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meless martial arts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274
273화 킹 메이커(2)
전력을 다해 이형환위를 펼쳐 적화란의 마수에서 빠져나온 후에도 적룡당과 회룡당, 금룡당, 그리고 청룡당에선 계속해서 사람을 보내왔다.
“당주님! 적 공녀님께서 오늘은 꼭 뵙자고 하십니다.”
“오늘 당주님을 모시고 오지 못하면 저는 죽습니다요. 그러니 제발…….”
“당주님! 잠깐, 잠깐이면 됩니다!”
“시간을 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한 사람도 통과시키지 말라는 당주님의 명령이시다!”
“전룡!”
“거기! 담 넘지 말라니까 그러네!”
“어허! 나 모르나? 나 혈명부대주야.”
덕분에 전룡당의 무사들은 손님들을 대상으로 치열한 디펜스 게임을 벌였다.
심지어, 단순히 찾아오기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으음…….”
“왜? 무슨 일 있어?”
“글쎄, 회룡당에서 이번 달 수레 대금을 절반이나 깎아 줬지 뭐예요? 만금전장에선 은자 백 냥을 이자에 추가로 얹어 줬고, 적룡당에선 서장의 상세 지도를 선물로 줬어요.”
“…….”
내가 만나 주지 않으니 묘향에게까지 선물 공세를 펼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어제는 청룡당에서 소소네 의원에 귀한 약재들을 잔뜩 기부한 거 있죠?”
“……엉뚱한 곳을 공략하고 있군.”
돈도 먹여 본 놈이 먹인다고, 청룡당은 뇌물을 누구에게 줘야 하는지 전혀 감을 못 잡고 있는 것 같다.
여하튼, 이런 네 개 당의 움직임은 내게 상당한 불쾌감을 안겨 줬다.
“쯧쯧, 선거를 뭐로 보고……. 받은 거 모두 돌려줘. 소소에게도 돌려보내라고 하고.”
“네? 전부를요?”
“그래, 의도가 뻔한 선물을 받을 수는 없잖아?”
명색이 민주 한국에서 전생을 보낸 나다. 그런 내가 서천상단의 직원들에게 특정 후보를 찍으라고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사실, 밀어준다고 말만 하고 대충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그러다 선거에서 떨어지기라도 하면 괜히 서로 불편해진다.
“그래도 지도는 조금 아까운걸요? 그 정도로 정확한 상세 지도는 구하기가 힘들어서…….”
“그거야 베껴 놓고 원본만 돌려주면 되잖아?”
“……상공은 정말 천재세요.”
뭐, 이런 건 티가 안 나니까.
잡아떼면 걸리지도 않을 테고.
여하튼, 그렇게 하루하루 압박이 계속되는 가운데 수위 무사들로선 막을 수 없는 인물이 찾아왔다.
“다, 당주님. 큰일 났습니다.”
“또 왜?”
“그것이…… 청룡당주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에라이.”
바로 단운의 스승이자 구룡성 비공식 서열 3위 청룡당주가 찾아온 것이다.
“당주님께서 여기까진 어찌…….”
“진 당주가 바쁜 것 같아 내가 직접 찾아왔네.”
매사에 공정하고 빈틈없는 성격이라는 그는 사적으로 사람을 만나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런 사람이 나를 만나러 왔다는 건.
‘어지간히 부성주가 되고 싶은가 보군.’
그 역시 권력이란 미몽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내키는 만남은 아니지만, 이렇게 직접 찾아왔으니 어쩌겠는가.
손님 대접을 해 줘야지.
“크흠, 매란아! 여기 용정차 좀 가져오너라.”
“예, 당주님.”
묘향이 직접 뽑고 가르친 전왕전 전담 시비가 서둘러 밖으로 나섰다.
“…….”
“…….”
둘만 남아 있으니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당연했다.
청룡당주와 나는 사적인 교류가 아예 없다시피 했으니까.
그나마 접점이라고 할 수 있는 단운 놈도 호남수비대로 떠나 있었고.
그렇게 머릿속으로 숫자를 세며 시간을 죽이고 있자니 청룡당주가 입을 열었다.
“……운이를 만났다고 들었네.”
“예, 서신이 왔나 보군요.”
“주기적으로 서신을 주고받는다네. 그래, 어때 보이던가?”
“건강하더군요. 수비대주의 일도 착실히 해내고 있는 것 같고요.”
때마침 매란이가 차를 가져왔다.
향이 마음에 들었는지 한 모금 마신 청룡당주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호적수란 서로를 발전시키는 좋은 벗이나 다름없지.”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
“이번에는 비겼다고?”
“…….”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것 같다.
‘이놈이 진짜?’
아니면, 산초탄에 무릎을 꿇은 부분을 빼놓고 서신을 적었던가.
반박을 하고 싶었지만.
