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ll Search Gets Done RAW novel - Chapter 171
172. 다가오는 대 재앙 (1)
검색 길드의 1층에 위치한 헌터 전용 헬스장.
언뜻 봤을 때에는 사람도 별로 없고 한산하기 그지없는 헬스장처럼 보였지만, 이상하게도 뭉근한 땀 냄새가 진동했다.
자세히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무도 없는 레그프레스 머신은 혼자서 발판을 들어 올리고 있었고, 케이블 머신의 줄도 혼자서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들이라도 운동을 하고 있는 건가 싶은 모습이었는데, 사실이었다.
“후욱, 후욱…….”
이 헬스장에서는 현재 약 20명 정도의 투명인간들이 운동을 하고 있었고, 그들은 모두 전 사막 부족 출신의 암살자들이자 현 검색 길드 경호팀 소속의 헌터들이었다.
그들은 길드 사옥의 경호 업무를 하지 않고 있을 때에는 종종 이렇게 헬스장에 와서 자기 수련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헬스장의 한가운데.
데드리프트를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이 대치했다.
먼저 데드리프트의 앞에 서 있던 사람은 사막부족의 족장이자 현재는 검색 길드의 고문 직책을 맡고 있는 남자였다.
관리가 되지 않은 삐죽삐죽한 수염에 터번을 쓴 족장은 자신에게 다가온 네팔인을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네팔인. 왜 남의 운동을 방해하는 거지? 애초에 이곳은 검색 길드원이 아니면 허락되지 않는 장소다. 썩 꺼져라.”
“2층에 있는 암중모색 길드에 문의해보니 게스트들도 자유롭게 이용 가능하다는 안내를 받았습니다.”
네팔인은 얼마 전 한국지사 설립을 위해 9개월짜리 여행 비자를 받고 넘어온 프로스트모운 길드의 수장, 팍딩이었다.
“거짓 정보다. 나가라.”
“……일단 이용 가능 여부는 다시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는 데드리프트를 벌써 2시간째 잡고 계십니다. 언제 나오실 생각입니까?”
“비실비실한 놈이 꼴에 헬부심 부린다고 설치는 모습이 참으로 우습기 짝이 없구나.”
얼핏 보면 족장보다 몸집이 2배는 커 보이는 기골이 장대한 팍딩. 그는 족장의 말에 결국 한쪽 눈썹이 움찔거릴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이 데드리프트라는 운동은 너같이 허약한 체질의 애들이 할 수 있는 운동이 아니다. 내 친히 조언을 해주자면, 네놈은 하체 부실인 것 같으니 저쪽에 가서 다리운동기구나 조금 더 하다가 오도록 해라.”
“…….”
그 말을 마친 족장은 어깨를 몇 번 돌리더니 마치 보란 듯 웃통을 벗어 재꼈다.
그러자 겉보기와는 다른, 오밀조밀한 근육들이 도드라지게 튀어나왔고, 곳곳에 베이고 찔렸던 상처들이 뜻밖에 야성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어서 그는 허리를 굽혀, 눈앞의 바벨을 움켜잡았다.
“흥으으읍!”
오른쪽과 왼쪽에 각각 30t씩. 총 60t의 바벨이 천천히 들어 올려졌다.
바벨에 매달린 각각의 추는 일반적인 금속이 아닌 던전산 금속 중 가장 중량이 높은 이리듐이라는 금속에 현대 마석공학 기술이 접목되어 백배, 천 배 압축되어 만들어진 헌터 전용 추였다.
거기에 더 효율적인 운동 효과를 위해 중량 증가 및 내구성 강화 인챈트까지 걸려있었다.
그로 인해 족장의 양쪽 이두박근은 마치 폭발할 듯 부풀어 올랐고, 관자놀이에는 Y자로 꺾인 힘줄이 뒤틀리며 솟아올랐다.
“후우욱!”
헌터 전용 헬스장은 일반 헬스장과는 다르게 덤벨 쓰로잉이나 바벨 쓰로잉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장소였다.
콰아아앙!
던전산 3대 금속 중 가장 딱딱하기로 유명한 팔라듐 재질의 바닥은 60t의 바벨이 떨어지는 충격을 가뿐히 흡수했고,
짝짝짝.
옆에 서있던 네팔인이 박수를 치며 족장의 등을 탁탁 두드려주었다.
