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meless martial arts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268
267화 동정호(4)
“도리를 아는 무인이라 생각했건만…….”
머리를 얻어맞은 손백이 투덜거렸다.
슬쩍.
“내 고향에는 머리통을 뚝배기라고 하는 전통이 있지. 그래서 정신을 못 차리는 인간을 단죄할 때는 뚝배기를 깬다는 표현을 쓰고.”
“헙…….”
피 묻은 상다리를 보여 주자 손백은 물론 그와 함께 온 모든 이가 입을 다물고 고개를 처박았다.
분위기가 너무 삭막해지는 거 같아 그들에게 술을 권했다.
“일단 편히들 먹어. 이래 봬도 우리 마누라가 직접 만든 음식이니까 말이야.”
“재료와 술은 우리 것인데…….”
“뭐라고? 뚝배기가 깨지고 싶다고?”
“아, 아닙니다……. 헛?”
안주를 입에 넣은 통천검문주가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다, 닭에서 소고기의 풍미가 느껴지다니! 어찌 이럴 수가!”
그 모습을 본 나머지가 긴가민가하면서 젓가락을 움직였고 곧 하나같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 모습을 보며 바로 앞에 앉아 있는 손백의 잔을 채워 줬다.
“그래, 술만 얻어먹으러 온 건 아닐 테고……. 할 말 있으면 빨리 해 보쇼.”
“……오해를 풀러 왔소이다.”
“오해는 개뿔, 애먼 사람 납치해 함정에 밀어 넣고 무기부터 휘두른 주제에.”
“아니, 그것은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
“왜? 내가 미주알고주알 일러바칠까 겁나나?”
“크흠…….”
직접적인 물음에 손백이 당황하며 입을 열지 못했다.
아무래도 호남수비대의 주력은 단운이 중심이 된 구룡성의 무사들이었으니까.
“그런 양반들이 내 말은 왜 안 믿었데?”
“크흠. 큼.”
“술이나 한잔하면서 이야기하지.”
“그러지.”
술을 들이켠 그에게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말아. 오해에서 벌어진 일, 거기다 아무도 다치지 않았으니 미주알고주알 일러바칠 생각은 없으니까.”
“…….”
그가 얼굴을 붉힌 채 고개를 숙였다.
“고맙소이다.”
다행히 염치는 있는 놈이었다.
눈치를 보는 손백에게 말했다.
“정 마음에 걸리면 뱃사공이나 한 명 소개해 주든지…….”
“뱃사공을 말이오?”
“우리가 동정호는 처음이거든. 기왕 놀러 왔는데 제대로 구경은 하고 돌아가야 하지 않겠어? 해서 실력 있는 뱃사공을 찾고 있는데 누가 잘하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그제야 손백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거라면 걱정하지 마시오. 내 어부의 자식으로 태어나 여태 동정호에서 살아왔소. 세간 사람들이 모르는 명소를 줄줄 꿰고 있다오.”
“직접 배를 몰아 주게?”
“크흠, 마음의 짐을 더는 데 그깟 귀찮음이 대수일까.”
피식.
“좋아. 천하의 동오패가 모는 배를 탄다면야 나도 영광이지. 그걸로 퉁치는 걸로 하자고.”
“투, 퉁……?”
“그럼 내일하고 모레는 상처를 치료하고, 사흘 뒤에나 보자고. 우리는 그동안 악양을 구경하고 있을 테니까.”
“배려해 주어 고맙소이다.”
그렇게 분위기가 풀어지자 술자리의 어색한 기류가 증발했다.
언제 서로 죽이려 들었냐는 듯 악양의 무사들과 육로의 무사들이 자리에 어우러져 술을 나눠 마시기 시작했고.
아무래도 칼끝에 올라 사는 인생들이 만난 만큼 빨리 친해진 것 같았다.
그렇게 두어 번 술잔을 나눈 뒤 손백에게 물었다.
“그런데 흑풍대가 대체 누구야? 대충 들으니 사자맹 애들인 것 같던데…….”
“아, 그게…….”
손백이 목소리를 가다듬고 설명을 시작했다.
“사자맹주의 넷째 아들이 이끄는 기마대라오. 당신들처럼 흑색의 피풍의를 입고 마창을 사용하는.”
“으음…….”
사실, 어느 정도는 예상하긴 했다.
흑풍대라니.
딱 봐도 흑색 옷을 입은 기마대가 연상된다.
꼭.
“우리와 비슷하군.”
“아예 똑같다고 생각하면 되오. 그래서 우리가 오해한 것이고.”
쪼르르.
“그래, 그런 놈들이 호남 땅에 넘어와서 백성들을 괴롭힌다는 거야?”
