진동.
“뭐야?”
바로 현철 못이 실뭉치와 비슷한 파동으로 공명을 하는 것이 아닌가.
“이거 왜 이래? 망가졌나?”
퍽퍽.
고장 났나 싶어 현철 못을 꺼내서 때려 봤지만 못은 계속 파동을 내뿜고 있었다.
그리고.
우우웅. 지이잉.
두 무구의 공명이 더욱 강력해지더니.
툭.
현철 못이 저절로 실뭉치 쪽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혹여나 이상한 일이 생길까 봐 못 끝에 묶은 천잠사를 당겨 봤지만.
촤롹. 툭.
이번에는 뱀처럼 움직이는 실뭉치가 날렵한 움직임으로 천잠사 가닥을 끊어 버렸다.
남편을 유혹한 첩의 귀싸대기를 때리는 본처의 손바닥처럼 표독스러운 움직임이었다.
놀라지 않을 수 없는 광경.
검기를 쓸 수 있는 경지에 오른 절정고수가 아니면 자를 수 없는 천잠사를 끊어 내다니!
그것도 사람 손이 닿지 않은 일개 실뭉치가.
그렇게 두 기물이 서로를 향해 달려가더니.
후우우웅.
거대한 공명음과 함께 하나로 합쳐졌다.
“헉!”
판타지 세계가 아닌 무림 세계에서 이건 너무한 설정이 아닌가.
피이잉.
심지어,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빛이 나기까지 했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정신을 차리고 재빨리 손을 뻗어 두 기물을 확인했다.
“이건?!”
놀라지 않을 수 없는 결과.
현철 못은 평소 못이라고 부르긴 했지만 실제로는 끝이 과하게 뭉툭한 바늘의 형상에 가까웠다.
그런 현철 못과 갑급 무구인 실뭉치가 하나로 합쳐져 실과 바늘, 즉 반짇고리 기본 세트가 완성된 것이다.
너무나도 신기한 마음에 넋 놓고 보고 있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맞다!”
그랬다.
시간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한 시진이 거의 끝나 가고 있었기에 남은 시간이 별로 없던바.
“이런 빌어먹을!”
나는 현철 못과 실뭉치를 분리하기 위해 양 끝을 잡아당겼다.
명색이 갑급 무구를 고르러 와서 이따위 실뭉치를 가져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이익!”
하지만, 미동도 하지 않는 반짇고리 세트.
후우웅. 지이잉.
심지어, 반항하는 것처럼 서로 공명하며 더욱 찰싹 달라붙었다.
‘그냥 폭사경을 때려 넣어?’
절레절레.
성질이 뻗쳐서 그냥 부숴 버릴까 하다가 곧 고개를 저었다.
괜히 다른 물건에 흠집이라도 나면 구룡성에서 천문학적인 손해 배상을 청구할 수도 있었으니까.
‘어쩌지?’
재빨리 머릿속 CPU를 돌려 본 결과, 내게 남은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얘네를 이대로 두고 천령권갑을 들고 나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냥 반짇고리 기본 세트를 받아들여 바느질할 때마다 써먹는 것.
당연히 전자를 선택하는 게 낫겠지만, 곧 심각한 문제를 깨달았다.
‘내 현철 못!’
천령권갑을 가져가려면 바로 내 개인 소장품인 현철 못을 두고 가야 한다는 거다.
그간 현철 못을 얼마나 많이 써먹었던가. 또 이놈 덕분에 얼마나 많은 위기를 넘겼고.
심지어 십마련과의 전쟁에선 이놈을 써서 혈종주를 처단하는 등, 승리의 주역으로 활약하기까지 했다.
‘너무 아까운데?’
그렇게 천령권갑과 현철 못의 가치를 비교하길 잠시.
댕 댕 댕.
한 시진이 끝나 간다는 종소리를 듣자마자 현철 못과 실뭉치를 들었다.
‘녹여서 새로 만드는 한이 있더라도 버리지 못하겠다.’
하나를 얻기 위해 하나를 두고 간다는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의 선택지를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에라이, 시불!”
재빨리 비천풍을 펼쳐 문 쪽을 향해 제비처럼 날아갔고.
“시간을 딱 맞추셨구려.”
얼마 지나지 않아 아까 조언을 건넸던 암독단의 무인을 만날 수 있었다.
“그래, 울림을 들어 제대로 된 무구를 만나셨소이까?”
방금의 조언에 생색을 내고 싶은지 그가 허허 웃으며 말했다.
“이런 썅!”
그리고 나는 그의 멱살을 잡았다.
* * *
“사조님.”
명상에 빠져 있던 정도맹의 맹주, 화산검선 영명이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눈을 부릅떴다.
“드르렁……. 응? 진궁이더냐?”
그를 부른 사람은 맹주의 사손이자 화산의 장문제자인 매화검절 진궁이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오거라.”
