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 became the younger sister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25
25화
땀에 젖은 앞머리를 거칠게 쓸어 올렸다.
딱딱한 도로에 닫는 발이 저려왔지만 달리는 다리는 절대 멈추지 않았다.
1차 방어선과 2차 방어선 사이의 딱 중간.
피와, 불과, 고기 타는 매캐한 냄새들이 고이기 시작했다.
방어선들이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바로 이렇게.
샤아. 샤아아아.
거대 사마귀들이 입에 달린 톱날을 차칵댔다.
주변에 보이는 마수는 최소 열댓 마리.
포위됐다.
A+급 마수, 맨티스.
높은 등급의 포탈일수록 하나의 마수만 등장하지 않는다.
우리들이 일컫기로는 일명 잡몹.
상대적으로 낮은 등급의 마수들도 함께 튀어나오기 때문에 피해가 그만큼 커졌다.
그러나.
‘애초부터 포탈의 등급이 너무 높아.’
지금 나오는 잡몹들의 등급은 최소 A.
내가 상대할 수 있는 레벨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나 파도!!”
방어선 안을 내 맘대로 돌아다니기 위해서는 이 스킬이 필요했다.
【Lv.5 마나 파도 / 신성한 마나의 물결로 적들이 쓸려나간다. 1초간의 스턴 효과를 얻을 수 있다.】
5레벨을 찍어야만 얻을 수 있는 부가 효과, 스턴.
내가 이거 때문에 또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지.
두웅!
지팡이 끝으로 눈이 멀듯 한 빛이 모인다.
공기가 한순간 파동을 만들기 위해 찌그러졌다 펴진다.
그 압력에 팽팽한 고무줄 울리듯 주변이 짜르르 떨린다.
파르르르륵!
내 반경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거대한 파도에 쓸리는 것처럼 떠밀려간다.
그게 도로에 박힌 아스팔트든지, 다리가 낫으로 만들어진 거대 사마귀든지.
그러나 상황은 촌각을 다툰다.
1초.
그 눈도 깜빡하지 못할 사이.
찰나를 놓치지 않고 빈틈을 노려 달려나갔다.
차칵대는 다리들이 내 목을 노리고 허우적댄다.
뾰족한 더듬이가 뺨 옆을 스쳤다.
사악.
무언가 베인 감각과 함께 열감이 오른다.
통각만이 이 상황이 ‘실제’라는 것을 자각시켜 준다.
“즉발!”
쌔애앵―!
어디선가 날아온 푸르스름한 초록 화살이 내 머리 위를 스쳐 사마귀의 안면을 꿰뚫었다.
이미 누가 차출된 헌터고, 누가 아직 대피하지 못한 민간인인지 모를 정도로 사람들이 뒤섞였다.
나를 구해준 사람이 누구인지, 방금 목이 잘린 저 사람은 아닐지.
시시각각으로 상황이 변했다.
곳곳에서 비명과 공격, 울음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지옥도 안에 들어와 있는 것 같다.
나는 마나 물약을 몸에 쏟아 붓다시피 들이켜면서도 짧게 그런 생각을 했다.
머릿속과 가슴이 터질 것처럼 복잡해졌다.
‘이겸이 주서윤을 왜 2차 방어선으로 보냈지?’
주서윤은 화랑의 주요 전력이다.
이겸이 1차 방어선의 상공을 책임지고 있다면, 주서윤은 화랑 길드원들을 진두지휘하며 1차 방어선의 땅.
평지를 책임지고 있어야 당연했다.
근데 그런 그녀를 2차 방어선으로 보냈다는 건 이겸이 주서윤을 믿지 못한다는 뜻과도 같았다.
좌천을 선고했음이나 다를 바 없는 처신이었다는 소리다.
이해할 수 없다.
아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설마, 벌써 틀어졌나?’
쎄한 불안함이 머리끝부터 몰려왔다.
어떻게든 주서윤을 만나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달리는 다리에 조금 더 힘을 줘 땅을 박찼다.
툭. 투투둑.
하늘에서 잘린 머리통들이 우박처럼 쏟아졌다.
***
“괜찮으십니까, 2차 방어선 구조팀입니다.”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여기요! 여기도 사람 있어요!! 제발요, 도와주세요!!”
