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 became the younger sister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71
71화
“…… 여기가 맞아?”
쪽지에 적힌 주소와 위치를 연신 확인했다.
나를 내려준 택시는 이미 휑 떠난 지 오래였다.
눈앞에 보이는 건 무슨 간판도 아니고.
‘문에 비스듬히 세워진 나무판 때기.’
그 위로 빨간 손글씨가 대문짝만하게 쓰여 있었다.
「여인숙, 장기 투숙 환영」
“계세요…….”
확신 없는 목소리로 문을 두드렸다.
페인트칠이 여기저기 까진 녹색 철제문.
잠겨 있지 않아 끼이익, 낡은 소리를 내며 열린 안으로 조심히 발을 뻗었다.
‘그냥 평범한 도둑 같은데.’
내부는 일반적인 가정집 주택 같아 보였다.
ㅁ자 마당을 둘러싸고 있는 작은 건물이 세 개.
각각이 또 방인 것 같았다.
조금 특이한 건, 모든 창문에 쇠창살이 달려 있다는 것뿐.
집이 전체적으로 좀 오래돼 보여서 그런지 상당히 을씨년스러운 무드였다.
게다가, 누가 사는 건가 싶게 찾아드는 적막함.
당황스러움에 자꾸만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윤산영이 없을 거라는 생각도 하고 오긴 했지만…….
“뉘슈.”
현관 바로 옆쪽의 문이 비스듬히 열렸다.
깜짝 놀란 어깨가 화들짝 튀었다.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시꺼먼 문틈 사이로 눈을 한 짝만 내민 노파가 경계의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긴장된 침을 꿀꺼덕 삼켜냈다.
“아, 저…… 여기 사는 분 좀 만나러 왔는데요.”
“그놈 새끼 돈 없소. 딴 데 가서 알아보시게.”
그놈 새끼? 돈?
알 수 없는 말뿐이었지만 매정하게 닫히려는 문을 보며 황급하게 소리쳤다.
“도, 돈!”
“…….”
“뜯으러 온 거. 아닌데요.”
그리고 잠시 침묵.
내 말이 진짜인지 가늠하기라도 하는지, 한참을 쳐다보던 노파가 조금 더 문을 열고 모습을 드러냈다.
곱은 허리를 두드리며 마당을 가로질렀다.
구석에 놓여 있던 이 빠진 플라스틱 의자를 가져오더니 말없이 나를 노려봤다.
“아, 앉으라고 주신 거죠?”
“…….”
“감사합니다…….”
노파는 여전히 대답 없이 창고 같은 곳으로 들어갔다가, 나왔다가.
뭘 하는지 부스럭대다가 또 다른 곳으로 들어가길 반복했다.
여기 뭐야, 이상해……!
무서워……!
머쓱하게 의자에 앉아 눈만 데굴데굴 굴렸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툭.
가지런히 모으고 있던 허벅지 위로 소쿠리 같은 게 하나 놓였다.
안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구마가 한 바가지 들어있었다.
갑작스런 식량에 노파를 쳐다보자 그녀는 또다시.
“…….”
눈빛을 쏜 뒤 문 안으로 들어갔다.
탁.
노파가 사라진 마당이 또다시 고요해졌다.
고구마와 나.
둘밖에 남지 않은 것 같은 세상.
“먹으라는 건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손댔다고 살해당하는 건 아니겠지.
주변에 아무도 없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괜히 두리번거리며 고구마를 손에 쥐었다.
반을 뚝 가른 노란 속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독이라든가. 신종 암살 방법 그런 건.
“윤채희. 너 영화를 너무 많이 봤다.”
자조하면서도 코로는 열심히 냄새를 맡았다.
달달하고 뜨끈한 향.
눈치만 보려고 했는데 입안으로 침이 고였다.
안 그래도 조금 쌀쌀한 공기에 따끈한 고구마라…….
‘이건 못 참지.’
여전히 의심의 끈을 놓지 않고 조심히 한 입 베어 물었는데.
“…… 맛있는데?”
입안에 퍼지는 은은한 단맛.
순식간에 기분이 풀어졌다.
저 할머니 좋은 사람이었네.
분위기에 혼자 쫄아 벌벌 떨었던 것을 마음속으로 깊이 사죄드렸다.
하긴. 그러고 보면 들어오자마자 앉을 자리도 내줘, 먹을 것도 내줘.
손님 대접이 제대로였다.