내가 따라 준 술을 들이켜며 손백이 자신과 함께 온 악양 무림의 장문인들을 바라봤다.
“그저 괴롭히는 정도였으면 저 치들이 이리 뭉치지 않았을 것이오.”
“그럼?”
“학살을 자행하고 있소이다. 열흘 전, 평강현에 있는 무관의 무인들은 물론 백성들까지 씨 몰살을 시켰다고 하오. 어른이고 애고 할 것 없이 말이오.”
“……수비대는 뭘 하고 있었는데?”
“겨우 삼백의 수비대만으로 호남 땅 전부를 지켜볼 수는 없지 않겠소? 그나마 그들이라도 있어 평강현으로 그친 거라고 생각하오.”
“답답한 일이로군.”
“아무래도 수비대의 숫자가 부족하다 보니…….”
“아니.”
“…….”
자리에 있는 모두를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목 아래까지 칼날이 다가왔는데 이렇게 안일하게 행동하는 당신들이 답답하다고.”
“……우리로선 최선을 다하고 있소.”
“뭐가? 이렇게 악양 무림인들을 한데 모아 놓으니 뭐가 된 거 같아? 사자맹의 일개 무력대도 해결 못 해서 절절매는 주제에 웃기고 있군.”
“……진 당주.”
“내가 틀린 말 한 거 같지는 않은데?”
주변을 돌아보며 눈을 마주치자 한쪽 구석에 있던 서생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인의 복색을 꾸며 입고 우리를 함정에 빠뜨렸던 장본인이었다.
그가 내게로 다가와 공손한 자세로 물었다.
“고견이 있으시다면 들려주십시오. 경청하겠습니다.”
아무래도 다시 싸움이 일어날까 끼어든 모양.
나는 그런 서생과 시선을 마주하며 말했다.
“호남의 위기는 비단 어제오늘만의 일이 아니었다. 한참 전부터 진행되고 있었지. 그 때문에 청가장주는 천하를 떠돌며 오패 중 셋을 설득하여 수비대를 만들었다.”
“…….”
“한데 호남 무림은 대체 뭘 했어? 청가장주를 외면하고 악양에 틀어박힌 채 보신이나 하고 있지 않았나?”
“……도울 힘이 없기에 움직이지 못한 것뿐입니다. 그 때문에 이렇게 뭉친 것이기도 하고요. 또한, 천천히 시간을 들였기에 여기 손 대협을 회주로 모실 수 있었습니다.”
“말은 잘하는군.”
“…….”
“호랑이는 늙어서 이가 없으면 발톱을 휘두른다. 이가 없다고 도망치는 건 오로지 개뿐이지. 힘이 부족하다고 자신들에게 손을 내미는 사람을 외면한 당신들은 개인가, 호랑이인가?”
약간 선을 넘은 발언에 모두의 눈이 매서워졌다.
그러자 육로의 무인들이 주변을 살폈다.
방금까지 술을 나눠마시며 친분을 쌓았다 해도 또 금방 칼을 휘두르기도 하는 세상이 바로 무림이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술렁이는 분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 모두의 앞으로 천천히 걸어 나갔다.
“사람이 없어? 그럼 싸우면서 사람을 모아. 박 터지게 싸우는 모습을 보이면 악양뿐만 아니라 호남 전체의 무림인들이 일어섰을 거다.”
“…….”
“무공이 모자라? 죽고 죽이는 실전을 겪다 보면 자연스레 강해진다. 또한 가진 무공이 형편없다면 서로 가르침을 베풀면 되는 게 아닌가.”
나는 혀를 차며 서생을, 아니 악양의 무림인들 전체를 타박했다.
“처음부터 죽을힘을 다해 맞섰다면 사자맹은 감히 호남을 노리지 못했을 거다.”
“……하지만, 준비 없이 일어섰다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은 피가 흘렀을 겁니다.”
“준비를 마친 지금은 피가 안 흐르고 있나?”
“…….”
“원래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법이지.”
척.
서생의 어깨를 툭 쳐 주고 발길을 돌렸다.
“언제든지 괜찮으니 상의하러 와라. 내게 딸린 식구가 많아 함께 피를 흘려 줄 수는 없지만, 머리는 빌려줄 수 있으니까.”
“…….”
“말이 길어졌군. 이만 들어가 볼 테니 천천히 마시라고. 손 선배는 사흘 뒤에 봅시다.”
이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내 이런 발언이 어떤 후폭풍을 몰고 올지 말이다.
* * *
사흘.
그 동안 나와 묘향은 악양 곳곳을 돌아다녔다.
시전을 다니고, 동정호 주변을 걸었으며, 민물고기 요리가 유명한 식점에서 음식을 먹었다.