“들립니다! 어느 쪽에 계신지 설명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무너진 건물 잔해 사이.
파묻혔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끌어올려 졌다.
개중에는 팔을 잃은 노부를 부축한 딸.
발목이 잘린 남자도 있다.
주서윤은 눈살이 찌푸려졌지만, 겉으로 티내지 않았다.
대개 건물 안으로 대피한 사람들은 비각성자들이다.
포탈이 터졌을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죽을 힘을 다해 달리는 것뿐이라는 걸.
이들은 알지 못한다.
안도감과 믿음이 떠오른 표정들을 보며 조금 더 조급해졌다.
지금 이 순간에도 죽어 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구할 수 있는 건.
‘나뿐이다.’
서둘러 구출한 비각성자들을 추슬러 일으켜 세웠다.
“여기도 안전지대는 아닙니다. 3차 방어선까지는 가야 대피 지역에서 빠져나가실 수 있을 겁니다. 제가 보호할 테니 믿고 따라와 주십시오. 가능하시겠습니까?”
“예, 예예. 가겠습니다. 얼른…….”
“저한테 기대세요. 같이 살아 나가야죠.”
중년의 여성이 발목 잘린 남성에게 어깨를 내밀었다.
생존자들 사이에서 어떤 비장함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이미 한 번 생명을 빚진 사람들은 맹목적이다.
주서윤은 그것에 잠시 감사해졌다.
‘방어선 구조팀. 그런 게 있을 리가.’
구조팀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도 3차 방어선을 탈출한, 운 좋은 비각성자들을 바깥으로 인계하는 정도일 뿐.
방어선은 사람이 아닌 국가를 위한 것이다.
서울이 전복되지 않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주서윤은 진정 지켜야 할 것이 뭔지 모르는 이 세상이 점점 더 환멸스러웠다.
그래도 그만은.
그 사람만은.
‘나와 같다고 생각했는데.’
조심스럽게 건물을 빠져나왔다.
어둠으로 뒤덮인 상공이 간헐적으로 번쩍거렸다.
길바닥에는 곤죽이 된 살덩이들이 낭자했다.
비각성자들은 헛구역질을 멈추지 못했다.
그러나 기분이 좋지 않은 건 주서윤 역시 마찬가지였다.
떨어져 나온 누군가의 안구 한쪽과 눈이 마주쳤다.
나를 쳐다보고 있다.
구하지 못했다고.
또 구하지 못했다고 힐난하고 있다.
손바닥에 손톱이 파고들어 아플 정도로 주먹을 쥐었다.
“가시죠.”
***
“진짜 죄송한데 떨어져 주실래요.”
“어허! 몇 번이나 말해. 지금 상황이, 혼자 돌아다니면 위험하다니까. 하여간 요즘 여자애들은 겁대가리만 없어가지고…….”
“아…… 살해 욕구 참기 힘드네…….”
“무, 뭐라고?”
“혼잣말인데요.”
이걸 진심으로 죽일 수도 없고.
등 뒤에 딱 붙어 따라오는 남자를 신경질적으로 떠밀었다.
2차와 3차 방어선 사이, 인근 도로.
아직 마수들이 여기까지 닿진 않았다.
지옥 같던 1, 2차 방어선 근처보다는 고요한 축에 속했다.
가끔 펄쩍펄쩍 튀어나오는 섬니나, 날아오는 맨티스를 피하면 그럭저럭 수색하며 걸어 다닐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3차까지 내려올 생각은 아니었기 때문에…….
경계선 헌터들을 마주치자 조금 당황했다.
아니. 어쩌면 차라리 다행이었다.
주서윤의 행방은 알 수 있었으니까.
경계선 헌터들의 말에 의하면, 주서윤은 계속해서 2차 방어선 안과 경계를 오가며 사람들을 구출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구출팀끼리 연락망은 없나요?”
“어…… 있기야 한데요.”
“한데요?”
“주서윤 헌터님과는 닿지 않을 겁니다. 정식 구출팀이 아니라서요.”
그 말은 즉, 주서윤은 지금 단독행동을 하고 있다는 소리였다.
그 순간 주서윤의 목소리가 뇌리처럼 스쳐 지나갔다.
「내가 더 강했다면…….」
가슴이 답답해졌다.