“꽤 하시는군요. 대충 근력 스탯이 A 정도 됩니까?”
“A+이다. 곧 S가 되지.”
“하하. 그런가. 한창 성장할 때로군요.”
“지금 뭐라고 했지?”
“재미있습니다. 일단 좀 나와 보십시오. 하하하.”
그는 목에 걸치고 있던 수건을 적당히 아무 데나 던져놓은 뒤, 거치대에 비치된 2개의 추를 양쪽 손에 들고 돌아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족장은 혀를 차며 말했다.
“쓸데없이 주변의 보는 눈을 의식하는군. 사람은 분수를 알아야 하는 법이다. 괜스레 오버하지 말고 주제에 맞게 저쪽에 있는 어린이 헌터용 아령이나 들도록 해라. 내가 해당 운동법을 조금 가르쳐주도록 하지.”
팍딩은 족장이 뭐라고 하든 말든, 묵묵히 바벨에 들고 온 추를 끼워 넣었다.
양쪽에 20t씩 추가로 더해서, 총 100t짜리 바벨이 되었다.
“일단 몸 좀 풀어야 해서요. 이것보다 가벼우면 근육이 잘 풀리지 않습니다.”
“뭐라?”
100t의 바벨이 천천히 들어 올려졌다.
그의 승모근, 삼각근, 삼두근, 전완근, 극하근, 광배근이 마치 터질 것처럼 팽창했고, 근육 표면에 튀어나온 힘줄과 핏줄은 속에서 뱀장어들이 기어 다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징그럽게 꿈틀거렸다.
안 그래도 다부진 팍딩의 몸이 일순 2배에서 3배로 커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흐으으으으으으읍!”
요란한 팍딩의 기합이 헬스장 전체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한편, 헬스장 구석의 스쿼트 머신 앞에 앉아 잠시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두 헌터는 이내 고개를 돌렸다.
“그나저나, 화연 씨. 아까부터 뭐 보고 있나요?”
“백악관 라이브인데, 한번 보실래요? 방금 봤는데…… 지금 난리도 아니더라구요.”
“백악관 라이브?”
“동시 시청자가 30억 명이에요. 아, 이제 시작하나 봐요!”
방화연이 바라보던 화면에는 줄곧 원목 책상만 비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이 되니 대통령이 와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그의 목에는 칼이 들어와 있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실시간 방송을 지켜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미국 대통령이…… 인질로 잡힌 건가?”
“세훈 씨가 지금 워싱턴에 계시다고 했는데, 설마 여기에 계신 건 아니겠죠?”
“왠지 저 일 때문에 가셨을 것 같은데요? 방금 대통령이 칼라미티라고 말한 것 같네요. 이제 그 조직에 대한 사실은, 비밀이 아니겠군요.”
방화연은 작게 한숨을 쉬며 헬스장 벽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은 마치 벽 너머가 보인다는 것처럼 더욱 먼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어째서 세훈 씨는 우리에게는 별다른 얘기도 안 해주고, 혼자서 저렇게 빨빨거리면서 돌아다니는 걸까요?”
“제 생각에는, 길드장님이 저 칼라미티라는 비밀 테러조직과 무언가 깊은 연관이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가령, 어렸을 때 그 테러조직에게 납치되었다든지, 혹은 거기서 일했던 내부자였다든지.”
“그건 아닐걸요?”
“화연 씨는 길드장님과 예전부터 아는 사이라고 하셨죠? 처음 봤을 때의 모습이 어땠나요?”
“아, 처음에 봤던 세훈 씨의 모습은…….”
문득 방화연은 아련한 기억이라도 떠올린 것처럼 청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당시에는 힘도 약하고 쓸 수 있는 스킬도 없는 무쓸모 F급 사무직 헌터였어요.”
“네?”
“호미질은 어려울 것 같아서, 마석 리어카 끌라고 했는데. 그럴 힘마저 부족해서 제가 도와드리고는 했었어요.”
“그럴 리가요.”
“저도 놀라워요. 어떻게 그 사람이 지금의 모습이 된 건지. 솔직히 말해서 가끔씩 세훈 씨가, 제가 알던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에요. 겉모습과 성격은 똑같은데 말이죠.”
콰과과과과아앙!
