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meless martial arts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149
147화 개인 조직
얇고 길게 뻗은 염소수염과 깐깐해 보이는 입꼬리, 높고 좁은 코, 짙은 눈썹과 또렷한 눈매.
마치 ‘문사’라는 말을 사람으로 빚어낸 것 같은 남자.
바로 유소평의 아버지이자 구룡성의 CSO(최고전략책임자)인 문상이었다.
대기업의 최고 임원답게 무슨 일이 있어도 냉정함을 유지하던 그였으나, 지금만큼은 그도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바로 나를 향해서 말이다.
“정말 믿을 수가 없군! 명색이 외당의 간부라는 이가, 허가되지 않은 구역에서 폭발을 일으키다니! 자네 정말 미친 거 아닌가?”
“……죄송합니다.”
겨우 못 하나 날렸을 뿐인데 그렇게 큰 소리가 날 줄 알았나…….
하지만, 섣부른 변명은 화만 돋우는 법.
나는 최선을 다해 엄지발가락 끝에 시선을 고정했다.
이렇게 하면 앞에서 봤을 때는 반성하는 것처럼 보이거든.
“구룡성 전체에 을급 비상 명령이 내려졌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출동했는지는 알기나 하나? 또 신호탄은 얼마나 쏴 댔고!”
“…….”
그렇게 구박당하기를 한 식경.
“후우…….”
하고 싶은 말을 전부 쏟아냈는지 문상이 호흡을 조절하기 시작했다.
전생에 불 속성 효자로 이름 높았던 경험상, 이건 잔소리가 끝나가고 있는 증거였다.
아니나 다를까, 숨을 가다듬은 그가 이번 일이 터진 이유를 물었다.
“어찌 된 일인지 설명해 보게.”
바로 지금이 변명할 타이밍이었다.
여기서 잘해야 한다.
자칫 잘못하다간 감봉이라는 대참사가 일어날 수 있으니까.
“아, 그게 말입니다요…….”
나는 최대한 저자세를 취하며 이번 일이 벌어지게 된 과정을 천천히 그리고 아주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러니까, 갑급 무구를 시험하다가 생긴 일이라는 거군.”
“그렇습니다요! 저는 잘못이 없고 전부 요놈 때문입니다요!”
“알았네.”
문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최대한 빠르게 손바닥을 비비며 고개를 조아렸다.
“헤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요.”
“누가 이해해 준다 했나? 그냥 알았다고만 했지.”
뜬금없는 말에 의문 어린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자 문상이 무심하게 답했다.
“근신 삼 개월. 이것도 소평이를 봐서 많이 봐준 거네.”
근신이라면 월봉도 받지 못하며 바깥으로의 출입이 제한되는 중형.
“아닛!”
당황스러운 감정을 감출 수 없었다.
손바닥을 얼마나 비볐는데 근신이라니!
그간 내가 유소평을 얼마나 살뜰히 챙겼는데!
‘배, 배신이구나!’
솟아오르는 배신감에 곧장 따지고 들려던 찰나.
‘잠깐, 근신도 나쁘지는 않잖아?’
새로운 관점으로 사태를 보게 되었다.
물론, 삼 개월 치 월봉인 스물일곱 냥은 아깝다.
성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것도 답답하기 그지없는 일이고.
하지만 내게는 시간이 필요했다.
한중에서의 피로를 풀기 위한 나만의 시간 말이다.
뭐, 겸사겸사 나만의 일타 강사인 북궁 사부에게 무공을 점검받을 때도 되었고.
‘어차피, 휴가 한번 내려고 하고 있었는데.’
엄연히 따지면 내가 잘못한 건 맞았던바.
“크흠, 관대한 처분에 감사드립니다.”
나는 얌전히 그의 처분을 받아들였다.
“……반항할 줄 알았는데?”
“제가 잘못한 건 맞으니까요.”
“철이 들었나? 소평이가 얘기해 준 것과는 반응이 다르군.”
“……?”
의문을 표하려던 찰나, 문상이 몸을 숙이며 물었다.
“그나저나 갑급 병창에서 얻은 실과 자네가 가지고 있던 못이 합쳐졌다고?”
“아, 예. 자기들끼리 합쳐지더니 하나가 돼 버렸습니다.”
내 대답을 들은 그가 작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역시, 그게 뇌전시(雷電矢)였군.”
“뇌, 뇌전시요?”
“오백 년 전 천하제일을 다퉜던 무인의 유산이지.”
“이, 이게 그런 보물이란 말입니까?”
나는 황급히 손에 들린 반짇고리 세트를 내려다봤다.
“그 실만 이름이 없지 않았나?”
“맞습니다. 다른 건 전부 이름이 붙어 있는데, 이것만 안 붙어 있었습니다.”
“반쪽짜리여서 이름을 적어 넣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자네가 나머지 반쪽을 가지고 있었던 게지.”