실마리는 차곡차곡 쌓이는데, 도대체 주서윤과 이겸이 ‘왜’ 그러는지 아직도 보이지 않았다.
무작정 주서윤을 찾아야겠다는 마음만 조급해, 다시 1차 방어선 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던 때.
“허, 헌터?”
이 자식을 만났다.
도로 한복판에 넘어져 몸이 반쪽 나려던 걸 구해준 게 큰 오판이었다.
봐놓고 무시하기도 그렇고.
근처가 한산했던 것도 그렇고.
잠깐 도망갈 틈을 벌어주기 위해 사마귀의 머리를 노려 염화를 쏘아 보냈다.
그러나 놈은 그런 내가 구세주로 보이기라도 했는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신이시여!”
소리치며 졸졸 따라다니기에 이르렀다.
남자는 자신의 이름이 최규열이고, B등급 헌터라고도 소개했는데, 일단 믿을 순 없었다.
첫인상이 너무 초라해서.
최규열은 자기도 신상정보를 깠으니 은근히 내 자기소개를 원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나는 먹금했다.
불필요한 신상털이는 재앙을 불러올 뿐이다.
그러나, 최규열은 쉽게 물러서지 않았는데.
“저어…… 헌터님, 실례지만 등급이 어떻게 되시는지요?”
슬슬 눈치를 보며 돌직구로 물어왔다.
여우 같은 새끼.
아마 마수들과 적당히 거리를 조절하며 은신과 도망을 반복하는 내가 이상하게 여겨졌던 모양이었다.
아저씨. 그러면 혼자 가시던가.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주위를 알짱대는 게 상당히 거슬렸다.
나는 이 기회에 놈을 아예 떨궈내자 싶어서 썩은 얼굴로 이빨을 깠다.
“F.”
“예?”
“F라고.”
분명 그랬던 과거가 있었지.
그러나, 자기 갈 길을 찾아 떠날 거라는 예상과 다르게 상황은 지금처럼 발전했다.
“가, 같이 가!”
최규열은 떨어지지 않았고, 주서윤은 만나지도 못했다.
자기가 이 세계를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척…… , 상황을 지배하는 척…….
스킬을 제대로 사용하지도 못하는 폰 B급 헌터의 쌉소리만이 늘었을 뿐.
폭발한 차체 뒤에 숨어 거리 사이를 샅샅이 살폈다.
주서윤이 월드 타워 근처를 돌고 있다고 했으니, 분명히 이 주변에 있을 것이다.
아니.
있어야 했다.
‘마나 물약을 예상보다 너무 많이 썼어.’
이대로 주서윤을 만나지 못하고 허탕 친다면, 조금 위험한 정도였다.
인벤토리를 흘금대며 남은 보급품들을 체크했다.
철저한 계산 하에.
끌어모을 수 있는 것보다 오버 해서 가져온 수량이었는데도 불안했다.
1차 방어선의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했던 탓이었다.
‘그리고 이놈 때문에.’
최규열의 뒤통수를 쳐 기절시키고 갈까, 잠시 고민했다.
짐이 하나 늘자 마나가 소모되는 양도 두 배였다.
그나마 리노소어로 마나통을 늘려놔서 이정도지, 아니었으면 벌써 물약 탕진하고 잠실 한복판에 드러누울 뻔했다.
애써 분노가 차오르는 호흡을 억눌렀다.
다시 도로 위로 시선을 집중했다.
1차 방어선과 가까워 사체와 마수만 남은 거리에 푸르르르. 날개가 진동하는 소리만 몇 번 울려 퍼졌다.
그 순간.
콰아아앙!
무언가 부서지는 굉음과 함께.
“언니!!”
익숙한 뒷모습이 보이자 주변 상황도 잊고 소리쳤다.
마수들의 분절된 머리통이 일제히 도로록, 내 쪽으로 꺾였다.
주서윤은 사색이 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그러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처럼 말했다.
“모아야?”
그녀의 손짓 한 번에 달려들던 사마귀들이 공중에서 뻣뻣이 얼었다.
파삭.
차가운 얼음가루가 되어 흩어지는 마수들이 가랑비처럼 얼굴을 촉촉하게 적셨다.
있는 힘껏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