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meless martial arts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295
294화 한중(4)
정금상인(正金商人) 주효용.
북천 최고의 상단인 북성상단을 이끄는 대상인으로, 별호에 정(正)자가 들어간 것처럼 협잡질과 거리가 멀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 그가 직접적으로 한중상련의 매각 의사를 물어봤다는 건 무언가 노림수가 있다는 뜻일 터.
물론, 그것도 내가 팔아야 가능한 거지만.
“글쎄요. 한 십팔억 냥 정도면 팔 거 같은데요.”
“……팔 생각이 전혀 없으시군요.”
“팔 생각이 없는 물건에 값을 물은 건 상방주님이시죠.”
“그만큼 중요하니까 여쭤본 거라 생각해 주십시오.”
“그거야 알아서 하시고.”
“…….”
“술이나 한잔하시죠.”
쪼르르.
은근한 눈빛이 나를 살핀다.
시선을 피하지 않고 잔을 털어 넣으니 그가 피식하며 웃었다.
“당주님을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아까보다 진솔한 목소리에 경계심이 해제되었다.
“왜요? 구룡성의 후계자라서요?”
“저는 무황성의 대공자가 불러도 가지 않는 사람입니다.”
“허어, 그거 큰일이군요. 예전에 스치듯 보니까 사람이 꽤나 뒤끝 있어 보이던데…… 상방 식구들 생각해서라도 부르면 얼른 달려가시는 걸 추천합니다.”
바로 옆에서 듣고 있던 검군이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으하하하! 정답이군! 사람 보는 눈까지 대단하니 정말 방심할 수가 없겠어!”
이래 봬도 전생에서 각종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단련한 진상 감별사가 아니겠는가.
비록 남경에서 우도독을 판단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그렇게 특별한 페이스만 아니라면 대체로 들어맞는다.
“돌아가신 검선은 자주 찾아가신 걸로 아는데요? 정도맹에 기부금도 많이 내는 걸로 알고 있고요.”
“그건 그분의 지위와 명성 때문이 아니라, 사람으로서의 존경심으로 찾아뵌 겁니다. 기부금은 백성들을 위해 내는 것이고요. 저희가 채워 준 만큼 백성들의 부담이 적어질 테니까요.”
“그러면 저는 왜 보고 싶어 하신 겁니까? 물론 기부금이라면 환영입니다만…….”
“상인으로서 대상인을 찾아뵙는 건 당연한 게 아니겠습니까.”
“제가요?”
그가 짐짓 진지한 눈빛으로 답했다.
“중원 전체의 비단과 면포를 삼 할이나 쥐고 있는 서천상단, 서역과의 상행에 없어서는 안 될 비단길, 사천과 운남 상계를 지배하고 있는 한중상련, 사실상 남부 최대규모의 표국인 충렬공파……. 이 모든 걸 당주님께서 소유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
듣고 보니 내가 상인인지 무림인이 헷갈릴 정도였다.
“하나만 해도 평생에 걸쳐 키워야 할 것을 단 오 년도 안 되어 이뤄 내셨으니 한 명의 상인으로서 찾아뵙고 싶어질 수밖에요.”
“……잘 모르셔서 하시는 말씀이신 거 같은데, 한중상련은 물려받은 거나 다름없고 서천상단은 백룡당이 쫓겨날 때 싸게 사들였습니다. 비단길이야 원래 있던 걸 보수한 것뿐이고요. 그리고 충렬공파는 제가 주인이 아니라 참여한 세 문파가 주인입니다.”
“십 년 전, 제가 북성상단을 막 이어받았을 당시 북천 최고의 상단은 구전상단이었습니다.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요.”
힘과 능력이 없으면 지키기 힘들다는 상계의 격언을 돌려 말한 것이다.
“운이 따라 주고 능력 있는 사람들이 도와줘서 잘된 겁니다. 저는 시작만 도왔을 뿐이지 운영에도 참여도 하지 않았습니다.”
“운은 실력이고 인복은 능력이지요.”
“크흠, 제 얼굴에 금칠을 하시는군요.”
“당주님께서 겸손하신 겁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슬슬 본론이 나올 것 같아 주변에 눈치를 주었다.
“자자, 이리 모인 것도 인연인데 저기 무황성에서 온 친구들과 한잔하자고.”
내 뜻을 알아챈 종극린이 간부들을 이끌고 무황성의 무사들에게로 향했다.