“너무 상심하지 말게. 지금의 운이 녀석은 나라고 해도 승부를 장담할 수가 없다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정말 하늘이 내린 무재가 아닌가. 뭐, 자네도 마찬가지겠지만 말이야.”
자신의 제자에 대한 자부심이 철철 넘치는 모습에 차마 입이 열리지 않았다.
“네…….”
어물쩍하게 대답하니 그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본론을 꺼낼 모양.
“내가 이리 찾아온 이유를 짐작하겠나?”
“제 대답은 똑같을 겁니다.”
“관여하지 않겠다?”
“저 혼자라면 모를까, 상단 사람들에게 특정 후보를 지지하라고 지시를 내리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래서야 선거라는 제도를 권유하신 스승님께 누가 될 뿐이니까요.”
대답을 들은 청룡당주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바로 그 말을 듣고 싶었네.”
“예?”
“자네가 다른 후보들을 지지한다는 성명만 내지 않는다면 만족한다는 뜻이야.”
그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을 이었다.
“사내답고 공정한 결정이네. 진 당주다워. 하나 아쉬운 결정이기도 하네. 이런 기회는 쉽게 찾아오는 게 아니니까. 무릇 일 문의 문주라면 여러 가지를 생각해야 하는 게 아니겠는가.”
“아…….”
“선배 당주로서의 조언이라네. 마음에 들면 담아 두고, 그렇지 않으면 비우게나.”
말을 마친 그가 전왕전을 떠났다.
후루룩.
홀로 차를 마시며 그가 남긴 여운을 느꼈다.
* * *
다음 날.
청룡당주가 왔다 갔다는 소문이 퍼졌는지 나머지 세 명의 당주들이 차례로 찾아오기 시작했다.
“내가 부당주가 되는 순간 서천상단은 서천의 모든 철을 독점하게 될 것이네!”
“거, 이상한 소리 좀 하지 마십시오. 독점은 무슨 독점입니까? 애초에 독점 생산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조건을 거는 회룡당주부터.
“부자가 되고 싶지 않나?”
“……돈은 저도 있을 만큼 있습니다. 당주님만큼은 아니더라도요.”
아예 돈으로 밀어붙이는 금룡당주.
“화란이를 버린 주제에 잘살고 있는 것 같군.”
“아니.”
친분을 가장한 협박으로 설득을 하려는 적룡당주까지.
“특정 후보를 찍으라는 명령을 내리는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나는 청룡당주에게 한 답을 똑같이 답습했고 세 당주의 반응은 각기 달랐다.
회룡당주는 실망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우리 사이에 너무하는구먼.”
“우리가 어떤 사이라고요.”
“가족이 아닌가!”
“지랄하지 말고 빨리 돌아가십시오. 매란아, 여기 소금 가지고 와라!”
“예!”
살짝 삐진 거 같긴 한데 워낙 뒤끝 없기로 유명한 사람이라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았다.
‘나중에 술이나 몇 병 보내 주면 풀리겠지.’
그래도 안 풀리면 하루 날 잡고 광산 투어를 가 주면 될 일이다.
금룡당주같은 경우는 조금 더 이성적인 반응을 보였다.
“누구를 찍으라는 지시를 내리지 않겠다니……. 이해가 가지 않는군. 이건 장사치의 결정이 아니야.”
“저는 장사꾼이 아니라 무인입니다만.”
“……깜빡했군.”
“아니, 당주님 죽을 뻔하셨을 때 제가 목숨 걸고 구해 드린 거 잊으셨습니까? 얼마나 됐다고…….”
“워, 워낙에 바빠서 말이네.”
“아무리 바빠도 구명지은을 잊어버리시다니요. 쯧쯧, 실망입니다.”
“…….”
꼬투리를 잡아 쏘아붙이니 꼼짝도 하지 못하고 퇴각한 금룡당주였다.
마지막으로 적룡당주는 앞선 두 사람과 다른 반응을 보였다.
“역시 그럴 줄 알았다.”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 것이다.
“안 놀라십니까?”
“제자인 네가 스승인 성주의 뜻에 반하는 일을 할 리가 없지 않으냐.”
“저는 원래 사부 말은 반만 듣고 반만 믿습니다만…….”
솔직히, 무공 빼면 신뢰도가 0%에 수렴하는 사부다.
“끌끌, 농담을 재미있게 하는구나. 두 사람의 유대가 비할 데 없이 깊은 걸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말이야.”
“…….”
뭔가 소문이 이상하게 퍼진 듯했다.
“내가 이리 온 건 네 영향력을 이용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럼요?”
적룡당주가 자신의 머리를 툭 치며 말을 이었다.
“네 머리를 이용하기 위함이지.”
생각지도 않은 답에 눈살을 찌푸리고 있으니 그가 조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선거라는 개념이 네 머리에서 나온 걸로 알고 있다. 맞느냐?”