우연도 이런 우연이 있나.
황당한 감정을 마구 느끼던 찰나 문상이 손뼉을 치며 말했다.
“축하하네. 천하에 둘도 없는 신병이기의 주인이 된 것을.”
“…….”
“하지만, 너무 좋아하진 말게. 무릇 보물이란, 그에 걸맞은 힘이 없으면 오히려 주인을 위험하게 하는 법이니 말이야.”
“명심하겠습니다.”
“그래도 그 형태와 특징을 알고 있는 자는 거의 없을 테니 이름만 바꾼다면 큰 문제는 없을 걸세.”
“아, 그거라면 방금 떠오른 이름이 있습니다.”
“호오……. 벌써? 그래, 무슨 이름으로 부를 생각인가?”
그가 굉장히 기대된다는 눈빛으로 말했고.
“전주시. 전주시라고 할 생각입니다.”
나는 뇌전시의 새로운 이름으로 매우 전통 있는 도시의 이름을 붙였다.
마침, 비빔밥이 먹고 싶었거든.
* * *
‘전주시(戰主矢), 전장의 주인이라……. 굉장히 광오한 이름이지만, 어울리는 이름이기도 하군.’
문상에게 뭔가 단단한 오해를 남겨 둔 채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전주시를, 정확히는 전주시를 올려둔 손바닥을 바라보며 걸었다.
‘드디어!’
똥손의 저주가 풀리는 건가?
그랬다.
나는 단 한 번의 트라이로 천하제일을 다툴 만한 SSS급 템을 뽑아 버린 것이다.
부르르르.
전율로 온몸이 떨려 오고,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간 똥손 탓에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단 말인가.
‘그걸 이제야 보상받다니…….’
피이이.
행복한 내 기분에 반응했는지 전주시가 손에서 날아올라 내 주변을 빙글빙글 돌았다.
시선이 가는 대로, 머리에 떠올리는 대로 움직이는 전주시를 보니 갑자기 아쉬움이 느껴졌다.
‘기를 많이 불어넣어도 속도가 빨라지는 건 아니란 말이지.’
전주시의 속도를 관장하는 건 기의 수발 속도였지 기의 양과는 관계가 없었다.
만약, 속도도 빨라졌다면 그 누구도 막지 못할 강력한 무기를 얻게 되는 건데 말이다.
적룡당을 제치고 천하제일 암살자……는 좀 그렇구나.
그래도 기를 많이 불어넣으면 그만큼 파괴력이 상승했으니 막 엄청나게 아쉬울 정도는 아니었다.
전주시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까지 기를 밀어 넣으면 온 힘을 다한 폭사경과 비슷한 파괴력이 나왔으니까.
‘그나저나, 도대체 원리가 뭐지?’
나는 새끼손가락에 묶어 놓은 전주시의 실을 보며 생각했다.
기를 불어넣어 의지대로 움직인다.
A 다음에 D가 나오고 바로 Z가 나오는 듯한 메커니즘이 아닌가.
여기에 무슨 뇌파 분석기가 달렸을 리도 없고.
다만 한 가지 짐작이 가는 구석은 있었다.
‘기의 의념화.’
기는 몸을 빠져나가면 흩어지려는 성질이 있다.
하지만 초절정에 이르면 기에 자신의 의념을 불어넣을 수 있게 되는데, 이걸 이용하여 흩어지려는 기를 뭉친 것이 바로 강기다.
그렇다면 전주시는 어떨까?
피이이.
내 의지를 100% 구현한다. 아주 완벽하게.
마치, 몸속을 휘도는 내공처럼.
그 말인즉슨.
전주시의 실은 혈도의 역할을, 못은 칼의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괜히 천하제일을 다툴 만한 신병이기라고 칭하는 게 아니구나.”
보면 볼수록 감탄만 나오는 기물, 아니 보물이었다.
이런 보물을 얻었으니 더욱 간수를 잘해야 하는 법.
나는 전주시를 조정해 언제든지 쏘아 낼 수 있도록 품 안에 고정했다.
그렇게 흐뭇한 마음을 품고 내가 찾은 곳은…… 바로.
집이다.
근신을 받은 주제에 첫날부터 싸돌아다닐 수는 없지 않겠는가.
적어도 내일 해는 보고 싸돌아다녀야지.
* * *
다음 날.
근신 기념으로 느지막이 일어난 나는 할 거 없으면 의원 일이나 도우라는 청소소의 핀잔을 가볍게 무시한 채 북궁백의 집으로 향했다.
정식으로 사제 관계도 맺었겠다, 스승 없던 설움을 날릴 수 있도록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빼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심지어, 그 스승이 바로 천하 십대고수 투왕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
하지만, 그와 첫 마디를 나누자마자 내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전왕류는 나보다 네가 더 잘 알지 않나?”
북궁백이 첫 수업부터 태업을 저지르는 것이 아닌가.