덕분에 대전 안에 남은 사람이라곤 나와 유소평, 검군과 주효용뿐이었다.
검군이 슬그머니 운을 띄웠다.
“성 안팎에서 우려하는 사람이 많네.”
“무슨 우려요?”
“구룡성에 대한 우려일세.”
“……우리가 몸집을 키우려 한다고 생각하고 있나 보군요.”
검군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상방주님께서도 같은 생각이실 테고요.”
“그렇습니다.”
주효용 역시 구룡성이 상계를 일통하려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사실, 충분히 오해할 만하다.
정도맹의 도움을 받았다 하나 십마련이란 마도의 종주를 완전히 작살낸 구룡성이다.
그런 세력이 돈을 쓸어 담는 걸 보면 불안할 터다.
아까 내게 무황성주의 사위가 되라고 권유한 것도 그래서였을 테고.
또한, 만에 하나 벌어질 위험을 저지하기 위해 성장 동력인 한중상련을 인수하려 했을 것이다.
유소평 역시 그들의 오해를 짐작했는지 목에 핏대를 세우며 역설했다.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 저희 당주님……! 그런 야망가 아닙니다. 그저 놀고먹는 게 꿈인 한량 중의 한량입니다. 솔직히 절대고수가 된 것도 순전히 운발……. 켁!”
털썩.
“…….”
쓰러진 유소평을 뒤로하고 앞에 앉은 두 사람을 바라봤다.
“크흠, 조금 과장되긴 했는데 틀린 말은 아닙니다.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된 것뿐이지 천하를 일통하겠다든지, 상계를 일통하겠다든지 하는 거창한 야망은 없습니다. 저는 그냥 조용히 잘 먹고 잘사는 게 목푭니다.”
대답을 들은 주효용의 눈빛에 힘이 어렸다.
40대 초반의 나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눈빛이 깊다.
그가 그런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자 온몸에 개미가 기어 다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사실이군요.”
“당연히! 사실이…… 맞긴 한데……. 그걸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감입니다.”
“…….”
“제가 원래 감이 좋습니다.”
“……그렇군요.”
이 사람도 장사를 오래 해서 그런지 진상 감별사 스킬이 있나 보다.
“하나, 사람이란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일이지요.”
“그래서요?”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 검군이 나섰다.
“안전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네.”
“무황성주의 사위가 돼라?”
“그게 싫으면 한중상련을 팔든지.”
“제가 왜 그쪽 말을 따라야 합니까?”
“천하의 안녕을 위해서지.”
“……그렇게 하면 천하가 안녕 하고 인사해 줍니까?”
“적어도 구룡성에 의해 혼탁해지지는 않겠지.”
계속되는 헛소리에 정신이 아찔했다.
물론, 그의 말대로 내 생각이 바뀌어 천하를 노릴 수도 있겠지.
회까닥 돌아서 성주위를 계승 중입니다! 사부님! 하면서 막 반란도 일으키고, 무사들을 싹 긁어모아 천하 일통을 위해 출병할 수도 있을 거고.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이건 말이 안 되지 않나.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성주의 직전 제자인 나를 상대로 협박을 늘어놓는다는 건 구룡성을 무시하지 않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까, 구룡성의 세력 확장이 껄끄러우니 한중상련을 팔아라? 이렇게 되는 겁니까?”
“대충 들어맞네.”
검군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기세를 끌어올렸다.
“지랄하고 있네.”
“……말이 심하군.”
“당신들 말은 안 심하고?”
“크게 다칠 수도 있다.”
“감히 여기서?”
쿠웅.
수 배는 무거워진 대전 안의 공기.
박차고 들어 올 준비를 마친 육학이 문 바로 옆에 섰다.
분위기가 심각해지자 주효용이 나섰다.
“당주님의 세상은 어디까지입니까?”
뜬금없는 말에 시선을 옮기니 그가 목에 핏대를 올리며 설명을 시작했다.
“북방에 가 본 적이 있으십니까?”
“소문만 들었지 가 본 적은 없어.”
“그곳은…… 지옥입니다. 먹을 게 없어 서로를 약탈하고 저항하면 목숨을 빼앗습니다. 들판에는 시체들이 넘쳐나고 약한 자는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노예가 되는 세상입니다.”
“…….”
“중원도 그런 지옥이 되는 걸 막기 위해 무황성의 오천 무사들은 수만에 이르는 오랑캐들을 막고 있고요. 만약 구룡성이 무황성의 등을 찌른다면 전 중원은 지옥이 될 게 자명합니다.”
