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 became the younger sister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78
78화
“모아야!”
“야, 이모아!!”
세상에 더는 없을 정도로 경악한 얼굴.
허둥지둥 달려오는 둘을 머쓱한 웃음으로 맞이했다.
서빙고 포탈을 빠져나오자 바깥은 이미 거의 상황이 정리된 후였다.
차례대로 닫히는 S급 포탈들.
먼저 관할 구 상황을 정리한 길드들이 지원을 나가기 시작하자, 나머지 하급 포탈들도 랭커들의 진두지휘 아래 착착 닫혀나갔다.
무전기로 상황을 전달받은 연은 연신 나를 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 모습이 마치 ‘이제 정말 괜찮아요’라고 말하는 것 같아 나도 그냥 고개를 끄덕여주고 말았다.
【MISSION을 클리어하셨습니다!】
서서히 사라지는 그 익숙한 창을 보면서.
연은 다시 이태원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청렴 사람들이 거점에 모여 있어서 그쪽으로 합류할 거라고 했다.
모아 님은요? 눈을 깜빡이며 묻는 연을 보며 짧은 침음을 냈다.
‘저도 따라가도 돼요?’
묻자 연은 의외라는 것처럼 동그랗게 눈을 떴다.
사실 약간의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 내 모습이 어떨지 상상은 안 갔지만, 산성에 녹아내려 구멍이 숭숭 난 손등을 보면 정상은 아닐 게 뻔했다.
이대로 돌아가면 다들 뒤집어질 것도 눈에 선하고.
청렴 힐러가 있다면 좀 도움을 받을 생각이었다.
그랬는데, 지금.
“너 꼴이 이게 뭐야? 미쳤어?!”
어깨를 짤짤 흔드는 권해이를 따라 그저 거칠게 흔들렸다.
주서윤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다는 것처럼 벅벅 마른세수를 했다.
뭐라 할 말이 없어 엉성하게 웃었다.
그도 그럴게, 마침내 부재중이 수두룩한 전화를 받았을 때부터.
―「이모아 너 어디야!?」
이럴 줄 알고 일부러 귓가에서 좀 떼놓고 들었는데도 귀가 쨍해 죽는 줄 알았다.
주서윤의 그렇게 흥분한 목소리는 처음 들어서 좀 놀랍기도 했다.
옆에서 권해이가 ‘받았어? 받았어?’ 하고 난리 치는 목소리도 고스란히 전파를 타고 느껴졌다.
이 사람들이 얼마나 이모아를 걱정했는지.
얼마나 내내 전전긍긍했을지 느껴지는 분위기였다.
지은 죄가 있으니 저절로 목소리가 기어들어 갔다.
웅얼대며 대답했다.
“저 여기 이태원인데요…….”
―「거기서 대체 뭐하는데. 연락은 왜 안 받는데!」
―「야, 너 조금만 더 연락 안 됐으면 우리 그냥 바로 이겸한테 실종신고 들어 갈라고 했어. 아냐?」
―「됐어. 너 당장 정확한 주소 찍어보내. 갈 테니까.」
“언니, 아직 오빠는 모르는 거 맞죠?”
다급한 목소리로 묻자 기가 찬다는 듯 내는 설타음이 여기까지 들렸다.
조금 진정했는지 낮아진 텐션의 주서윤이 답했다.
―「몰라. 네가 몰라야 한다며.」
그 말에 상황에 맞지 않게 웃음이 샜다.
내가 이태원 인근에 왔을 거란 걸 짐작하고 있었을 테니 속이 타들어 갔을 텐데도, 비밀을 지켜주기 위해 이겸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그 기저에 느껴지는 믿음과 다정함이 몽글몽글 마음속을 채우는 것 같았다.
단지 길드장의 동생. 직장 동료.
그것뿐만이 아니라.
내 웃음소리가 들렸는지 권해이가 어이없다는 투로 ‘웃어? 얘가 웃네.’ 했다.
위치를 문자로 보내주겠다고 한 다음, 올 때까지 끊지 않을 것처럼 구는 둘을 달래 간신히 전화를 내려놨다.
연과 눈이 마주쳤다.
내가 쳐다볼 걸 알고 있었기라도 했다는 것처럼 놀라지도 않았다.
“왜요?”
겸연쩍은 얼굴로 묻자 그녀가 햇살처럼 웃었다.
내가 아는, 익숙한 연의 얼굴이었다.
“좋아 보여서요.”
나는 답하지 못하고 뜨끈하게 달아오른 볼을 손등으로 식히기나 했다.
어쨌든.
그래서, 여차저차 청렴의 힐러한테 좀 치료를 받은 꼴이었는데도 둘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힐도 체력 물약과 마찬가지로 만능은 아니라, 녹은 피부가 거의 다 메꿔지긴 했지만 붉은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있었다.
며칠 연고만 바르면 된다고는 하던데.
내 정신은 오로지 이 흉을 어떻게 숨길 것이냐.
거기에 쏠려 있었다.