드르륵.
그가 문을 열고 들어오자 영명이 언제 명상에 빠져 있었냐는 듯 완벽한 차림새로 그를 맞았다.
‘오늘도 역시 한 점의 흐트러짐이 없으시군.’
진궁이 그에게 품은 존경심이 +1이 된 건 당연했다.
“무슨 일이더냐?”
“사조님께 가르침을 구하러 왔습니다.”
그의 말에 영명이 작은 웃음을 지었다.
평소 귀여운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고 뭐든지 혼자 척척 해내는 진궁이었다.
하지만, 그가 자신을 맹주라 하지 않고 사조라 부르며 찾아올 때는 정말 막히는 부분이 있었을 때뿐이다.
그 말인즉슨.
‘오랜만에 사조 노릇 좀 하겠군.’
사실 영명은 사문의 어른으로서 진궁에게 쌓인 게 많았다.
뭐라도 좀 가르치려 들면.
‘혼자 할 수 있습니다.’
답답해서 조언이라도 건네려 치면.
‘이런 벽쯤은 혼자 뛰어넘어야 진정한 무인이 될 수 있습니다.’
같은 개소리를 지껄이며 가르침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진궁이 가르침을 청하는 것은 정말 가뭄에 콩 나듯이 오는 드문 일이었다.
영명은 이런 때야말로 자신의 위대함을 진궁에게 보여 줄 때라고 마음을 먹고는, 진중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자하강기를 다루는 데 어려움이 있나 보구나. 그래, 지금 3성에 들었느냐? 4성?”
“5성에 들었습니다.”
“뭣이?! 벌써? 장강후랑추전랑 (長江後浪推前浪) 이라더니 틀린 말이 아니구나! 그래, 이 사조가 어떤 가르침을 주면 되겠느냐?”
“무공 때문이 아니라…….”
“무공이 아니다?”
“일전에 구룡성의 투룡에게 준 현철 바늘에 대해 여쭙고자 해서 왔습니다.”
“에잉…… 한참 전에 지나간 일을 뭐하러 꺼내느냐? 그날 네가 녀석을 봐주지만 않았어도 뇌전시(雷電矢)가 네 것이 되었을 텐데.”
“부끄럽지만, 봐준 것이 아니라 진짜 패배한 겁니다. 그나저나 그 바늘이 뇌전시가 맞았습니까?”
“맞다. 한데 그걸 어찌 묻는 게냐?”
“아, 보던 책에 그것과 비슷한 물건이 서술되어 있어 여쭤보려고 왔습니다. 혹시나 정도맹의 보물이 유출된 게 아닐지 우려되어서 말입니다.”
“보물이 맞긴 하지.”
“그럼 문제가 있는 게 아닙니까? 적당한 대가를 주고 다시 찾아오는 게…….”
“그런데 반쪽짜리다.”
“반쪽짜리라니, 그 무슨?!”
“네가 보던 서책에서는 뇌전시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더냐?”
“주인의 뜻에 따라 벼락같은 속도와 파괴력으로 적을 격살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제대로 설명되어 있구나. 그래, 네 생각엔 그게 어떻게 가능할 것 같으냐?”
“음…….”
어려운 질문에 진궁이 입을 닫았다.
현철 중에서도 귀하다는 만년현철이 쓰인 신병이기니까 가능할 법하다고만 여겼지, 그 원리까지는 생각지 않은 탓이다.
“실이 있다.”
“실이라면, 바늘과 실을 뜻할 때의 실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맞다. 뇌전시와 같은 만년현철로 만들어진 실. 그게 있어야지만 시전자의 의지에 따라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것이지.”
“그럼?”
“그래, 실이 없는 한 그저 엄청나게 튼튼한 못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기껏해야 암기로 써먹을 만한 정도지.”
“그래도 틀림없는 보물은 맞는 것 같습니다.”
“보물이면 뭐 하느냐? 쓸 데가 없는데. 네가 이겼다면 녹여서 네 검을 만들어 주려 했다.”
“아직 사조님께 받은 검도 제대로 길들이지 못했습니다. 한데 그래도 찾아와야 하는 게 아닌지…….”
“거참, 괜찮다니까 그러네. 그깟 현철 한 조각, 있거나 없거나 별 차이도 없다. 그나저나 검을 길들이고 있다고?”
“부끄럽지만, 최근에야 길들인다는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 그래야지. 그래야 이 영명의 사손답지. 그래, 이왕 온 거 검이나 부딪쳐 볼 테냐?”
“사조님께 누가 되지 않는다면……. 부탁드리겠습니다.”
“하하하하. 이거 참 기대되는구나.”
그렇게 정도맹주, 영명과 그의 사순 진궁이 밖으로 나섰다.
이미 두 사람의 머릿속에선 뇌전시에 대한 생각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 * *
집으로 돌아와 반짇고리 세트를 꺼냈다.
