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meless martial arts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174
172화 전왕문(戰王門)
개파를 결정한 뒤 나는 빠르게 움직였다.
서남부 전역에 구룡성이 용병대를 구한다는 방이 붙은 이상, 이제부턴 시간 싸움이었으니까.
가장 먼저 한 일은 관원들의 설득.
사실 이 부분에서 가장 걱정이 많았다.
구룡성의 무사가 꿈인 이들도 분명히 존재할 테니까.
하지만, 칠백여 관원 모두는 흔쾌히 내 뜻을 따르기로 했다.
“우리를 위해 그리 큰 결정을 하셨다니. 관주님, 아니 문주님의 은혜에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몇몇은 눈물을 흘리며 감사를 표할 정도였다.
“크흠, 알면 잘하도록. 이제부턴 전왕문의 문도가 될 테니 말이야.”
“…….”
아, 개파할 문파의 이름은 전왕문이라고 짓기로 했다.
북궁세가라고 하는 게 어떻겠냐는 의견에 북궁 사부는 고개를 저었다.
“새로운 술을 담는 부대다. 과거의 잔재를 이어 갈 필요는 없지.”
“……북궁세가라는 이름을 되살리고 싶은 게 아니었습니까?”
“네 놈이 북궁씨도 아닌데 무슨 북궁세가냐. 그저 정신만 이어받도록.”
“무슨 정신을 이어받아야 합니까?”
“후환을 남기지 않는 단호함, 당한 것의 열 배를 갚아 주는 지독함, 강해지려는 향상심.”
“…….”
“하지만, 더 중요한 건 따로 있다.”
“뭐, 천하통일의 야망 같은 겁니까?”
“애민심(愛民心).”
“……갑자기요?”
“근방 백 리 안에 굶어 죽는 이가 없게 하라는 게 북궁가의 가훈이었지.”
“지금도 구룡성의 영역 안에선 굶어 죽는 이가 거의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
뭐 이렇게 됐다.
물론, 이름만 짓는다고 바뀌는 건 없다.
상대는 천하오패 중 무황성과 더불어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구룡성.
단순히 머릿수만 채워서는 그런 대기업의 일차 협력 업체가 될 수 없지 않겠는가.
그럼 뭐가 필요하냐고?
인맥이다. 인맥.
확실히 나를 밀어줄 수 있는 인맥 말이다.
그렇기에 나는 두 번째 미션으로 적룡당을 찾아왔다.
아무래도 가까운 사이부터 공략하는 게 쉬울 테고 내성의 정보를 얻기 위해선 여기만 한 곳이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어서 와라.”
도착하자 적룡검 적일이 직접 나를 맞아 줬다.
다만, 오늘만큼은 외당 일조장 진무전이 아닌 북궁 사부의 직전 제자로서 만남을 요청했기에 사뭇 진지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조부님께선 안에서 기다리고 계신다.”
“갑작스러운 요청에도 이렇게 맞아 주시니 실로 영광입니다.”
“그런 인사는 안에 계신 조부님께나 해라. 닭살 돋는다.”
“하하하.”
분위기를 맞추며 그와 함께 당주관으로 들어섰다.
기다란 탁상의 가장 끝에 앉아 있는 적룡당주, 적혈사신 적사중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 길게 늘어앉아 있는 적룡당의 간부들도.
“…….”
평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에 직감했다.
‘쉽지만은 않겠군.’
그래도 어쩌겠는가.
부딪쳐 봐야지.
“북궁세가의 제자, 진무전이 적룡당의 존장께 인사를 올립니다.”
누구 하나 입을 여는 이가 없었지만, 장내가 술렁이는 게 느껴졌다.
북궁세가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가 있다는 뜻이다.
“……외당주가 드디어 마음을 먹었나 보군.”
알 수 없는 말에 무언가 오해가 있는 것을 알았지만, 바로잡을 필요는 없어 보인다.
이 자리에선 사부님의 이름을 파는 게 훨씬 잘 먹힐 테니까.
“그래, 개파를 한다고?”
“그렇습니다.”
“한중을 가지고 싶다는 말이구나.”
“그렇게까지는 생각해 본 적 없습니다. 제가 개파를 하려는 이유는…….”
척.
적사중이 손을 들어 말을 끊었다.
“속내를 감출 필요는 없다. 본래 한중은 북궁가의 영역이었으니.”
“…….”
적사중은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는 듯이 만면에 웃음을 지었다.
“사내라면 그 정도 야망은 품고 있어야지. 아니들 그런가?”
“으하하하, 진 조장이 드디어 속내를 드러내는군요.”