어느 순간, 화면에 잡힌 백악관 웨스트윙에서 마치 스피커가 고장이라도 날 것 같은 굉음이 들려왔고, 영상을 송출하던 카메라가 땅바닥에 떨어져서 나뒹굴었다.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화면에 헤게모니 길드 소속으로 보이는 헌터들이 하나둘 피를 흘리며 쓰러져가는 모습이 비춰졌고.
동시에 웨스트윙의 천장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앙!
실시간 채팅은 애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흘러갔기에, 뭐라고 하는지 전혀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채팅 서버가 터졌는지 우뚝 멈춰선 스크롤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그 덕분에 시청자들의 반응이 눈에 들어올 수 있었다.
봉구스박보검 : 카메라 떨어짐 ㅋㅋ
비폭력장인 : 이러다 백악관 무너지는 거 아니냐?
주님한놈보냅니다 : 와, 스케일 보소. 지구 역사상 이렇게까지 해냈던 테러단체가 있었냐?
비폭력장인 : 그런데 칼라미티가 대체 뭐임? 검색해도 안 나옴
펩시제로전문가 : 일루미나티 짭임
힉힉호무리 : 백악관 무너짐요
엔터키제거한사람 : 대통령 죽은 것 같은데
소리없는방귀 : 1:57:21에 누가 대통령 데려가는 모습 잡힘
문을왜이리황현희 : 역시 헌터협회가 어떤 곳인데 갑툭튀한 테러범들한테 갑자기 그냥 당해버린다는 게 조금 이상하긴 함
우마이병장 : 이쯤 되면 개구리가면 등판해줘야 되는 거 아니냐?
망겜분석가 : ㄴㄴ 마지막으로 목격된 게 남미라고 함. 저기엔 없을 걸?
펭귄국밥 : ㅈ거품 가면쓴 헌터 그만 빨고, 염제나 응원해라. 지금 경매장에 있다고 함 기사 링크 : https://n.news.naver.com/article/015/0104695545?cds=news_media_pc&type=editn
방화연과 황명수는 헬스장 벽면에 붙어있는 TV를 보았다.
– 사상 초유의 사태가 연이어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화면에는 은백색 풀 플레이트 갑옷을 두른 헌터 출신의 기자가 마이크를 잡은 채 백악관의 상황을 보도하고 있었다.
– 헌터 협회의 국제 아티팩트 경매장에서 벌어진 테러와 도난 사태에 이어, 갑자기 뚫려버린 백악관의 보안과, 그곳이 정체불명의 테러범들에게 점거당하는 사태까지 벌어졌습니다.
그의 뒤편으로는 마치 전쟁을 방불케 하는 헌터들 간의 전투가 적나라하게 비치고 있었다.
– 이 때문에 저뿐만이 아니라 전세계인들 또한 충격과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는 상황인데요. ……뭐라고? 뒤를 보라고? 으아아악!
지지지직─
기자의 뒤쪽으로 쏟아져 내린 눈먼 마법 폭격에 의해, 화면에는 잠시 No-Signal 글자가 새겨진 검은 화면이 비춰졌다.
그리고 스튜디오로 바뀐 화면에서는 당혹감을 숨기지 못한 아나운서가 황급히 방송을 이어나갔다.
– 잠시, 송출 상태가 고르지 못한 점 시청자분들께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다시 특파원과 연결을 이어가는 동안 조금 전에 있었던 미국 대통령의 연설 장면을 다시 한 번 보시겠습니다.
삑!
말없이 TV를 보던 황명수가 문득 채널을 돌렸다.
그러자 아까보다 훨씬 백악관에 근접한 장면이 보도되고 있었다.
– 헌터 협회 관계자에 따르면 백악관 웨스트윙이 무너지는 순간 누군가 대통령을 구출하는 데 성공했다고 전해왔는데요, 저희 워싱턴 특파원의 보도에 따르면 그건 개구리 가면의 헌터가 아닐까 추측하고 있습니다. 특파원 연결해주세요.
– 여기는 폐허가 된 웨스트윙의 뒤쪽 정원입니다. 현재 보시다시피, 개구리 가면의 헌터가 이번 일의 주모자로 추측되는 헌터와 격렬한 전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저게…… 세훈 씨?”