사람 사는 거야 어디든 다 비슷비슷하다고 하지만, 평생을 서쪽에 처박혀 살다가 동쪽 사람을 봐서 그런지 새롭게 느껴졌다.
“이것 좀 보세요. 상공! 물고기가 어찌나 싱싱한지 파닥파닥 뛰어다녀요! 이걸로 죽을 끓이면 여럿이서 배불리 먹을 수 있겠어요.”
좋아하는 묘향을 보니 새삼스레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리고 뱃놀이하러 가기로 한 날 아침, 약속대로 해가 뜨기도 전에 손백이 찾아왔다.
준비를 단단히 했는지 이것저것 잔뜩 챙겨 온 건 물론이다.
문제는.
“……대체 그건 왜 가지고 온 거야?”
“참된 무인이라면 항상 애병을 챙겨야 하는 게 아니오.”
“아니.”
이백 근이 넘는 유성추까지 가져왔다는 거지.
“……무거워서 배가 가라앉지 않을까?”
불안한 기색으로 물으니 손백이 호탕하게 웃었다.
“으핫핫, 겨우 이백 근 가지고 배가 가라앉을 거면 백 근씩 나가는 사람은 어찌 탈 수 있단 말이오. 오백 근은 족히 나가는 말은 또 어찌 싣고. 내 그럴 줄 알고 큰 배를 수배해 두었으니 걱정하지 마시오.”
“아…….”
고등학교 1년 동안 현대 물리학의 정수를 배운 내가 이런 실수를 하다니.
아무래도 무림에서 오래 살다 보니 지식이 퇴화한 느낌이다.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않고 있으니 묘향이 호호 웃으며 다가왔다.
“손 대협께서 이해해 주세요. 사천에선 배를 탈 일이 거의 없어서 잘 모른답니다.”
“그, 그렇소, 소이까.”
아니, 말을 왜 이렇게 더듬어?
얼굴은 또 왜 저렇게 뻘게졌고.
‘설마……?’
혹시나 해서 팔꿈치로 손백의 옆구리를 찔렀다.
“손 선배, 여자 사귀어 본 적 있어?”
“크흠……. 어, 없소이다.”
“올해 연배가 어떻게 되는데?”
“이제 겨우 미혹을 벗어나게 되었소이다.”
불혹(不惑).
마흔 살이란 뜻이다.
“아니, 이때까지 뭐 하다가…….”
“무공을 익히려다 보니 시간이 없었소.”
“……하긴, 그럴 수도 있겠네.”
목표한 경지에 이르기 전까지 하루 10시진을 단련하며 사는 무림인이다.
가진 바 목표가 낮으면야 상관없지만, 절대고수를 목표로 하면 연애할 시간은커녕 어디 가서 차 한잔 마실 시간도 없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우리 사부였고.
아무래도 전 무림적인 대책이 마련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말하니 손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수가 되려면 여자를 멀리해야 하고, 막상 고수가 되면 나이가 들어 버린 상태이니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군.”
“동감하오.”
약간은 심각한 분위기로 말하고 있자 묘향이 끼어들었다.
“뭐가 그렇게 심각해요?”
“별거 아니야. 그냥 강호의 어두운 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어.”
그녀가 내 팔을 붙잡고 이끌었다.
“어서 가요. 내내 뱃놀이만 기다렸단 말이에요.”
* * *
손백이 모는 배에 올라 즐기는 뱃놀이는 상당한 재미를 선사했다.
넓디넓은 동정호 곳곳을 구경했고, 손백만이 아는 포인트에 가서 낚시를 즐겼으며, 운무에 숨겨져 있어 아무도 찾지 않는 돌섬에 앉아 도시락을 까먹었다.
분위기를 살핀 손백이 낚시를 하고 오겠다며 배를 끌고 나간 덕에 묘향과 단둘이 주변의 경치를 구경했다.
‘다 때려치우고 낙향해서 농사나 짓고 살까?’
돈도 벌 만큼 벌었겠다. 삼처사첩은 아니지만 이쁘고 요리 잘하는 마누라도 얻었겠다.
갑자기 심산유곡에 틀어박혀 무위자연 하고 싶은 생각이 확 들었다.
“부인……. 아니, 누이.”
“예?”
갑자기 바뀐 호칭에 그녀가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누이는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어?”
“왜요? 제가 살고 싶은 대로 살게 해 주게요?”
“가능하면?”
“저는 큰 욕심 없어요. 그저 상공과 함께 건강하게 살면서 혹여 아이를 가지게 되면…….”
그녀가 노을을 등진 채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천하 상계를 제패하여 그 아이에게 물려주는 게 제 꿈이에요.”
“……그, 그렇군.”
가장으로서의 위엄을 지키려면 열심히 일해야 할 듯싶다.
경제권은 꼭 가져야 하니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