구서복이나 이겸한테 걸리면 이정도 호들갑으론 끝날 일이 아닐 것 같았다.
‘일단 옷은 긴 팔 입고 다니면 대충 가려질 거고……. 제일 문제는 손인데.’
집에서도 장갑 끼고 있어야 되는 거냐?
심각한 고민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때.
“앗, 깜짝…….”
이야.
가만히 내 쪽을 노려보기만 하던 주서윤이 손을 감싸 쥐었다.
건들면 깨지랴, 만지면 부서지랴.
조심스러운 행동에 나조차도 살살 눈치를 살폈다.
“안 아팠어?”
그녀가 엄지로 살살 손등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탁. 나도 모르게 참았던 숨이 터졌다.
옆에 있던 권해이가 투덜대며 토를 달았다.
“안 아팠겠어? 아주 등짝까지 난리가 났는데.”
“정말 다 좋은데. 다 괜찮은데, 연락만 받아. 그래야 정말 무슨 일 생겼을 때 우리가 뭐라도 해보지.”
“그래, 이 걸어 다니는 시한폭탄아. 심장 쪼여서 죽는 줄 알았다. 이태원이라고, 나도 포탈들 돕고 있다고 말만 해줬으면 이 정도로 열 받진 않았어!”
떵떵거리며 반 협박조로 말하는 권해이.
속상함을 꾹꾹 삼키며 나를 달래는 것 같은 주서윤.
그 모습을 한참이나 지그시 바라봤다.
답은 없고 빤히 쳐다만 보는 내가 이상했는지 권해이가 눈앞으로 손을 휘휘 저었다.
나는 결국 고개를 떨어트릴 수밖에 없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마음이 풍랑을 만난 것처럼 일렁거렸다.
쪽팔리게 비죽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입속 연한 살을 꽈악 씹었다.
이런 건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
있는 힘껏 쾌활하게 대답했다.
“아팠어. 엄청.”
주서윤과 권해이의 손을 붙잡았다.
“그러니까 우리 가서 엄청 맛있는 거 먹자.”
얼른 돌아가자.
집으로.
***
삐, 삐, 삐.
쓰레기차가 좁은 골목에서 후진했다.
형광 작업복을 걸친 두 사람이 어슬렁어슬렁 시체 사이를 걸어 다녔다.
조각 난 신체 부위 사이들을 헤치다가, 깨끗해 보이는 손가락 하나를 쑤욱 꺼냈다.
그러나.
“에이씨, 멀쩡한 게 없어.”
잘린 단면.
필요 없는 쓰레기를 주웠다는 듯 뒤로 내던졌다.
“장 선생님!”
다른 골목으로 향했던 남자가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곧장 향한 곳에는 상처가 좀 있을 뿐, 크게 훼손되지 않은 시체 한 구가 누워 있었다.
남자들은 대용량 쓰레기봉투 안으로 조심히 시체를 옮겨 담았다.
정수리 위로 꽁꽁 매듭을 맺은 뒤, 두 장정이 들기도 어려운지 낑낑대며 이동했다.
털거덕.
봉투가 쓰레기차 위로 얹혔다.
탕탕.
봉에 매달린 남자가 차체를 두어 번 두드렸다.
쓰레기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출발했다.
수십 구의 시체들이 수거함에 쌓여 흔들렸다.
***
「(칼럼) 이태원 다중포탈, 거대 재난의 전조인가? – 최준언 교수」
「반쪽짜리 예언도 예언? 국민 불안함 증폭돼」
「“날벼락 포탈” …… 매뉴얼 없는 미흡한 대처 파문」
“하아…….”
이게 이렇게 된다 이거지.
기사들을 보며 뻑뻑한 눈알을 벅벅 비볐다.
이태원 참사가 아니라 이태원 다중 포탈.
주서윤이 아니라.
‘예언.’
내가 원래 알고 있던 이태원 설정과 포커싱되는 대상이 전혀 달랐다.
아니, 서사를 바꿨으니 그게 당연한 건데. 근데…….
‘이게 뭘 의미하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한 번 제대로 여파를 얻어맞자 모든 게 의심스러웠다.
혹시나 또 뭘 놓치게 될까 봐 요 며칠 눈이 빠져라 인터넷을 돌아다녔다.
사람들은 예언과 포탈의 상관관계를 따지며 내내 불타올랐다.
채본이 재난 문자를 막고, 청렴과 함께 주위를 필살 통제한 덕분에 이태원 포탈이 진짜 터졌다는 걸 아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그리고 그게.
‘얼마나 큰 다행인지.’
그들의 선구안에 박수를 보내야 할 정도였다.
왜냐면, 지금도.
└ 솔직히 위치랑 시간 몇분 차이난게 뭐가 그렇게 중요함? “그”날 “그”때 포탈이 우르르 열렸다는게 중요한거 아님??