그렇게 상냥한 집 주인(추정)이 던져준 고구마를 반쯤 아작 냈을 쯤.
끼이익.
철제문 소리가 들렸다.
머리가 번쩍 그쪽을 향했다.
문을 밀고 들어오는 남자.
익숙한 얼굴에 반가워서 눈물이 날 뻔했다.
“윤산영!”
그가 놀란 얼굴로 눈을 마주쳤다.
***
“진짜로 오실 줄은 몰랐는데…….”
민망한 얼굴을 한 윤산영이 발로 슥슥 바닥에 놓인 물건들을 구석으로 밀어댔다.
나는 곧 머리가 닿을 것 같은 천장에 손을 짚으며 방을 구경했다.
한 칸이 될락말락한 안에는 이불과 베개. 벽에 붙은 장롱.
그리고 조그만 앉은뱅이 책상이 끝이었다.
‘벽지에서 곰팡이 냄새도 좀 나는 거 같고.’
코끝을 매만졌다.
느낌만 따지자면 꼭 찜질방 황토 굴 속 같았다.
이렇게 밝은 대낮에도 어딘가 어둑한 느낌.
윤산영이 치워준 바닥으로 엉덩이를 붙였다.
그 역시 내 앞으로 슬그머니 자리를 잡았다.
고작 둘 뿐인데 방이 숨 쉴 틈 없이 꽉 찼다.
“그래서요.”
내가 대뜸 서두를 떼자, 윤산영이 온 얼굴로 물음표를 띄우는 게 보였다.
“네? 뭐가…….”
“왜 찾았냐고, 나.”
먼저 찾은 건 그쪽이면서 또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한다.
사람을 답답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네?
캐묻듯이 쏘아붙이자 잠시 생각하는 것처럼 눈을 위로 굴려댔다.
뭐라고 또 한 소리를 하려던 차, 곧 아. 하고 박 터지는 소리를 냈다.
“그…… 항생제 주시기로 한 거 받을 수 있을까 해서요.”
상상치도 못한 정체.
나도 모르게 입이 떡 벌어졌다.
완전히 까먹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게 언제였냐. 아마도 선발전 때였을 거니까…….
‘거의 2달 가까이 된 얘기를.’
윤산영도 그걸 아는지 조금 더 민망해했다.
갑자기 기운이 쭉 빠지고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사실, 윤산영이 날 찾으러 오 사장한테까지 도달했다는 걸 알자마자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가.
뭔가 잘못 됐나.
근데 그렇게 날 찾아서 한다는 말이.
‘항생제.’
그거 달라고.
윤산영도 일수꾼 오 사장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목적이었다.
아니, 안 주겠다는 얘기는 아닌데. 그게, 참.
자꾸만 집을 나가려는 정신을 애써 붙잡았다.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 맞지. 줘야지, 그거.”
그러나 참을 수 없는 싸늘한 침묵이 흘렀다.
뭔가 잘못된 상황을 느꼈는지 안절부절못하는 윤산영을 보며 손마디만 뚝뚝 꺾어댔다.
“근데, 왜 길드로 연락 안 하고……?”
물어볼까. 말까.
심각한 갈등의 기로에 섰던 질문을 내뱉어 버렸다.
윤산영은 머쓱함의 의인화처럼 어색하게 제 뒷머리를 만져댔다.
“아, 제가 뭔가 피해가 될까 싶어서…… 요.”
예상한 답변.
내가 이 말이 듣기 싫어서 그렇게 물어볼까 말까 고민한 건데.
얼굴이 매 초마다 썩어갔다.
그랬구나~ 그래서 쉬운 길 냅두고 어려운 길을 빙빙 돌아 나한테 연락했구나~!
면전에 비꼬고 싶은 걸 초유의 인내심으로 꾹꾹 눌러 삼켰다.
아무리 가시밭길 인간이라고 해도 정도가 있지.
내 표정을 확인한 윤산영이 황급히 덧붙였다.
“그게, 여기저기서 모아 님 이름이 많이 들리던 때…… 라…….”
너는 네가 말을 하면서도 잘못 말하고 있다는 표정을 지으면 어떡하니.
점점 더 제 무덤을 파고 있음을 직감한 윤산영이 고개를 떨궜다.
그러나, 뭐. 나한테는 별일이 아니었다.
대충 윤산영을 피해 다리를 뻗어 피며 답했다.
“그렇게 됐죠. 너무 바빠. 사람들이 내 생각을 얼마나 많이 해주는지.”