“정말 길드장님일까요? 저런 스킬을 쓰는 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TV 화면에는 화염의 날개를 펼친 화염 인간이 천사의 날개를 단 사제를 일방적으로 두들겨 패는 장면이 송출되고 있었다.
– 안전 관계상 더 이상 접근할 수 없지만 저기 보이는 하얀 날개의 사제복을 입은 여성이 그 괴한이고, 저 붉은 날개가 달린 발광하는 남성이 바로 개구리 가면의 헌터로 추측됩니다만 현재 상황은…….
“홀홀.”
홀홀?
TV 삼매경에 빠져있던 방화연과 황명수는 뒤쪽에 나타난 노인, 김정수를 바라봤다.
이제 감히 노인이라고 부를 수 없을 만큼 몰라보게 젊어진 그였지만, 말투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그는 양 손에 1t짜리 아령을 한 개씩 들고서는 가만히 TV 화면을 바라봤다.
“한세훈 군이 결국 그 꽃을 먹었나 보군. 홀홀.”
“꽃이요?”
“아 참. 자네들도 하나씩 먹어보겠나? 재배하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그 꽃잎을 몇 장 때서 얼려놓은 게 조금 있다네.”
김정수는 방화연과 황명수에게 용암 같은 꽃잎이 얹혀진 양갱을 하나씩 건네주었다.
“생것에 비해서 그 효능은 떨어질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몸에는 나쁘지 않을 걸세.”
***
백악관 서쪽 별관, 웨스트윙은 완전히 폐허가 되어 잔해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카펠라는 피투성이가 된 손으로 황금빛 활을 연달아 튕겼고,
수백 발의 신성한 화살은 벌떼처럼 날아와 나를 사방에서 덮쳐왔다.
화르륵! 치직!
그러나 모든 화살들은 내게 닿지 못한 채 증발하듯 연기가 되어 사라져버렸다.
“어때. 개쩔지?”
지금 이것은 경매장에 출품되었던 C급 아티팩트, ‘파이로쇼크 브로치’에 옵션으로 달려있는 8티어 스킬, ‘빛제물의 춤’에 의한 효과였다.
내 몸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새하얗게 빛나고 있었으며 주변으로는 초고압의 전류와, 초고온의 화염이 터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내게도 똑같은 위력의 데미지가 가해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흑요화’와 ‘화염화’를 동시에 사용하여 모조리 상쇄시켰다.
‘이게 바로 칼라미티 보스의 열 가지 손가락이라 불렸던 능력 중, 그 네 번째…….’
그 누구도 그에게 닿을 수 없게 만들었던 힘이었다.
나는 카펠라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와…….
너희 보스가 쓰던 스킬. 써보니까 쩔더라.
지금 이 모습을 마주하고 있는 카펠라를 향해 이러한 소감을 들려주고 싶었지만, 굳이 쓸데없이 입방정을 놀릴 필요는 없었다.
굳이 내가 이런 식으로 말하지 않더라도, 카펠라는 내 모습을 그저 허탈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어째서…… 설마 지금까지 힘을 숨겨왔던 건가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구나, 카펠라.”
“그럴 수밖에요. 이런 힘을 쓸 수 있었으면, 진작에 썼어야 할 텐데. 설마 지금까지도 전력을 다 보이지 않고 있었을 줄은…….”
“비장의 수는 언제나 끝까지 숨기고 있어야 하는 법이지.”
펄럭─
내 등에서는 화염의 날개가 한 차례 ‘화륵’거리며 커다랗게 휘날렸다.
이것은 이곳에 도착하기 전에 익혔던 6티어 화염 스킬, ‘화염의 날개’였고, 사용 시 이동속도 상승과 더불어 비행이 가능하게 해주는 스킬이었다.
“플레임 데쉬(Flame Dash).”
펑!
동시에 나는 발끝에 모은 화염 속성의 마나를 폭발시키듯 분출하며 전방을 향해 쏜살처럼 튀어 나갔다.
그리고는 들고 있던 ‘벼락의 지휘자’에도 밀도 높은 화염 속성의 마나를 끌어 모았다.
“신이시여…….”
피이잉!
카펠라는 더는 피할 생각을 하지 못한 채, 그저 자신의 시커먼 묵주를 들고 기도를 올렸다.
그리고 그녀의 주변으로 짙은 황금색의 보호막이 생겨났다.
