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meless martial arts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25
025화 점창대전(3)
xx
다음 날, 아침.
“이대로는 안 됩니다!”
나는 간부들을 모아놓고 일갈했다.
점창산에 도착한 순간, 이미 이들과 운명공동체가 되어버렸다.
이제 죽으나 사나 점창산을 지켜내는 것만이 유일한 살길이었다.
그러려면 지금의 수비전략으로는 안 된다.
보다 효율적이고 안전한 전략이 수립되어야 이곳을 지킬 수 있다.
펄럭.
종이를 이어 붙인 대자보에 얼기설기 그림과 글자가 들어가 있다.
전날, 밤새 만든 PPT였다.
새로운 방식에 신기했는지 한 쪽 눈을 안대로 감싼 간부 하나가 물어왔다.
“그것이 무엇이오?”
“전략과 전술을 설명해 드리기 위한 보조자료입니다.”
“지도와 함께 설명이 들어가 있어 보기 편하구려.”
“감사합니다.”
“그런데 말이오.”
질문한 간부가 다시금 물어왔다.
한쪽뿐인 눈에 불신감이 가득 찬 게 꼭 말년의 궁예가 마구니를 때려잡을 때 저랬지 싶다.
“대관절 당신은 누구길래 우리를 지휘하려 하는 거요?”
그렇다.
이곳은 야만의 세계 무림.
지휘권을 얻으려면 적절한 무력이나 지위를 보유해야 했다.
일개 외당 조장인 내 말을 들을 리가 없는 것이다.
하물며, 앞에 있는 무인들의 소속이 구룡성에서 천룡인 취급을 받는 본성의 팔당(八黨) 소속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예전의 진무전이가 아니다.
투룡이라 불리는 구룡성의 라이징스타다 이 말이다.
“훗, 제 정체가 궁금하시다면 말씀드리는 게 인지상정.”
“시간 없으니 빨리 이름이나 말하시오.”
이런, 꿈도 희망도 없는 양반 같으니라고.
“외당 십칠조장, 진무전입니다. 부끄럽지만 강호의 동도들이 투룡(鬪龍)이라 불러주고 있지요.”
“투룡이라, 전혀 들어본 적 없군. 이름 없는 외당 조장 따위가 어찌 지휘권을 논한단 말이오?”
한 사람이 비아냥거리자 주위의 간부들이 불평을 쏟아내었다.
“뭐야, 나는 또 포위망을 뚫고 들어 왔다길래 대단한 인사인 줄 알았네.”
“에이, 이럴 시간에 잠이나 자둘 것을.”
본성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내 명성을 모르는 것을 보아 아직 이곳까지 소식이 들어오진 않은 모양이었다.
‘이게 아닌데···.’
하지만, 이런 답답한 상황에 구원자가 있었으니.
“모두 이야기를 들어보시죠. 그는 제가 인정하는 몇 없는 인재입니다.”
바로 위지풍이었다.
그의 한마디에 간부들의 여론이 180도로 돌아섰다.
“허어, 천하의 묵룡검이 인정하는 인재라···. 그런 사람이 어찌 외당에?”
“묵룡검이 저렇게까지 말한다면 이유가 있겠지.”
“그럼 그럼, 어서 들어보자고.”
간부들의 행태가 내 마음에 커다란 기스를 냈지만, 어쩌겠는가. 빨리 발표나 끝내야지.
앞으로 바이럴 마케팅에 힘을 쏟기로 마음먹으며 발표를 시작했다.
“이게 현재 점창산 분타의 수비선입니다. 보시면 알겠지만, 분타로 올라오는 길은 하나뿐인 계단이고 그곳을 교대로 수비하고 있습니다. 언뜻 보면 효율적으로 보이지만 이런 식으로라면 선봉대가 도착할 때까지 버티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신랄한 지적에 간부들의 입이 다물어졌다.
그들도 대충 아는 것이다.
현 방법으로는 시간만 늦출 뿐 결국 밀리게 될 것이라는걸.
그 증거로 초창기보다 수비선이 삼십 장이나 밀려났다.
“그래서 만든 전략입니다.”
펄럭.
나는 다음 페이지를 펼치며 말했다.
“스파르타, 스파르타 전략이라고 합니다.”
300에서 영감을 받았거든.
***
와아아!
일 장이 넘는 계단을 꽉채워 몰려왔다.
그리고 여느 때와 같이 적들의 뒤쪽에서 화살이 날아올랐다.
“모두 화살에 대비하라!”
수비를 맡은 간부가 외치자 수비대 전원이 커다란 나무 방패를 하늘을 향해 들었다.
참고로 이 간부는 어제 내게 딴지를 걸었던 애꾸로서 가장 위험한 곳에 배치되었다.
물론, 내가 배치한 건 아니다.
그저 내 마음속 어딘가에 있는 흑화 무전이가 그를 이곳으로 배치시켰을 뿐.
투투툭. 투툭.
전날 분타의 있는 거의 모든 문을 뜯어 만든 방패였다.