“……그렇긴 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이길 수 있는지도 알지 않겠느냐.”
“…….”
역시 정보는 아무나 다룰 수 있는 게 아니다.
수백 수천 개의 사실을 조합하여 정보라는 결실을 만들어 내는 건 보통 머리로는 안 될 테니까.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과연 날카로우시군요.”
“끌끌끌, 역시 그럴 줄 알았느니라.”
“그런데 말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그를 도울 이유가 생기는 건 아니다.
“제가 왜 당주님을 도와야 합니까?”
“……손녀사위가 나를 도와야지 그럼 누굴 도우려고 했느냐?”
“아니.”
포기한 거 아니었냐고.
어이없이 쳐다보자 적룡당주가 특유의 살기 넘치는 웃음을 지었다.
“농담이다, 이놈아. 사적인 감정 따위를 생각해서 어찌 일 문을 이끌 수 있겠느냐.”
“…….”
“부성주에게는 감찰단주를 임명할 권한이 주어진다. 이게 무슨 뜻인지 아느냐?”
“성주의 삼대 권력 중 하나인 감찰권을 넘긴다는 소리가 아닙니까?”
“그걸 누가 가장 잘 해낼 것 같으냐?”
“……당주님이시죠.”
감찰권만 놓고 본다면 적룡당주만 한 인물이 없다.
적룡당은 비록 구성원의 숫자가 적은 탓에 넓은 지역의 정보를 얻지는 못하지만, 그 한 명 한 명의 능력이 뛰어나 깊은 정보를 얻는 데는 무림 최고라고 평가받고 있으니까.
적룡당주가 감찰단을 휘두르기 시작하면 목 잘릴 사람이 여럿 나올 것이다.
즉, 적룡당주가 타락하지만 않는다면 깨끗한 구룡성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부성주의 역할은 단순히 감찰이 아닌 걸로 알고 있습니다.”
부성주는 전방으로 떠난 사부를 대신하여 성의 중심을 잡아 주는 직책이다.
그렇기에 모든 사람의 존경과 신뢰가 필요한 직책이기도 하다.
사부 역시 그래서 선거를 추천한 것일 터고.
그런 면에서 보면 적룡당주는 부성주의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다.
개인적인 인품과 능력을 떠나, 세간에 적룡당의 이미지가 좋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를 찾아온 것이다. 해결할 방법이 있지 않으냐.”
“……그 정도 능력은 없습니다.”
내가 무슨 킹 메이커도 아니고 말이다.
“나를 부성주로 만들어 주면 화란이를 주마.”
“전혀 필요 없는데요?”
“…….”
하지만, 적룡당주는 포기하지 않았다.
“오 년간…… 아니, 내가 부성주로 있는 기간 동안 무조건적인 협조를 약속하마.”
“정보라면…… 하오문 거 쓰면 되는데요? 제가 걔들한테 빚을 좀 지워 놔서 말입니다.”
정보를 미끼로 나를 꾀려 했고.
“너를 차기 성주로 밀어주마.”
“저희 사부…… 오십도 안 됐습니다. 앞으로 오십 년은 더 사실 거 같은데 그때까지 살아 계실 수나 있으십니까?”
“이놈이!”
먼 훗날에 대한 공수표를 던지기도 했으며.
“돈을…….”
“돈은 아마 제가 더 많을 겁니다.”
“……내성 무인들의 약점들을 건네주마.”
“그런 건 또 언제 모았답니까? 아니, 애초에 그거 불법 사찰 아닙니까?”
마구잡이로 미끼를 던지기까지 했다.
“그냥 좀 도와줘라. 이놈아!”
결국, 그는 인정에 호소했다.
‘이제 없나 보군.’
사실, 나는 아까부터 그를 도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와 나는 반쯤은 깐부와도 같은 사이였으니까.
적일이삼 형제들과도 친하고.
무엇보다.
‘선거 운동이라…… 면동초등학교 6학년 11반 반장 출신인 내가 나서지 않으면 누가 나설 수 있을까.’
재미있을 거 같았다.
그럼에도 이렇게 시간을 끈 이유는 간단했다.
‘사내답고 공정한 결정이네. 진 당주다워. 하나 아쉬운 결정이기도 하네. 이런 기회는 쉽게 찾아오는 게 아니니까. 무릇 일 문의 문주라면 여러 가지를 생각해야 하는 게 아니겠는가.’
청룡당주의 조언에 따라, 뜯어낼 수 있을 때 최대한 뜯어내기 위함이다.
물론, 사내대장부가 되어 이 정도로 만족할 수는 없는 노릇.
“위 조건들과 더불어 일 하나만 해 주신다면 돕겠습니다.”
‘아임 스틸 헝그리’였기에 하나의 조건을 추가했다.
“……무엇이냐?”
“보물찾기입니다.”
고금제일대도, 비천호리 북궁추산의 유산을 찾을 때가 됐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