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meless martial arts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361
360화 사자전쟁(2)
환생 후 처음 보는 잉글리쉬의 등장에 나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물론, 유라시아 대륙 서쪽에 영국이 있으니 영어가 존재하는 세상이긴 하다.
하지만 그 언어가 이곳까지 전해질 확률은?
빳빳한 새 종이에 적혀 있을 확률은?
0%에 수렴한다는 데 내 전 재산과 오른팔을 걸 수도 있다.
더군다나 자세히 살펴보니 이상한 점은 그것뿐만이 아니다.
서찰에 적혀 있는 영어를 자세히 살펴보니 상당히 어색했던 것이다.
꼭.
‘쓴 게 아니라 그린 것처럼.’
그렇다면 이건 원본이 아니라 누군가 베껴 온 거라는 뜻인데······.
덕분에 좋지 않던 가독성이 더욱 안 좋아져 아예 읽기조차 힘들었다.
“음······.”
“알 것 같은가?”
답답함에 눈살을 찌푸리고 있으니 단운이 기대에 찬 목소리로 물어봤다.
“아니. 그냥 고민하는 척해 본 거야.”
“······그렇군.”
단운을 속이기 위해서 거짓말한 게 아니다. 진짜 몰라서 보인 반응이었다.
전생에서도 토익 500점을 넘겨 본 역사가 없는데, 환생 후 삼십 년 가까이 지난 지금은 알파벳도 가물가물하다.
한참을 살핀 후 깨달았다.
‘전혀 모르겠다.’
나는 이걸 해석할 능력이 없다는 걸.
다만, 서찰에 적혀 있는 문서의 형식을 보니 편지와 일기, 그리고 무언가에 관한 설명이 섞여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 기록이 누가 남긴 것이냐가 문제인데······.
‘설마 영국인이 여기까지 와서 일기를 적을 리가 없고. 만에 하나 그랬다 해도 그걸 사자맹에서 고이 보관할 리가 없다.’
그렇다면 남은 건 한 사람.
‘남궁무영.’
남궁가의 선조이자, 삼백 년 전 초대 청가장주에게 현대 의학의 개념을 전해 준 사람.
부르르.
그를 떠올리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나와 같은 환생자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확신이 되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서찰의 출처가 사자맹의 고위층이니 이건 빼도 박도 못하는 사실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이건 건네준 이는 왜 영어로 된 문서를 베껴 온 걸까?
‘혹시 이거 제왕검형 영어판인가? 근데 무공이 영어로 번역이 되나?’
잠시 고민하던 나는 고개를 저었다.
뭐 영어를 알아야 시도해 보든가 말든가 하지. 유치원생보다 못한 영어 실력으론 뭔 내용인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사자맹주에게는 이 기록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거다.
그가 사자맹의 명운을 건 전면전을 택할 만큼.
“이거 며칠만 가지고 살펴봐도 되나? 나머지 부분은 단 형이 가지고 있고.”
나는 단운에게 대여를 요청했다.
시간을 두고 살펴 이 문서가 뭔지 밝히기 위함이었다.
혹시 아는가.
보다 보면 전생에서 배웠던 영어가 기억날지.
“편할 대로 해라.”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던 단운이 잠시 눈살을 찌푸리더니 되물었다.
“한데······.”
“응, 말해.”
“왜 아까부터 반말이지? 분명 얼마 전까지는 대충이나마 공대를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에이, 우리 사이에 뭘 또 따지고 있어. 이제 보니 단 형, 쪼잔한 구석이 있네?”
“우리가 어떤 사이인데 그러나?”
“그야······ 앞으로 볼 날이 많은 사이지.”
짧은 시간에 생각을 정리하여 말하자 단운이 의아해하며 되물었다.
“앞으로 볼 날이 많다?”
“생각해 봐.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나나 단 형이나 앞으로 몇십 년은 더 살 거 아냐?”
“무인이란 칼날 위에······.”
“에이, 그거야 잘 피해 다니면 되지. 그리고 솔직히 지금도 적수를 찾기 힘든데 더 지나면 뭐 비명횡사할 일이나 있겠어? 오히려 척진 놈들이 단 형을 피해 다니겠지.”
“······.”
“여하튼, 내 말은 앞으로 몇십 년은 함께할 사이라는 거지. 좋은 일에는 축하해 주고 나쁜 일이 생기면 위로해 주고 서로 위험할 때는 등도 지켜 주고. 든든하니 좋잖아. 안 그래?”