“아니, 그래도 같은 무맥이니만큼 어느 정도는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을 텐데…….”
“흑룡수는 전왕류에서 파생되어 나온 무공. 강의 지류는 본류만큼 깊을 수는 있어도 넓을 수는 없지.”
“그게 무슨 개소리……. 흡!”
파드득. 빠악!
우당탕.
순식간에 날아온 흑룡수를 간신히 막아 냈지만, 그 힘을 다 흩어 내지 못하고 십 미터 이상 날아갔다.
가까스로 고개를 들어 북궁백을 살피자 그가 작게 웃으며 말했다.
“이제부터 그 이유를 설명해 주마.”
“그냥 거기서 하시면 되지 왜 걸어오십니까?”
“나는 말로 가르치는 법 따위는 모른다.”
불안한 감정을 억누르며 물었다.
“……그러면요?”
“실전.”
“아니.”
이 양반은 뭐만 하면 이래.
잠시 후.
“많이 늘었군.”
“……과찬이십니다.”
“이제 알았나?”
“예, 약간이나마 알 것 같습니다.”
알기는 개뿔이. 아무것도 모르지만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겸손할 필요 없다. 네 나이를 생각하면 뛰어난 성취다. 어쩌면.”
개같이 두들겨 맞은 나를 앞에 두고 북궁백이 술잔을 기울이며 칭찬을 건넸다.
“장래의 천하제일인을 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뭐지? 딜 주고 힐 주는 건가?
“…….”
북궁백이 목소리를 깔고 말했다.
“월동월강, 월전월강(越動越強, 越戰越強). 움직여서 힘을 쌓고 싸워서 힘을 늘려라. 지금 당장 내가 해 줄 수 있는 조언이다.”
무협 영화에서 스승이 제자에게 무술을 가르칠 때 쓰는 말투였지만.
“아, 예. 그렇군요…….”
당장 도움이 되지 않는 조언에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굳이 따진다면 전교 1등에게 ‘어떻게 하면 공부를 잘할 수 있냐?’라고 물어봤을 때, 교과서를 집중적으로 파라는 대답을 들은 느낌이랄까?
“불만이 많은 표정이군.”
매우 많았지만, 재빨리 표정을 바꾸고 답했다.
“아, 아닙니다. 이런! 잔이 비었군요. 이 제자가 한 잔 올리겠습니다.”
“그러지.”
그렇게 몇 순배가 돌자 그가 갑자기 연거푸 헛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데, 체면상 먼저 말을 꺼내지 않고 있는 모양.
나는 제자 된 도리로 공손하게 말했다.
“뭘 이제 와서 체면을 다 차리십니까?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십쇼.”
“…….”
그가 싸늘한 눈초리로 나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네가 북궁가의 일원으로서 위엄을 보여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위엄이라뇨……?”
“답답하긴. 서파무라 불리며 천하를 뒤흔들었던 북궁이다. 당연히 위엄을 보여야 하는 것이 아닌가?”
아니, 북궁세가가 상장 폐지된 지가 언젠데…….
그래도 하늘 같은 스승의 말이니 나름 경청하는 자세로 물었다.
“뭘 어쩌라는 겁니까?”
“우선 강자의 모습을 갖추는 것이 좋겠군.”
“무공은 지금도 충분히…….”
그가 고개를 저으며 내 말을 끊었다.
“여기서 말한 강자란 스스로를 말하는 것이 아닌 무리의 강함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스승님께서는 언제나 혼자 다니시지 않습니까?”
“몸만 혼자일 뿐 뜻을 함께하는 동료는 천하 곳곳에 퍼져있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지.”
아닌데……. 백 퍼센트 아싸인데…….
전혀 믿기지 않았지만, 티 나게 부정할 수는 없는 노릇.
하물며 그 스승이 지옥에서 올라온 불 마왕이라면 더더욱 조심해야 했다.
“그, 그렇군요.”
“믿지 않는 눈치군.”
“아닙니다! 제자가 어찌 스승의 말을 부정하겠습니까?!”
“그렇다면 되었다.”
그가 작게 조소를 지으며 말했다.
“개인 조직을 꾸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혹은 작게나마 개파를 하는 것도 좋겠지.”
“성에서 허락을 해 줄까요?”
구룡성의 녹을 먹는 무인은 성주의 허락 없이는 법적으로 사조직을 결성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성주까지 끌어들이는 스케일 큰 제안에 반문하자 북궁백이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너는 된다.”
“왜요?”
“내가 있으니까.”
“아…….”
역시 무림은 백 있고 힘센 게 장땡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사람 보는 안목에 대해 알려주겠다. 무릇 아랫사람을 뽑는데……. 무공과……. 인품은 물론이고……. 그렇다면 네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길어지는 북궁백의 말을 들으며 나는 이곳에 온 걸 후회하기 시작했다.
‘무공 배우러 온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