“그건, 혹시 최후의 기도?”
나는 언젠가 카펠라가 나에게 했던 말을 되돌려주며 보호막의 표면에 창끝을 찔러 넣었다.
쨍그랑!
묵직한 화염의 마나가 깃든 창끝은 그것을 가볍게 깨뜨려버렸고.
쓰러지는 카펠라의 어깻죽지를 꿰뚫으며 바닥에 꽂혀 들어갔다.
쿵!
“플레임 노바(Flame Nova)!”
화아아아아아아아악!!
새로 생긴 고유 스킬, ‘화염의 심장’에 의해 그 위력이 몇 배나 증폭된 5티어 화염 스킬, ‘플레임 노바’의 효과 범위는 이미 지칠 대로 지쳐버린 카펠라가 피해 본다고 피할 수 있는 스킬이 아니었다.
“허억…….”
그녀의 눈은 초점을 잃어버렸고, 언제나 새하얗던 사제복은 피에 젖어 붉어졌고, 직화에 그을려 시커메졌다.
그러나, 그 엄청난 화염의 폭발을 직격으로 처맞고도 그녀는 정신줄을 붙들고 있었다.
스르륵─
동시에 내 주변으로 터져 나오던 ‘빛제물의 춤’에 의한 화염/전격의 파동 또한 사그라졌다.
최소 지속시간이었던 10분이 지났고, 사실상 상황이 정리된 이상, 굳이 해당 스킬의 시전을 유지하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카펠라.”
미국 전역을 날아다니며 ‘죽음의 비’를 내리며 단신으로 수백 수천의 목숨을 앗아간…… 한때 죽음의 천사, 퀼레인, 재앙, 혹은 악마 그 자체라 불리기도 했던 자.
“너는 이제 이 자리에서 죽게 된다.”
“…….”
“유언은 있나?”
“죄송합니다.”
“응?”
잠시 무슨 소린가 고민했다.
그리고 나는 저 말이 나에게 하는 소리가 아니라는 걸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카펠라는 자신의 피로 물든 묵주를 느릿하게 돌리며 말을 이었다.
“신이시여. 당신께서 바라시던 일은 결국 이루어내지 못했습니다.”
“……?”
“부디 용서를 해주시길.”
“카펠라. 아무리 봐도 네가 믿는 신은 성십자회의 유일신이랑은 거리가 상당히 먼 것 같은데.”
허공을 바라보던 카펠라의 초점이 천천히 나에게로 옮겨왔다.
“한세훈 씨. 혹시, 신을 믿으십니까?”
이건 또 무슨…… 정말로 사이비였던 건가?
나는 카펠라를 바라보며 서둘러 손사래를 쳤다.
“도는 믿지 않고, 심리테스트, 미술 치료, 설문지 작성 혹은 역사공부 따위는 일체 거절하겠다.”
얼굴에 열기가 많아 보이는 건 화염 스킬을 써서 그렇고, 인상이 착해 보이는 건 원래 내가 착해서 그렇다. 조상님까지는 언급하지 않기를.
“순수한 의미에요. 듣자하니 한세훈 씨도 신앙에 발을 담근 적이 있다더군요?”
“아니? 이 묵주를 보고 말하는 거라면, 패션이라고 말해주고 싶군.”
“긴말 안 할게요. 신은 존재합니다.”
“그것 참… 놀라운 사실인데……?”
“말장난이 아니랍니다. 저는 실재하는 신을 똑똑히 목도했어요.”
“……?”
카펠라는 어딘가 보이지 않는 먼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분은 저 너머에 있습니다.”
“저 너머라면…… 던전을 말하는 건가?”
“그곳에서 현신하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던전을 돌다가 신을 봤고 너무 놀라웠다, 이 말인가?”
“아뇨. 정확히는 그분을 통해 알게 되었어요.”
“칼라미티의 수괴가 신을 보여줬다고?”
“그분은 스스로를 신의 대리자라고 지칭했어요. 그리고 저에게 실존하는 신의 존재를 보여주셨죠.”
“헛것을 보았나 보군.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에 자신만의 신을 가지고 있지. 네가 본 건 바로 너만의 신이었을지도 모르겠군.”
“그런 추상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저는 구체적으로 실존하는 신을 말하는 거랍니다.”