튼튼한 문만 골라 만든 만큼, 적들의 화살이 방패를 뚫고 들어오는 일은 없었다.
“돌격!”
화살이 막히자 적들의 돌격이 시작되었다.
“충돌에 대비하라! 모두 기합을 넣어!”
애꾸가 외치자 수비대가 함성을 질르며 전열을 정비했다.
“아우! 아우! 아우!”
쿵.쿵.쿵.
일 열의 수비대가 커다란 방패를 전방을 향해 세웠다.
이 열의 수비대는 혹시 모를 화살 공격에 대비해 하늘을 향해 방패를 들었다.
방패 사이에 약간의 틈을 벌려 언제든지 병장기를 휘두를 여유를 만들어 두었다.
그리고 벌어진 충돌.
콰직. 콰직.
적들이 사정없이 무기를 휘둘렀으나 이들은 무공을 익히지 못한 이들.
아무리 힘껏 무기를 휘둘러도 방패를 깨뜨리지는 못했다.
그리고 수비대의 간부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찔러!”
퍼퍼퍽.
“컥.”
“끄악!”
방패의 틈 사이로 창과 도, 검이 찔러 넣어 적들의 몸에 헤집기 시작했다.
덕분에 전투 장소인 도로는 순식간에 피와 비명으로 가득 채워졌다.
“계속 벼텨!”
“아우!”
그렇게 시작된 근접전.
적들은 계속해서 무기를 휘둘렀고 수비대는 방패를 들어 막아냈다.
전날과 뭔 차인가 싶겠지만, 의외로 엄청난 차이가 있다.
‘체력과 내공을 아낄 수 있지.’
모든 무인들은 기본적으로 내공을 사용하여 신체 능력을 향상시킨다.
나는 바로 여기에 착안하여 방패를 제안한 것이다.
방패를 사용해서 적의 공격을 막으니 수비대는 내공을 아끼며 효율적으로 적을 상대할 수 있었다.
공격 또한 마찬가지다.
그저 방패 사이로 적을 견제할 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니 체력을 크게 아낄 수 있었다.
다만, 적들을 처리하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리지만, 그것 역시 방법이 있었다.
“지금이니!”
내가 외치자 대기하고 있던 고수 다섯이 달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달리던 그 속도 그대로 이 열의 수비대가 들고 있는 방패를 밟고 적들 진형 한복판으로 떨어졌다.
서걱!
그리고 시작된 살육.
아껴놨던 고수들의 난입에 적들이 혼비백산하며 죽어 나가기 시작했다.
상황이 불리해지자 적들의 후방에서 화살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어제와 같이 아군을 희생하여 수비대의 숫자를 줄이려는 모양.
하지만, 이미 한번 봤던 전략에 당해줄만큼 바보는 아니다.
공격조를 맡은 고수들에게 첫 번째 공격 후에 곧장 빠져나오라고 이미 말해놨다.
덕분에 화살은 간발의 차로 공격조를 맞추지 못하고 애꿎은 아군만을 희생시켰다.
“위지 형!”
“그래!”
어제와도 같은 패턴이면 여기서 끝날 리가 없다.
남천궁의 무인들이 나설 차례였다.
아니나 다를까.
“전부 죽여라!”
갖가지 무기를 든 특이한 복색의 무인들이 달려오며 수비대를 향해 무기를 던지고 휘둘렀다.
급조한 나무 방패 따위는 순식간에 박살 낼 만한 위력.
하지만, 나는 그런 놈들을 보던 나는 놈들을 비웃을 수밖에 없었다.
방패를 든 수비대 역시 구룡성의 무인들.
본신의 무위를 발휘하면 저 정도 공격쯤은 충분히 막아낼 수 있었다.
그러기 위해 체력과 내공을 아껴놨으니까.
순식간에 방패를 버린 수비대가 남천궁 놈들의 공격을 막아냈다.
콰직. 챙.
그렇게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와 타격음이 들려오던 찰나.
턱. 턱.
나와 위지풍이 적들 사이로 난입했다.
“헬로.”
내 얼굴을 알고 있는지 적 중 하나가 기겁하며 병장기를 날려왔으나.
“위험하게시리.”
내 손이 놈의 가슴께에 닿는 것이 먼저였다.
빠악!
“꾸웩.”
순식간에 일 권을 맞은 놈이 피를 토하며 물러났다.
전생에서 배웠던 태권도의 정권찌르기였다.
포상휴가증을 준다는 말에 군대에서 배운 태권도를 여태까지 써먹다니, 역시 배움이란 유익한 것이다.
또한, 함께 온 위지풍도 있었다.
서거억!
위지풍의 검이 아찔한 속도로 휘둘러지며 적들을 베어나갔다.
날카롭기 그지없는 검초를 펼치는 그를 보며 생각했다.
내가 커피라면 그는 TOP라고.
그렇게 전면에 있던 적들이 순식간에 피떡이 되어 쓰러졌다.
“놈들을 죽엿!”
진우량이라고 했나?