“복룡봉추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평소에 비리비리하게 다녔던 건 오늘을 위해서였나 봅니다.”
적사중의 말에 동조하는 의견들이 쏟아졌다.
‘아니, 내가 언제 비리비리했다고…….’
잘못된 의견을 말한 사람이 있긴 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간의 좋은 관계가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모양.
“우리 적룡당이 얻는 이득은 무엇이냐?”
“예?”
“가는 게 있다면 오는 게 있어야 마땅하지 않으냐. 아무 이득이 없다면 너를 돕지 않을 것이다.”
아니, 우리가 보통 사이……가 맞긴 하네.
‘하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명색이 대기업 사장님이나 되시는 분께서 사적인 관계로 회사를 움직일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래도 그동안 함께한 시간이 있어서 그런지 살짝 서운한 감이 없진 않았다.
“말해 보거라. 너를 도와 우리 적룡당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을.”
“적룡당이 가장 가려워하는 부분을 긁어 드릴 수 있습니다.”
“호오, 그게 무엇이냐?”
가려운 부분을 긁어 준다는 말에 호기심 어린 시선이 내게 집중되었다.
사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미리 준비해 왔다.
대기업 사장 앞에서 하는 PT인데 대충 넘길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나는 어젯밤 밤을 새워서 예상 질문과 답변을 만들었다.
아, 참고로 자료 조사는 용마산에게, 답변 제작은 유소평에게 시켰다.
아무래도 발표를 내가 하는 만큼 자료 조사와 PPT 제작은 다른 사람이 하는 게 공평하니깐 말이다.
“재물입니다.”
“……재물이라면 차고 넘치도록 많이 가지고 있다.”
“대신 차고 넘치도록 쓰고 계시죠. 그렇기에 한중상련과 손을 잡은 것이고요.”
이건 나도 용마산을 통해 처음 안 사실이다.
‘전형적인 흑자 도산으로 가고 있는 재무제표였지.’
아니나 다를까.
“겁도 없이 우리 적룡당의 뒤를 판 모양이구나.”
“……그냥 조사를 좀 했을 뿐입니다.”
적룡당의 주력 사업은 술도가.
사천성 전역에서 독점하다시피 판매하며 엄청난 매출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본업인 정보업에 워낙 많은 예산이 들어가는 건 물론, 고급 인력들이 파견됨에 따라 인건비 역시 부담되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얻은 정보를 구룡성에 무상으로 제공하니 전체적인 사업은 흑자라도 적룡당의 재무제표는 하루가 다르게 위험해질 수밖에.
바로 그 점을 짚어 내자 적사중이 날카로워진 것이다.
“……그래, 어떻게 긁어 줄 게냐?”
“한중상련이 구룡성에 진출했습니다. 즉, 한중과 사천을 잇는 새로운 상로가 생긴 거죠.”
“대신, 금룡당과 손을 잡지 않았느냐.”
은근한 타박.
나는 서둘러 이유를 말해 주었다.
“대가를 지불하지 않아도 되어…….”
“금가 놈의 목숨을 구했으니 대가를 선불로 치른 셈이겠지.”
역시 앉은 자리에서 천 리를 내다본다는 적룡당주다웠다.
“다 알고 계시니 돌려 말할 필요가 없겠군요.”
적사중과 똑바로 눈을 마주치며 말을 이었다.
“적룡당에서 운영하는 술도가들의 술을 한중으로 가져가겠습니다.”
“뭔가 했더니 겨우 술을 팔아 준다는 소리였군.”
약간은 김이 샌다는 목소리였다.
“아서라. 가져가 봤자 팔리지도 않을 것이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그 근방에서 빚는 술이 훨씬 쌀 텐데, 한중 장사치들이 바보가 아니고서야 우리 것을 선택할 이유가 없지 않으냐.”
틀린 말이 아니다.
이 시대에는 운송비도 절대 저렴하지 않다. 호송을 책임질 무사는 물론이고 수레 하나당 두셋의 일꾼까지 붙여야 했으니까.
더군다나 적룡당의 술도가가 있는 성도에서 한중까지는 천릿길.
원가에 운송비가 더해진다면 경쟁력이 아예 없다시피 했다.
하지만.
“방법이 있습니다.”
내겐 그 모든 걸 해결할 아이디어가 있었다.
“뭐냐?”
“먼저 적룡당에서 상단을 하나 만드십시오. 한중상련에 가장 크고 좋은 자리를 마련하겠습니다.”
“그래 봤자…….”
“비싼 술만 가져오시는 겁니다. 싸구려는 쳐다보지 마시고요.”
일종의 명품화 전략. 비싼 술의 수요는 언제나 꾸준하니 충분히 먹힐 것이다.