더는 말이 통하지 않았다.
간신히 잡은 간부였기에, 혹시라도 중요한 정보라도 내뱉지 않을까 하여 유언으로써 이 소리 저 소리 들어주려고 했다.
혹시라도 이전의 사레처럼 갑자기 어금니 속에 품고 있는 독약을 처먹고 돌연사 해버리면 그대로 끝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하는 소리를 들어보니 미쳐도 단단히 미친 소리만 내뱉고 있었다.
아마도, 칼라미티의 수괴놈이 사용한다고 알려진 고티어 정신계열 스킬, ‘정신붕괴’에 의해 평생 신을 위한 기도를 이어온 카펠라의 심상에 상당히 이질적인 변화를 일으켰던 게 아닐까 싶었는데.
그분의 뜻이니, 신의 뜻이니. 빙빙 돌려가며 죽기 직전까지 읊어대는 꼴 같은 헛소리를 더는 듣고 있을 수 없었다.
교전이 멈춘 뒤, 고요해지는 상황 속에 슬슬 언론사의 카메라들이 우리를 향해 달라붙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면, 유언 접수는 이걸로 마감치도록 하지.”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물어보고 싶네요.”
“미안하지만 구두 접수는 마감되었고, 서류는 죽은 뒤에도 접수해줄 수 있다. 혹시라도 미리 작성해놓은 게 있다면…….
“신께서는 저에게 사명을 전달하셨고, 그 사명은 신의 대리자인 그분이 하고자 하는 일과 일치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제가 그분의 뜻을 따라, 칼라미티의 뜻을 따라 지금껏 움직여왔던 이유였답니다.”
어느새 마치 광신도처럼 떠들기 시작한 카펠라의 표정을 바라보며, 나는 그녀의 목에 찔러 넣은 창끝에 더욱 힘을 주었다.
“그런데…… 한세훈 씨. 당신은 그 신의 뜻을 마치 낱낱이 꿰고 있다는 듯 움직여왔어요.”
카펠라는 그 날카로운 감촉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내뱉어갔다.
“당신은 그분에 대해서 어디까지 알고계신가요? 혹시 제가 목도했던 그 신에 대해서도 무언가 알고계신 사실이 있는 건가요?”
“아는 거 없는데?”
“아니요. 알고 계실 거예요. 왜냐하면, 당신에게서는 그분과 똑같은 향기가 느껴지니까요.”
향기는 개뿔. 내 코에는 지금 피, 땀, 재의 냄새밖에는 맡아지지 않는다.
나는 정말로 마무리를 짓기 위해 ‘벼락의 지휘자’를 잡은 손을 두 손으로 꽉 움켜쥐었다.
“자아, 이제 뻘소리 할 시간 다 끝났습니다. 수고하셨어요.”
그녀의 목에 꽂혀있는 창끝이 천천히 밀려들어 가기 시작했다.
“공짜로 알려달라는 말은 아니에요.”
“그렇다면?”
“저도 그에 상응하는 정보를 드릴게요.”
“정보라…… 그 말은 칼라미티를 배신하겠다는 건가?”
“누누이 말씀드렸다시피, 애초에 저는 신의 뜻을 따르고 있었을 뿐, 칼라미티를 따르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내가 뭘 알려줄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쩌면 칼라미티의 요원, 아니, 여섯 간부 중 한 명으로부터 어떠한 정보를 뽑아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가령 칼라미티의 수괴놈이 머물고 있는 장소라든지, 수괴놈의 현재 상태가 어떠한지와 같은, 그 정도의 고급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으리라.
잠시 목을 찔러 들어가던 창끝을 살짝 뽑아 올렸다.
그러자 붉은 핏물이 따라 흘러나왔다.
“좋아. 알려줄 수 있는 정보는?”
“그분의 거처, 근황에 대한 정보.”
충분했다.
칼라미티의 수괴에 대한 정보.
사실 세간에 알려진 그의 스킬이나 공격 방식, 행적 등은 미래 기억을 통해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그의 이름이나 출생 혹은 그놈이 추구하는 목적 같은 자세한 사실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진 바가 없었다.
그런 와중에, 그 수괴놈과 가장 가까이에 있었을 것이 분명한 여섯 간부 중 한 명의 입을 통해, 그놈의 거처와 근황을 알 수 있다면 그것은 더할 나위 없는 황금 같은 정보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여주지 않았다.