피식.
이야기를 다 들은 단운이 작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마음에 드는군. 앞으로 잘 부탁한다.”
“그럼, 나만 믿으라고. 내가 곁에 있는 한 단 형의 앞날은 탄탄대로라니까?”
나는 득의양양하게 웃으며 그의 손을 붙잡았다.
나중에 성주 되면 미친 듯이 부려 먹어야지.
‘그나저나 사부는 뭐 하고 있으려나······.’
* * *
귀양에서 시작된 구룡성의 진격은 빠르고 단호했다.
그들은 빠른 속도로 호남에 입성해 곧장 서쪽을 향해 진군을 이어 나갔고 곧이어 일단의 무리와 마주했다.
바로 동오패가 이끄는 호연회의 이천 무사였다.
누가 봐도 전의가 불타오르는 그들의 앞으로 북궁백이 나섰다.
그리고.
“호연회 이천! 힘을 보태기 위해 달려왔습니다!”
손백이 북궁백의 앞에 부복하며 외치자 구룡성의 모두가 함성을 질렀다.
우와아아-!
어지간한 대문파 네다섯 개를 합친 규모의 전력이 합류하는 것은 모두의 사기를 치솟게 하기 충분했다.
한편, 그런 모습을 보고 있던 문상은 놀란 눈빛으로 그 광경을 바라봤다.
무전이 심어 놓은 씨앗이 발아하여 어느새 거목이 된 걸 직접 목격한 탓이다.
‘이런 일이 생길 줄 알고 호남을 돕자고 한 건가······?’
문상의 입장에선 합리적인 추측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생판 남이었던 청가장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 이유가 없었고, 당주도 아니었던 그가 성주를 설득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또한, 반야보.
촌수로 보나 역사로 보나 전룡당의 든든한 한쪽 팔이 될 수 있는 그들을 굳이 호연회에 붙일 이유가 없지 않은가.
“허, 허허허허.”
문상이 모든 것을 깨달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웃음을 터뜨렸다.
주변의 당주들이 갑자기 왜 이러나 싶은 눈빛으로 쳐다봤지만, 그는 전혀 상관하지 않고 웃었다.
‘천하를 오시하는 무공에 앞날을 내다보는 시야까지 갖추었다. 이런 괴물이 있을 줄이야!’
그만큼 감탄했기 때문이다.
사실 당사자인 무전은 일이 이렇게 될지 전혀 몰랐다.
청가장주야 청소소의 아버지이니까 구하러 달린 것이고, 당시 구룡성주였던 독왕을 설득한 건 그냥 사자맹 놈들이 꼴 보기 싫다는 이유가 컸다.
반야보의 경우, 훗날 호연회를 전룡당 호남 분타로 만들기 위한 계략에 불과했고.
하지만 결과가 좋으면 의도도 좋게 보이는 법. 문상은 무전이 호남을 도운 이유를 크게 곡해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오해를 한 인물은 또 있었는데.
콰앙!
바로 사자맹의 총군사인 이여령이었다.
호남 곳곳에 파견되어 있던 사자맹의 간자들은 호연회가 구룡성에 합류하자마자 곧바로 맹에 소식을 보내왔다.
그 전서를 받은 그녀는 분을 참지 못하고 탁자를 부숴 버렸다.
“패군······! 네놈이 끝까지 발목을 붙잡는구나.”
패군이란 이름 앞에 이여령은 또다시 절망했다.
어제 크게 마음먹고 찾아간 사자전에서 문전박대를 당한 터라 더더욱 그러했다.
하나, 그녀는 사자맹이란 대세력의 총군사.
자신이 감정에 휩싸여 그릇된 판단을 내리면 어떤 결과로 돌아올지 잘 알고 있었다.
‘어차피 벌어질 일이 벌어진 거다. 해야 할 일에 집중하자.’
이미 쏟아진 물이었다.
흥분해 봤자 판단만 그르치게 될 것이고 걱정해 봤자 바뀌는 건 없다.
차라리 그 시간에 대책을 세우는 게 백번 낫지.
곧장 휘하 군사들을 불러 모으려던 그때.
‘만약 전면전이 터지게 된다면 제 방 가장 안쪽 서랍을 살펴 주십시오. 참고할 만한 계책을 적어 놨습니다.’