└ ㄹㅇ 근처라도 비슷하게 갔다는게 쌉소름인데;;
└ 근처는 무슨 진짜 이태원에는 포탈 1나도 안터졌는데
└ 이태원에만 안터졌지 그주변에는 ㅈㄴ터졌잖음
└ 시간 장소 둘중에 하나만 완전히 틀렸으면 걍ㅇㅇ 하고 넘어갈 일이었는데 둘다 애매하게 맞아서 개판남ㅋㅋ
└ 아니 근데 예언이 아무것도 아니라기에는 둘다 애매하게 맞기가 쉽냐고..
└ 맞음ㄷ 범위도 좁았는데
└ 운좋게 한번 걸린거가지고 애들 심각한거 개웃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사실 이번엔 찐이었고 그전까지는 다 양치기 소년 권법이었던것임ㅠ
…… 기타 등등.
예언을 믿어야 한다는 사람들과 웃기지 말라는 사람들이 나뉘어 피터지 게 싸워댔다.
그 와중에 다중 포탈이 터질 것까지 알고 있었는데, 일부러 알리지 않은 거라는 파.
예언자들이 다 말할 수 없어 비슷하게 힌트라도 준 거 아니냐는 파들이 뒤섞여 갖가지 음모론들을 생성해냈다.
한마디로 개판이었다.
그래도 아직 까지는 ‘예언은 가짜다’ 여론이 우세해서 망정이지.
자칫했으면.
‘그 사이비들한테 먹힐 뻔했다.’
예언을 믿고 숭배하기 시작하면 그 사이비들 전력 늘어나는 거?
그냥 정해진 수순이었다.
그건 명암한테 힘을 실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고, 절대 좋은 일일 수가 없다.
나대지 말라고 꽉꽉 밟아 줘도 모자랄 판에.
“이걸 어떻게 해볼까…….”
침대에 배를 깔고 드러누워 뒹굴거렸다.
이제 거의 연한 분홍색으로 변한 손등의 흉터를 형광등에 비춰 보며 생각에 잠겼다.
아직까지 이태원 포탈의 많은 부분이 의문이나, 내가 진짜 주목할 점은 따로 있었다.
‘다이아.’
잠실 참사에서는 하나도 받지 못했고, 이태원에서는 무려 중복 미션으로 받을 수 있었던 그것.
그 차이가 무엇인지 확실히 해둬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변동. 재분류.
말만 번지르르한 그 산정 기준을 알아내야 이번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건 물론이고.
‘나한테 유리한 상황으로 바꿀 수 있는 선.’
그걸 알아내기 위해.
눈을 감고 차근차근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내가 알고 있는 애카 서사와 잠실 참사가 바뀌었던 점. 바뀌지 않았던 점.
이태원 포탈의 바뀐 점과, 또 바뀌지 않은 점.
‘잠실은…… 생각해보면 주서윤밖에 움직인 게 없으니까.’
중반까지는 본 서사대로 가다가, 후반에야 내가 슬쩍 뒤튼 대로 주서윤이 화랑에 합류하고 사이좋게 포탈을 공략했다……. 는 정도뿐이었다.
반면 이태원 포탈은.
‘일단 주서윤이 빠졌으니까 서사에 등장하는 인물 자체도 완전 달라졌고. 포탈 등급이랑 위치…… 는 말할 것도 없고. 예언은 원래도 명암 쪽에서 뿌렸었나? 그런 구체적인 전후 사정은 애카에 안 나왔는데.’
뭐, 하지만 거기서 예언을 하나 뺀다고 해도.
“오…… 바뀐 거밖에 없는데.”
하하! 하하핫!
웃음이 스타카토로 뚝뚝 끊겨 나왔다.
이 믿을 수 없는 상황에 미소가 멈추질 않았다.
누가 와서 이게 이태원 포탈이 맞느냐? 묻는다면 쉽게 끄덕일 수 없을 정도의 재창조였다.
바뀐 게 너무 많아서.
‘뭐가 제일 치명적인 이유인지 알 수가 없다.’
“너무 재밌다…….”
즐거운 문장 구사와 달리 심정만으로는 머리를 깨고 싶었다.
피곤한 얼굴을 손으로 벅벅 비볐다.
결국에는.
‘실험해볼 수밖에 없다.’
떠오르는 가정들을 하나하나 체크 해보기 위해서는, 직접 몸으로 부딪히는 수밖에.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연락처를 뒤져 익숙한 이름 하나를 골라 뚫어지게 쳐다봤다.
「윤산영」
그 순간.
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퍼드득 이불을 꽁꽁 둘러 싸맸다.
운 좋게도, 아직까지 이겸이나 구서복한테 상처를 들키진 않았다.
요즘 뭐가 그렇게 바쁜지 잘 만나지도 못했으니.
네에! 대답하자 구서복이 문을 열고 빼꼼 나를 들여다봤다.
“아가씨, 밥 안 먹어요?”
고치처럼 똘똘 뭉쳐 있는 나를 누가 봐도 의심스럽게 쳐다보는 눈빛이었다.
얼굴 반쪽만 내민 채 구서복을 쳐다보던 나는 고개를 홱홱 저어댔다.
“나가서 친구랑 먹고 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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