견우와 직녀처럼 딱 붙어 진동하던 방금과는 다르게 아무 움직임이 없었다.
“흐음…….”
이걸 어디가 써먹는다?
아무리 봐도 끝이 뭉툭해서 바느질에는 절대 못 써먹겠다 싶었다.
‘바느질하다가 옷감만 상하겠네.’
그렇다고 이대로 썩혀 둘 수도 없는 노릇.
손가락을 튕겨 못을 날려 봤다.
적들에게 쏘아 낼 때 썼던 그 방법이었다.
퍽.
평소와 똑같은 각도, 똑같은 힘으로 날아간 못이 벽에 박혔다.
‘하나도 달라진 게 없는 거 같은데…….’
그렇게 벽에 못을 꽂은 뒤 천잠사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실을 살폈다.
그러기를 잠시.
‘가만, 애초에 재질도 섬유가 아니잖아?’
저 멀리 천산 꼭대기에서 자생하는 누에가 생산하는 천잠사는 질기긴 했어도 결국은 섬유, 비단실일 뿐이었다.
하지만, 구룡병창에서 가져온 실에선 그런 느낌이 전혀 나지 않았다.
피이잉.
굳이 따진다면 피아노 줄을 얇게 늘여 놓은 듯한 느낌이랄까?
그 말인즉슨.
‘금속사?’
금속을 실처럼 얇게 제련하여 뽑아냈다는 뜻인데.
중세 중국과 엇비슷한 이 세계의 대장 기술을 생각했을 때 이건……. 말이 안 되는 정도는 아니고, 신기한 물건쯤 된다고 볼 수 있겠다.
‘하긴, 무림이니까 이런 거 하나 있어도 이상하지 않긴 하지.’
사람이 막 장풍을 쏘는 세상이니만큼 뭐가 있어도 이상하진 않지.
여하튼, 갑급 병창에 있을 정도의 기보는 확실한 것 같았다.
일말의 희망을 품고 반 시진에 걸쳐 실을 살폈지만, 그냥 신기한 재질로 만들어진 것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에라이, 시불! 내가 그러면 그렇지.”
아무 소득도 얻지 못하고 실망한 나는 실을 휙 잡아당겨 못을 회수했고.
“응?”
약간의 이질감을 느꼈다.
거의 힘을 주지 않았음에도 못이 회수되었기 때문이다.
“……탄력이 좋나?”
어쩌면, 갑급 무구라는 이름에 걸맞은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시 못을 날려 봤다.
퍽.
그리고 회수.
퍽.
회수.
퍽.
회수.
세 번에 걸친 실험으로 확신했다.
“이건……?”
이거, 뭔가 있다고.
곧장 밖으로 나와 실 끝에 기를 불어넣었다.
그러자.
지이잉.
실의 길이가 급속도로 길어졌다.
20미터가 약간 넘었던 실이 두 배 이상 길어진 것이다.
게다가.
“이, 이기어검?”
실에 매달린 현철 못이 공중에 둥둥 떠 있는 것이 아닌가.
듣도 보도 못한 기사에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혹시나 하고 못이 문에 박히는 상상을 하며 기를 불어 넣어 봤다.
그리고.
퍽.
못이 한 줄기 빛살처럼 날아가 대문에 꽂혔다.
“미, 미쳤다.”
거의 기를 소모하지 않았음에도 이런 속도라니.
마치, 백룡당의 일광검(日光劍)을 보는 듯했다.
입이 떠억 벌어지는 현상.
정신을 차리자마자 한 가지 궁금증이 더 떠올랐다.
“기를 많이 불어 넣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약간의 기만 넣어도 이 정도 속도를 보여 주는데, 기를 잔뜩 불어 넣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음속보다 더 빠른 속도로 적을 격살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건 즉, 내가 마음만 먹으면 그 누구도 죽일 수 있다는 뜻이 아닌가.
방심하고 있을 때 멀리서 날리기만 하면 되니까.
마음이 급해진 나는 연결된 기에 의지를 불어 넣어 못을 회수했다.
역시나 엄청난 속도로 날아와 내 손에 안착한 못.
“흡.”
나는 상당량의 기를 불어넣으며 못의 목적지를 떠올렸다.
그리고.
파지직. 콰아아아앙!
“…….”
샛노란 뇌전과 함께 81밀리 박격포가 터지는 듯한 소리가 나며 한 뼘 두께의 나무로 만들어진 대문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엄청나게 큰 폭발음 덕분에 주변에 있던 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뛰어나왔다.
“무슨 일이야!”
“적이다!”
“습격이다!”
당연히 이 소란은 내성까지 알려졌고.
댕댕댕-! 댕댕댕-!
외부의 습격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진 건 물론.
피융! 퍼퍼펑.
붉은색 신호탄이 하늘을 수놓았다.
“와…….”
이거 어쩌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