“…….”
“그래서 제가 검군님과 함께 온 겁니다. 천에 하나 만에 하나의 가능성을 없애기 위해서 말입니다.”
“하나 묻지.”
“……얼마든지요.”
“당신이 나서는 이유가 뭐지? 진정 천하의 안녕을 위해선가?”
“…….”
“대답하기 싫은가 보군. 둘 다 이만 돌아가. 계속 보고 있다간 죽여 버리고 싶어질 거 같으니까.”
“이놈이……!”
“천하의 안녕을 위해서가 맞습니다. 사람이 있어야 산서상방도 있으니까요.”
그의 뜨거운 눈빛을 마주치는 순간, 거짓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믿어 주지.”
나는 검군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따위 조건을 받아들일 수는 없어. 정 불안하면 힘을 키우든가 해. 아니면 제대로 한판 붙어보든지.”
“처음 봤을 때부터 느낀 건데 말이야.”
“말해 보슈.”
“자네 참 마음에 들어. 사내답고 호탕하고, 그리고 내가 본 그 어떤 젊은이보다 강하지. 아마 십 년 정도 지나면 천하에 적수를 찾기 힘들 게야. 그래서 이리 찾아온 것이고.”
“…….”
“하나, 그런 점이 자네의 명을 단축시킬걸세.”
“영감은 입조심 못 해서 이 자리에서 뒤지게 생겼으니 비긴 걸로 하시죠.”
“미친놈.”
주효용이 끼어들었다.
“후방의 안전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무황성은 사자맹과 동맹을 맺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와 사자맹의 관계를 알고서 하는 소리겠지?”
구룡성이 아니라 우리라고 표현했다.
북궁가의 존재를 은근슬쩍 말한 것이다.
“예,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맺어. 동맹.”
두 사람이 당혹스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되면 나는 당신들이 걱정하는 일들을 현실로 가져올 거야.”
“진 당주! 아까도 말했듯이…….”
“중원이 지옥이 된다고?”
“……그렇습니다.”
“그걸 어떻게 확신하지?”
“…….”
“무황성이 강하다 한들 구룡성과 정도맹의 힘을 합친 것보다 강할까? 아니, 구룡성보다 강하다고 할 수 있나? 우리가 오랑캐들에게 질 거라고 어떻게 확신하지?”
나는 침묵에 빠진 두 사람에게 천천히 말했다.
“당신들만 천하를 위한다고 생각하지 마. 북방이 지옥이라고? 안휘는 평온할 거 같아? 웃기지 마. 그곳은 부모가 자식을 팔아먹는 땅이다. 열 냥을 벌면 아홉 냥을 뺏기는 곳이라고. 아, 가 봤냐고? 물론 가 봤지, 거기서 나서 자랐는데.”
“…….”
“내 눈엔 그런 곳과 손을 잡는다는 당신들도 천하의 적이다.”
말을 마치고 손짓하니 육학을 비롯한 전왕문의 간부들이 몰려왔다.
“손님들 피곤하시겠다. 숙소로 안내해 드려. 두 분께선 날이 밝는 대로 떠나십시오. 마지막 배려입니다.”
그렇게 혼란스럽기 짝이 없는 그 날의 만남이 종료되었다……라고 생각했는데.
검군 영감탱이는 새벽까지 찾아와서 사람을 귀찮게 했다.
정말 징글징글한 인간이다.
“……이 밤에 웬 일이슈?”
“잠시 이야기를 나눌까 해서 말이야.”
“나가서 하시죠. 금방 준비하겠수다.”
십중팔구 싸움이 벌어질 것 같아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용린갑에 전주시에 천라포망, 산초 폭탄 버전 7까지 모두 챙겼다.
그렇게 잠시 걷다 연무장 구석에 이르러서 걸음을 멈췄다.
휘이잉.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폭풍 전야의 고요란 말이 떠올랐다.
물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시뮬레이션을 마친 나다.
만약 싸움이 일어나면 우리 애들은 무황성과 산서상방의 인원들을 제압하여 인질극을 펼칠 것이고, 나는 그사이 검군을 떡이 되도록 두들겨 패는 것으로 싸움을 마무리할 생각이었다.
‘후우…….’
심호흡을 한번 하고 손을 내밀었다.
“덤벼! 이 늙은 영감탱…….”
“미안하네.”
“예?”
할아버지가 그러면 제가 뭐가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