“그게 다야?”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그 정도는 나도 알고 있다. 설마 고작 그 정도의 허접한 정보로 목숨을 구걸하려고 했던 건가?”
“글쎄요. 이 정도면 암암리에 칼라미티의 뒤를 노리고 있는 당신과 당신의 개구리회에게 있어서 충분히 가치 있는 정보가 아닐까 싶었는데.”
카펠라가 하는 말이 다 맞았다. 그러나 나는 혹시 하는 마음에 카펠라를 조금 더 떠보기로 했다.
사실 내가 가장 필요로 하는 정보는 바로, 칼라미티 보스의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과연 카펠라는 그놈의 이름을 알고 있을까?
“그 정도는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길거리 어린애 붙잡아놓고 물어봐도 알만한 사실이지.”
“네?”
“너 칼라미티 보스 새끼 이름은 뭔지 아냐?”
“그분의 진짜 이름은 그 누구도 알지 못합니다.”
“모르는구나.”
“후훗.”
카펠라는 입가에 흐르던 핏물을 손으로 슥 닦아내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하지만 저는 그것 또한 알고 있답니다.”
“…….”
“신을 다시 한 번 영접하기 위해, 저 나름대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우연한 기회에, 그분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열람할 기회가 있었죠.”
이 여자가 죽여 온. 미래 기억 상 앞으로 이 여자가 앗아갈 목숨의 숫자만 수백만 단위였다.
이제는 죗값을 치러야 할 때였다.
그러나 몇 가지 정보를 뱉어줄 수 있다면, 그때를 조금은 연기시켜 줄 수는 있을 것이다.
카펠라는 그러한 내 생각을 읽었다는 듯 입꼬리를 조금 더 말아 올리며 말했다.
“죽이려면 죽이셔도 돼요. 다만, 저는 제가 평생토록 믿어온 신에 대해서 조금 더 깊이 알고 싶을 뿐입니다. 죽음이 다가오니 가장 미련이 남는 건 바로 무지에 대한 아쉬움이었습니다.”
“그 부분은 저승에 가서 탐구를 이어가면 될 것 같군.”
“하긴. 단순히 몇 가지 정보를 드리는 정도로 저를 믿으실 수 없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잘 알고 있네.”
“하지만, 당신은 이미 시리우스를 수족처럼 부리고 있어요. 그 아이는 그리 쉽게 다른 사람을 따르지 않는데도 말이죠.”
그 순간, 나는 사라 쪽을 바라봤다.
그녀의 손가락에는 시커먼 흑색 반지가 끼워져 있었고, 시리우스는 그 반지에 존재하는 스킬, ‘속박의 낙인’에 의해 묶여있는 상태였다.
아마도, 카펠라는 저 반지에 대해서라든지, 내가 시리우스를 속박한 방법에 대해서라든지. 뭔가를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런데, 그래서 뭐?
“그럼 뭐, 너도 내 노예 한 번 해볼래?”
마침 쓸 만한 비행능력도 있고, 시리우스 통운에 취업해서 함께 배달 일을 해준다면, 나름 꽤 쓸 만할지도?
하지만 시리우스의 경우, 지독한 칼라미티의 다른 요원들과는 다르게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해왔다.
불공정한 노예 계약을 맺어가면서까지 생에 미련이 많은 어린아이였다.
나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고, 지금의 그녀는 나름대로 새로 얻은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살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카펠라는 다르겠지.’
나야 정말로 노예 계약을 맺어준다면 그저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이기에 나쁠 것이 전혀 없는 일이겠지만.
정말로 그렇게 되겠냐고.
지금까지 봐온 칼라미티의 요원과 간부들을 본다면, 그렇게 구차한 삶을 이어나갈 바에야, 곧바로 죽음을 택할 것이 뻔할 뻔 자였다.
나는 그녀의 표정을 슬쩍 살폈다.
“후훗.”
죽기 직전에 지어 보이는, 카펠라의 실없는 미소를 바라보며, 나 또한 마주 피식 웃어 보였다.
역시 좀 그렇지? 아무리 농담이라도 그런 말 하는 거 아니다.
꺼림칙한 게 당연하겠지.
“네, 될게요.”
“……?”
Leave a Reply