어제 봤던 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사방에서 병장기들이 떨어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어제의 실패를 교훈 삼았는지 후방에서 우리를 노리고 암기들이 쏟아졌다.
막아내려면 충분히 막아낼 수 있지만, 미리 튈 준비를 하고 있던 우리는 서둘러 적들의 공격권에서 벗어났다.
우린 단순히 시간 끌기였으니까.
뒤쪽을 보니 이미 수비대가 멀찍이 후퇴해있었다.
그리고.
덜컹! 쿠웅!
사람 상체만한 바윗덩어리 수 백개가 굴러오기 시작했다.
“위지 형!”
“알았다!”
그것을 보자마자 위지풍과 나는 미리 준비한 두꺼운 밧줄을 잡고 절벽으로 뛰어내렸다. 미리 계단 옆에 못을 박아 묶어놓은 아주 튼튼한 놈이었다.
머리 위로 천둥이 치는 소리와 함께 끔찍한 소리가 들려왔다.
“도, 도망···!”
콰직. 콱.
“으아악!”
바위를 피하다 발을 헛디딘 적들이 천 길 낭떠러지로 추락하는 모습이 보였다.
찰나의 시간이 지난 후, 다시 계단으로 올라오니 처참한 광경이 보였다.
적으로 추정되는 시체들이 피를 흘리고 쓰러져있는 것은 물론 가까스로 살아났음에도 중상을 입어 운신할 수 없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건 첫날 봤던 진우량도 마찬가지.
“끄···. 어···.”
어디를 어떻게 다쳤는지도 모를 정도로 핏덩이가 된 그가 신음을 내뱉었다.
주위에서 주인 잃은 검을 뽑아 그의 목에 쑤셔 넣었다.
되도록 포로로 잡고 싶었으나 저 정도로 다쳤으면 서울대병원 응급실에가도 연명이 불가능했다.
와아아!
그러자 분타가 있는 쪽에서 함성이 들려왔다.
아마, 승리를 자축하는 것이리라.
“원시천존이시여···.”
위지풍이 처참한 광경을 보며 작게 도호를 읊조렸다.
하늘을 보니 어느새 핏빛 노을이 드리워져 있었다.
***
다음 날 역시 마찬가지로 적들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바위와 돌 같은 지형지물을 가져와 적들에게 쏟아부었다.
산꼭대기에 분타가 있는 만큼,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넘쳐났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비대가 여태 이런 것들을 이용하지 못한 이유는 경직된 사고방식 때문이었다.
군 경험이라도 있었다면 말이 좀 다르겠지만, 이들은 평생 무공만 갈고 닦은 무인들.
자신의 무기와 무공만 믿고 뛰는 닥돌형 근딜이었으니 아예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나는 그런 그들에게 약간의 예시를 보여줌으로서 효율적인 방어체계를 완성했을 뿐이고.
그렇게 며칠간 계속된 공격에도 우리가 끄떡없이 버티자 놈들의 공세가 뜸해지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공격은 이루어지고 있으나 남천궁에서 고수를 파견하지는 않았다.
덕분에 수비대 역시 한 수 수월하게 적들을 막아낼 수 있었고 줄어드는 사상자에 분타의 분위기는 한결 밝아졌다.
하지만, 이런 호조에도 나는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대로 물러날 리가 없다.’
이곳 점창산 공방전은 단순히 땅따먹기가 아니다.
남천궁 입장에서 빠르게 이곳을 점령해야 후방을 신경 쓰지 않고 구룡성의 전력과 맞서 싸울 수 있는 것이다.
지금쯤이면 구룡성 선봉대가 사흘 거리에 도착했을 터.
내가 만약 남천궁의 궁주라면 피해야 어떻든 전력을 쏟아부어 이곳부터 정리할 거다.
그 어떠한 수를 쓴다 해도 말이다.
‘막을 수가 없어.’
아무리 스파르타 정신으로 막아낸다하더라도 수비대가 인간인 이상 적들이 마음먹고 파상공세를 펼치면 뚫리게 되어있다.
‘그렇다면.’
생각을 정리하자마자 곧장 수비대의 간부들을 불러 모았다.
한 쪽 눈에 안대를 쓴 적룡당 출신의 간부가 물었다.
예전과는 달리 그의 눈에는 믿음이 깊게 들어차 있었다.
“허허, 우리의 장자방께서 무슨 일로 우리를 불러모으셨는가?”
그의 말에 간부 셋이 모두 동조하며 웃었다.
“으허허허, 그러게나 말입니다. 혹시 산 밑의 적들을 일거에 소탕할 계략을 짜온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긴,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진 조장의 의견이라면 똥으로 춘장을 만든다 해도 믿을 만 하죠.”
“그럼 그럼, 그런 의미에서 내 돌아가는 대로 진 조장에게 딸을 소개해줄 작정이라네. 나를 똑 닮아서 아주 미인이지.”
참고로 딸을 소개해준다는 간부는 북궁백 못지않은 흉신악살의 외모를 자랑했다.
“그것보다 더욱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모두 경청할 준비가 되어있으니 말해보게나.”
“이곳을 버려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