“아하하…….”
“그러는 윤산영 씨는.”
쇼윈도에 걸린 마네킹이라도 보듯 위아래로 윤산영의 모습을 훑었다.
제대로 된 전투 상태가 아니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확실히 전보단 나아진 모습이었다.
적어도 멀쩡해 보이는 갑옷을 입고 있으니.
‘반지도 근력 보완용 괜찮은 거 꼈고. 벨트도…… 나쁘지 않고.’
얼굴 때깔도? 좀 괜찮아진 것 같고.
“잘 지냈네. 응.”
혼자 판단하고 수긍했다.
그때, 벌컥 미닫이문이 열렸다.
“밥 줘?”
노파의 말투는 하염없이 불퉁했으니 안에 담긴 뜻은 따스했다.
엉거주춤 엉덩이를 일으킨 윤산영은 정중히 거절의 말을 밝혔다.
“아, 아뇨. 괜찮습니다. 조금 이따 제가 차려 먹을게요, 주인님.”
고개를 홱 꺾어 윤산영을 쳐다봤다.
“…… 주인님?”
놈이 똘망거리는 눈빛으로 나를 돌아봤다.
“아, 뭐 필요하세요? 물이라도 한잔…….”
“너 지금 저 할머니를 주인님이라 불렀냐?”
“네. 처음 소개받을 때 집주인님이라고 그러셨는데…….”
뭐가 잘못 된지 모르고 되묻는 순진한 얼굴에 목구멍이 턱 걸렸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머릿속으로 오만가지 생각이 스쳐갔으나.
“아니다…….”
그냥 포기했다.
그렇게 살어, 너는…… 잘 어울려…….
그 사이, 집주인은 폭풍처럼 들이닥친 것만큼 다시 폭풍처럼 나가 버렸다.
다시 형용할 수 없는 침묵이 내려앉았다.
코를 몇 번 훔치다가 후드 집업 주머니를 뒤졌다.
매끈한 감촉이 손에 집혔다.
“여기.”
윤산영의 발 앞으로 곱게 내려놨다.
“이게 뭐예요?”
놈은 또 전혀 모르겠다는 얼굴로 손바닥만 한 기계를 이리저리 뜯어봤다.
내가 건넨 건 핸드폰이었다.
그것도 아주 최신형으로.
“폰 없다면서요, 님. 앞으로 연락하려면 그게 더 쉬우니까.”
“연락…… 이요?”
“항생제 받는다며.”
이 답답한 양반아.
가슴을 쿵쿵 치며 말했더니 윤산영이 또 움찔거렸다.
신기한 듯 이리저리 매만지는 꼴을 보며 툭 던졌다.
“거기 그 버튼 누르면 내 연락처 저장해 놨어요. 필요하면 전화를 하던지. 아님 문자를 하던지.”
“전화…… 문자.”
“거기 두 번째. 그치. 그게 문자. 방법은 알아서 터득하시고.”
앵무새처럼 말을 따라다니는 머리통이 화면으로 빨려 들어갈 것처럼 보였다.
더 이상 할 말도 없고.
용건을 마쳤으니 이제는 갈 차례였다.
몸을 일으키자 윤산영이 황급히 뒤따라 일어섰다.
손에는 내가 준 핸드폰을 꼬옥 쥔 채.
문지방을 넘기 전, 놈을 힐긋 쳐다봤다.
“근데 지금까지 조용하다가 갑자기 항생제는 왜요.”
“아, 그게.”
또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제가 얼마 전에 포탈에서 고양이를 한 마리 주웠거든요. 잘못 휩쓸렸는지 상처가 좀 커요. 근데 그 애한테 발라줄 약이 부족해서…….”
또, 또 지가 아니라 남을 위해.
질리는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억지 눈웃음을 쳤다.
고양이. 고양이라.
‘윤산영이 달고 다니는 마스코트 중에 찐빵이라는 고양이가 있긴 했지.’
하얗고 등에만 동그란 갈색점이 있는 게 귀여웠는데.
애카 안에서는 튜토리얼 겸, 윤산영의 길잡이 역할을 톡톡히 해내던 아이였다.
이렇게 보면 좀 덜 떨어지긴 해 보여도 착실히 메인 루트를 진행해나가고 있는 모양이었다.
대충 끄덕이며 방을 빠져나갔다.
“나중에 봐요.”
볼 일이 없으면 참 좋겠지만.
흔해 빠진 인사를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