그녀는 남경으로 떠난 백무하의 마지막 말을 떠올렸다.
백무하의 성정상 과격하기 짝이 없는 계책일 것이 분명했지만, 지금은 찬물 더운물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던바.
그녀는 서둘러 지하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이건······?’
백무하의 계책을 확인한 그녀는 기절할 듯 놀랐다.
그만큼 충격적이었던 탓이다.
그녀 역시 완벽하다고 생각되는 수비 전략을 세워 놨으나 백무하의 것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문제는 그 계책이 너무나 극단적이라는 데 있었다.
강서성 전체에 대한 청야 전술.
마을과 도시, 논밭에 불을 지르고 우물을 메운다는 전략.
‘좋은 계책이지만, 이렇게 되면 살아남는 양민이 거의 없을 텐데?’
하지만 백무하가 남긴 서찰을 끝까지 읽고 이여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맞아. 자금은 작은 것에 신경 쓸 때가 아니다.’
결단을 내린 그녀는 곧장 군사들을 소집해 첫 번째 명령을 하달했다.
“지금 즉시 강서성의 모든 것을 불태운다.”
“불태운다면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지······.”
“모든 것이라는 말 못 들었나? 도시 마을, 논밭 전부 다.”
“처, 청야 전술을 쓰자는 겁니까?”
“맞아. 구룡성 놈들에게 쌀 한 톨, 물 한 모금도 내주지 않을 생각이야.”
“하, 하오나 그렇게 되면 그곳에 기반을 둔 아군의 사기는 곤두박질칠 것입니다.”
“보상해 주면 끝날 문제다.”
“그러면 그곳에 사는 백성들은 어찌 산단 말입니까? 땅이 있어도 사람이 없다면 그 무슨 소용이······.”
“흥, 지금 맹의 존폐가 걸려 있는데 백성이 우선인가?”
“······하오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 자리에서 떠나. 괜히 방해만 하지 말고.”
“죄송합니다.”
반론을 제기했던 이가 고개를 떨구었다.
떠나는 순간, 기밀을 알고 있는 자신을 살려 둘 리가 없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 그를 향해 이여령이 조소를 지었다.
“그리고 너무 걱정하지 마. 강서성의 백성 중 죽는 이는 절반도 되지 않을 테니까. 오히려 그들 때문에 구룡성은 발목이 묶이게 될 거야.”
“······.”
“정파 놈들은 곤란에 처한 이를 버리지 못하는 법이니까.”
이여령은 구룡성이 다가오고 있는 서쪽을 바라봤다.
핏빛 노을이 휘황찬란하게 하늘을 수 놓고 있었다.
고개를 돌린 그녀가 휘하 군사들을 바라보며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자! 그럼, 다음 계책을 이야기해 볼까?”
* * *
호연회가 합류한 지 보름.
두웅! 두웅! 두웅!
빠른 속도로 진군한 구룡성의 이만 군세는 어느새 포양호의 지류에 이르렀다.
강서성의 경계를 돌파한 지 사흘이 지났으나 사자맹은커녕 사파 잡놈들의 꼬리조차 보지 못한 상태.
문상을 비롯한 구룡성의 수뇌부는 이 상황을 극도로 경계했다.
매복과 기습이 있을 거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첫 번째 현에서 그들이 마주한 건 전혀 예상치 못한 광경이었다.
화르륵!
마을이 통째로 불타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그저 사물만 불타고 있는 게 아니라는 데 있었다.
“아악-! 살려 줘!”
“주화야. 주화야, 어딨니!”
“너무 뜨거워! 누가 좀 도와줘!”
“아악! 어머니! 제발 눈을 뜨세요!”
그야말로 목불인견의 참상.
가히 초열지옥에서나 볼 법한 광경에 놀란 구룡성의 무사들이 한달음에 달려 나갔다.
“불을 꺼라!”
“여기 사람이 쓰러져 있다!”
“아이부터 구해!”
“이익! 우물이 막혀 있다!”
“사람부터 구해!”
그나마 다행인 건 구룡성의 무사들이 수가 많고 실전 경험이 풍부하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침착하게 사람들을 구출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을 안의 백성들을 모두 구해 낼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으흑! 대협들의 은혜를 뼈에 새기겠습니다!”
하나같이 고마워하는 백성들의 모습.
일견 보기에는 아름다운 광경일 수도 있으나 문상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 전쟁······. 쉽지 않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