더군다나 이름난 명주를 빚어 왔던 적룡당의 노하우라면 충분한 승산이 있다.
그 증거로 한 병에 은 두 냥이 넘는 홍화주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지 않은가.
무엇보다 한중은 교역의 중심지이자 교통의 요지.
그곳에서 팔린다는 건, 중원은 물론이고 서장과 저 멀리 아랍까지 팔릴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즉, 시간이 흐를수록 판매량은 우상향할 게 분명하다.
‘소문이 날 테니까 말이야.’
물론, 내가 준비한 건 이게 끝이 아니다.
“그래도 이 정도로는 당주님을 만족시킬 수 없겠죠. 해서 저는 적룡당의 술 외에는 일정 가격 이상 되는 고급주의 판매를 금지할 생각입니다.”
독점권.
가장 돈이 되고 가장 위험한 권리였다.
내 쪽이 많이 양보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건 적룡당과 한중상련에 서로 윈-윈인 조건이다.
왜냐고?
“대신, 한중에 오고 갈 때 상련의 상인들을 끼워 주시는 조건입니다.”
“적룡당을 공짜 보표로 써먹겠다?”
“서로 좋은 일이지요.”
운송 비용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호위를 고용하지 않아도 되니까.
“만약 상련의 상인들이 반대한다면?”
“절이 싫으면 중이 나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단호한 말에 적사중의 어깨가 흔들렸다.
“크하하하! 안 본 사이에 악당이 다 되었구나!”
“그럼?”
“그렇게까지 나오는데 밀어줄 수밖에 없지 않으냐! 필요한 걸 말해보거라.”
“감사합니다! 그럼…….”
내가 적룡당에 요구한 건 두 가지였다.
협력 업체의 선발 조건을 알아봐 달라는 것과 최선을 다해 전왕문을 밀어 달라는 것.
그리고 내 이런 조건을 적룡당의 모두는 매우 흔쾌히 들어주었다.
“사실, 손녀사위가 잘되는 것 자체가 적룡당의 이득이라고만 했어도 됐네.”
“…….”
“대신 이런 큰 선물을 받았으니 내 당주 회의에 칼을 들고 찾아가겠네.”
“저는 각 당의 주요 인사들의 치부를 모으겠습니다. 협박 몇 마디면 진 조장의 계획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역시 우리 장손이구나. 이 할아비도 생각하지 못한 걸 떠올리다니.”
“아니.”
정파 맞냐고.
* * *
그 뒤로도 나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다녔다.
“당연히 밀어줘야지. 한배를 탄 사이가 아닌가.”
“감사합니다.”
“그런데 적룡당에 먼저 갔다는 소문이 있던데?”
“아……. 하. 하.”
이제는 나름 괜찮은 동맹이 된 금룡당.
“그동안 우리 묵룡당은 성 내 정치에 관여하지 않았다. 쉬이 결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구나.”
“당주님, 그냥 눈 딱 감고 한번 밀어 달라니까요? 아니, 막말로 우리가 남입니까?”
“……그럼?”
“가족 아닙니까? 자꾸 이러시면 제가 가진 묵룡무관의 지분을 금룡당에 팔아 버릴 수도 있습니다.”
“…….”
“그리고 막말로 이게 저만 잘 먹고 잘살자고 하는 게 아니라니까요? 돈 벌어서 애들 밥상에 고기반찬 올려 주려고 하는 거지요. 겸사겸사 장로분들 드실 곡차도 좀 들여놓고요.”
피를 나눈 혈맹과도 같은 묵룡당.
“스승님을 만나는 건 포기해라.”
“……거참, 장문제자씩이나 돼서 다리 하나 못 놓습니까?”
“중요한 고비를 마주하고 계신다. 어쩌면…… 하늘에 오르실지도 모를 고비다.”
“……거참, 장문제자씩이나 돼서 뭐 하십니까? 빨리 가서 호법이나 서십시오.”
“아니다. 온 김에 너와 비무나 한번……. 응?! 이형환위!”
안 될 건 알지만 찔러나 본 청룡당까지.
아, 참고로 회룡당에는 가지 않았다.
당주가 광산에 있다고 했거든.
괜히 가면 일해야 할 거 같아서 말이지.
여하튼, 그렇게 손이 닿는 모든 사람을 만나고 있던 그때.
적일이 직접 하청 문파 선정 방식이 담긴 정보를 가져왔다.
“감사합니다.”
“수고하도록.”
차르륵.
적일을 배웅한 뒤, 내용을 확인한 나는 황당함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공개 경연?”
하청 문파 선정 방식이 공개 오디션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무슨 Show me the 무공이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